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민국 칼럼] 압록강은 흐른다… 단동의 전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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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중한 철교.

거침없이 흐르는 압록강.

단동의 하루는 압록강에 부서지는 햇살을 바라보는 것으로 시작된다.
강 건너 신의주를 바라보는 마음이 오늘 따라 유난히 착찹하다.

오늘도 어김없이 탈북을 시도하다 발각되어 끌려갔다는 소식을 듣는다. 새벽예배를 마치고 성도들의 귀가를 돕는 교회 차량이 무심히 흐르는 압록강을 지난다. 탈북을 시도한 모녀 중 어머니는 연행되고, 고등학생쯤으로 보이는 딸은 단동으로 무사히 넘어왔다고 전한다.

도망가라!
무조건 뛰라!

어머니는 북한 경비병에게 심한 구타를 당하면서도 끝까지 북한 경비병의 바지춤을 놓지 않고 소리쳤다고 눈시울을 붉힌다.

단동에 교회를 세운지 3년이 지났다. 연변 자치구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가난과 허기의 세월을 넘어 성인이 되었지만, 가난을 이겨내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돈벌이를 위해 집을 나서던 그 해, 상점에서 만난 선교사가 전해 준 성경책을 읽다 하나님을 만났다.

성경은 인생에 대한 허망한 마음의 무질서를 가지런히 정돈해 주는 경이로움이었다. 성경을 통독하면서 용서라는 덕목이 샘물처럼 솟아났다. 가난한 부모에 대한 원망, 허기진 유년기, 소망 없는 청소년기의 방황, 화이트칼라가 될 수 없는 변방의 족보까지, 불편을 감수해야 했던 원망스러운 환경들이 허허실실 웃음 한 자락으로 모두 덮어졌다.

요한복음을 스무 번쯤 반복해서 정독할 즈음, 신학교에 입학했다. 신학교라야 한국의 작은 교단에서 현지에 세운 작은 규모의 총회 직영 신학교이다.

신학교는 유일한 도피처이자 존재 이유를 일깨워 준 소망의 안식처였다. 하나님의 구원 섭리를 깨달으며 보낸 학부과정 2년, 신학대학원 과정 2년의 시간은 은혜 속에서 하루처럼 지나갔다.  

전도사 직분으로 작은 교회를 개척했다. 3년 만에 130명이 출석하는 교회로 성장했다. 출석 교인 130명이라지만, 재정은 형편없이 어렵다. 쌀, 밀가루, 참깨가 헌물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런데도 작년부터 어려운 재정을 모아 38만 원을 전도사에게 사례한다.

이제 굶어 죽을 일은 없다. 하루 한 끼라도 햇살 좋을 시간을 택해 마음 놓고 먹을 수 있다. 그러나 어쩌다 탈북민이라도 교회 문을 두드리면 그나마 박봉을 쪼개야 한다. 임시 거처를 제공하다 안전한 곳으로 연결해 주어야 한다.

벌써 2월이다. 사랑하는 성도들과 정담을 나눈 설 연휴를 뒤로 한 채, 압록강은 여전히 중국 단동과 북한 신의주를 가르며 흐른다. 1월 한 달을 과거 속에 묻으며, 가슴으로 기약한 다짐들이 벌써 희미한 약조가 된 세월 앞에 허망한 마음이다. 한 번 더 숨고르기를 하고 보내야 할 겨울이다.  

다음 주에 드디어 대한민국을 간다. 목사 직분을 받는 노회 행사의 주인공으로 참석한다. 이단의 출현으로 서둘러 받게 된 목사 직분이다.

어느 곳이나 그렇듯, 단동에도 악한 영들이 설쳐댄다. 이단들이 쳐들어왔다. 이단을 구분하지 못하는 새신자 몇몇이 이단에게 현혹됐다. 전도사보다 목사가 더 좋을 것 같은, 어처구니 없는 계급적 발상이 빚은 안타까운 오판으로, 양들은 생명을 잃는다. 전도사가 어찌 목사처럼 행세를 하느냐며 비방하고 다니는 이단의 궤계가 참으로 더럽고 추악하다.

그래서 목사 안수를 받아야 한다. 단동 교회의 사정을 알게 된 대한예수교장로회 소속 한 노회에서 목사고시를 치르고 목사임직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줬다.

지긋지긋한 가난을 유업으로 여기며 만주 벌판을 떠돌아다닌 가문을 불쌍히 여기신 하나님께서, 인생에게 가장 값진 직책을 부여해 주신다.

이단이 궤계를 부리지 않았다면 목사 임직은 생각지도 못했을 환경이다. 전도사 직분으로도 얼마든지 복음의 씨앗을 뿌릴 수 있는 척박한 땅이 단동이다.   

"목사는 하나님께서 친히 기름부음을 주시는 직분입니다." 단기 선교사로써 단동 현지 교회를 왕래하던 목사님께서 많은 수고를 아끼지 않고 준비한 목사 안수식이다. 안수위원 몇몇 목사님들과 부모 형제만 단출히 참석한 가운데 진행되리라 생각했던 목사 안수식이다.  

그러나 소속 노회장님께서 노회원 목사님들이 전원 참석하는 월례 노회 때 목사 안수식을 거행한다고 전해왔다. 교회 헌법 절차대로 총회 인준을 받고, 노회에서 목사 안수 결정을 하고, 목사 안수 증명서와 기념패, 간단한 기념품과 출장 뷔페까지 마련한다고 전해 왔다.

더군다나 예술의전당에서나 만날 수 있는 유명 성악가가 제자와 함께 특별 찬송으로 헌신까지 한다 하니, 비천한 몸을 귀하게 여기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 앞에 더욱 열정적인 전도자의 사명을 다짐할 뿐이다.

감개무량하다. 항공료를 마련해 준 성도들. 흔쾌히 체류 기간 내내 일행들의 숙식을 제공해 주시겠다는 목사님 부부. 목사 안수식을 기꺼이 준비해 주신 노회 목사님들. 모든 분들에게 송구스럽고 감사한 마음뿐이다.

이제 이단에게 하나님의 양들을 빼앗길 염려는 사라졌다. 목사 안수 증명서는 고단한 삶의 뒤안길에서 수시로 바라보며 구슬땀을 닦아낼 수 있는 십자가 군병의 증명서이다.

목사 안수식 날을 가슴에 안고 다시 돌아와야 할 땅, 중국 단동. 이단을 척결하고, 억압된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며 뼈를 붙어야 할 땅, 단동. 압록강은 어제나 오늘이나 중국 단동과 북한 신의주 사이로 흐른다.

내일은 목사 직분을 받는 날이다. 압록강이 마르지 않는 한, 예수 그리스도께서 열어놓으신 영생의 길을 전해야 할 울림으로 가슴이 벅차오른다.

/하민국 목사(인천 검암동 새로운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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