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민국 칼럼] 오뉴월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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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에 태어난 모든 사람들은 생일이 있다. 또한 모든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주변 사람들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영아기를 거쳐야 한다. 자신의 생일을 스스로 기억하는 사람은 없다. 아기의 탄생을 도운 사람들의 구전(口傳)을 통해 듣고 자신의 생일 풍경을 상상해 볼 뿐이다.

그중 오뉴월생들은 삼복더위와 맞물린 기후 때문에 산모와 주변 사람들을 더욱 힘들게 하면서 태어났다. 태어나면서부터 말썽을 부렸다는 외할머니의 술회처럼, 오뉴월생의 산바라지는 산모와 아기를 돌보면서 폭염과 싸워야 하는 이중고를 겪는다.  

무더위가 절정을 이루는, 음력 유월 초나흘. 한 아기가 태어났다.

첫 아이는 대개 친정에서 출산을 하던 풍습대로, 어머니는 외가에서 첫 아들을 출산했다. 산모의 방을 뜨겁게 달구는 산바라지 풍습은 오뉴월 폭염에도 적용되었다. 외할아버지는 산에서 나무를 했고, 외할머니는 폭염 속에서 아궁이에 군불을 집혔다.

외할아버지가 해 온 땔감에 옻나무가 섞여있는 줄 모르고 만진 외할머니는 옻을 옮았고, 온몸에 열꽃이 핀 몸으로 군불을 지피느라 홍역을 치렀다. 물론 뜨거운 미역국을 여름 내내 끓인 외할머니의 산바라지 덕분에 어머니의 젖은 넉넉했고, 먹성 좋은 아기는 풍성한 양분을 제공받았다.

그리스도 안에서 영생의 은혜를 덧입으면서, 생일은 새로운 의미로 바뀌었다. 가족들과의 친교적인 행사는 모두 거절했고, 하나님께 감사의 찬양을 부르고 성장을 위해 헌신하신 부모님께 감사의 마음을 돌이키는 은혜의 날이 되었다.

생일은 영생의 씨앗으로 태어나게 하시고, 예정하신 그대로 영생의 열매를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가 머무는 특별한 한 날이다. 생일을 양력 7월 4일로 정해놓고, 해마다 같은 날 미역국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했다. 부모님이 이웃으로 이사 오시기 전까지는 그랬다.

부모님이 팔순을 바라보면서, 앞 동네로 이사를 왔다. 아직 수족(手足) 멀쩡하니 각자 사는 것이 좋다는 부모님을 설득해, 가까이 살되 각자 집에서 살 것을 조건으로 부모님은 이사를 했다. 혼자 남거나 움직이지 못할 때 함께 살자. 그렇게 부모님과 이웃이 되면서 안도의 동행은 시작되었으나, 간소하게 지나치던 아들의 생일은 특별한 날로 복귀했다.

부모님의 한 해는, 자식들과 손자들의 음력 생일을 양력으로 환산하여 달력에 빨간 색연필로 동그라미를 표시하면서 시작된다. 부모님이 이웃이 되면서 고정적이던 한날 양력 생일은 해마다 다른 음력 생일로 돌아갔다. 유독 잔병치레를 많이 해서 부모님을 고생 시킨 것도 몸 둘 바 모를 은혜인데, 어머니가 생존해 계시는 한 아들의 생일은 이제 대충 넘길 수 없는 경축일이 되었다.

올해는 윤달이 들어 여름 무더위가 길다. 그러나 무더위는 아랑곳 없이 외아들의 생일상을 차리기 위한 어머니의 분주함은 벌써 지난 주부터 시작되었다. 어쩌면 한 해의 일상이 전부 외아들의 생일상을 차리기 위한 여정이라고 생각될 만큼, 어머니는 외아들의 생일상을 차리는데 무한한 열정을 쏟는다.

가을이면 도토리를 주워 가루를 내고, 겨울 여행길에 김과 미역을 고르고,  시골 장에서 질 좋은 엿기름을 골라 식혜를 달인다. 검정콩을 유독 좋아하는 아들의 생일떡은 시중 떡집에서 볼 수 없는 콩 시루떡이다. 밭 대신 검정콩으로 켜를 내어 찌는 검정콩 시루떡을 지금도 손수 쪄낸다.

말릴 수 없다. 인정할 수밖에 없다. 어머니의 생일상 차림은 생존 호흡이다.

지금은 얼마나 좋습니까, 목사님. 그때는 하루 먹고 아까운 음식 돼지가 다 먹었습니다.

냉장고가 없던 시절 이야기를 벗 삼아 외아들의 생일상은 완성되었다. 한우 소고기 미역국, 흰 쌀밥, 갈비찜, 검정콩 시루떡, 잡채, 호박, 감자, 오징어 전, 도토리묵, 도자지, 고사리나물, 오이지무침, 열무김치, 과일샐러드, 수박화채, 식혜.

어머니의 생일상 차림이 변한 건, 검정콩 시루떡을 놓고 고사를 지내던 그때를 어이없어 하는 회개의 돌이킴뿐이다.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인생들이 특별한 날로 여기는 생일이, 영생의 소망을 이룰 수 있는 하나님의 개입이 아니라면 덧없는 세월에 불과함을 고백합니다. 우상숭배로 찌든 저희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가문 복음화를 이루신 하나님의 은혜 앞에 부복하나이다.

영생의 씨앗으로 태어나게 하시고, 영생의 열매를 맺어 주신 하나님께 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온 가족이 모여 하나님을 찬미할 수 있는 가문으로 이끌어주신 하나님께 생일의 기쁨을 돌립니다.

천국 입성하는 그날까지 우리들의 믿음을 지키시고 인도하시고 장성하게 하옵소서. 영원한 생명을 주신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민국 목사(인천 백석 새로운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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