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결대학교 배본철 교수
▲배본철 교수(성결대학교 역사신학/성령운동연구가)
네오-몬타니즘에 대해 구체적으로 논하기에 앞서, 먼저 네오-몬타니즘의 교회사적 전형이라고도 할 수 있는 고대교회 몬타니즘(Montanism)에 대한 일반적인 신학적 평가를 살펴보아야 하겠다. 주후 2세기에 몬타누스(Montanus)를 창시자로 하고 있는 몬타니즘의 영성운동이 급속히 퍼져 정통적인 교회들이 그 세력에 위협을 느끼게 되었다. 왜냐하면 몬타누스주의자들은 자기들 집단의 독선의식이 매우 강했을 뿐 아니라, 자신들의 신념이 정통적인 기독교 신앙을 대표한다고 주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 예로 몬타누스주의자들은 자기들의 신념에 합치하는 내용들만을 엮어서 성경의 정경화 작업을 하려고까지 했던 것이다. 그래서 주후 160년 이후로 교회는 수차례의 회의를 열어 몬타니즘을 정죄하고, 마침내 200년에는 그들을 이단으로 축출하였다.  

사실 몬타니즘의 주창자 몬타누스가 당시 제 2세기의 교회가 세속화의 길을 가고 있는 것을 우려하였던 점은 맞다. 그래서 그는 성령의 직접적 인도를 강조함을 통해 교회를 갱신시키길 원했던 것이다. 그러나 단언적으로 볼 때, 몬타니즘에 대한 일반적인 교회사 해석의 시선은 곱지 않다고 말할 수 있다. 그 이유는 몬타니즘이 결과적으로 여러 가지 신학적 오류 내지는 신념의 극단성을 보여 주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오류와 극단성은 몬타니즘 발생 이후 현재까지 이단적 영성운동의 성격을 지목함에 있어서 하나의 대표적인 전형으로 소개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적어도 다음과 같은 몇 가지는 몬타니즘이 크게 지적 받아온 문제점들이다.

첫째, 그들은 성령론에 있어서 매우 위험한 신학적 오류를 범하였다. 몬타니즘의 추종자들은 자기들이 성령의 직접적인 영향 하에 있기 때문에 바로 지금 여기에서 종말론적 실재성을 경험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들은 요한서신에 나타난 성령의 내주와 보혜사 성령의 인격적 인도하심에 대한 내용을 극단화하여, 마침내 성령 강림의 체험적 현상을 중시하고 새로운 예언이 신자들에게 주어진다고 주장하였다. 물론 몬타니즘 당시에는 아직 신약성경의 정경화 작업이 시작되기 전이었다는 점을 고려할지라도, 그들의 성령론은 그 이후 오늘날까지 잘못된 영성운동에 나타나는 오류들의 가장 대표적 전형으로 손꼽힌다.

둘째, 그들에게는 구원론적 극단성이 보였다. 임박했다고 여겨지는 종말에 대한 대비로서, 그들은 단식(斷食)을 즐겨 하고 육식(肉食)을 금지하며 독신생활을 하는 등 일종의 금욕주의를 신앙생활 속에서 엄격히 실천하고자 했다. 이러한 행위는 집단적 신비주의를 고조시키던 여러 사교(邪敎) 집단에서도 종종 보아온 사례로서, 복음적 구원론의 내용을 희석시키고 행위와 공적 중심의 구원론으로 끌고 가는 해악된 신념이 아닐 수 없다.

셋째, 그들은 교회론적 탈선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그들이 보여준 과도한 갱신주의는 결국 영적으로 그리고 도덕적으로 정결한 자들만으로 교회를 구성하고자 하는 도나티즘(Donatism)의 시도와 맞닿는 것이었다. 도나투스파는 주장하기를, 배교자가 안수하여 임명한 성직자는 무자격자이며, 따라서 그는 성례전을 집행할 권리를 상실했다. 뿐만 아니라 그를 인정하고 사귀는 모든 교회는 죄에 감염된 교회로서 이미 교회가 아니라고 주장하며, 도나투스파 교회만이 성별된 참 교회라고 주장했다. 몬타니즘은 그들의 오류를 통해 교회의 갱신을 추구함에 있어서 교회의 통일성을 깨뜨려서는 안 된다는 중요한 교훈을 교회사에 남겨 주었다.   

넷째, 그들은 예수의 재림이 매우 급박하게 임할 것이라고 전파하였으며, 안타깝게도 극단적인 시한부(時限附) 종말론으로 발전해 나갔다. 사실 예수 재림의 급박성에 대한 신념은 몬타니즘 뿐 아니라 이미 대부분의 신약 저자들과 당시의 신자들 속에도 보편적이었다. 몬타니즘을 따르는 자들도 역시 그러한 신념에 충실했다. 그러나 종말의 급박성을 좀 더 사실화 하는 데 있어서 그들은 직접적으로 주어지는 개인적인 예언이나 계시의 역할을 중시해야 한다고 보았다. 바로 이 점이 교회사의 여러 시기 속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종말론적 이단들이 지닌 오해의 출발점이었던 것이다.  

물론 몬타니즘에 대한 해석이 언제나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학자들 가운데는 초기 기독교 공동체가 환상과 계시, 영감 받은 말, 이적 등 성령의 영감에 의한 초자연적 경험을 기반으로 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몬타니즘의 전형을 이미 보여준 것이라고 보는 이들도 있다. 그래서 초대교회는 직접적인 성령체험이야말로 진정한 신앙의 증표라고 생각했으며, 이 점에 있어서 몬타니즘은 초대교회 공동체의 전통 속에서 자신의 원형을 발견하려 했으며 또 그런 전통을 계승하려 했다는 점에서 제 2세기의 종교개혁운동으로 볼 수 있다고 평하는 시각이다.
 
우리는 몬타니즘이 지닌 시대적 제한성과 신학적 미숙성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런가 하면 몬타니즘의 발생과 확장에 대처하기 위하여 당시 주류 교회에서 성경의 정경화 작업을 서두르고, 교회의 일반적 신념을 공고히 하고, 또 교회의 제도를 강화하는 등의 반동 작업에 힘쓰게 되었다는 점도 안다. 이런 노력의 일환이 오히려 교회 발전에 기여한 긍정적인 면이 많이 때문에, 교회사적 해석에 있어서 몬타니즘은 이러한 성과를 향한 하나의 발판을 제시한 의미가 있다고 평가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역사적 교훈은 사실 단 한 번만으로도 충분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