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민국 칼럼] 온유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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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가 밝은지 벌써 보름이 지났다. 하루가 모여 이루는 세월의 시간은 참으로 빠르기도 하다. 한 걸음 한 걸음을 내딛어 장산을 넘듯, 하루는 유구한 세월을 넘는다.

보름 동안 무엇을 했던가. 어떤 의식으로 지나왔던가. 무엇인가 다시 마음을 고쳐 잡아야겠다는 다짐이 솟는다.

잠시 방만한 마음으로 한눈을 팔면 지나가버리는 덧없는 하루. 아름다운 동행, 감동의 헌신, 도전과 열정의 성취를 결정짓는 소중한 하루. 우리들은 어떤 마음으로, 어떤 성취를 위해 붙잡을 수 없는 오늘을 지나왔는가.

막내아들의 징병검사 때문에 대구 중앙신체검사장을 다녀오는 길이다. 새벽을 깨우고 태어난 핏덩이 막내아들이 어느 새 하루를 모아 국방 의무자가 되었다. 천식 진단을 받은 막내아들은 현역병 입대가 불가하여 공익근무요원 판정을 받았다. 다행이다. 병역의무와 동시에 천식을 치료할 수 있게 되어 새해부터 하나님께서 커다란 감사의 응답을 주셨다.

막내아들과 대구 지역 교회에서 수요 예배를 드리기 위해 작은 교회를 찾았다. 아들과 함께 드린 예배는 온유함에 대하여 각성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모세의 혈기가 사그라든 시간은 모든 인생의 성취를 포기할 그때였음을 일깨워주신 하나님 말씀은 막내아들에게 커다란 위로가 된 듯 싶다. 예배 후 막내아들이 어깨동무를 한다. 아버지도 온유하십시오.

그렇다. 온유하지 못했다. 많은 개척교회 목회자들이 힘든 환경에 처해 있다. 지치고 암울한 시절이라지만, 우리들은 너무도 혈기왕성하다. 어쩌면 더 지쳐야 하고, 더 곤란한 환경에 처해야만 비로소 무너져 내릴 수 있는 성취들이 아직도 가득 쌓여 있는 모습일 수 있다.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린 것 같은 참담한 가난의 환경이라지만 너무도 많은 것들을 소유하고 있다. 기운이 없어 도저히 일어설 수 없는 모세의 80이 되려면 가슴 깊은 심령 속에 가득 쌓아둔, 무거운 것들을 기필코 내려놓아야 한다. 혈기와 분노는 물론, 이성적이라는 틀에 메인 자존감과 당위성을 앞세운 관념들을 몽땅 내려놓아야만 한다. 그래야만 온유할 수 있다.

온유는, 우리들의 생각과 판단을 내려놓는 것이다. 온유는 착한 것만이 아니다. 순전한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우리들은 우리들의 생각과 판단으로 인하여 갈등하고 대립한다. 자신의 판단으로 그릇됐다고 생각하는 그것들을 지적하는 말은 대립의 도화선일 수 있다.

온유는 부족한 상대방을 그대로 인정하는 의식이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기꺼이 상대방의 단점을 쓸어주는 사람이 온유한 사람이다.
 
온유한 사람은 칭찬과 격려의 말이 아니면 입 밖으로 발설하지 않는다. 순수한 마음으로 전한 권면의 말이라도 상대방에게는 상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생 얻은 자는 칭찬의 말을 아끼지 않는다. 칭찬의 말이 혀를 주장하는 사람은 곧 온유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증거이다.

우리들이 온유할 수밖에 없을 때 온유한 자를 이끄시는 하나님의 개입은 시작된다. 그래서 우리들은 온유해야 한다. 때로는 사고방식이 전혀 다른 상대방을 만나기도 하고 오만방자한 편견을 가진 사람도 만날 수 있다. 그러나 기꺼이 상대방과 동행할 수 있는 넉넉함은, 깨진 유리조각 같은 우리들을 피 흘려 받아주신 그리스도 예수의 사랑을 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실눈이 나부끼더니 이내 함박눈이 되었다. 올해 들어 겨울 흥취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함박눈이다. 언제였던가, 환희의 기쁨으로 마음껏 웃어본 기억.

힘들지? 네 수고를 안다. 함박눈으로 뒤덮인 하늘에, 하나님의 미소가 선명하다. 눈물이 흐른다.

네가 웃고 싶은 웃음을 찾지 말고, 너로 인하여 웃을 수 있는 사람을 만나면, 네가 온유한 사람이라 일깨우신다.

/하민국 목사( 인천 검암 새로운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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