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소망교회 류영모 목사
▲한소망교회 류영모 목사 ⓒ크리스천투데이 DB

설교 : 한소망교회 류영모 목사
본문 : 에베소서 2:10
날짜 : 2016년 7월 17일

I. 하나님의 작품
자동차가 많지 못했던 4-50년 전 이태리 로마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교황이 운전사에게 짬짬이 운전을 배워서 운전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퇴근길에 운전기사에게 자네가 뒷자리에 앉게 교황이 친히 운전을 하고 퇴근을 합니다. 서툴렀던지 교통위반을 하게 되었습니다. 교통경찰이 차를 세웠습니다. 그러고 보니 교황이 운전을 하고 앉아 있습니다. 너무 당황한 교통경찰이 경찰청장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너무 귀한 분이 운전을 하다가 위반을 했습니다. 어찌 처리해야 될지 알 수 없어서 전화를 드립니다.누군데? 또 시장이야? 아닙니다. 좀 더. 그럼 주지사야. 아니 더더더더. 그럼 대통령이네. 아닙니다. 그럼 누구야? 교황을 운전사로 두신 분인 것 같습니다.실제로 있었던 일인지? 만들어 낸 이야기인지 잘 모르지만우리는 하나님을 우리 인생에 운전사로 두고 사시는 분이십니다.

여러분 한분 한분은 그만큼 소중하고 존귀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천군천사가 시중드는 하나님의 귀한 자녀들이 된 것입니다.오늘 에베소서 2장 10절 말씀에 근거하여 전반부를 붙들고「우리는 하나님의 작품입니다」이란 제목으로 말씀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2장 10절 문이 열려지만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만드신바, 포이에마, 포임(poem 시)란 말이 나왔습니다. 우리가 쓰는 말과 문장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것이 시입니다. 아름다운 문장을 보면서 시적이다 그렇게 이름합니다. 포이에마 = 작품이란 뜻인데요 특별히 많은 작품들이 있지만 최상급 작품, 최고의 작품을 포이에마라고 합니다.“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최고의 작품이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한 가지 사실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명품이 된 것입니다. 걸작품이 됩니다. 우리 모두 걸어 다니는 작품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걸작품이 된 것입니다.

우리말 성경 번역에서는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새번역과 공동번역에서는 “우리는 하나님의 작품입니다”라고 번역합니다. 하나님이 실험삼아 만들어본 습작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천사들 보고 한번 만들어 볼래? 하고 만들어 놓은 위작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최고 걸작품입니다.
우리가 예배하는 이 자리 이 자리는 하나님의 작품 전시장입니다. 앞에 있는 전시물도 있도 저 윗 편에도 하나님의 작품들이 전시되어져 있습니다. 주일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작품들이 전시하는 날입니다. 하나님 앞에 누가 더 멋지게 찬양하는가? 누가 더 아름답게 예배하는가? 우리를 만드신 하나님을 노래하는 이 날이 주일날입니다.

어쩌다 보니 제가 예술적인 감각이 없는데 최근에 르노아르, 반고흐, 피카소의 작품을 관람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특히 피카소 작품들은 난해했습니다. 삐뚤빼뚤 울퉁불퉁하게 생겼는데 그림의 값이 어마어마 하더라구요.속으로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그래도 저 정도는 그리는데~피카소가 그렸기 때문에 그 값의 예술성이 어마어마한 값이 있었지만 만약 내가 그렸다면 누가 100만원 10만원 1만원 주고 살 사람이 있겠습니까? 아마 몇 점은 팔리겠지요. 사주는 사람이 있겠지만 그걸 작품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나라에 여러 가지 예술품들이 위작논란에 휩싸여 있습니다. 위작이라면 그 값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 귀한 분들이 진짜 그리고 만들었어야 그 작품의 값어치가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여러분 믿으십시오. 우리는 위작이 아니라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이 세상에 내가 태어나 산다는 것 자체가 신비합니다. 어마어마한 기적입니다. 백억 인구 가운데 내 아버지, 내 어머니가 사랑을 하고 그분들을 통하여 내가 이 땅에 태어났다. 신비하지 않습니까? 창조이후 지금까지 한 번도 나와 꼭 같은 작품은 없었다는 것입니다. 나는 단 한명, 단 한 작품,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일본에 가 봤더니 자판기가 참 많이 있습니다. 골목마다 시골에 가더라도 자판기가 놓여져 있습니다. 안내하시는 분이 일본이 왜 이렇게 자판기가 많은지 아십니까? 이 나라가 어떤 나라입니까? Japan = 자판입니다. 일본에 가면 Japan에 자판기가 많더라구요. 천국 자판기에서 여러분은 뽑아내서 만든 그런 작품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무더기로 찍어낸 상품으로 만들지 않았습니다. 아담을 빚어 만들 듯이 소중하게 내 어머니 모태에서 나를 빚어 만드시고 하나님께서 그 코에 생기를 불어 넣듯이 영혼을 내게 보내주셔서 단 하나뿐인 작품으로 하나님이 만드셨습니다. 한분 한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이마고데이.
하나님의 형상이 무엇일까? 오랫동안 하나님의 형상은 다른 동물들이 가지지 못한 영혼이라든지 지적인 체계, 정신 체계라든지 이런 것들이 하나님의 형상이 아닐까 생각을 했습니다. 성경을 최근에 연구하던 신학자들은 동의하는 바가 있습니다. 우리 몸도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 졌다는 것입니다. 영혼은 물론, 정신체계는 물론, 우리 몸 하나 하나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입니다. 불경한 상상이기는 하지만 우리가 하나님 앞에 갔을 때에 종아, 아들아, 어서 오너라. 천국문 열고 나를 반겨 맞아 주실 때에 우리와 같은 모습으로 우리를 반겨 맞아 주시지 않을까 생각을 합니다. 목이 긴 기린처럼 하나님이 계셔서 끄덕끄덕하시며 어서 오너라. 그러시겠습니까? 물속에 붕어 모양을 하고 꿈뻑꿈뻑하시며 어서오너라. 그러시겠습니까? 토끼처럼 깡충깡충 나오시면서 어서 오너라. 그러시겠습니까? 우리의 몸도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 졌다는 것입니다.I

