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충렬 인터뷰
▲김충렬 교수. ⓒ크리스천투데이 DB
제44장 분석심리학의 동향과 치료교육

분석치료는 임상의학 분야에서 심리학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한다. 심리학적인 이해는 점차 더 넓게 발전하고 있는데, 인간의 문제를 다루는 일은 모두 정신이나 심리에 관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로 인간의 심리는 광범위하기 때문에 심리학에 대한 지식과 경험이 넓어질수록 임상정신의학의 테두리를 넘어서게 된다. 여기에 분석치료는 인격의 심층을 살피며, 근본적인 인격의 변화를 일으켜 성숙한 사람으로 만드는데 목적을 둔다. 이런 치료의 분위기에서 분석심리치료는 어떻게 발전되어 교육하는지를 고찰해 보자.

1. 분석심리학의 최근 동향

분석심리학은 칼 구스타프 융(1875-1961)에 의해 창시된 치료학이다. 분석심리학을 창시한 융은 19세기말에서 20세기 중반을 넘어 활동한 스위스의 정신의학자이다. 그의 학설은 정신의학과 정신치료뿐 아니라 신학, 종교심리학, 신화학, 문화인류학, 문화예술, 심리측정학, 물리학에 이르기까지 인문사회 및 자연과학의 여러 분야에 광범위한 반향을 일으켰다. 오늘날 그의 학설은 철학에서 다시 연구되어 심리철학 또는 철학적 심리학을 다시 생겨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1) 분석심리학의 올바른 이해

분석심리학은 정신을 치료하는 치료학문이다. 어떤 사람은 분석심리학을 문화철학이나 수양을 위한 학문으로 알고 있기도 하지만, 분석심리학은 인간의 정신을 치료하는 치료학문인 것이다. 이런 점에서 융은 자신을 '영혼의 의사'로 자처했을 것이다. 융은 스위스의 실용적인 전통에 걸맞게 유럽의 오랜 전통적 문화유산을 깊이 연구하면서도 그것이 항상 정신요법의 현장에서 응용되고 활용되어야함을 강조했다. 이런 융의 학설에 대하여 어떤 사람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설의 많은 수정학파 중의 하나쯤으로 보려는 사람도 있지만, 학설의 관점이나 내용으로 볼 때 그런 시각은 융의 심리학적인 관점을 잘 모르는 데서 나온 단견이다.

프로이트의 이론은 이드(원초아)의 본능을 중요시하는데, 그 중에서도 성욕 중심설과 이에 따른 신경증 이론이 모든 신경증 환자에게 적용되는 것이다. 그러나 융의 학설은 무의식의 자율적, 창조적 기능, 그리고 대극의 합일을 중심으로 하는 이론이다. 이런 과정에서 분석심리학은 자기의 원형과 객체정신의 존재, 인간심리와 그 병리현상의 인과적 접근을 부인하지 않으면서 목적론적 관점을 도입한 합성적이고 전체적인 태도를 견지한다.

신체에 대한 의학은 놀라운 발전을 이룩하여 무서운 암이 상당히 정복되었고, 머지않아 칩이 혈관을 타고 들어가 치료하는 날이 온다고 하는 데에 까지 이르렀다. 그런 것에 비하면 보이지 않는 우리의 정신은 아직도 그 정체가 완전히 규명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정신의 분야에 융의 연구는 많은 도움을 주고 있는데, 그는 보이지 않게 작용하는 무의식의 정체를 밝혀 정신치료의 길을 넓게 열어 주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융의 학설은 정신과 신체의 가장 근본적인 관계를 설명해주는 원형론, 시간, 공간을 상대화하는 무의식의 절대지(絶對知)를 근거로 하는 비인간적인 동시성론 등은 다른 어떤 학파에서도 볼 수 없는 깊고 포괄적인 통찰의 결과를 분석자들에게 제공해주기도 했다.

