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는 글 전개상 필요한 만큼만 있습니다.
▲공각기동대: 고스트 인 더 쉘,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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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가 던지는 저 실존적 화두를 접하면서, '와! 저런 생각을 1990년대 망가(まんが)에 벌써 접목시키다니 역시 일본 애니메이션이야...' 라고 생각했다가, 이내 생각을 거두었다.
▲시로 마사무네(士郎正宗) 원작 1, 2, 1.5권 코믹스와 감독:오시이 마모루의 공각기동대 (攻殼機動隊, Ghost In The Shell,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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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아리스토텔레스의 <데 아니마>라는 문헌은 그와 같은 당대 인간-기계론에 대항했던 문헌이기도 하다.
이 글에서는 그 <데 아니마>를 현대적으로 풀어쓴 책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혼사용설명서>를 통해 영화 <고스트 인 더 쉘(공각기동대)>에서 우리에게 던지는 인간 영혼에 관한 실존적 질의를 같이 숙고해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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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제4차 세계대전을 치른 후인 2029년, 기술의 발달로 인간과 기계의 경계가 무너진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사람들은 자기 신체의 더 나은 기능을 위해 신체를 업그레이드한다. 신체에 장애가 있어서가 아니라, 더 나은 기능을 위해 건강한 신체 일부를 '의체'로 교체하는 것이다. 오늘날의 의술이 생명이 아닌 미용으로 기울듯.
다른 종류의 의체(사이보그) 병기와 달리, 인간의 뇌가 내장되어 있어 놀랍도록 섬세한 전투력을 구사하는 이 여성 전사의 탄생을 고하는 장면에는, 이런 내레이션이 영화 초반에 흘러내린다.
"...그녀는 (강력한 의체와 더불어) 정신, 영혼, 그리고 고스트를 가졌다...."
이에 관한 문제는 과학뿐 아니라 종교성까지도 포괄하는 권역에 속하는 문제이기에, 우리의 관심을 자극한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구성에 대한 관심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은 일반적으로 자신을 구성할 때 '육체'와 '관념'(정신)으로 정리하기 마련이다. 이를 편의상 심신이원론이라 부른다. '심신이원론(心身二元論)' 하면 대개 데카르트를 떠올리는데, 실제로 이 영화 제목 'The Ghost in the Shell'은 원저자가 데카르트의 심신이원론을 비판한 작가 아더 쾨슬러(Arthur Koestler)의 책 'The Ghost in the Machine'에서 착안했다고 알려졌다. 데카르트는 정신을 물질인 신체와 전혀 별개의 관념으로 보고, 신체는 그 정신의 연장으로 보았다. 그에게 있어 신체란 엄밀한 의미에서 관념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었다.
▲The Ghost in the Machine is a 1967 book about philosophical psychology by Arthur Koest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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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영화가 이들을 각기의 다른 요소로 구분해 내는 듯한 뉘앙스를 보였다는 점은 여간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실제로 이들 셋은 약간씩 차이가 있는 요소들이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다른 사이보그와 달리, '메이져'는 뇌를 갖고 있기에 '영혼이 있는 기계'라는 사실이 거듭 강조된다. 하지만 이 '영혼 있는 기계'는 어찌된 일인지 자꾸만 혼동을 일으킨다.
뭐가 자꾸만 보이는 것이다.
그렇다면 '기억'이 고스트인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혼사용설명서>에 따르면 시지각을 경험해보지 못한 맹인들은 '판타지아'부터가 다르다. 꿈을 꿀 때에 전혀 시각적 꿈을 꾸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맹인이 아닌 사람들의 시각적 꿈틀은 다 무엇이란 말인가?
안구에 의존할 수 없었던 맹인의 꿈이 안구 지닌 사람의 꿈과 다르다는 점에서 볼 때, 꿈은 기억에 전적으로 의존한 어떤 것이며, 그 기억은 결국 육체적 요인이거나 육체와 섞인 어떤 것일 수밖에 없다는 추론에 다다른다(꿈이라는 기억은 결코 뇌의 창작만은 아니라는).
영화가 던지는 이 실존적 질의는, 이를테면 '우리가 극한의 의술의 발달로 뇌를 다른 공간으로 옮길 수 있는 상황에 직면한다면, 그땐 과연 그 정신/영혼/고스트도 따라서 옮겨질 것인가?' 라는 지극히 현실적인 화두로써, 그것은 아마 인간의 정신 프로세스가 뇌에서만 전적으로 작동한다는 현대 과학이 심어준 일종의 터부(taboo)에서 유출된 물음일 것이다.
그런가 하면 만화 원작에서는 이런 말을 한다.