I. 하나님이 형상으로 만든 작품
우리 영혼뿐만 아니라 행복, 느낌, 감정, 체계, 살아가는 삶의 결단,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모두 하나님이 친히 만든 작품입니다. 신비한 것입니다. 시편 139편 14절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심히 기묘하심이라 주께서 하시는 일이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나를 지으심이 심히 기묘하도다. 옛날 번역에 신묘막측하도다. 이어지는 말씀 “주께서 하시는 일 모든 것이 기이하도다”

나 자신이 지나치게 존귀하게 생각하고 나 자신을 너무 잘난 척하고다른 사람을 무시하는 태도 옳은 태도가 아닙니다. 자기 자신한테 지나치게 열등감을 가지고 살아가고 자학하는 것도 있을 수 없는일입니다. 나를 향하여 다른 사람들을 향하여 함부로 비판 하는 것, 비난하는 것, 평가하는 것 잘못된 일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왜요? 나를 만드신 하나님을 평가하는 것입니다. 당신이 무엇인데? 내 남편, 내 아내, 우리 교우들을 만든 소중한 분을 우리가 함부로 비판하는 일이 된다는 것입니다.

피카소의 작품을 보면서 작품 참 형편없이 만들어 놓았구만. 피카소 작품이 형편없는 것이요? 당신의 미술 감상 실력이 형편없는 것이요?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아이들이 보는 책 가운데 「우리 몸의 이야기」라는 책이 있습니다. 우리의 심장이 피를 펌푸질합니다. 한 시간에 720 양동이 피를 퍼올린다고 합니다. 걸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신경신호가 몸 안에서 1시간동안 432km를 갑니다. 경부고속도로(428km)보다 조금 더 멀리 가는 것입니다. 1시간 만에.24시간 끊임없이 신경체계가 움직이고 있는 것입니다.

콧구멍이 1만가지 이상 냄새를 구별한다고 합니다. 귀는 기가 막히게 만들어졌습니다. 귀라서 그런지 정말 기가막힙니다. 우리가 서서 있습니다. 달려가도 넘어가지 않습니다. 달팽이관 옆에 삼차원을 인지하는 세반고리관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세반고리관이 삼차원을 인지하기 때문에 서서 뛰어다녀도 되고 서서 말씀을 증거하고 서서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우리가 듣는데 파장이 너무 커도 안됩니다. 파장이 너무 작아도 안들립니다. 어마어마한 소리로 지구가 돌아가거든요. 우주가 움직이는 소리가 어마어마하게 들립니다. 그런데 우리 귀가 그것을 듣지 못하도록 파장이 크면서 듣지 못하도록 하나님이 기가 막히게 조정해 주었습니다. 안들립니다. 만약 그게 들리면 우리 몸은 파열되어집니다. 제가 18층에 사는데 지하실에서 개미들이 밥먹는 소리가 빠짝빠짝 들려보세요. 복이겠습니까? 안 들리는 것도 복입니다. 나이가 들어가면 귀가 조금 잘 안들립니다. 그것도 복입니다. 좋은 소리만 듣고 살라고 귀가 약간 안들리는가 봅니다. 모든 것을 감사하며 사시기를 바랍니다.

