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결대학교 배본철 교수
▲배본철 교수(성결대학교 역사신학/성령운동연구가/성령의 삶 코스 대표)
교회사 속의 어느 시대이든 간에, 교회의 영적 활력이 경직되거나 또는 심하게 세속화 될 때마다 제 2, 제 3의 몬타니즘 성향의 운동이 생겨날 소지가 얼마든지 있었다는 점을 본다. 필자는 이런 성향의 운동이 본질적으로 교회의 갱신을 추구하는 성격을 지닌다는 점을 인정한다. 그러나 그 정도에 있어서 볼 때 권고의 한계수위를 초과한 '극단적 갱신주의'라고 평하게 될 수 있다면, 존 맥아더(John F. MacArthur)는 다음과 같이 이러한 운동을 '네오-몬타니즘'이라고 부르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맥아더는 교부 터툴리안(Tertullian)이 몬타니즘으로 들어가고 난 후에 예언과 환상을 말하는 여인들과 교제한 내용을 소개하면서, 그 성격은 매우 분파주의 성향이 짙은 오늘날의 은사주의적 예배와 비슷하다고 보았다. 그는 이어서 확언하기를, "현대의 은사주의적 운동은 많은 점에서 볼 때 몬타니즘의 영적 후예이다. 사실상, 오늘날의 은사주의적 운동을 네오-몬타니즘이라고 부르는 것은 부적절하지 않다고 본다."(Charismatic Chaos, 88)고 하였다.

그러면 네오-몬타니즘의 성향의 운동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특성을 지니고 있는가? 드류(Drew) 대학교의 오토 마두로(Otto Maduro) 교수는 현대 네오-몬타니즘의 시작을 1830년대의 에드워드 어빙(Edward Irving)의 활동에서부터 찾는다. 마두로가 어빙을 전형적인 신몬타누스주의자(Neo-Montanist)로서 보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예언을 포함한 성령의 은사들의 회복 -그의 신념을 주장함에 있어서 공인된 교회의 권위에 순복하지 않음 -여성들에게 나타난 예언 활동이 그의 사역의 시작이었음 -강한 종말론적 경향성 속에 임박한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신념 등.

이어서 그는 어빙 이후 네오-몬타니즘 성향의 정도가 보다 더 심각했던 예로서 몰몬교의 창시자인 조셉 스미스(Joseph Smith), 안식교의 창시자인 엘렌 화이트(Ellen G. White), 사중복음교회의 창시자이자 치유사역자인 에이미 맥퍼슨(Aimee Semple McPherson), 그리고 은사적 치유사역자로 유명한 캐더린 쿨만(Kathryn Kuhlman) 등을 들었다. 이 네 인물의 경우에 네오-몬타니즘과 관련된 공통적 특징으로는 그들의 사역 초기부터 예언을 포함한 성령의 은사들의 회복을 강조했다는 것이라고 그는 보았다.

마두로는 특히 늦은 비(Latter Rain) 운동에 대해서도 네오-몬타니즘의 전형을 보인다고 경계하였다. 그는 늦은 비 운동에 나타난 네오-몬타니즘 성향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지적하였다; -사도와 선지자 직이 교회의 머리로 회복될 뿐 아니라 목사, 교사 그리고 전도자들의 기능이 그들 앞에 복종되어야 한다고 가르침 -초자연적 성령의 은사의 회복. 선지자의 입을 통해 하나님의 직접적인 말씀이 전달됨. -여성들이 교회 은사 사용에 있어서 동등한 권위를 가짐 -크리스천들에게서 귀신들을 추방함 -다윗의 장막을 재건하고 지속적인 예언적 찬양의 제단을 쌓음 -교회가 세상을 지배할 것에 대한 신념 -성도의 휴거로 인해 육체의 죽음을 겪지 않을 것에 대한 신념 -모든 교회들이 사도와 선지자들의 권위 앞에 순복할 것.

필자의 견지에 의하면 이 늦은 비 운동은 오늘날 한국교회 영성에 있어서 논제가 되고 있는 신사도개혁운동(New Apostolic Reformation)과도 역사적으로 연관성이 높기 때문에 특히 우리의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본다. 필자 역시 마두로가 현대의 네오-몬타니즘 운동의 특성에 대해 평한 내용에 깊이 동조한다. 그의 평가를 종합해 보면 고대의 몬타니즘을 닮은 네오-몬타니즘의 내용은 예언이나 계시의 과도한 주장, 성령의 은사와 기사와 표적 등에 대한 강조, 강한 종말론적 경향 등으로 특징을 보인다.

다만 한 가지 분명히 해 둘 것이 있다. 그것은 네오-몬타니즘 성향의 정도를 가늠해야 할 필요성이 요청된다는 것이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네오-몬타니즘은 근본적으로 교회를 갱신시켜 보겠다는 동기가 주를 이룬다. 따라서 이러한 운동을 교회 중심적으로 작용시킬 수 있을 정도의 네오-몬타니즘 성향은 오히려 교회 갱신의 활력소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위험성은 네오-몬타니즘 성향의 유무(有無)가 문제가 아니라 그 정도에 따라 나타나는 것이다. 즉, 이 성향이 매우 극단적으로 짙어질 경우에는 비복음적이며 교회분파주의적인 방향으로 위험성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전반적인 교회사 속에서 몬타니즘적 성향의 한 조류가 지속적으로 흘러온 것을 관찰할 수 있다. 그렇다면 한국교회사 속에 이런 네오-몬타니즘 성향의 운동들이 그동안 어떻게 나타났으며 또 진행되고 있는가?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서 필자가 한국교회사에 나타난 영성운동 가운데서 네오-몬타니즘으로 분류하고자 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특징들이 나타나는 운동이다; -네오-몬타니즘의 영향을 받은 이들은 성경을 자기들의 편견에 맞추어 해석할 뿐 아니라, 심지어는 성경의 정신에서 벗어난 예언이나 계시를 말하기도 한다. -그들은 신유와 이적 등의 '성령의 나타남'을 성령의 열매나 성령의 인격적 통치의 교훈보다 더욱 강조한다. -그리고 자신들의 공동체의 우월성을 과신한 나머지, 분파주의적 교회론으로 빠져 들어갈 위험성이 많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사회성이나 상식적인 윤리 관념에서 벗어나 금욕주의나 극단적인 형태의 신비주의를 도입하게 될 수 있다. -그럴 때 그들은 임박한 종말론적 메시지를 강조하게 되는데, 심한 경우에는 시한부 종말론으로까지 발전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특징들은 현존하고 있는 일반 교회 내에서도 얼마든지 나타날 수 있다는 점에 더욱 진지한 고찰을 필요로 한다. 물론 그 나타나는 양상이나 정도에 있어서는 차이가 있으며, 따라서 네오-몬타니즘의 정도가 심각한 수준에 치닫지 않도록 늘 조정해야 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