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충렬 인터뷰
▲김충렬 교수. ⓒ크리스천투데이 DB
제35장 내적인 인격으로서 아니마(3)

인격의 원형은 인격을 이루는데 반드시 있어야 할 특성이다. 그 중에서도 아니마는 여성성을 이루는 중요한 특성이다. 물론 여성적 특성이 남성에게도 조금 있지만, 여성에게 주로 존재해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아니마는 남성이 그토록 찾으면서 만나고자 하는 특성이 아닐 수 없다. 이로 인해 아니마의 특성이 많으면 매우 여성적인 여자로, 아니마의 특성이 적으면 남자 같은 여자로 불리는 이유이다. 이런 아니마에 대해서 앞장에 이어서 더 고찰해 보기로 한다.

1. 아니마의 부정적인 측면

아니마는 부정적인 특성을 갖고 있다. 아니마의 부정적인 특성은 여성적인 특성의 장점이 때로 부정적인 특성으로 작용하는 경우이다. 이런 아니마의 부정적인 특성은 깊은 사고의 과정을 거치기보다는 깊이가 결여되어 있고, 기분이 자주 변하는 것을 기반으로 한다. 다음의 몇 가지는 아니마의 부정적인 특성에 해당한다.

1) 남성이 감정이나 기분에 사로잡힘

감정이나 기분에 사로잡히는 것은 아니마의 부정적 측면이다. 여기에는 여성의 전형적인 특성으로 쉽게 흥분하고, 우울한 기분, 변덕스러움, 불안정, 쉽게 감동되는 경향 등이 해당한다. 이런 아니마의 특성은 차분하고 냉정하게 이성적인 작용을 거치기보다는 상황이나 기분에 좌우되는 경향이기도 하다. 이런 특성이 남성에게 나타나면 그 사람은 남자답지 않고 여자와 같다는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다.

그리고 남성의 아니마의 특성은 대개 그 어머니에 의해 형성되는데, 이는 아니마 상이 보통 여성에게 투사되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자기에게 나쁜 영향을 주었다고 느끼는 남성들에게는 그 아니마는 자주 화를 냄으로써 음산한 느낌이나 불확실하고 불안정하며 심술궂음을 나타낸다. 그러나 아니마의 부정적인 특성은 또한 극복할 수만 있다면, 오히려 더 남성다움을 강화시킬 수 있는 요소가 되기도 한다.

또한 부정적인 아니마의 특성은 남성이 자신을 비하시키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를 테면, 남성이  "나는 아무 것도 아니다", "나는 아무 보람도 없다", "나만 즐거움이 없다" 등 일종의 여성적인 기분(anima mood)이라는 어두운 감정을 주로 표출하는 성격을 지닌다. 그리고 남성이 "병에 걸리지나 않을까?", "무기력해지지나 않을까?" 또는 "사고가 나지 않을까?"하는 두려움 등의 특성을 보이는 경우이다.

