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충렬 인터뷰
▲김충렬 교수. ⓒ크리스천투데이 DB
제16장 직관의 구조와 기능(3)

내향적 직관형은 직관기능이 객체가 아닌 내적인 세계로 향한다고 했다. 비록 그 직관 기능이 객체의 어떤 가능성을 파악한다 해도 그것은 객관 세계에서의 가능성이 아니라, 그 사람의 마음 깊은 곳에 있는 원시적 요소들이 어떻게 변해가고 있으며, 어떤 방향을 제시하고 있는가를 파악하는 것이다. 물론 직관에서 외향형, 내향형이라 해서 각 특수 기능이 꼭 한 가지 방향으로만 움직이는 것이 아니고 언제나 다소 반대되는 경향의 인식이 동반되기 때문에, 내향적 직관과 외향적 직관의 경우도 확실하게 구분되는 것이 아니고, 어느 경향이 더 강한가 하는 것에 따라 형의 외향과 내향을 정하게 되는 것이다.

1. 내향적 직관형

내향적 직관형(introverted intuition type)은 직관기능이 외부가 아닌 내적인 세계에 의해 이루어진다. 이들의 직관은 무의식적인 요소들이라 해도 좋은 내적 객체들을 겨냥한다. 내적 객체들은 물리적이 아닌 심리적인 현실이지만 의식에 대해 외적 객체들과 아주 비슷하게 행동한다. 이러한 내적 객체들은 직관적 지각에게 외적 경험에서는 만날 수 없는 무의식의, 궁극적으로 집단적 무의식의 내용을 이루는 것들의 주관적 상(像)들로 나타난다는 것이 융의 생각이다. 이런 이유로 그들은 마음 깊은 곳에 존재하는 원시적 요소들이 작용하는데 관심을 둔다.

1) 직관형의 일반적 이해

내향적 직관형에서는 구체적인 현실에 있어서의 가능성 보다 정신세계에 있어서의 가능성을 촉지하는 것이 그의 주 기능의 특징이며, 그는 주로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그는 종교적 예언가, 이른바 선지자이며 예술가나 시인 가운데에서도 발견된다.

원시사회 같으면 혼령의 세계와 교통하며 이를 통하여 환자를 치료하는 샤만(shaman)과 같은 유형이 될 것이며, 이와 유사한 역할을 하는 현대 사회의 정신치료가, 정신과의, 심리학자들 가운데도 이런 형의 치료자가 많다. 그는 모든 사람이 잠들고 있는 시대에 일어나 정신의 위기와 각성을 촉구하는 광야의 예언자이며, 그가 예술가나 시인이면 그의 작품은 현실 세계와는 동떨어진 초속(超俗)의 세계를 표현할 것이며, 객관적인 미(美)감각과는 거리가 먼 기괴한 내용에 차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향적 직관형은 그 속에 번득이는 진리는 현세를 넘어 무궁한 미래를 가리킬 것이다. 그들은 대게 시대의 사람에게는 잘 이해받지 못한다. 그의 말은 불가해(不可解)하며 전혀 논리성이 없어 합리적인 형의 사람의 눈에는 그가 몽환가이거나 신비주의자로 보일 것이다. 그는 시대를 앞서가는 사람이다. 훨씬 후대에야 그의 사상이 대중적인 이해를 받을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들이 예술가나 종교가라든가 어떤 형식이든 표현방식을 갖추지 못할 때 그들은 괴팍한 바보, 인정 못 받은 천재 같은 존재가 되어 쉽게 역사에 파묻혀 잊혀지기 쉽다. 그러나 문학 작품 같은 데는 천재적 바보의 상으로 가끔 그 진가가 인정되는 수가 있다. 니체(F. Nietzsche)의 저서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내향적 직관에 의하여 파악된 집단적 무의식의 원초적 유형들이 잘 표현된 예라고 간주된다.

