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는 다큐다
▲ⓒ사진 박민호
지난 번 칼럼 '남자에게 대책 없는 고민을 말하지 말라'에 이어지는 글이다.

제목은 그랬지만, 사실 어떻게 문젯거리를 남편이나 남자친구에게 말하지 않을 수 있나. 다만 남자는 여자의 고민을 아주 현실적으로밖엔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면 좋다는 의미였다. 그러면 남자에게는 어떻게 고민을 말하고 대화를 시도해야 할까?

남자는 여자가 그저 공감해주면 족하다면서 남편에게 '그랬구나' 화법을 가르친 비교적 신혼의 한 여성 독자는, 남편이 이후로 로봇처럼 '그랬구나, 힘들었구나'를 되풀이하면서도 흔들리는 눈빛으로 눈치를 살피는 것을 보고 웃음이 나왔다고 한다. 아무튼 밖에서는 인정받고 샤프한 남자들도 자기 여자와의 대화에서는 곰처럼 답답하고 어눌한 존재가 된다.

다음은 남편이나 남자친구에게 사적인 고민이나 불만, 혹은 상대방에게 여자로서의 불만을 말할 때, 기억해 두었다가 실천하면 관계가 향상될 만한, 남자 입장에서 쓴 팁이다. 번호가 더할수록 난이도는 높아지지만 효과는 더 나은 방법들이다.

1. 외부 인간관계에 대한 불만은 수위와 강도를 조절하라

남자들은, 여자가 고충과 불만을 말할 때 미지근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미덕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맞장구를 치며 같이 흥분한다. 실제로 사랑하는 여자를 누가 괴롭힌다면 화가 나는 것은 당연한 반응이다. 그래서 흥분하는 것까지는 좋은데, 실제로 액션을 취하면 털어놓은 입장이 곤란해질 수 있다.

그래서 아내나 여자친구가 싫어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 티를 내거나 눈치를 줘서 여자가 곤란해질 수도 있고, 그냥 지나는 말로 꺼낸 고민에 남자가 계속 직장을 그만두라거나 자기가 나서겠다며 역으로 스트레스를 줄 수 있다. 남자는 그것이 관심의 표명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교회에서도 대립하는 여성들이 집에 가서 험담을 하는 바람에, 남편들끼리 모일 때 새우 싸움에 고래 등 터지듯 괜히 어색한 경우도 있다.

그러므로 사람에 대한 불만을 과도하게 표출하지 말고, 그 사람에 대한 생각을 단편적으로 전달하기보단 전체적으로 전해야 한다. 잘못된 부분과 싫은 부분만 말하지 말고, '그런 불만이 있지만 나한테 잘할 때도 있는 사람이고, 그런 면만 빼면 좋은 사람이다, 내가 기회 봐서 한 번 이야기할 생각이다' 등등 전반적인 생각을 전달해야, 액션형인 남자들은 문제의 인물이 속속들이 역적은 아니라는 입체적 판단을 할 수 있다.

2. 남자에 대한 불만이나 걱정을 말할 때는 시기와 장소를 감안하라

여성들은 대개 불쾌한 그 시점을 잘 못 넘긴다. 그래서 문제가 생기면 바로 불만이 터져 나오는데, 특히 남자들이 퇴근해서 들어오는 데다 대고 퍼부으면 머릿속이 뒤엉켜 짜증밖에 나지 않는다.

남자는 일을 마치고 집에 오면 잠시 '홈 모드'로 뇌를 재시동할 시간이 필요하다. 아이들은 집에 오자마자 오늘 있었던 일을 잘도 말하는데, 남편들은 왠만큼 기분 좋은 일이 있지 않고서는 그런 행동을 하기 어렵다. 특히 더 멍하니 TV만 쳐다보거나 입을 꽉 다물고 있으면 그날은 힘든 날이었다고 보면 된다.

농경 사회에서 열심히 삽질을 했으나 손에 쥔 것 없는 아담에게 이브의 위로와 혼자만의 휴식이 필요한 것처럼, 남자에게는 여백이 필요하다. 애 낳는데 옆에도 없고 여자니까 당연한 것처럼 여기면 '평생 웬수(?)' 되듯이, 남자가 일하는 것을 당연시하면 원수가 되기 쉽다. 남자는 일, 여자는 해산의 고통을 형벌로 받았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렇다고 남편들이 대단하게 알아달라는 것도 아니다. 퇴근한 사람을 잠시만 그대로 놔둬 주면 된다. 그러면 바깥일을 한쪽 폴더에 넣어두고, 아빠와 남편 모드로 전환이 된다. 물론 남자가 트랜스포머나 지킬 앤 하이드 같은 다중이라는 뜻은 아니다.

부부동반 모임이나 친구들과의 만남에서 남자가 자기 여자에 대해 말실수를 했다면, 여자들은 돌아오는 길에 바로 퍼붓기 쉽다. 특히 운전할 때는 옆자리에서나 전화로나 열받게 하면 안 된다. 조금 화가 나도 집에 가서 조용히 말하든지 덮어두었다가 다음 기회에 말하면 훨씬 수긍을 잘할 것이고, 참고 기다려 준 것에 대해 고마워할 것이다. 여러모로 비교되는 엄친아나 애처가가 꼭 끼어 있는 모임이 있는 날은 '싸우는 날'로 지정되는 경우가 꽤 많다.