2) 융 이후의 분석심리학의 발전

분석심리학은 1961년 융의 서거 후 그의 제자이자 동료들에 의해 계승 및 발전되었다. 융은 이미 1948년 정신치료의 올바른 수련을 위하여 제자와 동료들과 함께 스위스 취리히에 융 연구소(Insttute von C. G. Jung)를 설립하여 후진을 양성했지만, 이미 그 당시에 그의 사상을 토대로 독창적으로 발전시켰거나 그와 같은 방향의 연구를 한 몇몇 친우들이 있었다.

이런 친우들을 여럿 들 수 있지만, 특징적인 친우들만 들면 다음과 같다. 의식의 발전과정의 신화적 관련을 체계적으로 해석 시도한 이스라엘의 에리히 노이만(Erich Neumann), 어린이 원형과 신화의 관계를 공동으로 연구한 헝가리의 신화학자 카알 케레니(Karl Kerenyi), 도교 경전을 공동연구한 중국학자 리하르트 빌헬름(Richard Wilhelm), 인도학자 하인리히 침머(Heinrig Zimmer), 동시성론을 공동집필한,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볼프강 파울리(Wolfgang Pauli), 융 연구소의 교수였던 개신교 신학자 한스 쉐어(Hans Schaer), 가톨릭 신학자 울리히 만(Ulrich Mann) 등이 전공분야는 다르지만 깊은 공감을 나눈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들과는 달리 우리는 융에게 매우 가까운 한 사람을 빼놓을 수 없다. 그 사람이 바로 스위스의 마리 루이제 폰 프란츠(Marie Louise von Franz)여사이다. 그녀는 융이 시작하고 완성하지 못한 연금술에 관한 연구, 민담의 원형적 상징, 물질과 정신의 관계를 규명한 수(數) 상징의 연구, 죽음과  무의식의 반응에 관한 연구 등을 통하여 융의 이론을 확충했다. 특히 폰 프란츠는 적극적 명상의 대가인 영국인 바바라 한나(Babara Hannah), 60년대 취리히 융 연구소를 이끈 프란츠 리클린(Franz Riklin)과 함께 융의 사상을 충실히 계승하고 발전시킨 사람이다.

이 밖에도 융의 1대 제자 가운데는 그림요법을 체계화한 욜란드 야코비(Jolande Jacobi), 정신분열증의 정신치료로 유명했던 스위스의 하인리히 카알 휘에르츠(Heinrich Karl Fierz), 해박한 지식과 경륜을 지니고 실험적 연구에도 큰 관심을 가졌던 마이어(C. A. Meier)교수, 미국의 죠셉 핸더슨(Joseph Henderson), 영국의 게하르트 아들러(Gerhard Adler) 등 1대 융기언들이 있는데, 대부분 타계한 것으로 알려진다.

3) 분석심리학파의 정신

융의 분석심리학은 학회가 커지고 회원의 수가 늘면서 자연히 융 사상에 대한 다양한 해석도 가능하게 될 것이다. 융의 학설이 너무나 방대하고 그 수련기간이 길게 됨에 따라 조금의 변경을 가하려는 움직임, 그리고 분석가 되는 데에 따른 기간에 따라 문제가 되는 교육비의 문제, 그리고 방대한 이론을 실제 치료현장에서 실용적으로 활용하는 문제 등에 따라 견해를 달리하는 전문가들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분석심리학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이 정통파와 수정학파, 그리고 신 프로이트 학파 등이 생겨나는 것처럼 발전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아직은 신 융 학파나 정통 융 학파라고 지칭하는 학파가 생겨나지 않고 있다. 이것은 융이 자기의 학설을 신성불가침의 도그마로 삼은 적이 없고 정신치료의 방법을 절대시하지 않은 것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아마도 그의 이론이 너무나 방대하여 전체를 섭렵하지 않고 어느 한 부분을 가지고 변형하기란 도저히 불가능하기 때문일지 모른다. 전체를 섭렵하지 않고 어느 부분만을 활용하는 차원이라면 그것은 진정한 융의 방법이라고 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융은 치료의 방법보다도 분석자의 자세를 중요시했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인간의 의식과 무의식에 대한 마음의 전체를 바라보는 자세를 갖추는 것, 실제로 융은 그것을 치료의 방법보다도 훨씬 중요하게 여겼던 것이다. 이것은 인간의 마음 전체를 어느 정도로 이해하고 치료에 임하는가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의 사회에서도 분석심리학을 올바로 배워서 전문가가 되고 싶은 사람은 날로 증가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분위기는 정신치료의 현장에서 그 발전을 위해서는 매우 고무적인 일이지만, 우리는 한 가지를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융의 기본정신을 따른다면 누구의 마음속에서 갈등과 고통을 이겨내게 할 수 있는 대극합일의 원동력, 전체인격을 실현할 수 있는 핵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2. 분석심리학의 분석가와 교육

