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미나가 진행
▲왼쪽부터 이정훈 교수, 이순호 변호사, 백은석 교수. ⓒ이대웅 기자
동성애자들이 자신들에 대한 차별로서 규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소위 '혐오표현'에 대한 법률적 논의가 진행됐다.

자유와인권연구소(FHI)와 애드보켓코리아(AK)가 공동주관한 인권세미나가 '표현의 자유와 혐오표현'이라는 주제로 지난 14일 오후 서울 세종문화회관 예인홀에서 개최됐다.

이번 세미나는 국가인권위원회의 인권상황 실태조사 연구용역보고서 '혐오표현 실태조사 및 규제방안 연구' 발표에 대한 것이다. 이들은 혐오표현의 전반적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1,014건의 설문조사를 수집·분석했고, 여성과 동성애자(성소수자), 장애인, 이주민 등에 대한 면접조사를 병행했다고 한다.

인권위에 따르면, 피해를 입은 소수자 집단은 낙인과 편견으로 일화 학업 등 일상생활에서 배제돼 두려움과 슬픔을 느끼고 지속적 긴장상태나 무력감에 빠지며 자존감 손상으로 인한 자살충동, 우울증, 공황발작,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등에 시달리고 있었다고 한다. 혐오표현을 접한 후 '스트레스나 우울증 등 정신적 어려움을 경험했다'는 질문에 장애인 58.8%, 이주민 56.0%, 동성애자 49.3%가 경험이 있다고 답한 결과를 제시하기도 했다.

이들은 연구 목표에 대해 "혐오표현을 예방·근절하기 위한 적절한 규제방안을 모색하는 것"이라며 혐오표현 규제에 대해 "어떤 법에서든 험오표현을 '법'으로 '금지'한다는 명문규정을 두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로 인권위 차별금지법에 이어 또 다시 '법제화 시도' 의지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그러나 이 법제화 시도에 대해, '사상과 표현의 자유'라는 헌법적 가치 훼손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이러한 가운데 열린 세미나에서는 이정훈 교수(울산대 법철학)가 '혐오표현과 표현의 자유를 둘러싼 딜레마와 법, 그리고 민주주의: 자기실현의 인정투쟁을 위한 도덕적 민주주의의 제한 이론'에 대해 발표했다.

먼저 이정훈 교수는 "유엔 인권위원회는 사실적 주장이 아닌 단순한 견해 표명에 대해 법적 책임을 지울 수 없다고 선언했다"며 "동성애자들은 자신의 입장을 충분히 표현할 수 있으므로, 이에 대한 반론을 표현하는 것도 보장돼야 한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괴롭힘으로서의 혐오표현은 '성희롱'의 경우처럼 '얼굴 찡그림'이나 '악수 거부'와 같은 비언어적 표현까지 포함시킬 수 있기 때문에, 혐오판단은 피해자의 주관에 상당 부분 의존하지 않을 수 없다"며 "동성애자에 대한 욕설이나 침을 뱉는 행위 등은 형법상 모욕죄로 충분히 처벌 가능함에도, 동성애에 대한 비판적 견해나 의학적 소견 등 다양한 표현들을 추가로 광범위하게 위축시킬 수 있는 강력한 법적 규제들은 심각한 과잉금지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한국 역사에서 동성애자가 미국의 흑인노예나 독일의 유태인과 같은 정도의 직접적이고 명백한 억압의 경험을 했기 때문에, 동성애자에 대한 혐오표현은 현존하는 명백한 위험을 구성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면 이는 받아들이기 어렵다"고도 했다.

인권 정책 세미나
▲세미나가 진행되고 있다. ⓒ이대웅 기자
또 "의견과 감정의 표명은 명백한 위험을 만들 수 없기 때문에 모욕죄로 인터넷상 모욕적 댓글이나 표현 등을 처벌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 주장하면서도, 동성애자에 대한 혐오표현은 모욕죄가 아니라 혐오죄를 구성해서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논변은 법논리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정훈 교수는 "이미 등장한 적이 있는 차별금지법의 국가인권위 안이나 법무부 안에 따르면, 동성애자가 주관적으로 느낀 혐오감에 대해 가해자로 지목된 자가 '혐오표현'이 아님을 입증해야 하는 부담이 생긴다"며 "이와 함께 징벌적 손해배상 등을 포함한 강력한 법적 제재 조치들로 인해 사실상 성적 지향이나 트랜스젠더 관련 이슈들에 대한 비판적 표현들을 억압하는 법적 기제로 작용할 수 있다"고 비판했다.

이 교수는 "욕설과 모욕 행위를 처벌할 수 있는 모욕죄가 폐지되지도 않았고 일반적 차별금지법이라 할 수 있는 국가인권위원회법이 이미 시행되고 있다"며 "그럼에도 혐오표현을 '괴롭힘'으로 해석해 강력하게 법적으로 제재하여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는 입법은 어떤 것이라도 '헌법합치적'으로 여겨질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가령 동성애에 대해 부정적 측면에서 의학적 견해를 피력하거나 전통적 혼인의 가치를 내세워 동성혼에 비판적 입장을 표현하고자 하는 사람이 입증 책임의 전환이나 징벌적 손해배상 등을 염려해 스스로 표현을 자제하여 위축 효과를 발생시킨다면, 혐오표현에 대한 법적 규제의 내용은 과잉금지라고 할 수 있다"고 전했다. 위축 효과(chlling effect)란 합법적인 행위임에도 그 합법성을 입증해야 하는 수고가 장애 사유가 되어 내심 원하지도 않으면서 그 행위를 회피 또는 자제하는 것이다.

이정훈 교수는 "이미 현행법상 형사·민사 규제가 이뤄지는 상황에서, 새로운 규제를 만드는 것은 오히려 소송의 남용 또는 국가 개입 규제의 과잉을 통해 질적 민주주의의 퇴보와 함께 소수자의 자기실현을 위한 인정 투쟁을 약화시킬 수 있다"며 "사상과 표현의 자유 시장이 가지는 운영 규칙에 불만을 품는 무제한 방종의 자유를 옹호하면서도, 혐오표현은 규제해 달라는 모순된 논변들이 갖는 이론적·실천적 위험성을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발표를 정리했다.

이후에는 이순호 변호사가 '혐오표현 규제정책의 올바른 방향; 국가인권위원회 발간 혐오표현 규제 도입 정책연구보고서의 문제점을 중심으로', 백은석 교수(한동대)가 '표현의 자유와 혐오표현 규제의 국제적 기준'을 각각 발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