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태 총장
2016년 8월 7일은 입추이다. 아직 덥지만, 절기상으로 이제부터 가을이 되는 것이다. 처서(8·23)까지 지나면 사실상 더위는 마감되는 것이다. 옛 어른들은 이때쯤 부채에다 "淸風甘來, 處暑退伏(서늘한 바람이 달콤하게 불어오고 처서에 이르니 더위도 물러간다)"라는 글귀를 써 넣기도 했다.

2016년 8월 9일(음력 7·7)일은 칠석날이다. 우리나라 조상들은 음력 날짜로 양수(陽數)인 홀수날이 겹칠 때를 길일(吉日)이라 하여, 그냥 넘기지 않고 그 날을 기리는 의식으로 민속놀이 한 마당을 즐기며 그 의미를 되새기곤 했다.

1월 1일은 새해로 특별했고, 3월 3일은 삼짇날로 제비들이 날아오고 본격적인 농번기가 시작되는 날이었다. 5월 5일은 단오절로 강릉 단오제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면서 유명해졌다. 그 다음이 7월 7일로 칠석날(七夕日)이다.

오늘날엔 칠월칠석은 삼월삼짇날과 함께 별 의미를 두지 않고 지내지만, 사실 농본사회에서는 농사일지와 관계가 깊었다. 요즘엔 민속놀이는 사라진 채, 오직 근처 절(寺)에 가서 개인별 기복 등을 아뢰며 불공이나 드리는 날이 되어 버렸다.

지금부터 50여년 전만 해도 농사일로 지친 농부들이 칠석 때 하루 휴가를 내어 피곤을 풀고, 동네마다 돼지 한 마리씩 잡아 영양보충도 했으며 시골 5일장마다 씨름대회가 열려 시장 상인들이 마련한 상품을 걸어놓고 힘겨루기 대회를 했었다. 산이나 강가에 가서 음식을 나눠먹는 일도 했었다.

칠석날은 견우와 직녀가 일 년에 한 번 은하수를 건너 서로 만나는 뜻깊은 날이자 바로 직녀성의 날이기도 하다. <태백일사-삼신오제본기>에 보면 인류의 조상이라고 일컫는 '나반'이 '아만'을 만나기 위하여 하늘의 강, 즉 은하수를 건너는 날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하늘의 은하수를 천해(天海)라고 했으며, 이것이 지금의 북해(北海)라고 하였다. 또한 천도(天道). 즉 하늘의 길(하나님의 섭리)이 이 북극에서 열린다고 믿었다.

고로 천일(天一)의 물이 나온다. 이를 북극수(北極水)라 하며 북극의 수정자(水精子)가 기거하는 곳이라고 했다. 하늘에서 '수정(水精)'은 남방주작 칠수에 속한 별자리인 정수(精宿)를 말한다. 정수는 우물 정(井)자 모양의 별자리이며 흔히 동쪽우물이란 뜻으로, '동정'이라 부르는 것은 여기에서 연유됐다(童精과 같은 음).

여기서 보면 '천일의 물'. 즉 천일 생수와 수정자 등 물과 관련된 여러가지 말들이 나온다. 이것은 '물이 바로 생명의 근원'이며 생명을 생산하는 것과 관련되어 있다는 말이다. 여성의 자궁(子宮)은 새 생명을 잉태하는 곳으로 모두 물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칠석날은 여성들의 날이며, 칠석제도 여성들이 제관(祭官)이 되어 진행한다. 또한 여성들이 동네 공동우물을 청소하거나 고사를 지내기도 한다. 칠석제의 제물로는 남성의 성기를 상징하는 오이, 가지, 호박, 당근 등을 바쳤다. 즉 하늘에선 음양의 교접이 일어나는 날이고 땅의 식물들은 열매를 맺고 맛이 드는 날이다.

칠석날이 지나야 벼가 이삭을 맺고, 모든 과일은 고유의 맛이 들어 특별한 맛을 낼 수 있게 된다. 양의 기운이 극에 달한 단오절과 달리, 칠석날은 양과 음이 같아져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임금의 옥좌 뒤에 그려져 있는 일월오악도(日月五嶽圖)는 임금의 위상을 나태내기도 하지만, 칠석날 해와 달이 동시에 떠 있는 형상을 나타내기도 한다. 오악은 팔도강산을 나타내고, 임금이 나라를 다스릴 때 음양의 기운이 똑같아 불편부당하고 공평하게 통치한다는 교훈도 담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견우·직녀의 전설은 중국 우왕(B.C. 2311) 때 생겨난 신화로써, 남녀의 사랑이 얼마나 애절하고 아름다운가를 나타내고 있다. 직녀를 나타내는 별 '녀수'(女宿) 위에 '패과(敗瓜/깨진 바가지)'라는 별이 있다.

직녀는 견우를 만나고 싶지만, 이 깨진 바가지로 은하수 물을 다 퍼낼 수 없었다. 그래서 '점대(漸臺)'라는 정자 모양의 별자리에 올라 견우를 그리워하다 사랑의 징표로 짜고 있던 베틀 북을 견우에게 던졌는데, 그것이 '포과'(匏瓜)라는 별자리가 되었다. 견우 또한 직녀가 그리워 논밭을 갈 때 쓰던 소의 코뚜레를 던졌고, 그것이 '필수' (畢宿)라는 별자리가 되었다. 다시 직녀가 견우에게 자가의 머리를 빗던 빗을 던졌고, 이것이 '기수'(箕宿) 라는 별이 되었다.

그래서 칠석날은 연인들의 날이기도 하다. 음양의 조화와 견우직녀의 만남을 기림으로, 우리 민족이 하나가 됨을 축하하는 축제가 되었다.

/김형태 박사(한국교육자선교회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