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민국 칼럼] 사랑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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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흉한 세상 기운 사이로 풋풋한 정감을 느끼게 하는, 가을 깊어가는 소리가 하늘을 우러르게 한다. 하늘은 높고 푸르다. 세상 만사에 찌든 땟물을 씻기는 듯 바람 한결이 청량하다.

가을이다. 모처럼 일상을 뒤로 하고 도심을 벗어나니 황금색 벼이삭이 결실의 때를 알린다. 잠시 논둑길을 걸어본다. 정강이를 스치는 풀잎들이 반가움으로 다가선다. 개구리 한 마리가 맑은 눈을 멀뚱거린다. 참새를 쫒던 허수아비가 옷을 벗은 채 벌러덩 논둑에서 단잠을 잔다. 추수를 끝내고 옹기종기 모여앉자, 나누던 사랑방 정담이 두런두런 들리는 듯하다.

후후 미소를 안고 오색 물감으로 덧칠을 하고 있는 산자락을 오르려니 숨이 차오른다. 잠시 주저앉자 숨고르기를 하는 숲 사이로 햇살과 미풍이 교대로 파고든다. 소나무는 여전히 푸르건만, 목회자들의 단체인 노회, 총회, 연합회들은 무엇 때문에 갈등과 대립을 거듭하고 있을까. 목회자들의 모임이 시골마을 사랑방처럼 정겨운 만남이면 얼마나 아름다운 동행이랴.

목회자 단체들의 사분오열이 씁쓸한 아우성으로 다가온다. 단체장이 뭔 벼슬이라고 파벌을 짓고, 제 사람이 단체장 되면 국사발이라도 얻어먹을 속셈으로 몰려다니니, 서로 부딪치고 다툴 수 밖에 없지 않겠는가. 그러니 임원을 최소화하고, 단체장은 원하는 사람들 중에서 제비뽑기를 하면 될 일이다.

내일은 사랑방 모임이다. 대둔산 산행과 금산 일원을 관광한다. 총회 분열을 경험한 목회자들이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시작한 노회의 모임을 가을여행으로 정한 날이다.

사랑방은 기존 노회의 형식을 과감하게 탈피하고, 친목 도모에 모티브를 둔 새로운 형태의 노회이다. 매월 모임을 갖지만, 다툴 일이 전혀 없다. 회의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회원들의 애경사를 알리고, 다음 모임 일시와 장소를 결정하고, 중요한 안건은 즉석에서 거수 다수결로 결정하면 그만이다. 회의는 30분이면 충분하다. 대립과 갈등이 파고들 여지가 없다. 정담을 나누다 보면 헤어짐이 아쉽고, 다음 모임이 성급히 기다려진다.

사랑방은, 임원 또한 회장과 회계가 전부다. 임원 선출을 제비뽑기로 하기 때문에, 오해와 파벌의 소지가 전혀 없다. 더구나 최소한의 회비로 유지되기 때문에, 회장과 회계는 자비를 출연하고 기꺼이 헌신을 감수해야 한다. 가을날 같이 정겨운 모임이 될 수밖에 없다.

내친 걸음인데 정상까지 오르고자 몸을 일으킨다. 높지 않은 야산이지만 정상에 오르니 하늘은 더욱 청명하고, 곱디 고운 바람은 비단결처럼 매끄러운 살결을 자랑한다. 중천에 뜬 해마저 포근하다. 정상은 작은 운동장이다. 각종 운동 기구들이 설치되어 있다.

이것 저것 운동기구들을 번갈아 가며 해 본다. 한바탕 진땀을 흘리고 나니 한결 몸이 가볍고 개운하다. 벤치에 앉자, 내일 만날 사랑방 노회 목회자들이 다가온다. 미자립교회 목사, 홀로 된 목사, 장애가 심한 목사, 질병을 앓고 있는 목사까지..., 그들의 고군분투를 생각하면 언제나 가슴이 쓰리다.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는 현실은 언제나 안타까움 너머 서러운 비애를 삼키게 한다.

"이거 한쪽 드세요." 갈증을 느끼던 터, 아주머니 일행이 과일 한쪽을 건넨다. 세상에서 맛본 과실 중 가장 맛있는 과일이다. "도시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공기가 다르네요. 하나님을 믿지 않고는 두려운 죽음의 길을 어떻게 갈 수 있겠습니까? 열심히 운동해서 백세 살아야지요." "꺄르르."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생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두런두런 세상 사는 이야기와 그리스도 예수의 복음으로 산 정상에 사랑방이 열렸다.

/하민국 목사(검암 새로운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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