분석심리학에서 교육은 환자를 전문적으로 치료해야 할 분석가를 배출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분석심리학의 분석가의 활동이 아직은 본격화 되지 않고 있는 편이다. 그것은 우리나라가 분석치료의 초기상황에 있고 전문교육을 받은 사람도 극히 소수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분석심리학은 정신의학 분야에서만 사용해 왔는데, 그것도 불과 소수의 정신과 전문의나 분석가로 제한된다. 앞으로는 치료의 분야에서 분석치료의 이론이 확산되어 기여하게 되리라 본다.

그런 사정에 따라 여기 분석자와 교육에 관한 것은 분석치료에서 사용하는 기준에 따른다. 여기서는 분석가와 분석자를 혼용하여 사용한다. 그것은 분석가가 아니어도 치료현장에서 분석심리학의 정신으로 치료하는 분석자들이 있음을 감안하려는 것이다.

1) 분석심리학에서 치료를 위한 전제

분석심리학에서는 분석자의 자세는 실로 중요하다. 어느 치료학파든지 간에 분석자의 자세를 중요시하는 경향이다. 분석심리학에서 역시 분석의 기술보다 분석자의 인격이나 분석자세를 중요시하는데, 이는 분석자의 인격이나 자세가 분석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이유 때문이다. 치료는 환자와 대화를 통하여 분석해 나가는 것이기에 분석자의 바른 마음의 자세는 큰 역할을 하기 마련이다. 여기에 착안하여 융은 변증법적 분석법을 고안하였다.

변증법적 방법이란 환자의 개성을 살리는 방법으로 분석자와 환자가 새로운 상황을 만드는 것이다. 이는 정해진 어떤 분석론이 아니라 함께 체험해 가는 대화를 통하여 전혀 다른 상황과 분석법을 찾는 방법이다. 이러한 바로 '변증법적 자세'에서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 분석가, 즉 분석자의 문제이다. 환자를 분석하기에 앞서 분석가 자신을 먼저 알아야 한다는 점에서다.

분석자가 자신의 심리 및 정신문제에 대하여 무지하면 환자에 대한 효과적인 치료를 기대할 수 없다. 또한 분석자 역시 인간이므로 분석과정에서 환자로부터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분석자의 교육 및 자격이 요구된다. 치료를 하기 위해서는 분석자 자신이 먼저 분석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2) 분석심리학의 치료적인 특징

분석가의 태도를 중요시하는 것이 분석심리학의 특징이다. 분석가가 어떤 치료적인 태도를 갖고 분석에 임하느냐에 따라 환자와 협력하여 좋은 결과를 산출하기 때문이다. 분석가의 개성이 분석에 변인으로 보는 분석심리학의 관점은 다음의 특징을 갖고 있다.

첫째로 치료는 임상의 테두리를 넘어서야 한다. 분석가에게 치료를 위한 폭넓은 심리학적 식견이 요구된다. 한 인간의 생의 의미, 마음의 심층으로부터 정신의 문제를 해석하려면 인간에 대한 다양한 지식이 동원된다. 그 때문에 정신치료는 때로 임상의 영역을 넘어선다. 임상의학에서 사용되어 오는 적응증(indication), 금기(constraindication), 진단(diagnosis), 예후(prognosis) 등의 용어에 충실해야 하지만, 이를 포기해야 하는 때도 있다.

