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년실천주일연합예배
▲마태복음 20장으로 설교하고 있는 지난 9월 26일 희년실천주일연합예배 모습. 희년실천주일은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희년 정신을 되새기고, 희년에 대한 말씀을 교회에서 설교하고 가르치며, 희년을 실천하는 주일이라고 한다. 희년은행은 2016년 4월에 시작해서 현재 280명의 조합원, 1억 8천여만 원의 무이자저축이 모였고 이를 바탕으로 청년고금리전환대출, 공동주거지원대출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희년함께 홈페이지
지난 번 기고한 "기독교 좌파의 '희년'에 관한 오남용"에 덧붙여, 신약성서 상의 지주와 고용인의 관계에 관해 부연하고자 한다.

신약성서의 경제관을 다루는 학자들은 대개 누가복음을 '샘플링'하기 마련이지만, 이 글에서는 마태복음을 배경으로 했다. 토지 문제와 관련하여 '포도원'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단화가 다소 의도적으로 20장과 21장에 쌍으로 붙어 수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1. 포도원 주인과 품꾼의 관계

우선 마태복음 20장에 담긴 '포도원 주인과 품꾼'의 이야기이다(마 20:1-16).

포도원 주인은 어찌하여 제3시, 6시, 9시, 11시 등 출근 시간이 각기 다른 품꾼에게 동일한 일당(1데나리우스)을 지급했을까? 사회주의였을까? 제3시 출근자는 8시간 근무자였다. 제11시 출근자의 경우는 최소 1시간 밖에 근무하지 않은 셈이다.

해당 본문은 포도원의 주인을 집 주인이라 표현하고 있다. 여기서 '집 주인'이라는 말은 '상속받은 집(οἶκος)'과 그 상속을 받은 주인(δεσπότης)이라는 말이 합쳐서 된 말이다. 한 마디로 지주(地主)를 말한다.

이 지주가 나간 장터는 아고라(ἀγορά)라는 곳이었다. 오늘날 '아고라'는 인터넷 포털에서 자기가 지지하는 정치인을 과장되게 선전하거나 지지하지 않는 정치인은 폄훼하는 공간으로 그릇되게 인식하고 있으나, 본문 문맥에서 보다시피 '자유시장'을 뜻하는 공간이다.

그곳에는 제3시가 되었는데도 그냥 서 있는 노동자가 있었다. 제3시면 로마 시간법으로 오전 9시인데, 오전 9시부터 포도원 일을 시작하기에는 너무 늦은 시간이다. 즉 앞서 '자유시장'에 일찍 나온 노동자들은 이미 그 지주가 포도원으로 다 들인 상태였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이 지주는 제3시뿐 아니라 제6시, 9시에도 그렇게 '자유시장'을 나가고 있다. 우리가 읽는 성경에서는 마치 놀고 있는 사람들을 구제하러 나간 것처럼 접속사를 과잉 번역해놓고 있지만, 추수 시즌인 포도원은 자고로 종말론적 환경이다. 작업 종료시간을 맞추기 위해, 일손 조절을 위해, 주인은 분주하다. 그것이 제11시, 곧 오후 5시에도 지주가 '자유시장'에 나간 이유이다.

그는 거기서 발견한 노동자에게 이렇게 묻는다. "너희는 왜 여기서 온종일 나태하게(ἀργός) 서 있는 거냐?"

그러자 그들이 이렇게 답한다. "우리를 고용하는(μισθόω)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 말을 들은 지주는 이렇게 말한다. "너희도 포도원 안으로 들어가라." 그 시각이 포도원 작업 종료 1시간 전이었다.

문제는 어찌된 일인지 이 지주가 출근 시간이 각기 다른 품꾼에게 동일한 일당(1데나리우스)을 지급할 때 발생했다.

오전에 온 자가 항의한다. 이 항의의 소리는 故 문익환 목사가 참여한 역본에서 가장 잘 감정이입이 되어 드러난다. "막판에 와서 한 시간밖에 일하지 않은 저 사람들을, 온종일 뙤약볕 밑에서 수고한 우리와 똑같이 대우하십니까?"

이 항의에 대한 답은 이것이다(이 이야기의 주제이기도 하다). "네가 나와 한 데나리온의 약속을 하지 아니하였느냐?!"

실제로 지주는 제3시 이전에 들인 품꾼들과 '하루 한 데나리온씩' 약속했다.
'에크 데나리우 텐 헤메란(ἐκ δηναρίου τὴν ἡμέραν)'
=for a denarius for the day(한 날에 한 데나리우스)

이 지주는 공정했다고 성경은 말한다. 1시간 일한 자가 왜 같은 한 데나리우스를 받았는지, 그들이 어떤 노약자였는지, 아니면 어떤 (탁월한) 기술자였는지, 그것은 알 길이 없다. 왜냐하면 이 '한 날에 한 데나리우스'라는 '비율'은 모든 사람의 수고를 평준화하는 금전적 비율이 아니라, 모든 사람의 수고를 균등하게 하는 시간적 황금률이기 때문이다.

