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신학포럼 고경태
▲고경태 박사.
세계 기독교의 신비는 피선교국인 한국교회가 기독교의 핵심적 자산들을 강력하게 보존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 유럽과 미국을 비롯한 북미 지역, 그리고 필리핀을 위시한 아시아 주요 국가에서의 기독교는 거의 원형을 잃어버리고 변질되어 버렸다.

그런데 한국교회는 피선교국가임에도 초대교회로부터 전승되고 유지된 기독교의 핵심적 가치들을 여전히 보유하고 있고, 외형적 성장에 있어서도 단연 세계에서 으뜸이다. 그리고 매우 보수적인 특징을 갖고 있다. 여기엔 미국 근본주의 신앙의 자태와 네덜란드 개혁파 신학 자산을 전수받고 칼빈주의, 즉 개혁주의를 한국교회에 이식한 박형룡 박사의 공로가 매우 크다 할 수 있다.

그런데 근자의 한국교회 사정은 완전히 다른 양상이다. 한국교회가 흔들리고 있다. 많은 이탈과 변질, 오염과 부패로 세상의 비판을 혹독하게 받는 처지가 되어 버렸다. 그런 점에서 종교개혁 500주년을 앞둔 한국교회의 문제들을 거론하고 진단하는 것은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닐 것이다.

무엇보다 이 시점에서 한국교회에게 종교개혁의 정신은 무엇이며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인가를 살펴보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고 여긴다. 알다시피 한국교회는 칼빈파와 루터파에 대한 구별을 확실하게 하고 있지 않지만, 실상 한국교회의 주류인 장로교회들은 칼빈주의의 후예로서 그 전통과 가치들을 보존하고 계승해 왔다. 그런 점에서 한국 장로교 신자들은 1517년 독일의 종교개혁을 보아야 할 것이다.

2017년 한국교회는 중대한 기로에 섰다. 특히 종교개혁의 핵심인 '이신칭의' 교리에 대한 공격이 사방에서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공격의 시작은 아이러니하게도 루터의 후손인 루터파로부터 일어났다.

루터교회는 1999년 10월 31일자로(구교와 루터교회의 의화교리 공동선언) 이신칭의 교리를 포기했다. 그리고 2006년 7월 23일(주일) 한국에서 개최된 세계감리교대회(구교와 감리교의 의화교리 공동선언)는 구교와 화해 선언을 했다. 이것은 다른 말로 개신교의 한 부류인 루터교회와 감리교회가 종교개혁의 기치인 이신칭의 교리를 버렸다는 의미가 된다.

이제 이신칭의 교리를 지키는 세력은 한국 장로교회만 남았다. 그런데 장로교 안에서도 이상 기류가 감지된다. 통합 교단은 김재준 제명 파면 철회를 총회에서 결정한 뒤, 기장과 화해의 포옹을 했다. 기장은 감리교 이상으로 자유주의 신학을 전개하는 곳이다. 그들이 중심이 되어 2013년 10월 제 13차 WCC 부산총회를 개최했고 이때 천주교가 포함된 신앙과직제위원회를 구성하여 하나의 교리를 만들기 위해 지금도 여전히 활동하고 있다. 한국 장로교 한쪽이 구교(천주교)와 화해 수준에 있는 것이다.

이 화해의 중심에 개신교 이신칭의 교리의 포기가 전제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작년에는 정통 개혁주의 문파의 하나로 역사적 위치를 가졌던 대신 교단이 백석 교단과 신학 토론 하나 없이 바로 연합하여 충격을 던져줬다. 또 가장 보수적인 교단으로 알려진 예장 고신 교단은 이신칭의를 재검증하는 포럼을 개최한다고 한다.

한국교회 안에 2017년 종교개혁 500주년을 앞에 두고 성대한 프로그램들이 준비되고 있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들을 단순하게 나눈다면 이신칭의를 위한 축제와 이신칭의 포기를 위한 축제로 나누어질 것이다. 과연 어떤 축제가 더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는 축제가 될까?

만약 이신칭의에 대한 의구심을 증폭시키는 행사들이 한국교회 안에서 일어나고 그것이 대세로 자리 잡는다면, 모든 종교개혁의 가치와 의미는 사라져야 할 것이다. 한 마디로 개신교회를 설립하겠다고 길을 나섰던 모든 종교개혁의 선구자들과 그 후손들은 백기를 들고 가톨릭교회로 투항하는 일이 될 것이다.

세계 교회에서 한국교회는 중대한 위치를 갖고 있다. 성경 무오성과 계시 의존적 신학과 그리스도 4대 교리(동정녀 탄생, 대속 죽음, 육체 부활, 재림)를 주장하는 가장 보수적인 프린스턴 전통의 신학이 아직까지는 견고하게 세워져 있다. 이로 인해 한국교회안에 이신칭의의 교리는 상대적으로 덜 강조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근본주의 교리와 이신칭의 교리를 잘 구분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한국교회는 심각한 침제에 빠지고 있다.

새로운 대안이 필요하다. 제2의 종교개혁을 외쳐야 한다. 그 시발점은 아이러니하게도 '이신칭의에 대한 확고한 재정립'이다. 무분별한 신학, 세속화, 기복종교, 신비주의 추구 등에 대해선 비판하지 않으면서, 이상하리만치 이신칭의를 제거하는 일에는 모든 교회가 동의한다.

과연 이신칭의 교리가 건재할 수 있겠는가? 한국교회가 이신칭의를 포기하면 세계 교회에서 이신칭의 교리는 제거될 것이다. 보편 교리(삼위일체 교리와 그리스도 양성 교리)는 믿지 않고 고백하지 않지만, 문장을 제거할 수 없다.

그러나 이신칭의 교리는 루터의 선언으로 확립한 것이기 때문에 바로 사라질 것이다. '칭의'라는 단어 자체가 사라질 것이다. 어떻게 신자가 되는지 구분하지 못한다. 예수 그리스도가 없고, 성경도 없는 교회만 남게 된다.

1517년 종교개혁 선언은 대한민국에서의 어떤 역사적·문화적 연관성이 없다. 다만 이신칭의 교리를 지켜야 할 교회와 이신칭의 교리를 제거해야 할 교회에서만 관심 사안이다.

2017년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할 한국교회는 이신칭의 교리에 대해 정확한 자세를 선언해야 한다. 단순한 기념식만 한다면, 결국 이신칭의 교리를 포기하는 것이다. 한국 장로교회가 세계 교회를 함몰시킨 세속화의 큰 파고에 맞설 수 있는 견실한 이신칭의 신학 구조를 갖기를 기대한다.

/고경태 박사(개혁신학포럼 학술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