인간 영혼이 갖는 신비한 특성을 알기 위해서는 증후학(symptomatology)의 여러 용어 해석으로만 충분치 않다. 그것은 보다 넓은 인류의 심리적 유산이 지니는 특징이 필요하기에 분석심리학은 의학분야를 넘어서는 다른 분야에 대한 지식을 분석자에게 요구한다. 분석은 심리학 외에도 인류학, 종교, 신화, 그 밖의 예술상의 여러 상징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현대의 인간은 융에 의하면 신화를 잃어버렸다. 인간은 신화를 잃어버린 결과로 정신이 삭막하게 되었다. 정신이 분열된 하나의 원인을 인류의 정신의 모체인 신화의 상실로 보는 것이다. 신화는 논리의 초월이며 무의식의 다른 표현이다. 이것은 이성(理性)이라는 논리의 의식세계와 논리의 초월인 무의식세계의 특성이 균형을 잃어서 일어나는 정신이 심각한 질병을 초래한다는데 기초한 것이다.

이로 인해 분석심리학에서 정신치료란 이제 근본적으로 두 특성이 잃어버린 균형과 조화를 회복하는 것이 되고 있다. 이 균형회복이 바로 진정한 개성을 찾는 것이요 치료가 되는데, 분석심리학이 참다운 개성을 가진 인간으로 회복시키는 것을 분석의 목표로 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둘째로 분석가는 심리학적 진단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분석가는 정신문제에 대한 임상진단 외에 심리학적 진단을 할 수 있는 실력이 있어야 한다. 일반적으로 임상진단은 오랜 의학적인 체계에 따라 서구에서는 대체로 라틴어로 하는 것이지만, 이것이 개인 인간의 특성을 진단하는데 효과적인 방법일수만은 없다. 개인의 심리특성이란 어떤 틀에 의해서, 그리고 수학공식처럼 진행될 수 없고, 진정한 진단은 개인의 여건과 상황 등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융은 이러한 진단에 대해 오히려 일반적인 용어가 더 효과적인 표현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어떤 환자에 대하여 공포장애, 강박장애로 표시하기보다는 '어머니의 귀염둥이'라고 하는 방식의 표현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를 화병(禍病)이나 한(恨)맺힌 사람이라고 표현하는 방식이다. 이는 질병에 대한 오진(誤診)이나 환자에 대한 선입관념을 막기 위한 조치이기도 하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임상적인 진단이 환자의 감추어진 심리를 아는데 적절하거나 충분치 않다는데 기초하고 있다.

그러면 환자의 심리를 고려하여 내리는 진단이란 무엇인가? 융은 "심리학적 진단은 콤플렉스 진단"임을 말한다. 이러한 심리학적 진단 역시 분석자의 환자에 대한 선입견의 주의가 요구되는데, 일반적으로 정신병의 진단은 처음부터 발견되는 간단한고 단순한 질병이라기보다는 때로 분석의 끝에 가서야 밝혀지는 질병일 때가 있기 때문이다. "분석자가 미리 아는 것이 적으면 적을수록 분석의 기회는 좋다. 틀에 박힌 '이미 다 알고 있는 일'이라는 생각처럼 해로운 것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심리학적 임상진단은 장애를 구분하는 정도로 하는데, 여기에는 신경증적 장애, 정신병, 뇌의 기질적 장애, 조울증과 같은 정감(情感)장애 등을 구분하는 정도이다. 분석의 치료에는 일반적인 정신치료에서 사용하는 적응증이나 금기의 일반율이 없다. 분석이란 고정불변의 분석방법에 의한 것이 아니라 환자의 특성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분석적 특징이 분석자에 의해 시도될 수 있는지의 여부는 분석자의 체험과 관심의 범위에 따라 다르다.