노동력이 약한 사람이 한 끼에 반 공기만 먹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 것처럼 기술을 터득하고자 각고의 노력을 한 사람이 1시간만 일했다 해서, 한 끼니를 반 공기만 먹어야 하는 것도 아닌 것이다.

역시 문익환 목사의 역본에 따르면, 그 주인은 이렇게 말한다. "내가 당신에게 잘못한 것이 무엇이오? 당신은 나와 품삯을 한 데나리온으로 정하지 않았소? 당신의 품삯이나 가지고 가시오. 나는 이 마지막 사람에게도 당신에게 준 만큼의 삯을 주기로 한 것이오. 내 것을 내 마음대로 처리하는 것이 잘못이란 말이오? 내 후한 처사가 비위에 거슬린단 말이오? ... 이와 같이 꼴찌가 첫째가 되고 첫째가 꼴찌가 될 것이다(마 20:13-16)."

마태복음에서 소개하는 두 포도원 이야기 중 전편은 "많이 거둔 자도 남음이 없고 적게 거둔 자도 부족함이 없이 각 사람은 먹을 만큼만 거두었더라"는 광야의 만나 법칙에서 유래했다(cf. 출애굽기 16장; 마 15:35-38).

희년실천주일연합예배
▲지난 9월 26일 희년실천주일연합예배 모습. ⓒ희년함께 홈페이지
2. 포도원 주인과 농부의 관계

다음은 그 뒷장 21장에 담긴 '포도원 주인과 농부'의 이야기이다(마 21:33-46).

이 본문은 같은 포도원 이야기인 전편과 달리, 매우 과격하다. 앞서 그 지주(οἰκοδεσπότης)가 보내온 종들을 때려죽이고, 급기야 그 지주의 아들까지 죽여 그의 유산을 분배하려는 농부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비유는 사실 배경이 좀 있는 이야기이다. 다음 열거하는 배경 속에 읽을 필요가 있다.

A.D. 1세기 팔레스타인 지역의 농업은 하향 산업이었다. 급격하게 불어난 인구를 먹여 살릴 곡물 농사란 사실상 불가능해, 수입에 의존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가 아니더라도, 농민은 수공업 기술 종사자 계층과 달리 언제나 양적으로 제한된 재화 속에서 늘 공급 부족에 시달리는 상태였다. 왜냐하면 엄밀한 의미에서 농부는 농민이 아니라 모두 '소작인'이었기 때문이다.

소작(小作)은 농지를 소유하지 못한 농민이 지주에게 농지를 빌려 경작하되 수확량 일부를 임대료로 내는 관계를 말하는데, 저 포도원 주인의 아들을 죽이는 이야기에 나오는 농부들도 사실은 '소작인'이라 번역해야 정확하다. 게오르고스(γεωργός)라는 말 자체가 농부 이전에 소작인을 지칭하는 말인 까닭이다.

역사적으로 유대인이 농민혁명 내지 농민반란을 야기시킨 사례가 두어 가지 있다. 첫째, A.D. 4년 헤롯이 죽은 뒤 그의 아들 아켈라우스가 후계자가 되면서, 백성들에게 자기 아버지보다 더 잘 대우해 주겠노라고 인기몰이를 했을 때, 사람들은 즉시 세금 감면 및 철폐를 요구했다. 아켈라우스는 다 들어주겠노라는 선심 공약을 내걸었지만, 여의치 않자 모조리 학살해 버렸다. 그해 유월절의 일이다(cf. Josephus, Jewish War 2.4., Jewish Antiquities 17.204-205).

두 번째 반란은 그로부터 20년 쯤 뒤 빌라도가 총독으로 임명된 직후 '화상을 새긴 군기(Iconic Standards)'를 예루살렘으로 들여오면서 발생했다.

율법에 따르면 예루살렘에는 그 어떠한 상(像)도 세울 수 없는 것이었기에, 유대인의 율법을 짓밟은 처사로 여겼던 것이다. 이러한 사태의 문제제기는 지역 유지들, 특히 예루살렘이 주거지인 자들에 의해 제기되었지만, 시골 사람들 즉 농민의 지원을 받아 실력 행사에 들어갔다(Jewish Antiquities 18.56).

한 가지만 더 소개하면, A.D. 39-41년 칼리굴라 황제가 자신의 동상을 아예 예루살렘 성전 안에 세우겠다고 나선 데서 비롯된 사건도 있다. 이 반란은 로마의 직접 통치 기간 중 가장 큰 소요사태였다.

알렉산드리아의 유대인 철학자 필로로부터 시리아 관할 장관 페트로니우스에 이르기까지, '이것만큼은 유대인들에겐 안 되는 것이다!' 라고 본국에 타전할 정도였다. 이때 농민들 대응이 어떠했는지, 이집트 디아스포라의 지역 유지로서 유대인 신분이면서도 로마 원로원 사회에까지 영향력이 미쳤던 필로(Philo)의 글에 잘 남아 있다.

"밀 이삭은 잘 익었으며 다른 곡식들도 마찬가지였지만, 그는 유대인들이 자신들의 조상제의에 대해 절망하고 생명을 경멸하여 그 경작지를 황폐케 하거나 언덕과 평야의 밭에 불을 지를 것을 우려했다(Philo, Embassy to Gaius, 249)."

