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태 총장
가족들의 버팀목인 동시에 가장 외로운 존재, 아버지. '아버지가 곧 법'이던 시절도 있었지만, 이제는 가장으로서 무거운 짐을 모두 짊어지면서도 가족에게까지 외면당하고 혼자 외로움을 곱씹는 모습이 바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아버지들이다. 그런 아버지들을 이해하고 위로해 드리자. 지치고 움츠러든 아버지들을 격려하여 다시 한 번 가족의 중심 자리에 서게 해 드리자.

아버지는 늘 태산처럼 크고 높았다. 그러면서도 늘 남남처럼 서먹하기만 했고, 가까이 가기엔 너무 먼 당신이었다. 살아계실 땐 원망이, 돌아가신 후엔 연민이.... '아버지'란 세 글자 속엔 수많은 단상과 추억과 감정이 복합적으로 교차한다. 몇 마디 말로는 절대로 규정할 수 없는 아버지! 그 아버지가 당신의 추억 속에는 어떤 모습으로 남아 있는가?

①어린 시절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그리 좋지 않았다. 강압적인 아버지, 어머니와 다투는 아버지.... 커서는 아버지의 사업 부도로 온 가족이 살던 집에서 쫓겨나 거리로 내몰려야 했다. 하루 하루 아버지를 향한 원망은 커져갔고, 어린 나이에도 난 절대 아버지처럼 살지 않겠다고 다짐하곤 했다.

오래 고생하며 겨우 빚을 다 갚을 때쯤 아버지는 암 선고를 받으셨다. 병 간호를 하며 겨우 트기 시작한 아버지와의 쑥스러운 대화, 돌아가시기 전 아버지 귀에 대고 "아버지, 사랑해요" 라고 건넨 한 마디는 "나 이제야 아버지를 이해해요" 라는 사죄의 고백이었다(52세 남자 직장인).

②맞벌이인 부모님은 언제나 바쁘셨다. 할머니 손에서 자란 나는 주말이나 돼야 두 분을 만날 수 있었다. 그 때마다 어머니는 나를 가르치기 바빴다. 하지만 아버지는 달랐다. 공부를 잘하든 못하든 항상 "우리 딸, 최고!"라고 말해줬다. 남들 다 잘나가던 경제호황기에 사업이 실패한 만큼 생활능력은 부족한 아버지였지만, 그래도 어릴 적 기억 때문인지 나는 여전히 아버지를 응원하고 싶다(29세 여자 교사).

③요즘 들어 아빠와 말을 섞기가 싫다. 어찌 보면 귀찮다고 하는 게 맞는 말일지 모른다. 평소에는 나에게 특별한 관심도 없으면서 괜히 한 번씩 "장남과 시간을 보내야지" 하며 날 데리고 낚시터에 가려고 한다. 재미도 없는 낚시터에 왜 그리 자꾸 가자고 하는지.... 그러면서 "주변에 나 같은 아빠 없지?"라며 자꾸 확인받으려 한다. 다정하게 대하려고 노력하는 건 알겠는데 뭔가 코드가 안 맞는 것 같고, 조금은 부담스럽다(17세 남자 고등학생).

④취직한 이듬해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군 복무와 취업 준비로 성인이 된 이후 아버지와 함께한 기억이 거의 없다. 그러나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우연히 발견한 아버지의 일기장. 삶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웠는지? 그리고 얼마나 아팠는지? 아들인 내가 삼성그룹에 취직해 얼마나 기뻐하셨는지? 그 일기장을 보고 알았다.

결국 난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야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지 어연 30년이 다됐지만 난 아직도 그 일기장을 끝까지 읽지 못했다. 올해는 아버지의 일기장을 꼼꼼하게 읽으면서 마음 놓고 한 번 울어야겠다(58세 남자 직장인).

⑤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어언 7년이 흘렀다. 사회활동을 활발하게 한 분이다. 그런지 지금도 가끔씩 아버지 이야기를 꺼내는 사람이 많다. "고마운 분이었다"고. 그런데 정작 나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별로 없다. 내게 아주 가끔 "공부 열심히 해!"라는 말을 건넸을 뿐이다. 그래서일까? 서운한 마음도, 그리운 마음도 좀처럼 생기지 않는다. 더 많은 추억을 공유할 순 없었을까? 문득문득 아쉽다(45세 남자 공무원).

⑥"음주가무", 아버지를 네 글자로 설명하려면 더 생각할 것도 없이 딱 이거다. 무슨 회식을 그리도 자주 하는지, 맨정신으로 퇴근한 아버지를 거의 본 적이 없다. 게다가 술집이 다 문을 닫으면 마지막 술자리는 우리 집이었다.

매번 직장 동료와 술잔을 기울이며 기분을 내면서도 아버지는 다음 날 자식들에게 "난들 매일 술 마시고 싶겠냐? 이게 다 너희들 잘 키워 보려고 그런 거야"라고 말했다. 나도 어른이 되니 사회생활의 고단함은 이해가 간다. 그런데 왜 그게 꼭 술자리로 이어져야 했는지는 아직도 모르겠다(30세 여자 디자이너).

⑦미국에서 10년 동안 유학 생활을 했다. 엄마는 나 혼자 있는 게 안쓰럽다며 내가 유학 간 지 몇 달 되지 않아 미국으로 건너왔다. 하지만 아버지는 10년 동안 겨우 몇 번 볼 수 있었다. 한국에 들어온지 몇 년이 지난 지금도, 난 아버지와 서먹서먹하다. 엄마와는 별 것 아닌 걸로도 슬슬 대화를 잘하는데, 아버지와 한자리 있으면 어색한 침묵만 흐른다. 좀 더 편하게 얘기하고 싶은데 말처럼 쉽지가 않다(28세 여자 학원 강사).

실제로 청소년의 고민 상담 대상을 조사해 보면 친구가 50.4%, 어머니가 29%, 아버지는 0.9%(여성가족부, 2010년 청소년 15-24세 대상 조사)로 나타나고 있다. 자녀들에게 있어 아버지는 무서운 존재일 순 있어도, 자상하게 인생 문제를 상담하기엔 여전히 버거운 존재인 것 같다.

김형태 박사(한국교육자선교회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