예컨대 어떤 박수무당이 분석자에게 천연두의 신(神)을 의미하는 이른바 "손 없는 날을 택해서 무슨 일을 하자!"고 하는 수가 있다. 그런데 이런 것을 믿지 않는 기독교인은 아무 때나 아무렇게나 하는 데도 아무런 탈이 없다. 그러기에 분석치료에서는 적응증과 금기를 지나치게 의존하거나 절대시하는 것은 잘못된 구속력을 갖는 것이나 같다. 이런 일은 치료를 경화시켜 개인의 자유로운 성장을 방해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가 있다. 이는 개인의 인격을 다루며 분석하는 행위란 일정한 도식에 의해서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분석치료의 목표에 관해서도 유연성이 발휘되어야 한다. 이에 따라 분석종결이 이루어지는 시기에 대해서도 개인에 따라 차이가 있게 된다. 어떤 환자는 사회에 적응할 만큼 분석하고, 어떤 환자는 증상을 없애는 것을 목표로 한다거나, 그리고 어떤 환자는 인격을 성숙시키는 보다 큰 목표를 세울 수 있다는 것이다.

융은 이렇게 말한다. "분석치료에서는 분석자가 너무 확실한 치료목표를 갖지 않는 것이 바람직한 것 같다. 분석자는 그 목표에 대하여 환자의 생애에의 의지나 그의 본성보다도 더 잘 알 수 없을 것이다. 인간의 삶에서 커다란 결단들은 보통 의식적인 의도나 좋은 뜻의 이성보다는 본능이나 그 밖의 숨겨진 무의식적인 요소에 의하여 더 지배되는 것이다. 한 사람에게 맞는 구두는 다른 사람의 발을 죈다는 점에서는 일반적인 보편타당한 삶의 처방이란 없는 것이다."

셋째로 분석자는 종교와 세계관에 대한 식견을 갖추어야 한다. 분석자는 여러 환자를 분석하면서 여러 측면에 영향을 받은 심리적 특성을 대하게 된다. 환자 가운데는 무종교인, 철학자, 종교인, 정치가 등 실로 다양할 것이다. 때로 종교인이 신앙을 상실한 경우의 환자도 있을 수 있다. 그런 경우에 종교적인 확신이 없거나 비정통적인 확신을 가지고 있는 경우에는 분석자에게 환자의 종교적 상징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환자 개인의 무의식 속에 자연발생적으로 산출되는 종교적 상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다양한 경우에 분석자가 대처해야 할 분야에 대한 식견이 없다면 분석치료는 그만큼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특히 종교는 개인의 인생관과 삶의 자세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인이라는 점에서 환자의 이해에 매우 필수적인 것이다. 분석심리학이 종교의 기능을 중요시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실제로 환자를 분석하다보면 환자의 세계적인 갈등과 그러한 대결을 분석과정에서 체험하게 되는 것이 보통이다.

환자의 정신적 특성은 단순하지 않다. 환자란 한편으로는 생리적인 측면을 가지고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극히 복잡한 여러 조건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 생리학적으로 증명할 수 없는 합리적, 윤리적, 미적, 종교적 또는 그 밖의 전통과 결부된 여러 관념들이다. 이때 환자의 세계관이란 생리적으로 결부된 정신의 다른 한 측면이다. "나는 사람들이 인생의 문제에 대하여 불충분하거나 잘못된 대답으로 만족하고 있을 때 노이로제가 되는 경우를 흔히 보았다. 그들은 지위, 결혼, 명성, 그리고 외부적인 성공과 돈을 추구한다. 그러면서 그들이 원하던 것을 얻었는데도 불행하고 신경증적이다."