"나의 진짜 몸은 옛날에 죽었고, 사실 지금의 나는 '나는 쿠사나기 모토코다'라고 생각하는 의체(껍질)가 아닐까 하고 생각할 때가 많아."
그 중에서 정신 곧 사고능력은 영혼의 최종 단계의 기능으로 깃들어 있는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 기능만은 예외로, 신체가 다 사라지더라도 남아있을 것으로 보았다. 바로 정신(νοῦς)이다. 그 이유는 오로지 정신만이 신체를 기반으로 하지 않고 단독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기억은 어떻게/어떤 방식으로 남아 있게 되느냐ㅡ는 문제가 잇따를텐데, 그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다. 가령 설리반 선생이 소녀 헬렌을 가르칠 때 시지각과 청각 능력이 헬렌에게 없었을지라도 촉각이라는 막강한 능력을 헬렌이 갖고 있었기 망정이지, 그마저 없었다면 그야말로 껍질 안에 갇힌 신세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신체가 기억을 산출하는 법이다. 헬렌은 신체를 벗어남으로써, 기억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
이로써 '정신·영혼·고스트(Ghost)' 가운데서 정신과 영혼에 관한 개략적인 속성을 알아보았다. 그러니까 정신은 영혼과 별개가 아니라, 영혼의 능력의 한 부분이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영혼이 갖는 능력들 가운데서 최고의 능력인 셈이다.
그럼 이제 마지막으로 고스트(Ghost)란 무엇인가?
고스트가 기억인가?
여기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혼사용설명서>에 언급된 고스트에 관한 대목으로 그 답을 대신할까 한다.
"... 그러면 고스트는 무엇인가? 그것은 Spirit이다. 영어를 언어로 사용하는 모든 영미권의 근대식 영어 표현에 큰 영향을 끼쳤던 킹제임스 성경의 많은 곳에서 하나님의 영을 Ghost로 표기하고 있으나, 현대식 영어에서는 사령(死靈)과 구별되는 하나님의 영을 Ghost 즉 유령과 혼용되는 낱말로 번역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는 현대식 영어가 영혼 이해에 관한 새로운 격식을 갖추게 된 것이든지, 아니면 과거의 영혼에 대한 이해 저변에는 하나님의 영과 사령(私靈)의 구별이 엄격하게 구분되지 않았던 사실을 반증한다.
'영혼'에 관한 현대식 표현은 거의가 '호흡'을 의미하는 라틴어 spiritus에서 비롯된 spirit을 선호하게 되었는데, 이는 Ghost가 독일어 Geist와 마찬가지로 '영혼', '호흡'을 뜻하는 고대 독일어 gaistaz를 뿌리로 공유하면서도, '혼돈'과 '충격'을 뜻하는 고대 인도유럽어 'gheis-'와 연루되어 있는 바람에 그 영혼의 속성이 '두려움(의 영혼)' 혹은 '진노(의 영혼)'으로 전용되어버린 까닭일 것이다. 주로 저 무당이 소개하는 영혼으로서의 이해인 셈이다.
오늘날의 spirit의 쓰임새는 거의가 '호흡', '생명'의 의미로 전용되어 사령과는 구별된 쓰임새를 갖는다. 이 같은 살아있는 '영혼에 관하여' 기록된 책이 바로 <데 아니마>이다(-영혼사용설명서 '사고능력' 부분 중에서)."
이에 따르면 고스트는 어떤 기억이나 유령이 아니라, 생명의 원천인 '입김/숨'이었던 셈이다.
특별히 기독교 성서이자 유대교의 경전인 토라에서는 이 Ghost(Spirit)를 네샤마, 곧 어떤 입김으로 소개하고 있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신의 '입김'인 것이다.
“and their hope shall be as the giving up of the ghost/נשמה/(Job 11:20).”
남은 희망은 숨을/נשמה/ 거두는 일뿐이리
“And the LORD God formed man of the dust of the ground, and breathed into his nostrils the breath/נשמה/ of life; and man became a living soul(Gen 2:7).”
야훼 하느님께서 진흙으로 사람을 빚어 만드시고 코에 입김을/נשמה/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되어 숨을 쉬었다.
▲Scarlett Johansson plays The Major in Ghost in the Shell from Paramount Pictures and DreamWorks Pictures in theaters March 31,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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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여기서의 영혼은 고스트가 아니라, (영양섭취능력을 지닌) 영혼(ψυχή)이다.
단, 저 여성전사가 먹고, 마시는 능력이 있었는지는 이 영화에서 확인하지 못하였다. 아울러 고스트가 있는지도 확인할 수 없었다. 고스트 곧 네샤마는 사람에게만 부어지는 신의 입김이기 때문에.
/이영진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