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종택
▲천종택 목사(대구로고스장로교회 담임)
야고보서 1:1~5

야고보 사도는 말씀을 시작하면서 1절의 "축복(blessing)이 있으라." 는 문안인사에 이어 곧 2절에서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고 말한다. 여러 나라에 흩어져 있는 유대인 특히 크리스천 유대인의 박해와 고통을 잘 알고 있는 야고보사도의 그 박해와 고통을 기뻐하라는 가르침 속에는 기독교 본연의 깊은 철학과 교리가 있다. 먼저 종교의 발달을 살펴보면서 묵상하자.

인류학적으로 보면, 원시종교(primitive religion)의 믿음에는 저항할 수 없는 힘인 신에게 무조건 바치고 빌어서 신의 재앙을 피하고 보호받기 위한 '축복신앙'적 종교행위의 오로지 신을 위한 희생만 있었다. 그 후 신의 명령을 지키는 율법종교의 믿음이 생겨서 구약의 유대교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이 율법의 명령을 준수함으로써 신의 보호와 축복을 받았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복음으로 율법을 완성하러 왔다고 선언하시며 진정한 축복인 영생을 주는 새로운 차원의 '복음의 믿음'을 주셨다. 그렇다면 율법이 완성되는 복음의 믿음으로 영생을 얻게 하는 새로운 차원의 믿음 무엇인가? 바울이 복음의 믿음을 히 11:1에서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being sure-NIV, the substance-KJV)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certain-NIV, the evidence-KJV)니"라고 정의하여 그 답을 준다. 이 말을 풀이하면 '믿음은 우리가 바라고 소망하는 것들의 본질을 깨닫는 것이고 보지 못하는 실상을 확신하는 것'이라는 의미가 된다. 그렇다면 바라고 보지 못하는 것을 어떻게 깨달아 확신하며 증거를 얻을까? 바울의 믿음의 정의자체가 보이지 않는 영적인 일들을 실제적으로 실감함으로써 그 실상을 영적으로 깨닫게 되어 바라는 것의 증거(the evidence)를 얻는다는 진리를 가르치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방법을 최고로 잘 현실화시켜주는 길이 바로 시험(trial)과 유혹(temptation)으로 오는 믿음의 시험인 것을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는 세례 후 곧 바로 시험 받는 것이 보여준다. 이러한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겨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여 야고보 사도는 본문 3절에서 "믿음의 시련이 인내(perseverance, 불굴의 노력, 견인)를 만들어 내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추가하여 4절에서는 "인내를 온전히 이루어 온전하고(mature) 구비하여(complete)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lacking anything) 하기 위함이라"고 하였다. 야고보 사도의 이 가르침에 대한 더 깊은 이해의 실마리를 바울 사도는 로마서에서 제공한다. 그는 롬 5:3에서 "우리가 환난 중에서 즐거워하나니."라고 한 후 4절에서 그 이유로 "환난(tribulation)은 인내(perseverance)를, 인내는 연단(character)을, 연단은 소망(hope)을 이루는(produce) 줄을 앎이로다." 고 하였다. 그러므로 야고보사도와 바울 사도의 말씀은 상호 증거 하여 시련과 환난은 인내를 통한 실천의 경험으로 그 인격을 구원에 부족함 없이 구비하게 하고 온전하게 하여 이로서 결국 소망을 이루는 줄을 알기 때문에 고난과 환난의 시험을 기뻐하여야 한다는 가르침을 확고히 한다. 여기서 말하는 시험은 궁극적으로 영적 믿음의 시험이나 인격의 test를 말한다. 물질과 육체의 시련으로 일단 시작되는 영적 믿음의 시험에서 유혹으로 빠질 위험은 '지식'과 '지혜'의 부족에서 오기 때문에 야고보 사도는  5절에서 이 지혜를 지혜 없는 것에 책임을 묻지 않고 주시는 하나님께 구하라고 가르친다. 또한 바울사도는 골 1:9에서 영적인 지혜와 이해가 있는 말씀의 지식으로 골로새 교인들이 채워지기를 쉬지 않고 간구한다고 하였다. 이러한 기도를 쉬지 않는 바울 사도는 구원을 이루는 길로 시험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를 향하여 살전 5:16-18에서"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는 말씀을 준다. 하나님의 뜻에 따른 기쁨과 기도와 감사로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에 이르기를 기도하는 바울의 가르침과 자세(골1:11)는 우리의 기도 내용이 무엇이어야 하는가를 깨닫게 한다. 그러한 마땅한 기도를 요구하는 하나님의 뜻을 예수님은 마 6:33에서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는 말씀으로 준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에서 고난의 교리에 대한 더 근본적인 이해를 하도록 하자. 왜 하나님은 우리에게 시련이 소망이 되도록 요구하셨을까. 다시 말하면 왜 우리에게 그러한 시련의 아픔을 통하여 기쁨을 주는 섭리의 원칙을 세웠을까. 우리는 시련으로 구속을 얻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얻는다. 그렇다면 시련은 결국 그러한 믿음에 영향과 변화를 주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시련이 믿음에 어떤 영향을 줄까? 시련은 인내를 낳고 인내는 인격을 낳고 그러한 인격으로 소망을 낳는다는 의미는 그러한 믿음의 시련을 통한 인격으로 소망을 가진 믿음에 이르게 된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소망을 가진 믿음은 성숙되고 다 갖추어 구원을 이루기에 부족함이 없는 믿음이다. 우리는 시련을 통하여 예수님이 명하신 반석위에 집을 짓는(마 7:24) 구원의 믿음을 이룰 수 있다. 즉 마 10:38에서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쫓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라."고 말씀하시며 복음을 주신 예수님은 믿음의 시련이 인내와 인격과 소망으로 연결되어 구원을 이루는 믿음으로 성장하기를 요구하고 계신다는 진리를 두 사도는 동일하게 가르친다. 예수님이 요구하시는 복음의 믿음에서는 율법의 의식적인 형식이 아닌 영적인 일들의 실제화가 초점이다. 그리고 이 실제화는 말씀과 그 말씀이 뜻하는 진리를 인내가 요구되는 역경과 시험 속에서 실천하며 살아가는 믿음에서 온다. 복음이 요구하는 믿음의 실상을 깨달아 고난을 통한 믿음의 시험을 온전히 이길 수 있는 지혜를 하나님께 구하여 고난의 교리를 깨닫고 구원을 이루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