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소망 안에서는 의인이나 실상은 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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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 500주년 지상 강좌] 루터의 95개 조항과 면죄부(끝)

2017년 종교개혁 500주년을 앞두고 본지 편집고문인 김재성 박사(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부총장)가 연재했던 <종교개혁 500주년 지상 강좌-루터의 95개 조항과 면죄부>는 이 글을 마지막으로 끝납니다. 다음주부터는 김 박사의 새로운 글을 연재할 예정입니다.

▲김재성 박사(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부총장)

▲김재성 박사(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부총장)

8. 참담한 고뇌와 해결

루터가 이처럼 담대하게 확신을 표명하게 된 것은 과연 어디에서 나온 것인가? 그는 오랫동안 성경을 읽고 강의하면서 고민했던 주제를 터득하게 된다. 한 해 전에 신부로 서품을 받은 후, 25세가 된 루터는 1508년에 비텐베르크 대학의 교수로 오게 되었다. 그의 스승 요한 스타우핏츠의 추천으로 1502년 새로 신설된 비텐베르크에 부임한 것이다. 그 후로 어거스틴과 초대 교부들의 글을 읽으면서도 주로 스콜라주의 신학을 가르쳤다. 루터는 죄와 더불어 사투하는 영적인 투쟁을 경험했다. 완전주의를 지향하는 수도원의 규칙을 준수하였지만,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심판을 무서워하는 경건한 염려가 마음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절망에 빠져 있었다. 의인으로서 받아들여질 수 있도록 하나님의 기준에 합당하게 살려면 얼마나 선행을 해야만 만족을 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던 것이다. 하나님의 의로우심에 대한 기준을 어떻게 충족시킬 수 있을 것인가? 어거스틴의 책에서 율법과 복음, 죄와 은총의 대립적인 구조를 이해하게 되었다. 1513년 시편을 강해하면서, 서서히 하나님의 뜻을 파악할 수 있었고, 서광이 비치기 시작했다.

언젠가 수도원의 탑 속에서 루터는 그동안의 의문이 풀렸다고 했다. 루터학자들마다 "탑 속의 체험"에 대해서 정확한 연대를 추정하기 어렵다고 말하고 있다. 죽기 1년전, 1545년 루터는 자신의 체험을 언급하였다. 로마서 주석 서문에서 루터는 바울 사도로부터 인간의 죄악이 얼마나 뿌리가 깊은 것인가를 배웠고, 하나님의 사죄하는 은총이 얼마나 광대하시다는 것을 터득했다. 즉 로마서 1장 17절은 로마서 3장 24절에 나오는 진단과 연계성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고 언급하였다. 의인이라는 선언은 믿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주어진다. 인간의 노력이나 선행으로 의로움을 채워간다는 것이 아니다. 의롭게 되어간다는 해석에서 문제가 발생한 것이라고 간파해낸 것이다. 의인이라는 것은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법정적인 선언이다. 이 본문의 의미를 깨달은 후에, 즉각적으로 루터는 천국과 구원에의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서구 유럽은 기독교 국가로 살아왔지만, 로마 가톨릭 교회가 가르쳐준 진리체계는 하나님과의 인격적 교제를 생생하게 전달하지 못하였다. 루터가 성경에 집중하여 민감하게 하나님과의 관계를 연구하게 되면서 깨우친 가르침들은 오랫동안 혼란과 혼돈에 처해있던 성도들을 깨워주었다. 루터는 인간이 철저하게 하나님의 은총을 필요로 한다는 점을 중심에 두었다. 아담의 타락 이후로, 모든 인간의 근본적인 조건이 죄악으로 물들었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은 인간의 오염된 부패에 대해서 잘 설명했다. 하나님께 요구하신 계명들을 거역하는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반역만이 아니라, 육체적인 영역까지를 포함하는 전인격적인 상태에 포괄적으로 영향을 끼쳤다. 죄의 영향력은 육체가 반응하는 즉흥적인 생각들만이 아니라, 영적인 것들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을 외면하고, 멀리 떠나려는 인간의 불신앙이 사람의 전인격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사람은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존하면서 살아가려고 하지 않는다. 하나님을 공경하여 그가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지 않으면, 육체적으로 살아갈 수 밖에 없다.

성령이 임하셔서 복음으로 사람을 불러주시고, 은사를 내려 주시며, 믿음을 장착시켜 주신다. 인간은 자기 자신의 자유의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없으며, 하나님께 나올 수 없다. 오직 성령의 인도하심에 의존할 뿐이다. 믿음의 사람은 영적인 영역에서 자유함을 회복하지만, 자연적인 사람은 세속적인 일들을 결정하는 자유가 있을 뿐이다.