이와 같은 저항은 자발적 참여인가, 아니면 다른 어떤 이유가 있을까.

우리는 일련의 유사한 사태들 속에서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유추할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자신들은 정작 토지를 소유해보지도 못한 소작인이면서, 생계에 밀접한 영향을 미치는 사안도 아닌 종교적 이유로, 자기 식솔의 생명과도 같은 경작지에 방화를 하려 했던 것은 사실상 자신들의 의사라기보다는, 영향력 있는 지역 유지나 종교지도자들의 의사였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바로 다른 공관복음에서도 다루고 있는 이 포도원 농부들이 일으킨 소요 사태의 유형이다(막 12:1-12; 마 21:33-46; 눅 20:9-19).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비유를 유대인 지도자들에게 들려줄 때만 해도,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들은 몰랐던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소요를 일으킨 소작인들을 다 진멸해버려야 한다고 답했던 것이다.

그런데 바로 그때, 그리스도께서는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된' 경구 하나를 들려준다. 여기서 소작인이 죽인 주인의 '아들' 히브리어 음가인 벤(בֵּן)과 '돌'의 음가인 에벤(אֶ֫בֶן)은 유사했다. 유대인 지도자들이 이 질문의 의도를 그제야 알아차린 것이다.

앞서 이들은 자신들을 지주로 여긴 탓에 소작인을 엄히 다스려야 한다고 피력했지만, 결국 '소작인'이란 소작인을 선동해 율법으로 포장된 이슈를 관철시키려 했던 자신들을 지목하는 말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린 것이다.

포도원은 그들이 약탈해 강도의 굴혈로 만든 성전과 연결된다(마 21장).

그리스도께서 던진 이 비유는 결코 로마 당국이나 지주를 두둔하는 비유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소작인 계층 자체를 겨냥한 비유도 아니다. 이는 바로 소작인을 선동하여 갖은 소요에 직·간접 개입했던 유대 지도자들의 관제적 행태를 지적한 비유로 이해할 수 있다. 관제적이면서도 지극히 상업적인 이 태도는 결국 성전 정결의 대상이 됐다.

소작농의 가면을 쓰고 땅의 진정한 주인인 하나님의 유업을 약탈해 분배하는 강도 집단. 결코 소작(인) 자체는 악이 아니다.

희년
▲한 정치가가 토지 국유화를 주장하며 ‘헨리 조지’를 인용한 내용의 기사. ⓒ페이스북 캡처
3. 우리나라의 포도원 주인과 농부의 관계

참고로 우리나라에서 토지를 몰수해 재분배하는 토지개혁은 1945년 광복 이후 남한과 북한에서 각각 실행됐다. 북한은 사유재산 제도가 없어지고 모든 토지가 국유/공산화되면서 무상몰수·무상분배를 통해 개혁이 단행됐다. 이로 인해 대부분의 지주는 월남하고, 정작 농민 자신들에게는 소작인 시절만큼도 잉여가 발생하지 않았다.

반면 남한의 농지개혁은 유상 수용과 유상 분배를 원칙으로 하여 기대에 못 미치는 잉여였지만, 보다 많은 소작인이 비록 적은 면적이라도 자기 소유 농지를 확보해 어엿한 농민으로 거듭나는 계기가 됐다. 이것은 북한보다 채산성이 있었느냐와는 별개로, 일단의 막강한 에너지로 작용하여 6·25가 터졌을 때도 농민들이 공산주의에 동화되는 일을 어느 정도 방지할 수 있었다.

현재 일부 지방자치단체장 및 정당인 중심으로 일단의 토지개혁을 시도하려는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는 실정이다. 왜냐하면 단순한 정권 이양 수준이 아니라 아예 개국(開國)의 망상을 가진 일부 사회주의자들에게 있어 토지의 개혁이란, 현존하는 모든 계급을 일순간 붕괴시켜 버리고 자신들이 재배분해 나눠주는 권리로써 폭발적인 권력을 집결시킬 수 있는 필연적 절차로 여기기 때문이다.

일부 양심 없는 기독교 지식인들이 이런 걸 '희년(Jubilee)'이라 선전하며 헛된 논리로 지원하고 있다(희년은 도리어 토지의 철저한 사유화 제도라 앞서 일러두었다).

이영진 기호와 해석
▲이영진 교수. ⓒ크리스천투데이 DB
하나님은 부르주아지의 하나님도 아니지만 플로레타리아트에 편중된 하나님도 아님을 알아야 한다.

토지의 원천 소유주는 당연 하나님이시다.

이영진 교수
호서대학교 평생교육원 신학 전공 주임교수이다. 그는 다양한 인문학 지평 간의 융합 속에서 각 분야를 자유롭게 넘나들면서도, 매우 보수적인 성서 테제들을 유지해 혼합주의에 배타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신학자로, 일반적인 융·복합이나 통섭과는 차별화된 연구를 지향하고 있다. <자본적 교회(대장간)>, <철학과 신학의 몽타주(홍성사)> 등의 저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