이런 암울한 기분은 때로 자살을 유도하기도 하는 등, 운명적 여성성 등이 인격화 되어 위험스런 측면이나 파괴적인 환상까지도 보이는 경우도 있다. 모짜르트의 마술피리에서 밤의 여왕으로 인격화된 경우는 비교적 온건한 경우이지만, 그리이스 시레네(Sirens)나 독일의 로렐라이 언덕의 전설 같은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남성이 감정이나 기분에 지나치게 사로잡히면 논리적 사고나 생각의 깊이를 상실한다. 물론 모든 생각이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니지만, 남성이 기분에 사로잡히는 경우에 그런 현상이 더 두드러지게 나타난다는 점에서다. 때로는 감정이 생각을 넘어서 적절한 대안으로 제시되기도 하고, 기분이 깊은 사고의 과정을 넘어서는 때도 있다. 이것은 마치 선이 항상 아름다운 것이 아니며, 아름다운 것은 것 또한 반드시 선한 것이 아닌 것과도 같다. 그러나 일상의 생활에서 인간은 온전하지 못한 특성 때문에 가급적이면 사고의 과정을 거쳐서 가장 합리적인 방법을 도출해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앞뒤가 맞지 않은 불일치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시각에서는 마술적 여성의 특성에 매몰될 수밖에 없을지 모른다. 융은 이런 점에서 마술적 여성존재의 더 본능적인 것에 주목했다. 그것은 그리스 신화에서 반은 사람이고, 반은 새인 바다의 마녀인 지레네(Sirene)와 아름다운 노래로 유혹하여 배가 침몰하게 함으로써 뱃사람을 죽이는 로렐라이 언덕의 여인, 숲의 여인, 우아한 여인, 요정 왕의 딸, 그리스 신화의 흡혈 여괴들, 꿈에 나타나는 처녀 귀신인 수쿠부스 등을 예로 들고 있다. 이들은 젊은이들을 현혹해서 생명을 앗아간다는 점에서다. 이는 남성이 사고의 과정을 초월하여 기분이나 감정에 지나치게 압도되면 정신이나 생명의 상실을 의미한다는 점에서다.

2) 남자답지 못함의 아니마

아니마의 부정적인 특성은 남자답지 못한 점이다. 남성의 인격 속에서 아니마의 부정적인 특성은 모든 것의 가치를 절하시킬 목적으로 조롱과 악의에 찬 연약한 의견으로서 표명되는 편이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에 아니마는 대개 심술궂고 악의에 찬 행동, 사내답지 못한 비방을 일삼는 행위, 지나친 감상주의자나 예민성을 나타낸다.

말하자면 여성적인 감정이 발달하여 예민한 특성과 유약성, 화를 잘 내거나 신경증적인 측면이나 자발성의 결여로 결단에서 우유부단한 점을 나타내는 것이다. 여기에는 항상 값싼 진실의 왜곡이 있고, 미묘한 파괴성이 있다. 이는 남성이 합리적인 사고에 기초하여 생각하지 못하고, 오로지 감정에 치우쳐 남자답지 못하게 큰 실수를 자행하는 것이다.

융은 남성에게서 아니마는 개인적인 오해나 최선의 모험으로 나타난다고 강조한다. 물론 아니마의 개념을 알고 생각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기에 감정이입이나 자기가 경험한 것처럼 감득하는 것으로는 그 개념의 내용을 결코 경험할 수 없는 것도 있다. 아니마는 수면적으로 나타나는 체험 콤플렉스이며, 더욱이 그 작용은 가장 개인적인 삶에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런 아니마는 더 이상 여신(女新)으로서가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는 가장 개인적인 오해와 최선의 모험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럼 에도 불구하고 융은 임상의 경험에 의하면 어느 정도의 지능과 교양을 갖추 사람들로서 아니마의 관념과 그 상대적 자율성, 또한 여성에서의 아니무스 현상을 쉽게 파악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말한다.

전 세계 신화나 전설에 등장하는 무서운 독부(毒婦)는 아니마의 전형이다. 그녀는 아름다운 존재이지만, 신체에 숨겨진 무기를 갖고 있거나 비밀의 독을 갖고 있어 반드시 사람을 죽이고 만다. 이런 아니마의 모습은 전율스럽고, 차갑고 무자비한 것이다. 이런 종류의 아니마는 오늘에는 마녀 신봉에 의해 나타난다. 아니마는 남성의 정신적, 도덕적 힘에 대한 담력의 시험이자 불의 심판이라는 점에서다. 이런 경우의 아니마는 무시무시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주체이다.

이는 아니마가 대부분 투사를 통해서 정신영역의 밖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말하자면 단 한 번도 이전에 인간의 소유물이었던 적이 없는 심리적 사상(事象)이기 때문이다. 아들의 아니마는 융에 의하면 어머니의 압도적인 위력 속에 숨어 있다. 그것은 흔히 감상적 유대감을 평생 갖도록 하여 남자의 운명을 심각하게 침해하거나, 반대로 대담한 행동을 하도록 그의 용기를 고무시켜준다는 것이다. 고대 그리스 로마인에게 아니마는 여신 또는 마녀로서 나타나는데 비해서, 중세의 사람들에게는 여신이 성모 마리아나 어머니인 교회로 대체되었다고 본다.