루터가 강조했던 하나님에 대한 가르침을 살펴보자. 루터는 항상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대한 성경적인 개념을 강조하였다. 오랫동안 진노의 하나님에 대해서 싫어할 정도였다고 고백한 바 있다. 물론,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를 그가 만드신 만물에 드러내셨다. 하나님께서는 특별하게 성경 속에다가 자신의 계시를 내리셨다. 때로는 보다 특수하게 개인별로 말씀을 하셨다. 하나님의 은총은 결코 종결되지도 않았고, 정의의 기준을 세워나가면서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 율법은 그리스도를 향한 초보적인 교사였다. 율법은 폐하여지지 않았고, 하나님의 심판으로 나타났다. 그 때마다 인간이 회개하고 자신을 낮추어서 겸비해야만 했다. 은총은 인간에게 영적인 능력을 내려주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특별한 행동으로 인간을 용서하시고 인간과 화해하시는 행위이다. 구원은 사람의 행위와는 관련이 없고, 전적으로 하나님의 선물이다.

▲루터의 후계자 암르도르프가 안수를 받고 최초의 개신교 목사가 된 자이츠(Zeitz). 이 도시에 정착한 루터의 손자, 요한 에른스트 루터가 마르타와 이곳에서 결혼식을 올렸고,  8명의 자녀를 낳았다. 그 후손들이 지금까지 이 도시에 살고 있다.

▲루터의 후계자 암르도르프가 안수를 받고 최초의 개신교 목사가 된 자이츠(Zeitz). 이 도시에 정착한 루터의 손자, 요한 에른스트 루터가 마르타와 이곳에서 결혼식을 올렸고, 8명의 자녀를 낳았다. 그 후손들이 지금까지 이 도시에 살고 있다.

루터는 "사람이 동시에 죄인이며 동시에 의인이다"(simul justus et peccator)라는 매우 유명한 말을 남겼다.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서 죄를 용서받았으므로 하나님이 보시는 눈으로는 의인이다. 하지만 세상 위에서 자신의 눈으로나 이웃 사람의 눈으로 보기에는 부분적으로나마 죄인으로 보인다. 의인으로 인정받은 것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신뢰하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소망 안에서는 의인이요, 실상은 죄인이다.

로마 가톨릭의 선행주의와 공로사상을 거부하기 위해서, 루터는 유난히 믿음을 강조했다. 믿음은 그저 단순한 신념이 아니다. 믿음은 개인의 인격적인 고백이다. 성경에 나오는 기록들이 일반적으로 사실이라고 받아들인 역사적 믿음으로도 부족하다. 교회가 가르쳐주는 기준에 따라서 받아들이는 교리적 순종이라고 착각해서도 안된다. 믿음은 마음의 생명을 유지하고는 요소라서 사람의 변혁과 거룩한 생활의 성장을 끊임없이 요구한다.

신학자들이 루터의 파라독스(역설)라고 부르는 것이 많이 있는데, 예수님의 본성과 사역에서 강조한 바 있다. 영광의 왕되신 예수님께서 마리아의 몸을 통해서 낮은 곳에서 태어나셨고, 사람들에게 버림당하고, 가난하게 살다가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그리스도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어떻게 다루고 계신가를 보여주신 분이다. 죽음에 내어주셨지만, 부활하사 승천하게 하셨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루터의 신학에서 일관되게 중심 주제였다.  

맺는 말

종교개혁은 루터가 계획한 것도 아니요, 그가 혼자서 성취한 것도 아니다. 루터 자신도 놀랄 정도로 유럽사회는 약간의 몸부림에 호응했고, 열렬하게 종교개혁을 받아들였다. 수많은 걸출한 학자들과 성도들이 이뤄낸 변혁의 물결 속에서 루터의 고뇌에 찬 논쟁들과 토론들은 상상할 수 없이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하게 되었던 것이다.

루터는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과 죽으심으로 치러진 죄값에 대해 감격했다. 그래서 로마 가톨릭이 세워온 영광의 신학을 떠나서, 십자가의 신학, 고난의 신학을 강조했다. 헛된 인간의 오만함을 버리고, 죄인의 자리에 내려주시는 하나님의 은총을 강조했다. 루터는 완성된 신학체계를 남긴 것은 아니지만,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핵심으로 하여 마치 아름다운 장미꽃처럼 수많은 파편들을 남겼다. 그는 450개의 신학논문, 3천편의 설교, 2,580통의 편지를 남겼다. 이를 책으로 모아서 110권, 모두 6만 쪽으로 출판되었다. 

종교개혁과 같은 대변혁은 아닐지라도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이나, 특히 한국 교회에도 역시 확실한 변화가 요청되고 있다. 정치적으로 볼 때에,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는 태평하고 평화로운 시대일까? 아마도 그 어느 시대를 살았던 사람이라도 자신이 지금 살아가고 있는 세대가 가장 평화롭고 좋은 시절이라고 받아들인 사람은 없는 것 같다. 역사는 흘러가고, 사람은 지나가면서 이 세상의 전통과 관습이 형성되고 문화와 학문이 바뀌어왔다. 그저 목적없이 흘러가는 것은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적 간섭에 따라서 흘러가고 있지만, 사람들의 인식으로는 역사의 목표지점을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 인생은 그 날을 가늠하지 못한다. 그저 날마다 노력하는 것뿐이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이 기준이 되어야만, 관행처럼 치러지는 행사들이 아니라, 복음의 역동성이 우리들의 생애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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