2) 내향적 직관형의 특징

내향적 직관형은 객체의 가능성을 파악하는데 비상한 능력을 갖고 있다. 다만 그들의 직관기능이 객체의 가능성을 파악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객관세계에서의 가능성, 즉 어떤 장사가 내년에 잘 될 것이라든가, 어떤 사람의 그림이 장차 잘 팔리게 된다든가 하는 가능성이 아니다. 그 사람의 마음의 깊은 속에 있는 원시적 요소들이 어떻게 변해가고 있으며, 어떤 방향을 제시하고 있는가를 중심으로 파악하는 것이다.

물론 내향적 직관형이라고 해서 각 특수기능이 반드시 한 가지 방향으로만 움직이는 것이 아니고, 언제나 다소 반대되는 경향의 인식이 동반되기 마련이다. 이런 특성은 내향적 직관과 외향적 직관형의 경우에도 동일하게 작용하여 사물에 대한 인식이 확실하게 구분되는 것이 아니고, 어느 경향이 더 강한가 하는 것에 따라 외향과 내향이 구분되는 것이다.

내향적 직관형은 외향적 직관형과 같이 새로운 가능성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지만, 이를 잘 발전시키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때로 이들은 훌륭한 직관을 갖는 경우가 있으나 이를 발전시켜 어떤 완성에 이르게 하는 데는 약한 면을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이들은 현실과 동떨어진 특이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를 대단하고 비상한 천재라고 여기는 경우도 있다.

반면 그들은 외적인 현실이나 일반적인 세속적인 일에 깊이 관여하지 않기 때문에 원시적인 이미지의 세계에 고립되어 있기에 사람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 이유로 이 유형은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비상할 뿐 아니라, 남이 보기에도 도무지 알 수 없는 사람으로 보이는 일종의 카리스마를 지니는 경우가 있다.   

내향적 직관형은 자신의 내면의 인식을 중요시하기에 현실과는 거리가 있는 편이다. 이들의 직관기능이 주로 내적으로만 향하는 특성 때문에 구체적인 현실보다는 정신세계의 가능성을 중시하여 판단하며, 또한 현실성이 부족하다는 느낌을 준다.

이런 점에서 이들은 자기의 느낌이나 환상을 현실로 오판하는 경향이 있어 합리성이 결여되어 있으며, 내적인 이상심리나 종교적인 체험에 관심이 많으나 표현해내는 데는 익숙하지 못하다. 그런 이유로 종교적 예언자, 예술가, 시인, 샤만, 정신치료자, 심리학자등에서도 이런 유형이 발견되고 있다. 이들은 때로 현실을 뛰어넘는 미래지향적인 면이 많아 몽상가로 신비주의자로 보이기 쉬운 측면이 있는 이유이다.
    
2. 내향적 직관형의 긍정적인 측면

내향적 직관형은 나름대로 긍정적인 측면을 가지고 있다. 이런 측면은 이 유형만이 갖는 장점이다. 이들은 보편성이 결여되어 타인이 인정하고 수용하기에 어려움이 있지만, 때로는 앞을 내다보는데 탁월한 능력을 가졌다. 내향적 직관형의 긍정적인 측면은 주로 주관성과 깊이라는 영역에 관여한다. 타인이 도저히 생각해내지 못하는 것을 생각해내는 비상한 사람과 같은 점이 있다. 다만 그것이 현실과 동떨어진 것일 수 있어 그대로 아쉬움이다. 이들의 긍정적인 측면은 이 유형을 이해하는 기준이 될 것이다.

1) 깊은 정신세계의 가능성을 추구하는 경향

내향적 직관형은 안으로만 향하는 특성 때문에 구체적인 현실과는 달리 깊은 정신세계의 가능성을 추구한다. 정신세계의 가능성을 촉지(觸知)하는데 다른 어떤 유형보다 빠르다. 실제로 그들은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살아간다. 아직도 인간에게 정신의 세계는 무한하고, 무한한 정신의 세계에서 발견되는 일은 신비로운 것들이 될 것이다.

이들로 인해 어쩌면 우리의 정신에는 이미 존재하지만, 그 누구도 경험하지 못한 정신의 원리나 체험의 세계가 밝혀지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것은 아마 정신의 역동적인 원리나 현실을 뛰어넘는 신비로운 세계일지 모른다.

