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평우 목사(로마한인교회).
▲한평우 목사(로마한인교회).
며칠 전 일간지에 미국의 루게릭 말기 환자가 안락사를 택했다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41세 된 여류 화가인데, 의사로부터 6개월 정도의 시한부 판정을 받았다고 합니다. 이미 병은 많이 진행되어 스스로 움직일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녀는 지난 달 가까운 친구와 친척들을 초청하여 마지막 즐거운(?) 파티를 즐긴 후, 의사와 친척, 그리고 친구들이 보는 상황에서 약물을 투여받고 조용히 생을 마감하였다고 합니다.  

어쩌면 조금은 낭만스런 죽음으로 이해할 수도 있겠다 싶어집니다. 그러나 죽음이란 누구에게나 엄격한 것입니다. 길게 살다 가든, 짧게 살다 가든 인생은 죽는 순간 주님 앞에 서야 하기 때문입니다.

고로 만일 그가 그리스도인이었더라면 좀 다른 결단을 했겠다 싶어집니다. 아무리 찬란한 삶을 살았다 해도 그 부분이 잘못되면 그는 실패한 인생이기 때문입니다.  

미래가 준비되지 않는 자의 죽음, 그것은 영적으로 볼 때 비참하게 됩니다. 아무리 세상 사람들이 우러러보는 성공자라해도 말입니다.

기사를 읽으며 오래 전 가족과 함께 휴가를 떠났던 기억이 새로웠습니다. 구라파는 여름 바캉스를 삶의 중요한 부분으로 여기기 때문에, 벌써 햇살이 밝은 5월 만 되면 여기저기 휴가에 대한 기운을 느끼게 됩니다. 직장은 모처럼 보너스가 나옵니다. 고로 만나는 사람들마다 바캉스에 대한 인사로 바쁘게 되는 문화입니다.

로마 이야기
▲로마의 외국인 묘지에 묻힌 영국의 시인 존 키츠(John Keats, 1795-1821)의 묘지.
이런 유행에 편승하여 우리도 모처럼 휴가를 떠났습니다. 아이 둘을 데리고 자동차를 운전하여 북쪽으로 갔는데, 길은 만원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가는 날이 장날'이란 말이 있듯, 오랜만에 가족과 떠나는 날짜가 8월 15일이었습니다. 8월 15일은 가톨릭에서는 가장 큰 명절로 여기는 날임을 미처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단출한 우리 네 식구 머물 곳은 설마 있겠지'라는 막연한 기대를 가졌습니다. 미리 준비한 음식을 길가에서 먹은 후, 저렴한 숙박업소인 펜션을 찾아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길가에 펜션 간판은 많았고, 더구나 방 하나를 빌려주는 'ZIMMER FREI(빈방 있음)'라는 간판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웬걸, 찾아간 펜션이나 짐머들은 모두 만원이었습니다.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요? 마치 요셉이 아내의 해산할 장소를 찾아다녔으나 방 하나를 찾지 못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큰 방 하나만 있어도 들어가려 했지만 전혀 찾을 수 없었습니다. 아이들은 내 눈치만 보고 있고, 해는 석양에 지는데도 방은 도무지 없었습니다.

빈 방을 찾아다니며 크게 깨달았던 점이 있습니다. 해가 석양에 기울 때 쉴 곳이 준비되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를 말입니다. 하물며 생의 마지막 순간, 가쁜 숨을 들이 마시면서도 영혼이 돌아갈 곳이 준비된 사람은 그 얼마나 행복할까를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돌아갈 집이 마련되어 생의 마지막 순간을 평화롭게 맞이할 수 있는 사람은 진정 성공한 인생일 수 있습니다.
 
1980년 3월, 20세기의 최고의 지성인 프랑스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가 폐수종으로 파리의 부르세 병원에 입원했고, 온 세계는 그를 주목했습니다. 그는 실존주의 철학의 태두였고, 더구나 식자들이 그토록 받기를 열망하는 노벨문학상을  자신의 사상 때문에 거부한 자존심 강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그는 신을 부정하는 사람이었기에, 그의 죽음은 모든 사람들의 큰 관심거리였습니다. 그의 죽음은 보통 사람과는 전혀 다른 모습일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평소 죽음을 가볍게 여기는 에세이를 자주 신문에 기고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일찍이 이런 논리를 펴기도 했습니다. "나의 자유는 전체적이고 무한정이다. 이것은 죽음의 제약을 받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결코 이 제약과 만나지 않는다는 이야기이다. 서로 다른 길, 다른 차원에 놓여 져 있기 때문이다. 죽음은 결코 나의 기획들에 방해가 되지 않는다. 죽기 하루 전날까지 우리는 힘차게 자신의 인생을 산다(나는 죽을 자유는 없다, 출처-사르트르의 실존주의)."

그런데 그의 마지막 행동은 그를 지켜보던 수 많은 사람들에게 큰 실망을 안겨주었습니다. 이 시대 최고의 지성인으로 죽음에 대해 다른 면모를 보일 것이라고 기대했는데 그게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죽음의 순간이 차츰 차츰 다가오자 불안과 공포로 전전긍긍했습니다. 그를 간호하던 간호사와 의사를 수시로 불러대고 울부짖고 몸부림을 쳤습니다. 죽음에 저항해 보려고 말입니다. 보통 사람들과 전혀 차이가 없었습니다. 곁에서 그를 지켜보던 사람들은 민망했습니다.

그는 평소 죽음에 대해 초연한 태도를 취했고 죽음에 대한 자유를 힘주어 설파했는데, 그의 철학과 현실은 다르다는 사실을 행동으로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그의 사상과 철학은 죽음 앞에서 너무나 초라했습니다. 이런 상황을 지켜본 기자는 '왜 그는 그런 죽음을 맞이했을까?' 라는 기사를 썼습니다. 그의 마지막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이튿날 어느 크리스천 독자가 신문사로 장문의 편지를 보냈고, 그것이 신문에 게재되었습니다. 그 독자는 기자가 의아했던 부문에 대한 답을 이렇게 기술했습니다. "그는 돌아갈 집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는 지성인으로서 온갖 뉴스의 총아로 살았지만, 영혼을 위해서는 전혀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그런 그에게 어느 순간 죽음의 거대한 세력이 그를 삼키기 위해 입을 벌렸을 때, 그토록 따라가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치다가 눈도 감지 못하고 생을 마감한 것입니다.

그는 마지막 절규로 증언했습니다. "이제까지 내가 주장했던 실존주의는 잘못된 철학입니다. 신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라고 말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진정 돌아갈 영혼의 집을 준비했는지요?

/한평우 목사(로마한인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