그런 점에서 융은 분석가는 철학적 분석자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분석자에게 다양한 인간이해를 요구하는 것도 학문의 분할성에 기초한다. 대학에서 가르치는 철학이나 심리학은 지나치게 전문화 되거나 세분화 되어 전체적인 것을 종합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현실이기 때문이다. 때로 전문화된 교육이 분석자에게 필요한 교육적 도움을 주지 못하고 치료현장에서 유용한 수단도 제공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전문화가 오히려 비전문화를 산출하는 역설적인 결과도 있을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기에 분석자에게는 인생을 전체적으로 볼 수 있는 건전한 종교관이나 세계관이 요구된다. 물론 융은 어떤 세계관을 가져야 하는 지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세계관이란 보편적 성격을 가진 것이 아니며, 개인에 맞는 것이 타인에게는 맞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일정한 형식이나 틀을 미리 정해 놓은 세계관이란 환자가 갈등과 대결 속에서 형성해가는 특성과는 대치되는 것이다. 물론 누구에게나 맞는 보편적인 것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최소한 유물론적 합리주의를 피하고, 비합리적인 것을 포괄할 수 있는 것이면 좋겠다는 것이 융의 생각이다.

3) 분석가의 자격과 교육

분석심리학의 분석가, 즉 분석자는 분석심리학파의 일정한 교육과정을 받은 사람이다. 이러한 교육은 각종 심리학파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정통프로이트학파, 신프로이트학파, 실존분석학파, 형태분석학파 등에서도 그 학파의 교육기준에 따라 실시한다. 융 학파의 분석자를 위한 교육은 우리나라에서는 아직은 전문화되어 있지 않은 실정이다. 따라서 융 학파의 분석가를 위한 수련기준에 따라야 한다.

융 학파는 주로 미국의 주요도시, 영국, 프랑스, 독일,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브라질, 호주, 남아메리카 각지에 연구소가 있고, 남아프리카에서도 분석자를 양성하고 있다. 동구권과 러시아에서도 융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어 연구회를 조직하여 공부하고 있고, 중국에서도 연구회 활동을 통해 융의 저작의 번역, 자체적으로 연구하고 발표하는 등의 노력을 시도하고 있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하면서 우리는 분석자의 수련을 위한 교육과정을 먼저 스위스 융 연구소의 과정, 그리고 나서 한국의 융 연구소의 교육과정으로 구분하여 살펴보기로 하자.

스위스 취리히 융 연구소는 모든 융 연구소의 모체이며 표본이다. 이곳에서는 분석자 교육이 두 가지 방향에서 실시된다. 그 첫째는 체험을 통한 인간심리 및 정신의 이해로서 교육분석(Lehranalyse, training analysis)이 가장 중요하다. 이런 과정을 충분히 마친 후에는 지도분석(Kontrollanalyse, control analysis), 사례토의 등을 통한 집단교육이 있다. 그리고 임상정신의학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의 임상실습 등이 있다. 둘째는 이론적인 연구로서 정신병리학의 기초이론 외에 여러 분야를 공부한다. 인간심리 및 정신의 심층, 특히 집단무의식을 이해하기 위한 인류학, 종교사, 신화, 민담의 이해 등이다. 이를 위한 각종 강의와 여러 가지 세미나가 있어 실제로 발표하고 토론하도록 되어 있다.

분석자의 수련을 위한 전제조건은 최소한 대학의 학위를 가진 사람이다. 반드시 의과대학을 졸업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규정은 없다. 분석자의 수련은 특수한 심리학의 수련이므로 의과대학의 연장과정이 아니다. 수련은 별개의 특수한 수련이기에 어떤 분야를 전공하였든지 간에 새롭게 공부해야 한다. 물론 여기에서 임상수련은 매우 중요하다. 분석가가 아닌 사람의 경우에는 반드시 충분한 정신과 임상실습 과정을 이수해야 한다.

그 과정을 통하여 임상의 경험을 쌓고 기본적인 정신과 분석에 대한 지식을 습득해야 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분석가를 지망한 사람의 건강한 인격이다. 이 점에서 교육분석가의 의견이 매우 중요하고 여러 심의기구가 마련되고 있다. 연구소에서 수련교육과정을 끝내면 분석자의 자격(디플롬)을 얻게 된다. 그 과정은 다음과 같다.