III. 느낌에 속지마라
우리가 하루를 살고 한 달을 살고 일 년을 살고 인생을 살아가면서 실패할 때가 있습니다. 만사가 성공하고 형통하기만 하겠습니까? 나는 왜 이것밖에 안되나? 좌절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죄를 지었을 대에 실수를 했을 때에 가슴 아파해야지요. 하나님 앞에 회개해야지요. 하나님 앞에 고개를 숙여야지요. 그러나 그 일로 인하여 나는 과연 구원받은 사람이 맞는가? 하고 낙심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내 마음에 들기만 하겠습니까?

내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들이 내 마음에 안들 때가 하루에도 몇 번이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을 향하여 비난해서는 안됩니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향하여 비난하고 비판할 때에 그래 나는 왜 이 모양 이꼴밖에 안되나. 여러분 절망해서도 안된다는 것입니다.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못났어. 잘난 구석이 없어. 낙심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분명 하나님의 작품인데 왜 하나님의 작품답게 살지 못하는 것일까요? 이 존귀한 작품이라는 감동이 문득문득 사라지고 있는 것일까요? 우리 감정이 왜 이렇게 우리를 비참하게 만드는 것일까요? 행복하기만 했으면 좋을 터인데 왜 불행을 느끼며 살아가는 것일까요? 내가 나 자신을 바라볼 때 율법의 눈으로 바라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 율법의 눈으로 바라보는 한 나는 비참해 집니다. 조금 뭐가 잘났다 싶을 때는 뭘 가졌다 싶을 때는 둥게 둥게 하다가도 뭐가 조금 부족할 때에 어려운 일이 있을 때에 절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의 신분이 얼마나 존귀한 존재인지 신분에 집중하라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이 우리의 신분을 가지고 우리를 존귀히 여기십니다. 성취, 공로, 행위로 나를 보면 안됩니다.

내가 나를 비참하게 하면, 내가 나를 절망하는 눈으로 바라보면 바로 그 느낌에 사탄이 올라타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를 비참하게 만듭니다. 그래 맞아. 너 구원받은 게 맞니? 하나님이 너 같은 것 사랑하겠니? 하나님이 너를 향할 때 진절머리가 난다 얘. 나 같아도 너 같은 것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하지 않을 거야. 우울하게 만듭니다. 심지어는 이러다가 살아서 뭐 하노 싶어서 자살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사탄이 그 쪽으로 우리를 끌고 갈 수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사랑의 눈으로 나를 바라볼 수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돈키호테는 엘돈자라는 창녀를 사랑했습니다. 엘돈자가 생각해보니까 말이 안됩니다. 저 귀한 분이 나 같은 창녀를 사랑한다.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에 돈키호테의 진정어린 사랑을 받아들이게 되는 것입니다. 한 나라의 임금이 한 창녀를 사랑했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프로포즈를 했습니다. 왕비가 되었습니다. 문득문득 이 왕비가 된 옛 창녀는 내가 이렇게 왕비가 되었지만 과연 임금이 나를 사랑하는게 맞을까? 자신의 옛날의 신분이 생각나는 것입니다. 나를 미워할 거야. 나를 더럽다고 말할 거야. 자꾸 미안하게만 생각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여러분의 옛날의 신분에 집중하지 않습니다. 내가 저를 위하여 피 흘려 죽었어. 하나님이 저를 아들이라고 말씀했어. 저는 내 신부야. 영원히 나와 함께 될 가족이야. 우리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옛날 신분으로 여러분을 비판하지 않습니다. 한 마리 징그러운 애벌레가 있습니다. 벌레가 꿈틀거리고 보기만 해도 징그럽습니다. 어느 날 날개를 달면서 나비가 됩니다. 하늘을 날아갈 때 어린아이도 어른들도 야 나비야~ 와 예쁘다. 나비가 나는 것도 예쁩니다 나비는 자기 자신을 나비로 생각하지 않고 징그러운 애벌레에다가 날개를 단 존재라고 생각하면 되겠습니까? 알록달록하게 날개를 달았던 호랑나비 한 마리가 나는 징그러운 애벌레에 겨우 날개 하나 단 존재야. 아닙니다. 앗싸! 호랑나비입니다. 나를 바라볼 때 앗싸! 나는 하나님의 자녀야. 앗싸! 나는 주님의 신부야.이 세상을 휘젖고 다니는 것입니다. 내가 나를 바라볼 때에 그렇게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IV. 우리의 신분(작품성)
사찰로 소풍을 간 초등학교 아이들이 있었습니다. 이 아이들이 스님이 지나가니까 스님의 이름이 궁금했습니다. 스님은 일반적인 이름을 쓰지 않고 법명을 쓴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물어봐야 겠다 생각했는데 법명이 뭔지 잘 모르니까? 초등학교 아이들이 스님~ 왜? 스님 세례명이 뭐예요? 그렇게 물었습니다. 스님에게는 법명이 있고 천주교 신자에게는 세례명이 있습니다 .우리 복음적인 그리스도인 하나님의 자녀들, 구원받은 백성들에게는 하나님이 붙여준 이름이 있습니다. 구원받은 소중한 이름이 있습니다.