3) 남성의 콤플렉스로서 아니마

아니마는 심혼 콤플렉스(Seelenkomplex)는 이해된다. 융은 이러한 특성에 대하여 여성의 영향 이외에 남성 자신의 여성성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말한다. 아니마의 콤플렉스는 물론 초개인적인 것이면서 집단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단지 개인적인 고유성 덕분에 덧없는 존재가 가능한 그런 것이 아니라, 그 보다는 오히려 어떤 전형적인 것이라는 것, 눈으로 볼 수 있는 단순한 표면적인 연결이 아니라 어딘가에 뿌리박고 있는 것임을 시사한다.

이런 현상은 아니마가 콤플렉스로서의 특성은 선험적 범주로 경험적인 사실과 만나게 됨으로써 비로소 내용, 영향 그리고 끝내는 의식성에 도달한다는 시각이다. 이는 무의식적인 것으로서 삶을 각성시키는 것이기도 하고 어떤 의미에서는 우리 조상의 모든 경험의 침전물이지만, 이는 반드시 경험 자체는 아니라고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 관련하여 융은 이런 콤플렉스는 유전된다는 확고한 증거를 찾지는 못했지만, 개인적 특성을 내포하지 않은 집단적 침전물과 함께 개인적으로 특징된 기억이 유전이 나타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아니마가 심혼의 콤플렉스라는 사실은 선천적으로 남성이 타고난 것으로 보는 입장이다. 이런 시각에서 남성은 흔히 사랑의 선택에서 자기의 무의식적인 여성성의 특이한 종류에서 가장 잘 일치하는 여성을 얻으려는 유혹에 빠진다고 본다. 이는 남성의 무의식 속에는 여성이라는 유전된 여성적인 상이 존재하기에 남성은 그 여성상의 도움으로 여성의 본질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융은 심혼의 콤플렉스를 여성성의 중요한 원천이라고 말한다. 그러기에 남성의 전체 본질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여성을 전제로 한다는 것이다. 남성의 체계는 선험적으로 여성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에서다. 이것은 마치 물, 빛, 공기, 소금, 탄수화물 등이 특정한 세상에 완벽하게 예비된 것과 같은 것이기에, 이는 남성이 태어난 그 세계의 형태는 남성에게는 이미 잠재적인 상(像)으로서 선천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남성에게는 부모, 아내, 자녀, 탄생과 죽음 등이 그런 잠재적인 상들이며 정신적인 준비 태세로서 타고난 것으로 간주한다.

그 외에도 아니마의 부정적인 특성에는 색정적인 환상도 있다. 미숙한 아니마는 에로틱한 공상의 형태이기 때문인데, 이는 색정(色情)적인 환상을 취하는 거칠고도 원시적인 특성을 지니기도 한다. 이는 강박적인 성격의 작용으로 감정적 태도가 원숙하지 못하여 지나치게 외설적인 것에 빠져드는 현상을 유발시키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 경우 남성은 영화 또는 스트립쇼를 보든가 에로틱한 사항에 관해 백주몽을 꾸든가 하면서 공상을 키운다. 이와 같이 부정적인 아니마의 모든 특성은 남성의 인격 속에서 노출될 수 있는 바로 오늘날 "남자답지 못한 사람"이라고 비난받을 수 있는 내적인 특성들이다. 이런 모습은 모두 아니마의 성급하지 못한 측면으로서 강박적인 특성을 띤다는 점에서다.

