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작정 남녀의 사랑을 최고 가치로 올려놓으려는 사람들이 자주 반복하는 말이 있다. '사랑에는 장애물이 없다', '국경도 없다', '조건도 필요 없다', '종교도 필요 없다'....

물론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진정한 사랑은 모든 것을 초월하므로 장애물이 없다. 하지만 인간에게는 불가능한 일이 있으며, 남녀 간에는 더더욱 어려운 일이 많다.

연애는 다큐다
▲ⓒ사진 박민호
지인의 지인쯤 되는 분이 자기 SNS에 대학 시절 이야기를 올린 적이 있다. 미팅 자리에 나온 여학생 둘 중 하나가, 아빠가 회사 일로 늘 바쁘셔서 함께할 시간이 적어 아쉽다는 말을 했다는데, 알고 보니 소탈한 그 여대생의 아버지는 놀랍게도 S그룹 회장이었다는 것이다.

그녀는 최고 재벌 집안 출신답지 않게 아빠 회사(?)에서 중직을 맡아 일하면서도, 사내 평범한 남성과 결혼을 했다. 물론 집안의 심한 반대가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꽤 오랜 결혼생활 후에 이혼을 했다. 로열 패밀리끼리의 결혼이 아니었기 때문에, 평범한 집안 출신인 그 사위에게 기업이 넘어가게 할 수는 없었던 가문의 권력 암투 때문이라는 소문이 많았다.

그 집안의 막내딸은 꽤 오래 전에 역시 평범한 사람과의 결혼을 꿈꾸다 돌연 자살하고 말았다. 돈이 부른 재앙, 아니 그 돈을 지키기 위해 치러야 하는 대가라고 불러야 할까.... 그럴 때는 금수저나 흙수저나 고통의 총량은 같다는 이치가 위안 아닌 위안이 되기도 한다.

요점은, 너무 큰 격차가 나는 상대와는 감수해야 할 문제가 반드시 있다는 것이다. 감수가 되면 다행이지만, 그 정도를 넘어설 때 둘 사이는 와해되거나 비극으로 끝이 난다.

20대 쯤에는 둘 사이의 장벽이나 험한 산은 잘 보이지 않는다. 삶의 키가 자라지 않았기 때문에, 산 너머의 일들은 볼 수 없는 상태다. 그래서 어른들이 너무 차이가 나는 사랑을 말리면 때 묻은 속물 세대의 조건부 사랑으로 일축하고, 더욱 열정을 불태우려 한다.

주변에서 반대하는 그 많은 격차란 무엇인가? 맨 앞의 예처럼 재산의 차이일 수도 있고, 학벌이나 스펙의 차이, 나이와 종교의 차이 등이 흔히 겪는 대표적인 것이다.

위와 같은 차이가 나는 사랑은 가능하면 피하라고 조언하고 싶다. 그것은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한다는 식의 자포자기 같은 것이 아니라, 그런 사랑은 많이 아프기 때문에 서로 입을 상처가 크다는 뜻이다.

재산이 차이가 나고 학벌에서 차이가 나면, 배우자가 나를 무시하지 않아도 자기 혼자 열등감을 느끼고 스스로를 괴롭히다 상대까지 힘들게 할 수 있다. 보통 사람이 재벌 2세를 만나면, 둘 사이가 아무리 좋아도 그 보통 사람은 재벌가에서 상처를 받는다.

손녀나 딸뻘 여성과 사랑을 하는 유명인이 남성들의 부러움도 사고 화제가 되지만, 그는 뛰어넘을 수 없는 젊음 앞에서 자신감을 잃고 늘 연인의 주변을 신경쓰며 괴로울 수 있다. 결국 삶의 편안함이 사라진다.

'나무꾼과 선녀' 이야기는 비극적 이별이 있어서 아름다운 것이지, 둘이 맺어지고 평범한 가정을 꾸렸다면 둘 사이는 큰 격차로 인해 평탄하지 않았을 것이다.

대 조각가 오귀스트 로댕(A. Rodin)과 그의 제자이자 혼외 연인인 카미유 클로델(C. Claudel)의 사회적 격차는 무척 컸다. 그러나 실상은 카미유가 로댕보다 더 창작의 영감이 넘치는 천재였다고 한다. 사후 재평가를 받은 카미유를 그의 라이벌로 표현할 정도로 로댕이 젊고 유능한 그녀에게서 느끼는 열등감은 상대적으로 훨씬 컸을 것이다.

둘 사이는 결국 비극으로 흘러, 카미유는 정신병원에서 비참한 말년을 보내게 된다. 그러나 로댕이 그녀를 포기한 것은 도덕적 이유만이 아니라, 넘어설 수 없는 묘한 열등감과 그녀를 끝까지 돌볼 수 없는 세월의 차이 같은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두 사람 사이의 격차란, 우열의 차이만을 뜻하지 않는다. 국제 결혼, 이혼했던 사람과 하는 결혼, 너무나 다른 뇌 구조를 가진 사람과의 만남, 극과 극의 집안 분위기에서 성장한 사람들의 만남 등도 한쪽, 혹은 양쪽 모두가 마음에 짐을 안고 살아가기 쉽다.

격차가 심하면 만나지 않는 것이 좋다는 뜻이 아니다. 격차를 인정하고 감수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면 그런 길을 나서지 말라는 것이며, 마음의 상처를 견딜 각오를 하라는 뜻이다.

분명한 것은 열정적 사랑이 모든 것을 해결해줄 것이라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사랑의 종류는 여러가지인데, 흔히 말하는 열정적 사랑은 오히려 험한 길에 방해가 되는 어린 사랑이며, 서로의 차이를 견뎌내고 오래 참으며 인내하는 참된 사랑만이 험한 길을 앞둔 이들에게 필요한 준비물이다. 물론 이미 그런 길 한가운데를 걷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이다.

궁극적으로 되돌아갈 수 있는 사랑이란 있을 수 없다.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다고 하는 노래가 있는 것처럼, 한쪽이 크게 처지는 사랑을 하게 되면 결과적으로 너무 아픈 사랑을 할 수도 있다. 그런 사랑은 상처밖에 남지 않는 것, 사랑이라 부르기에도 처절한 것일지 모른다.

김재욱 작가

연애는 다큐다(국제제자훈련원)
내가 왜 믿어야 하죠?, 나는 아빠입니다(생명의말씀사)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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