마르틴 루터 한복초상화
▲마르틴 루터 한복초상화 완성본. ⓒ연구원 제공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한복을 입은 마르틴 루터의 초상화가 제작됐다.

한국형질문화연구원(얼굴연구소, 원장 조용진)은 종교개혁의 인류사적 의미를 되새기기 위해, 비단에 그린 루터의 초상화 채색 정본 1점을 독일 비텐베르크 루터하우스 전시관에 기증했고, 영인본 1점과 초본 4점, 초상화 모델이 된 루터 복원 두상 1점을 장로회신학대학교(총장 임성빈 박사) 박물관에 기증했다.

이 마르틴 루터 초상화는 지난 4월부터 6개월 동안 제작했으며, 전통 화법으로 그린 두 번재 서양인 초상화다. 연구원은 문화체육관광부 전통문화과의 사업비 지원을 받아 4년째 전통 초상화가를 양성 중이며, 올해 사업으로 조용진 원장 및 연구생 3명과 함께 루터 한복 초상화를 제작했다.

조 원장은 "기독교가 널리 전파된 한국인으로서 종교개혁을 일으킨 독일에 도리를 다하고, 인류 종교사에 큰 업적을 남긴 루터의 신념과 의지에 경의를 표하고자 제작하게 됐다"며 "이는 한국교회사에도 의미 있는 일로 여겨, 그 뜻을 기념하고 보존하기 위해 장신대 박물관에 기증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자문위원은 강병철 목사(초대교회), 김영경 교수(고려대 종교학), 주대범 장로(루터회), 박일영 교수(루터대) 등이 맡았다. 이들은 제작 의의에 대해 "루터 생존 시기인 조선 중기 우리 초상화에 나타난 미적 감각에 기반했고, 한국 초상화의 전형성을 잘 나타낸 작품"이라며 "종교개혁을 상징하는 중심 도시인 비텐베르크의 루터하우스 전시관에 우리나라 전통미술이 압축된 작품이 소장·전시되는 것 또한 기쁜 일"이라고 밝혔다.

마르틴 루터 한복초상화
▲연구원은 루터 두상을 먼저 제작했다. ⓒ연구원 제공
또 "국내적으로는 비단 바탕에 물감을 뒤에서 칠하는 배채법으로, 독특한 양식을 수립한 한국 초상화의 전통을 이어받은 작품"이라며 "초상화 대국인 우리나라에서 전통 화법으로 그린 두 번째 서양인 초상화라는 점에 있어서도 미술사적 의미가 크다"고 평가했다.

얼굴은 종교개혁 당시 화가 大 크라나흐의 작품에 준해 시선을 정시로 했고, 루터가 앉아있는 호피 등받이는 한국 전통 초상화 양식의 전형을 빌린 것이며, 신체 비례나 자세는 루터 생존 시기인 조선중기 양식에 준했다. 옷 색깔은 종교성을 고려해 하늘색을 주조로 했고, 옷 문양은 조선 초상화의 관념성에 따라 시각성을 배제한 평면 연속무늬로 했다. 돗자리는 조선후기 초상화 양식에 준했다.

갓을 쓴 루터가 들고 있는 '서책'에는 '오직 성경으로, 오직 은총으로, 오직 믿음으로(Sola Scriptura, Sola Gratia, Sola Fide)'가 쓰여 있다. 글자체는 세종대왕이 직접 지은 '월인천강지곡'체다. 루터는 독일서 한국을 바라보는 자세로 동쪽을 향했다.

전통화법으로 그린 루터 한복초상화 제작일지
▲<전통화법으로 그린 루터 한복초상화 제작일지>.
◈전통화법으로 그린 루터 한복초상화 제작일지

조용진 원장은 제작 과정을 <전통화법으로 그린 루터 한복초상화 제작일지(집문당)>라는 책에 담았다.

조 원장은 "한국의 화가로서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루터 초상화를 그린다면,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다"며 "국제문화인 유화로 눈에 익숙한 '인상주의 화법의 근대인물화'로 그릴 수도 있고, 좀 더 간편하게 수채화나 파스텔화로 그릴 수도 있다. 아니면 유럽인들에게 희소가치가 있어 보이는 수묵인물화법도 있지만, 우리의 전통 초상화법이 있다면 그것이 더 의미 있지 않겠는가"라고 말했다.

그는 "개항 1백년이 됐지만, 우리의 훌륭한 초상화법으로 서양인을 그린 예가 전무했던 일도 우리 미술사에 애석한 일"이라며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세계 종교사에 큰 업적을 남긴 마르틴 루터의 사상과 노력을 추모하는 의미로 전통화법으로 루터 한복초상화를 제작하는 일은 전통문화 창달을 위해 내딛는 첫걸음일 것"이라고 밝혔다.

책에서는 마르틴 루터의 풍신 결정과 루터의 얼굴 조각 제작 과정, 한국적 초상화 양식 등을 설명하고 루터 초본 작성과 채색 정본 제작 각 단계를 설명하고 있다.

우리 초상화에 대해 조 원장은 "우리는 조선시대까지 동양그림 스스로의 논리를 견지하면서 한국적 초상화를 성공시켰으나, 최근 100년간 그 전통을 잊어버리고 말았다"며 "서양화처럼 해 보니 완성감이 나지 않고, 사진처럼 그려 보았더니 격조가 떨어지고, 순수미술로 하려니 일본 근대 인물화풍과 다를 바 없어졌다. 이렇게 영·정조 시대 이후 우리 초상미술사는 암중모색으로 지금까지 흘러왔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