2. 인격의 원형으로서의 아니마

아니마는 인격적인 원형의 하나이다. 인격과 관련된 원형 중에 아니마가 존재한다. 원형이란 어느 한 개인의 것이 아니라 누구의 마음에나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인간 공통적인 본질이다. 이것은 지리, 문화, 민족을 초월하여 인간이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인간적인 특성이며, 후천적인 것이 아니라 선천적인 것이기에 태어날 때 이미 가지고 태어난 정신적인 특성이기 때문이다. 이 신비한 아니마의 원형은 대개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으로 투사된다.

1) 인물이나 작품에 투사되는 아니마

아니마의 원형은 대개 감정의 촉발과 관련되어 투사난다. 이성간의 사랑에서 강렬한 황홀감을 일으킬 때, 위대한 영웅이나 현자(賢者)로 인식될 때 등의 신비한 감정의 촉발을 통해서이다. 그와는 반대로 아니마의 원형은 강렬한 혐오감, 공포감, 불쾌감 또는 외경의 마음으로 투사되기도 한다. 이는 일상적인 부정적인 감정보다 더욱 강렬하고, 강박적이면서 마력적이라는 표현하기 어려운 특성을 지닌다.

이러한 원형은 위대한 지도자를 중심으로 모이는 신흥종파나, 인기가수에 대한 집단적인 열광, 지도자로 각광을 받는 사람이 군림하는 형태 등은 모두 여성들의 아니무스, 남성들의 아니마 감정이 일어난 결과이다. 이것은 단순한 성적인 매력이나 호기심을 넘어서 인간의 마음속에 내재하는 초인적인 특성을 희구하는 원형적인 특성과 관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원형과 관련되어 나타나는 현상들은 각기 대상이 다를 뿐 아니마의 공통된 특성이다.

아니마의 원형은 인물에 대한 숭배 및 경외로 인해 나타날 뿐 아니라, 예술가, 문인은 화폭이나 작품 속에 나타난다. 사람의 어떤 특성이 사물에 비유되어 나타나는데, 여기에는 이름 모를 새, 비둘기, 학, 혹은 태양이나 달 속에 아니마의 원형을 그려내어 독특한 작품의 특색을 이룬다. 문학가의 경우는 책속에 어떤 인물을 등장시켜 자기의 아니마의 특성을 나타내기도 한다. 이러한 아니마는 주로 안내자의 역할로 인한 것인데 남자로 하여금 아니마가 보내는 여러 가지 느낌, 기분, 기대와 환상들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게 하여 그것을 어떤 형태로든지, 즉 문장, 그림, 조각, 작곡 혹은 무용으로 가능하게 하는 통찰력이다.

그 밖에도 보다 깊은 무의식적인 소재(素材)들이 마음의 심층(深層)에서 떠올라 지금까지 갖추어진 정신적인 소재들과 연결되어 대단히 환상적 및 지적이라 할 창의적인 결과가 나타나기도 한다. 물론 여기에는 평가적 감정을 요구하는 반응으로 지적 및 윤리적인 노력을 도외시 할 수는 없다. '환상이 절대적인 진실'이라고 보는 것이나, '단지 환상일 뿐'이라는 식의 오류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때로 시간을 필요로 하는 환상이라고 해도 관찰력에 주의를 기울여 노력한 결과 그것이 지니는 어떤 형태를 전개시킬 수 있는 진정한 의식적 현실에 도달하는 경우가 있다. 문학의 많은 실례들은 내적 세계로의 안내자와 중개자로서의 아니마를 제시한다. 이들은 모두 프란체스코 콜로나(Francesco Colonna)의 휩네로토마키아(Hypnerotomachia), 라이더 해가드(Rider H. Haggard)의 그녀(She)나 또는 괴테(Goethe)의 《파우스트》(Faust)에서의 .....여성 등이다.

그 뿐 아니라 이념이나 사상, 이데올로기 등도 마찬가지이다. 특별한 이념이 아니마의 투사의 대상이 되면, 그 이념은 역시 '사랑의 대상'이 된다. 그리고 이 이념에 열병환자처럼 광신적으로 붙들리는 경우가 아니마의 투사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투사는 물질에도 나타나는데, 물질은 곧잘 아니마 원형의 투사를 받는다는 점에서다. 그것은 돈일 수도 있고, 알코올일 수도 있으며, 그리고 사사로운 물건일 수도 있다. 이러한 물질은 아니마의 입김이 닿을 때 평범한 물질을 떠나 마력(mana)을 지닌 것으로 변하여 이를 신봉하게 되는 경우이다.

