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정말 사랑하긴 했을까...' 라는 노래 가사가 있다. 사랑이 끝난 뒤에는 누구나 그런 생각을 해 보게 된다. 부대끼고, 고민하고, 다투지 않아도 되는 텅 빈 시간 속에 남으면 과연 우리는, 아니 나는 정말 그 사람을 사랑했던 것인지 멍해질 때가 있다.

이는 남녀 간의 사랑만이 아니라 모든 일에서 그런 것 같다. 내가 아름답게 추억하는 모든 일들의 중심에는 항상 내가 있다. 사람이란 칭찬받고 관심을 받기 위해 모든 일을 하기 마련이지만, 그것만이 전부라면 곤란하다.

사람들의 과거 연애담을 들어보면 왠지 무용담 비슷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어떤 공을 세운 일을 자랑하듯, 자기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었는지, 얼마나 사랑받았고 존중받았으며 인정받았던 사람인지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그리고 많은 사랑을 받은 이유도 상대방의 배려 때문이 아닌 자기 능력과 매력 덕분이라고 여기기도 한다.

연애는 다큐다
▲우리 정말 사랑하긴 했을까? ⓒ사진 박민호
요즘처럼 자기를 사랑하라는 말이 많이 떠도는 때가 있었는지 모르겠다. 자신을 아끼고 사랑하라는 말은 유행도 안 타고 점점 더 퍼져나가고 있다. 세상의 책들이나 자기계발을 말하는 강사부터 불교를 비롯한 여러 종교의 지도자들까지 나서서 '너희 스스로를 아끼고 사랑하라'고 가르친다. '그래야 남도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기가 방황하고 힘들었던 시기를 극복하는 데 중요한 전환점이 바로 '나를 사랑하는 일'에 대한 깨달음이었다는 연예인이나 유명인의 고백은 흔히 들을 수 있다.

자기를 사랑하지 않아서, 자기 몸을 막 다루거나 자살까지 가는 것일까? 기독교에서도 자기 자신을 사랑하라고 가르치는 사람은 많다. 하지만 살면서 다가오는 인간의 문제들은 자기를 사랑하지 못 해서 오는 것이 아니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에는, 이미 인간이 자신을 자동적으로 사랑하고 있다는 의미가 들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희 각 사람이 자기를 사랑하듯 개별적으로 자기 아내를 사랑하고 아내도 주의하여 자기 남편을 존경할지니라(엡 5:33, 이하 흠정역)".

굳이 자기를 사랑하려고 애쓸 필요가 없는 것이다. 팔은 안으로 굽기 때문에 밖을 잘 살펴야 하고, 내리사랑이기 때문에 자식보다는 위를 잘 살펴 의식적으로 부모님께 더 잘하려고 애써야 하는 것이 옳은 것이다.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탐욕을 부리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신성모독하며 부모에게 불순종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딤후 3:2)".

말세에는 사람들이 자기 자신은 사랑하면서도, 하나님을 조롱하고 부모에게 불순종한다고 바울도 경고하고 있다.

자기를 사랑하는 것은 뉴에이지의 대표적 가르침으로, 마귀의 속삭임이다. 그렇다고 자기를 학대하라는 것은 아니지만, 그리스도인이라면 이타적인 마음으로 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사람들이 좌절하고 방황하는 것은 자기를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사랑하고 아끼는 자신에게 실망스럽기 때문이고, 그토록 소중한 자신이 남들에게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이며, 부족한 자신을 잘난 타인들과 비교하기 때문이다. 자아가 너무 중요하고 커서 그런 것이다. 그러나 사람은 남을 낫게 여기고 자기는 작게 여길 때, 삶의 아름다움과 참된 가치가 보이는 법이다.

"어떤 일도 다툼이나 헛된 영광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생각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더 낫게 여기며 각 사람이 자기 일들만 돌아보지 말고 각 사람이 남의 일들도 돌아보라(빌 2:3-4)".

세상이 자기 자신을 사랑하라고 충고하는 것은 주로 육신에 관한 것이다. 내 몸에 좋은 것, 나를 만족시키는 것을 추구하라고 아우성이지만, 정작 예수님은 자기 생명을 미워하고 남을 위해 살라고 말씀하신다.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홀로 남거니와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그것을 잃을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에 이르도록 그것을 간직하리라(요 12:24-25)".

이는 자기 밖에 모르고 육신의 안위에만 집착하면 진짜 소중한 혼의 생명을 얻기 어렵다는 말씀이다. 온 천하와 자기 육신까지 얻어도 목숨(혼)을 잃으면 아무 소용없는 것처럼 말이다.

자신의 영적·육체적 건강을 잘 챙기고 관리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하나님이 주신 몸과 마음을 귀하게 여기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자기 관리를 넘어 스스로가 우상이 될 정도로 중시하고, 남을 돌아볼 줄 모르면서 남들은 자기에게 필요할 때만 사랑하는 척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는 많은 경우 남을 통해 자신의 필요를 채우는 것을 '사랑'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 같다. 몰라서 착각하기도 하고, 알면서 이용하기도 한다.

연애와 부부 생활에서도 우리는 상대방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내게 도움이 되는 그 사람의 능력과 기능을 사랑하는 것은 아닌가? 또 상대방에게 사랑을 갈구한 것이 아니라 나를 인정해주고 존경하며 손뼉쳐 주기를 바란 것은 아닌가....

사람들은 조건이 맞는 사람을 선호한다. 조건도 중요한 것이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보조적 수단이다. 왜냐하면 결단코 조건이 행복을 가져다 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상대방의 조건은 상황에 따라 바뀌기도 하며, 나의 취향과 필요도 바뀌기 때문에 무척 불안하고 가변적인 것이다.

대개 자기가 원한 조건이 기대와 다르거나 그 효력이 다하면 마음도 떠나고 사랑도 식어버린다. 그러면서 실망했다고, 내가 원한 건 이런 게 아니었다고 원망하고 불평한다. 하지만 그에게는 애초에 식어버릴 애정도 없었던 거다. 속된 말로 단물 다 빼먹고 시들해진 것뿐.... 우아한 주인공 역할 외에는 연기하지 않겠다면 진정한 배우가 아니듯, 좋을 때만 사랑이면 진짜 사랑은 아닐 것이다.

장차 주님 앞에 서는 날,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했다면서도 얼마나 많은 시간을 남이 아닌 나를 사랑하는 데 썼는지 알게 되는 날, 돌이킬 수 없는 시간 앞에서 큰 회한을 갖게 되지 않을까....

내가 사랑했던 시간들을 무게로 달면 얼마나 될까? 그리고 거기에서 상대방이 아닌 '나를 사랑한 시간'을 빼면 무엇이 남게 될까?

김재욱 작가

연애는 다큐다(국제제자훈련원)
내가 왜 믿어야 하죠?, 나는 아빠입니다(생명의말씀사)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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