정신세계의 가능성을 촉지(觸知)하는 행동은 이들이 갖는 정신의 무한한 특성을 이해할 때 비로소 가능해진다. 실제로 이런 정신작용이 일어나는 우리의 뇌는 아직도 알 수 없는 신비로운 특성으로 가득하다. 뇌는 축축한 상태로 존재하여 두 손아귀에 들어가는 정도의 크기이지만, 아직도 모두 탐구되지 않았다고 하지 않는가. 그렇기에 그런 일은 인간의 뇌(腦)에 대하여 모두 탐구되어 밝혀지지 않은 과학적 현실에서는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물론 정신세계의 가능성은 그 특성상 현실세계와는 대립되는 것이다. 현실세계는 현상적으로 이상세계와는 대립되는 특성이 있다. 정신의 특성이 현실과 거리감이 있으나 정신에서는 가능한 특성이 있다. 다만 그것이 현실과 부합되는가의 문제는 별개의 문제이다. 이런 점에서 내향적 직관형은 구체적인 현실에 있어서의 가능성보다 정신세계의 가능성에 깊은 관심을 두고 그것의 깊이를 추구하는데 온 몸을 바치는 사람과도 같을 것이다.

실로 이런 유형은 현실세계와는 비교적 초월해 있는 종교적인 예언자, 이른바 선지자이며 예술가나 시인 가운데서 많이 발견된다. 원시사회 같으면 혼령의 세계와 교통하며 이를 통하여 환자를 치료하는 샤만(shaman)과 같은 유형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유형은 오늘날에는 그와 유사한 역할을 하는 현대 사회의 정신치료가, 정신과의사, 심리 및 상담치료자 가운데서도 발견된다.

2) 정신의 위기와 각성의 촉구자

내향적 직관형은 남달리 정신의 깊은 세계에 관심을 갖고 있기에 정신의 변화에 민감하다. 그들은 모든 사람이 잠들고 있는 시대에 일어나 정신의 위기와 각성을 촉구하는 광야의 예언자이기도 하다. 그들이 예술가나 시인이면 그들의 작품은 현실세계와는 동떨어진 세상을 초월하는 초속(超速)의 세계를 표현할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객관적인 미적(美的) 감각과는 거리가 먼 기괴한 내용에 차 있을 것이지만, 그 속에 번득이는 진리는 현세를 넘어 무궁한 미래를 가리킬 것이다.

내향적 직관형은 내면의 깊은 관조로 인식해가는 특성이 있기에 그 시대의 사람에게는 잘 이해받지 못할 수 있다. 그들의 말은 정신세계를 깊이 파악해가는 측면이 있어서 불가해(不可解)하며 전혀 논리성이 없기도 하여 합리적인 사람의 유형의 사람의 눈에는 그가 몽상가나 몽환가(夢幻家)이거나 신비주의자로 보이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어떤 면에서는 분명히 시대를 앞서가는 사람일지 모른다. 그들의 사상은 정신의 깊은 침잠의 결과로 나온 것이기에 훨씬 후대에야 대중적인 이해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괴팍한 바보, 인정 못 받은 천재가 되어 쉽게 역사에 파묻혀 사람들에게 잊혀질 수 있는 사람일지 모르지만, 그들의 문학작품 같은 데는 천재적 바보의 상(像)으로 등장하여 가끔 그 진가가 인정되는 수가 있다. 여기에는 니체(Nietzsche)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내향적 직관에 의하여 파악된 집단적 무의식의 원초적인 유형들이 잘 표현된 예로 간주되고 있다. 

3) 초심리학적인 일에 강한 경향

내향적 직관형은 무의식의 선험적, 즉 유전되어 존재하는 토대들에서 나오는 상들을 포착한다. 원형들의 아주 깊은 본체는 경험으로 접근할 수 없는 것이기에 그것은 조상 대대로 이러온 정신활동의 잔재, 즉 생명체의 수백만 번의 반복을 통해 쌓여왔고, 일정한 형(型)으로 농축된 경험들을 나타낸다. 이런 이유로 내향적 직관형은 초심리학적인 일에도 관심이 많다.