첫째로 자격이 있는 분석자에게 50시간 이상 분석치료 받은 사람은 입소심사를 받을 수 있다. 이때 분석가가 되려는 후보자는 자신을 분석한 분석자에 의해서 추천을 받아서 입소심사를 받거나, 예외적으로 다른 사람의 추천을 받는다. 그리고 이런 경우에도 처음 2학기는 예비 수련후보(Ausbil- dungskandidat, training condidate)이다. 이런 경향은 분석가를 양산하려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자질이 있는 분석가를 교육하여 배출하려는 교육정신에 기초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둘째로 처음 2학기는 어느 정도 분석치료 받은 뒤 교육분석자가 추천을 한다. 그 뒤 보통 3학기 후에 치르는 예비시험을 통과하여 정식 수련후보가 된다. 교육분석은 주당 2회 내지 3회, 때로는 예외적으로 1회이다. 예비시험까지는 최소한 130시간의 교육분석을 받아야 된다. 교육분석은 두 분석가들에게서 받도록 하며, 가급적이면 성(性)이 다른 분석가에게서 받도록 권장하는 편이며, 지도분석의 사례도 마찬가지이다. 예비시험의 내용은 모두 구두시험으로 치러야 하는데, 대체로 분석심리학의 기초이론, 꿈의 심리학, 연상검사의 실시방법과 그 이해, 콤플렉스 학설, 신경증에 대한 각 학파의 이론, 정신병리학의 이해, 종교사, 원시인의 심성, 신화와 민담의 심리학 등이다.

셋째로 위의 시험에 모두 합격하면 디플롬 후보(Diplomkandidat)가 된다. 그리고 다른 사람에 대한 분석치료 지도분석자(Kontrollnalytiker)의 지도아래 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디플롬 시험을 치루기 위해서는 300시간의 교육분석을 받아야 하고, 마찬가지로 추천이 있어야 한다. 대체로 2년 이상 더 걸리게 된다. 지도분석(Kontrollanalyse)은 250시간을 해야 하고, 최소한 세 사람으로부터 지도를 받도록 되어 있다.

넷째로 지도사례는 3회 이상 세미나에 내놓고 토의되어야 하고, 각 증례는 분석경과의 서면으로 작성, 제출해야 한다. 그 외의 논문 두 편과 디플롬 논문을 써서 제출하도록 되어 있다.

다섯째로 디플롬 시험은 실제적인 응용노력을 보는데 그 목적이 있다. 꿈의 해석, 개성화와 상징, 실제분석 사례에 대한 지식의 응용 노력에 대한 시험을 치루며 디플롬 논문 심사를 한다.

전체적인 수련기간은 대개 3-4년 과정이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서는 5-6년 이상 걸리는 수도 있다. 모두 통과되면 분석심리학의 디플롬을 받고 융학파의 분석자(Analitiker)의 자격을 얻게 된다. 그 사이에 취리히의 융 연구소는 많은 변화를 겪었다. 많은 융의 1대 제자이며 교육 및 지도분석자들이 작고하거나 은퇴했고 젊은 세대로 운영책임이 바뀌었으며, 연구소의 규모가 커지고 연구원의 수가 늘자 선발기준상의 행정절차가 생기고 가르치는 내용에도 문제가 제기되었다.

최근에 취리히에는 융의 충실한 계승자이며 수제자인 마리-루이제 폰 프란츠를 따르는 제자들로 구성된 또 하나의 연구소(C. G. 융과 마리-루이제 폰 프란츠의 심층심리학 연구 및 수련센터(Forschung und Ausbildungs Zentrum fuer Tieefenpsychologie nach C. G. Jung und M.-L. von Franz)가 설립되어 활발히 교육을 시작하고 있다.

이상의 스위스 융 연구소의 수련과정을 기준으로 한국연구소 역시 거의 비슷한 교육과정을 실시한다. 그러나 한국융연구원은 한국실정에 맞는 교육을 위하여 대체로 스위스연구소보다는 엄격한 조건에서 실시되는 실정이다. 한국융연구원은 크게 예비수련과정과 전문교육과정으로 구분된다. 대체로 분석시간이 예비수련과정은 150시간(4학기 정도), 전문과정은 150시간(4년 정도)가 소요되며 각 과정마다 이수해야 할 과목들이 많다.