2) 아니마의 병리적 현상

아니마의 원형은 병리적인 현상과 관련하여 나타난다. 정신의학에서 애정망상(erotic delusion)이라고 부르는 것이 그것이다. 정신병자는 자기와는 별 상관없는 사람, 또는 지나치다 만났거나 상상속의 한 인물을 결혼대상자로서 굳게 믿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이런 경우의 상대는 대개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 여러 가지 신비한데가 있는 특성을 지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비단 정신병자 뿐 아니라 보통의 남자에게도 나타날 수 있다. 아니마의 내용이 투사된 남자에게는 그것이 어떤 특별한 여인의 특성처럼 느껴진다.

만일 남자가 어떤 여자를 보고 첫눈에 내가 찾던 여자가 "바로 이 여자이다"라는 느낌에 갑자기 사랑에 빠지도록 하는 것, 즉 처음 만난 여자를 마치 오래 전부터 가까이 사귀어 온 사람처럼 친근감을 느껴 그녀에게 사로잡히며 거의 미쳐버릴 정도가 되는 것은 남성 속에 있는 아니마 때문이다. 그러기에 남자들은 이런 아니마의 투사를 받아 요정(妖精)과 같은 매력을 지닌 여자들에게 곧잘 끌려 여러 가지 환상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때때로 연애사건이 열정적인 환상에 끌려 소위 '삼각관계'와 같은 난처한 일로 발전되어 결혼까지도 망치는 경우는 바로 이런 무의식적인 아니마의 투사를 통합하여 현실로 받아들이지 못한 결과이다.  

3) 아니마와 어머니의 상

아니마의 최초의 투사는 어머니이다. 아니마의 원형은 남성에게는 여성으로 인해 투사된다는 점에서다. 이때 남자 어린이에게서 아니마의 최초의 투사는 언제나 어머니에 대해 향해지게 된다. 어머니의 여성적인 상은 아들에게 중요하게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다. 이때 어머니의 상이 긍정적이면 아들에게는 여성관이 긍정적이게 된다. 반면에 어머니의 상이 부정적이면 아들은 여성관에 대하여 부정적이게 된다. 이는 가족이 함께 생활하면서 이성에 대하여 투사되는 영향이 크게 작용함을 의미한다. 여기에는 반드시 어머니가 아니어도 누나와 여동생의 경우에도 유사한 결과가 일어날 수 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전술한 아니마의 투사가 반드시 옳은가에 대해서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이런 상태에서 남성이 인지하는 어머니의 상(像)은 현실적인 것이 아니라, 풍부한 환상에 의해서 채색된 것이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 하면, 이 환상은 정신적인 현실로서 일종의 신성(神性)이 덧입혀진 어머니의 현실적인 상(像)이다. 이는 정확하게 투영된 것이 아니라 남성의 환상에 의해 투영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도 남자는 여성상을 유전적으로 가지고 있으며, 무의식적으로 일정한 기준을 만들고, 영향을 받아 특정한 여자를 받아들인다.

융은 모든 남자는 자기 속에 영원한 여성상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그것은 특정한 이 여성이나 저 여성의 이미지가 아니라 일정한 여성상이다. 이 이미지는 기본적으로 무의식적이고, 남성의 살아 있는 유기 조직에 새겨져 있는 원시적 기원의 유전적 요인이며, 모든 조상의 여성 경험의 흔적 또는 원형으로서, 이를 테면 일찍이 여성이 준 모든 인상의 침전물이다.

