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찬
▲故 황금찬 시인 ⓒ창조문예
원로 기독 문인이자 한국 문단의 거목인 황금찬 시인이 8일 새벽 4시 40분께 노환으로 강원도 자택에서 별세했다. 향년 99세.

고인은 한국 문학 뿐만 아니라, 한국 기독교 문학 발전에도 기여해 왔다. 1947년 월간 <새사람>과 1948년 <기독교가정>에 시를 발표하기 시작하면서, 1953년 <문예>지와 <현대문학>지로 등단했다.

1965년 첫시집 <현장> 이후 <느티나무와 추억>까지 37권의 시집과 에세이집 <너의 창에 불이 꺼지고> 등 24권의 산문집을 출판했다. 지금까지의 한국 문단에서 이 만한 저서를 남긴 이는 매우 드물다.

특히 고은 1967년 주태익 선생, 김현승 선생과 함께 한국기독교문인협회를 창립하고, 한국기독교문학 발전을 앞장서서 이끌어 왔다. 기독교문학을 통한 하나님 나라의 확장에 기여했으며, 기독교문학의 방향을 제시했다.

또 고인은 생전 '기독교 문학'이라는 말 대신 '신앙 문학'이라는 말을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 시대는 기독교를 상식적인 면에서만이 아니라 영혼으로 접하고 있기 때문에 기독교 문학이라는 관념적인 말보다는 '신앙 문학'이란 말을 쓰면 좋겠다"고 했다.

이어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시인은 예수님"이며 "예수님은 그 시대에 없었던 '에바다'나 '달리다굼' 같은 새로운 언어를 창조하셨는데, 이 말 안에는 절대성이 담겨 있었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지금 우리들이 쓰고 있는 말에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다. 우리의 언어를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완전히 바꿔야 한다"고 했다.

그는 "최고의 시인을 스승으로 모시고 있는데 우리가 왜 좋은 시를 못 쓰겠냐"며 "좋은 시를 쓰려면 신앙은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어야 하고, 언어를 새롭게 만들어 나가야 한다. 이것을 알고 나서 신앙 문학으로 새롭게 출발하자"고 했었다.

한편, 고인의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 301호에 마련됐다. 발인은 11일. 장지는 경기도 안성 초동교회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