그 과목은 스위스의 연구소와 거의 동일하지만, 전문과정은 예비수련과정을 마친 사람으로서 전문가적인 훈련이 본격적으로 실시된다. 이는 분석교육 시간이 더 연장 될 수 있어 사실상 연한은 정해져 있다고 보기가 어렵다. 특별히 한국융연구원은 국내수련을 분석가의 수보다도 질에 역점을 두고 있는데 이는 분석가의 질적 향상에다 목표를 두어 실시하는 장기적인 안목에서 유익하다는 판단에서다. 이 모든 과정을 이수하여 분석가로서 자격을 취득하는 데는 대략 6년 이상이 걸리게 된다.

우선 예비수련과정을 위한 신청자격과 수련과정에서 실시하는 시험과목은 다음과 같다. 한국 융 연구원(1998. 2)이 발간한 융심리학 예비수련과정 요강에 의한다. 먼저 신청자격으로서는 첫째로 정신과 전문의, 혹은 정신과 전공의 3년차 이상인 사람이거나, 심리학 및 다른 분야를 전공하여 석사 이상의 학위 또는 이에 상응한 자격을 소지하고 자신의 전공 분야에서 2년 이상 활동한 경력이 있는 사람. 둘째로 본 연구원 또는 한국분석심리학회의 분석심리학 기초강좌 또는 공인된 융 학파 분석가의 분석심리학 강의를 수강한 사람. 셋째로 공인된 융학파의 분석가로부터 30시간 이상의 개인분석을 받고, 그 분석가가 수련에 적합하다고 인정하여 추천한 사람. 넷째로 대학졸업자로서 100시간 이상 장기간의 분석치료 통하여 분석가로부터 분석가로서의 소양이 탁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석사학위가 없어도 분석자의 추천과 평의원회의 심의를 거쳐 신청자격을 인정받을 수 있다.

그 다음 시험과목으로서는 분석심리학 기초(마음의 구조, 콤플렉스, 의식과 무의식, 자아와 자기, 페르조나, 그림자, 원형론, 아니마, 아니무스, 심리학적 유형, 자기실현 등), 꿈의 심리학, 융의 단어 연상실험(세미나 후 서면으로 제출), 융의 정신 신경증 이론과 다른 학파의 학설과의 비교, 임상정신병리학(비정신과분석자에 한함), 비교종교사, 원시민족의 심리학, 신화와 민담의 심리학(각 분야의 배점과 시간 등은 평의회에서 정한다).

이제 분석치료는 의학분야만 아니라 심리치료 또는 상담치료분야에서도 시도될 것이다. 지금까지 한국적 실정은 정신의학분야에만 국한되는 것이었다. 선진국에서는 이런 분야의 분석자를 심리학자(Psychologe), 또는 분석자(Therapist)로 부르고 있다. 정신의학의 국제적인 공식명칭이 심리학회임을 감안할 때 앞으로는 이런 사회적인 편파성이 다소 수정되어야 하리라고 본다.

3. 정리

지금까지 우리는 분석심리와 치료교육에 대하여 기술했다. 분석치료는 임상의학 분야에서 심리학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한다고 했다. 심리학적인 이해는 점차 더 넓게 발전하고 있는데, 인간의 문제를 다루는 일은 모두 정신이나 심리에 관여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실로 인간의 심리는 광범위하기 때문에 심리학에 대한 지식과 경험이 넓어질수록 임상정신의학의 테두리를 넘어서게 된다고 했는데, 분석치료는 인격의 심층을 살피며, 근본적인 인격의 변화를 일으켜 성숙한 사람으로 만드는데 목적을 두는 것이었다. 이런 치료의 분위기에서 우리는 분석심리치료가 어떤 특성을 갖게 되는지에 대해서 고찰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