아이들 앞에서 분노하고 지적하는 것도 기혼 남성들에게는 난감한 일이다. 그렇게 하면 인정할 것도 우기게 되고, 애들 앞에서 체면 때문에 한층 목소리를 높여 방어할 수밖에 없게 된다.

어르신들 앞에서도 마찬가지다. 시댁에서의 남편은 집에 가서 당하더라도 일단 호기를 부릴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야기의 주제는 실종되고 감정싸움만 남게 되는 일이 많을 것이다. 이런 때도 한 번 넘어가 주면 남자는 스스로 깨닫고 안다.

이처럼 때와 장소를 잘 구분해서 불만을 전달하면 남자는 좋은 경청자가 되어 줄 것이다.

3. 무엇을 원하는지 전달하고 할 일을 정하라

남자한테는 막연한 고민이 아니라 원하는 것을 말하면 좋다. 남자는 테스트를 받느니 차라리 '답정너'의 질문을 원한다. 답이 확실한 기출문제면 제일 고맙다.

여자의 추궁이나 선문답 같은 질문은 남자에게는 마치 '러시안룰렛 게임'과도 같은 복불복의 정답 찾기이다. 연발 권총에 총알을 하나만 장전하고 탄약통을 돌려 머리에 쏘는 무시무시한 게임과 같은 스트레스로 머릿속은 눈밭처럼 하얗게 되어, 자기 말이 미치는 영향과 그 다음 수를 전혀 내다보지 못하게 된다.

흔들리는 남자를 위해 답을 눈치로 알려주거나 최소한 객관식으로 제시하면 좋다. 예를 들어 맨날 잘난 척하는 친구 때문에 짜증난다면서 나는 왜 이 모양 이 꼴이냐고 들으라는 듯 한탄하기보다는, '그래도 내가 훨씬 예쁘고 생각 있이 사는 개념녀'라는 사실에 동의하라고 주문하거나, 내 속상함을 이해해 보라고 시키거나, 차라리 자존감을 높여줄 무언가를 내놓으라는(?) 식의 방법이 좋다는 것이다.

남자는 여자가 속상한 정도와 방향성을 모르면 다 자기가 부족해서 생긴 일이라고 자학하거나 여자가 자신을 향해 원망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고 판단해 자괴감을 느끼기 쉽다는 점을 고려하라.   

4. 끝으로... 고민을 말하지 말라

이 방법은 난이도가 최상일 테지만, 효과도 최고이다. 사람이 살면서 여러가지 고통이 있고 힘이 든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여성들도 남자가 아무 말 안 해도 어깨에 큰 짐을 지고 산다는 것을 알듯, 남자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최대한 자제하고 침묵하면 먼저 관심을 갖고 알아줄 것이다.

반대로 생각해 보라. 촐랑대는 남자들은 여자가 뭔가 해 주려 해도 그새를 참지 못하고 자기 속을 홀딱 드러내고 죽겠다 살겠다 하며 엄살을 잘 부린다. 뭘 해주려다가도 뺏고 싶게 만든다. 그래서 구미호랑 결혼한 남자도 그걸 못 참고 인간이 되기 전 마지막 날 비밀을 불었다가 꼬리 아홉인 마누라의 분노를 사고 혼쭐이 나는 것도 모자라, 자식까지 빼앗긴 것 아닌가. 남자는 그런 존재다.

이 원리는 여자도 마찬가지다. 한 템포 기다려 주면 좀 더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다. 무슨 일 있을 때마다 들들 볶으면, '필요하면 알아서 얘기하겠지' 싶어서 챙기지 않고 그냥 두게 된다. 물론 알아서 하면 점점 더 편한 것을 찾는 것이 남자이니 이따금씩 '밀당' 차원의 긴장 조성은 필요하다.

***

그 밖에도 각기 터득할 수 있는 노하우는 각 남자의 성향에 따라 여성들이 판단해야 한다. 이것은 감각이며 인간관계의 본능적 기술인데, 무슨 술수나 독심술이 아니다. 이는 남자의 구조를 이해하는 것이며, 여자가 희생하고 남성을 위하는 길이기도 하지만 여성들의 실리를 위해서도 중요한 것이다.

남자를 알기 위해 오래 공부하거나 깊이 머리를 쓸 필요는 없다. 여자의 생각이 온몸을 푹 담그는 전신욕이라면, 남자의 생각은 반신욕, 아니 족욕 수준이다. 발에 찰랑대는 물이면 충분하다. 여자들은 자기 기준에서 남자를 보지 말고, 생각을 캐주얼하고 단순하게 가지길 바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이야기는 '사랑'에 관한 이야기이다. 사랑하면 곰 같은 남자의 속마음도 들여다볼 수 있고, 그를 요리할 기술도 생긴다. 그런 따뜻한 사랑을 지닌 채, 대화 중 흔들리는 그 남자의 동공을 멈추게 할 수 있다면, 당신은 최고의 요리사가 되어 남들보다 조금은 더 행복할 것이다.

그리고 남자는 늘 그런 요리사에게 '요리 당하고' 싶다는 것... 그 하나만 기억하시길.

김재욱 작가

연애는 다큐다(국제제자훈련원)
내가 왜 믿어야 하죠?, 나는 아빠입니다(생명의말씀사) 외 다수
www.woogy68.blog.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