초심리학적인 것은 그 특성상 현실과는 거리감이 있기에 일반적인 세계에서는 도저히 체험이 불가능한 것들이 그들의 연구와 관심의 대상이 된다. 그래서 그들은 '귀신 이야기'라든가 이상심리학(異常心理學, parapsychology)에 깊은 관심이 있고, 또한 그런 체험을 곧잘 말한다.

다만 그들은 자기의 체험을 정확하게 구체적 예를 들어 재현하기가 어려울 뿐이다. 그런 사람들의 귀령담(鬼靈譚)이 신빙성이 적다고 말하는데, 그들은 사실을 관찰하는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전혀 중요치 않은 사실을 정확하게 기술한다든가 중요한 대목을 빠뜨린다든가 해서 그들이 겪은 것과 다르게 이야기가 전개하기 때문이다.  

내향적 직관형은 미래의 일어날 일에 대하여 예감하는데 탁월한 능력이 있다. 물론 직관이 감각이 아니기 때문에 그것은 자극적인 것에 의한 결과는 아니다. 이를 다시 말하면 그들은 미래의 일에 대하여 무슨 '낌새'를 알아차리는데 강하기에 커다란 위기가 닥쳐오리란 것을 즉시 알게 된다. 다만 이들은 물론 사고와 감정 같은 판단기능이 비교적 약화되어 있으므로 자기의 경험을 합리적으로 설명하는데 곤란을 느낄 뿐이다. 이런 경우에도 그것이 왜 그렇게 되는지를 설명하지 못하고 자신이 인식한 것을 알리는 것뿐이다.

이때 그것을 듣는 사람은 어리둥절해지거나 허튼소리라고 화를 내기도 하지만, 그것이 훨씬 뒤에야 사실임이 판명되는 수도 있다. 이런 점은 물론 누가 내향적 직관형인지를 모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예감을 말한다고 모두 분화된 직관기능이라 할 수 없는 점은 분명하다. 이는 모든 점쟁이가 직관형이 아닌 것 같이 "내 꿈은 맞는다"고 자처하는 사람이 반드시 직관형이 아닌 것과도 같다. 또한 내향적 직관형이라도 너무 자기의 직관기능을 맹신하면 무의식적인 감각 기능을 지나치게 소홀하여, 오히려 그것에 의하여 영향을 받을 때 건전한 직관 기능이 제대로 기능을 발휘할 수 없는 경우도 많다.

3. 내향적 직관형의 부정적인 측면

내향적 직관형의 부정적인 측면은 앞에서 이미 부분적으로 밝혀진 것 같다. 이들은 다른 사람이 같지 않는 특성을 갖고 있는 점이 그대로 장점이지만, 그것은 사고와 감각의 결여 때문에 논리적인 사고와 현실성에서 단점을 유발한다. 그러니까 그들은 남달리 깊이 있게 가능성을 파악하고 새로운 세계에 대한 것을 말할 수 있지만, 그것은 때로 현실과는 거리감이 있는 것일 수 있다. 이런 이유로 그들은 대단한 신비스러운 존재로 여겨지면서도 자주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으로 인식된다. 이들의 부정적인 측면을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1) 현실감각이 결여되는 경향

내향적 직관이 우위를 차지하면 신비한 몽상가 겸 예언자이거나 환상가 겸 예술가인 독특한 유형이 발생한다. 직관이 깊어지면 개체는 바깥 현실로부터 극도로 멀어져서 잘 아는 사람들에게조차 아주 수수께끼가 되어버린다. 이런 이유로 그들이 예술가라면 그들의 예술은 비범한, 속세를 떠난 것들을 알린다. 그들은 온각 색깔로 빛나며, 의미 깊으면서 진부하고, 아름다우면서 기괴하고, 숭고하면서 변덕스럽다. 이런 현상은 그들이 정신세계의 침잠하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하여 이들의 현실감각의 결여로 전혀 다른 세계를 추구하게 된다.