이 이미지는 무의식적이기에 언제나 무의식적으로 사랑하는 사람에게 투영되고, 정열적인 매력 또는 혐오의 주요한 원인의 하나가 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아니마는 '기분'(mood, Launen), 그리고  정동(motion)으로 나타난다. 특별히 결혼한 남자가 아내보다는 여전히 어머니의 간섭받는 것을 좋아하여 어머니의 의견을 자주 묻거나 거의 어머니에게 매달려 있는 인상을 주는 것 등은 아니마의 투사와 무관하지 않다.    

4) 아니마의 발전 단계

아니마는 발전단계를 갖고 있다. 아니마는 4단계의 발전단계를 갖고 있는데, 이러한 발전단계는 여성의 인격이 일정한 단계를 거치면서 승화되는 것으로 남성이 마음속에서 여성을 단계적으로 그리는 것을 의미한다.

아니마의 1단계는 이브(Eve)의 상(像)으로 본능적이고 생물학적인 여성상이다. 이 단계의 아니마는 외적인 생김새를 나타내는 것으로 매우 여성적인 모습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브의 상에 의해 가장 적절히 상징되고 있다. 이는 여성을 상징하는 단순히 본능적이고 생물학적인 관계를 나타낸다는 점에서다.

2단계는 파우스트의 헬렌(Helen)이다. 헬렌은 서양 최고의 미모를 갖춘 여인으로 추앙되는 것으로 낭만적이고 미적(美的) 수준의 아니마의 인격화로서 성적인 특징을 지니고 있다. 그녀는 로맨틱하여 미적이지만 성적 요소에 의해서도 특징이 지워져 있는 수준을 인격화한 것이다. 1단계의 아니마상이 단순히 여성으로서의 생물학적인 측면, 신체적으로 건강한 측면을 중요시 한다면, 2단계의 아니마상은 신체적인 외모에 아름다운 미적인 면모를 갖춘 매력적인 여성을 의미한다.

3단계는 동정녀 마리아에 의해 제시된다. 성모마리아상에서 표현되는 영적 헌신으로 지양된 에로스이다. 즉 사랑(eros)을 영적(靈的) 헌신의 극치로까지 승화시키는 상(像)이다. 이는 미적인 외모에다 영적인 단계의 고상한 승화를 의미한다.

4단계는 가장 거룩하고 가장 순수한 지혜, 연금술의 사피엔티아(Sapientia)로 표현된다. 가장 성스럽고 순수한 것조차도 초월하는 지혜인 사피엔티아는 현대인의 정신발전과정에서 거의 도달이 불가능한 경우이며 구약의 술남미(Shulamite)가 그 유일한 상징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지혜의 아니마상에는 모나리자(Mona Liza)가 가깝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융은 이처럼 아니마의 발전에서 4단계를 중요시하였는데, 이는 융이 정신의 핵(자기)의 실체를 4중적 구조를 나타내는 이유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3. 정리

지금까지 우리는 내적 인격으로서의 아니마에 대하여 고찰하였다. 아니마는 남성 속에 있는 여성적인 특성이지만, 실제로는 여성적인 특성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여성성은 남성에게는 언제나 신비한 특성을 가지는 것이요, 이러한 특성은 남성이 영원히 추구하는 특성이기도 하다. 남자와 여자란 실제로 이 둘의 결합의 조화의 문제일 것이다. 남성은 여성을, 여성은 남성을 그리워하는 것이 바로 남자와 여자, 여자와 남자의 비밀인 것이다.

그러면 아니마의 여성성이 가지는 특성을 정확하게 알고 그에 따른 이해와 더불어 적절한 대응이 요청되는 것이다. 자신도 알지 못하고 괴로워하는 남성이 아니마의 특성을 이해하게 되면 그만큼 수용하거나 어떤 경우에 견디는 힘이 생길 것이기 때문이다. 아니마의 특성이 무의식적으로 남성 안에서 작용할 때 어떤 심리적 현상이 일어나며, 그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하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가에 대해서도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것은 단순히 아니마의 문제로만 제한되는 것이 아니라 남자와 여자라는 성(性)에 대한 문제로까지 연결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