그들이 정신세계에서나 가능한 이상향을 추구하는 것은 현실세계에서는 통하지 않을 때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이 통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런 유형이 생각한 바를 실천에 옮기면 현실과는 다르기 때문에 번번히 시도하는 일마다 실패할 수 있다. 이들의 생각은 자기 나름대로의 이상화에 치우쳐 시도한 것일 뿐 현실과는 도무지 맞지 않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그들의 행동은 현실감각이 결여된 사람으로 낙인찍히게 될 것이기에 "그들이 하는 모든 일은 좋은 생각일 뿐 현실성은 없다."는 것으로 인정되는 편이다.

이때 내향적 감각형의 문제는 현실감각의 결여에 있다. 이러한 현실감각의 결여는 감각기능이 억압되어 가장 열등한 상태에 있는데 그 원인이 있다. 현실감각은 직관형의 감각 기능의 억압으로 내향적 직관형 뿐 아니라 외향적 직관형에서도 감각기능이 가장 미분화된 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때로 외부적인 사실에 대해서 주의를 집중하고, 이것을 충실히 기술하는 노력이 부족할 뿐 아니라 흔히 객관적인 사실을 무시해 버린다. 그러므로 이런 유형의 사람이 논문을 쓰거나 강의를 하면 뒤죽박죽이 되어 독자나 학생들의 불평을 사기 쉽다. 그러나 그 독자나 학생이 내향형이라면 그 뒤죽박죽의 말 속에 그래도 깊은 이야기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질서정연한 강의보다 이를 더 즐기게 될 것이다.

2) 자기의 충동에 사로잡히는 경향

내향적 직관형은 어떤 경우에 감각적 문제에 그다지 신경을 기울이지 않는 편이다. 그들은 감각적 문제를 무시하거나 억압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내향적 직관형은 감각을 가장 많이 억압한다. 이런 현상은 그들이 스스로의 충동에 사로잡히는 경향이라고 보아야 한다. 충동이란 그 특성상 매우 주관적인 것인데, 이는 객관적 현실과는 다른 순전히 자기의 내적인 심리적 세력에 의한 변화이다.

우리는 때로 충동에 의해 자신을 조절하지 못할 정도에 이르기도 한다. 강한 성적 충동이라든가, 누구도 흉내를 내지 못할 정도의 의분을 가진다든가 하는 것은 그것이 모두 옳고 그름을 떠나서 일단 충동에 의한 산물이다. 내향적 직관형이 자기의 충동에 사로잡히는 현상은 무의식의 작용에 의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들이 자기의 충동에 사로잡히는 현상은 분명히 의식적인 현상이지만, 그 원인은 무의식에 그 원인이 있다는 점에서다.

내향적 직관형은 지나치게 내향적 직관형에 사로잡히게 되면 무의식의 대립이 일어난다. 무의식 기능의 대립이란 대개 외향적 감각기능의 열등한 관계이다. 이 관계에서 적절한 보상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의식의 태도와는 대립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그 결과로 강박적으로 의식을 자극하여 병리적인 현상이라고 볼 수 있는 여러 가지 불쾌한 증상을 나타내게 된다.

이에 따라 그는 쉽게 충동에 사로잡히며 강박적으로 객체적 감각에 구속되기에 의식의 직관적 태도를 훼방하게 된다. 이것은 한 방향으로만 지향하는 일관적 태도가 결국 그 방향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역행적 결과가 초래되는 현상이다. 이 유형에서 흔히 보는 신경증은 강박신경증으로 건강염려증상, 감각기관의 과민상태, 혹은 어떤 사람이나 사물에 대한 강박적인 속박 등의 여러 증상이 나타난다.

3) 도덕성보다 자기의 환상에 근거하는 경향

내향적 직관형은 자기의 생각이 우선되는 경향이 있다. 이는 세상의 도덕성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유형은 감각형과 마찬가지로 합리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도덕성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물론 이 유형에서 도덕적인 문제는 사고나 감정기능의 작용과 관련되어 있다. 내향적 직관형의 판단을 주재하는 사고나 감정기능이 어느 정도 그들의 주기능인 직관기능을 돕고 함께 작용하는가에 달려 있다.

이런 기능이 억압되어 전혀 활동하지 않을 때 도덕적인 문제는 그들에게는 이해하기에 불가능하다거나 심지어 부조리라고 생각된다. 그들은 오직 지각한 것이 어떤 것인가 하는 것에만 주의를 집중하지만, 그들에게 판단기능이 살아 있으면 그들은 도덕적인 문제를 의식하게 된다. 이때 그들은 직관적으로 의식한 것에 대하여 "그것이 나와 이 세계에 무슨 뜻이 있는가?", "나와 세계에 그 인식으로부터 어떤 과제와 의무가 부여될 것인가?"하는 물음을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경우에도 그들이 생각하는 것은 그들이 인식한 관조의 여러 가지 미적(美的)인 가능성이기보다 그것이 지닌 도덕적인 작용의 가능성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그들이 한 인간, 한 인간 전체로서 그들의 환영(幻影, Vision)에 연관되어 있다는 점으로 볼 수 있다. 그것은 그 환영이 그저 관조될 수 있는 것일 뿐 아니라, 또한 주체의 삶이 되고자 하는 것임을 그는 어렴풋이나마 그 직관적 판단으로 인식하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식을 통해서는 상당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현실과 거리감이 있게 되고야 만다.

이에 대해 융은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그들은 환영을 그 자신의 삶 속에서 개선할 의무를 느낀다. 그들은 그 자신과 그의 생을 상징화한다. 현상이 지닌 내적인 영원에 적응하나 현재의 구체적인 현실에는 적응하지 못한다." 이는 그들의 도덕적인 노력은 주로 그의 환영에 의거하므로 일방적인 것이 된다. 이렇게 해서 그는 도덕성과 현실성의 괴리를 유발하게 된다. 융이 이런 유형이 도덕성의 현실적 영향력이 적어지고 당대의 사람들에게 이해될 수 없는 존재가 되기 쉽다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4. 요약

지금까지 우리는 몇 장에 걸쳐서 직관의 구조와 기능에 대하여 기술하였다. 직관은 모든 본능적인 파악에 의한 결과로 이루어지는 특성이 있지만, 그것은 다시 직관하는 태도에 따라 외향형과 내향형으로 구분되었다. 외향적 직관형은 모든 직관이 객체적인 기준을 두어 방향을 맞추지만, 내향적 직관형은 모든 직관에 대하여 주로 주체에 의하여 파악하는 것이 특징이었다.

내향과 외향의 직관형이 각기 주체와 객체에 기준을 두어 기능한다는 점에서 둘의 구분은 융에게서는 상당히 대립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으로 설명되었다. 내향적 직관은 직관의 감지하는 성격에 집중하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주체적인 성격이 중요시되었다. 이런 점으로 인해 내향적 직관이 지나치게 우위를 차지하면 신비한 몽상가나 환상가 그리고 이상한 예술가로 비쳐지기도 한다고 했다.

반면에 외향적 직관은 언제나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나서는 것이 특징적으로 드러났다. 많은 좋은 일을 남을 위해서 하고는 자신은 정작 열매를 거두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리고도 이 유형은 가능성을 보고 집중하여 일을 시도하는 특성 때문에 그 일에 열심히 매진할 수 있지만 자기의 몸을 돌보지 않고 열심히 하는 경향이 있기에 몸에 이상이 있을 경우가 되고 난 후부터는 건강을 지나치게 염려하는 건강염려의 강박증세가 나타나기 쉬운 것으로 드러났다.

직관형은 그 태도에 따라 외향적 직관형과 내향적 직관형으로 구분되었다. 외향적 직관형은 객체에 따라, 내향적 직관형은 주체에 따라 정신에서 그 파악하는 본능적인 과정이 달라지게 된다. 이런 외향과 내향의 직관은 각기 그 장점과 단점을 가지고 있어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을 동시에 갖고 있었다. 게다가 이런 직관형은 외향과 내향의 차이 없이 모두 감각을 억압하는 것으로 드러난다는 점이 특이했다. 이런 특이성에 따라 그에 상응하는 증상이 유발되는 특징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