첫 번째 이름은 성자입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에 있는 성자들에게 편지하노니”그것을 성도라 번역했습니다. 성자들의 모임이 성도입니다.“에베소에 있는 성도들에게 편지하기를”(엡1:1)
saint 성자의 성자들이 모임이 성도가 된 것입니다.“갈라디아 교회에 있는 성자들에게 편지하노니~”사도 바울이 여러분을 놀리기 위해서 성자라고 그렇겠습니까? 여러분 진짜 성자 맞습니다. 할렐루야. 다른 종교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존경할만한 업적을 쌓아야 성자 반열에 올립니다. 어마어마한 존경을 가슴에 안고 많은 사람들을 유익하게 하는 공로와 선행과 덕행이 쌓여져있을 때에 후대 사람들이 그를 성자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복음적인 그리스도인들은 그게 아닙니다.

우리 주님이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소중하다 귀하다 말씀하셨습니다. 구원받았다는 한 가지 사실 때문에 너는 나의 성자다 말씀하십니다. 성자의 향기가 모자랍니다. 성자의 품성도 모자랍니다. 성자의 삶도 모자랍니다. 그렇지만 내가 너를 위하여 죽었기 때문에 거룩하기 때문에 죄를 모두다 덮어버렸기 때문에 너는 성자가 되었느니라. 할렐루야 .그것도 한번 두 번이 아닙니다. 63회에 걸쳐서 신약성경에서 너희는 성자다 말씀하십니다. 나는 성자다 이 신분에 집중하시기 바랍니다. 성자의 삶을 살지 못할 때 안타까워하면서 성자의 향기가 점점점 만들어져 가게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세례명이나 법명이 아니라 구원받은 복음적인 그리스도인들의 두 번째 이름은 의인입니다. justification 의롭다고 일컬어 주는 이름입니다. 우리가 의로운 존재로 변화되어져서 의인이라고 부르는 것이 아닙니다. 죄를 모두 다 사하셨기 때문에 죄가 주님 눈에 기억도 되지 않기 때문에 우리를 의롭다 일컬어 주시는 것입니다. 제가 한국 사람입니다. 어떻게 한국 사람이 되었습니까? 한국 사람은 김치를 많이 먹으니까 하루에 김치를 한 사발씩 매끼마다 먹어서 한국
사람이 된 것입니까? 한국 사람들은 된장을 좋아한다고 그러더라. 된장을 매일 한 독씩 먹으면 한국 사람이 되는 것입니까? 한걸음 더 나아가서 한국말을 잘하면 한국 사람이 될까요? 아닙니다. 한국 사람인 내 아버지 내 어머니가 나를 한국 사람으로 낳아서 나는 한국 사람이된 것입니다. 우리가 의인이 된 것은 성자가 된 것은 김치를 많이 먹고 된장을 많이 먹듯이 성자의 삶이 의인의 삶이 쌓여져서내 배에 가득해 져서 내가 성자가 되고 내가 의인이 된 것이 아닙니다. 내 신분이 성자로 바뀌어진 것입니다. 주님이 성자라고 의인이라고 일컬어 주신 것입니다.

세 번째 하나님의 성전, 교회한 걸음 더 나아가서 죄 많은 우리를 향하여 허물 많은 우리를 향하여 걸핏하면 절망하고 좌절하는 우리를 향하여 내가 나를 봐도 못마땅한 나를 향하여 너는 성전이다 말씀하십니다.“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고전 3:16-17)너희가 하나님의 성전된 것을 깨닫지 못하느냐.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느니라. 내가 너희 안에 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니라. 뜨거운 물에 녹차 팩을 넣어서 녹차를 만들었습니다. 맹물에 녹차가 녹아있네. 그런 사람 누가 있어요? 녹차 한잔 하시겠습니까? 녹차라고 부르게 되는 것입니다.

내 안에 의로운 예수님이 계시니 내가 의인이 된 것입니다. 나를 거룩하게 한 예수님의 보혈과 말씀이 내 안에 있으니 내가 거룩한 존재가 된 것입니다.성령이 내 안에 계시니 성령의 사람, 성전이 되고 교회가 된 것입니다.의로운 삶으로 말하면 바리새인들이 우리보다 훌륭합니다. 바리새인들이 우리보다도 훌륭한 점이란 글을 쓰신 분이 계십니다.263가지 우리보다 바리새인이 훌륭한 점이 너무 많다. 하나님 앞에 구원받은 감사와 감격을 가지고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이시고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고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서 하나님을 섬기는 가장대표적인 표징이 십일조입니다. 바리새인들이 십일조를 할 때에 정직하게 십일조를 합니다. 타협하지 않습니다. 정확하게 속이지 않고 십일조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십일조를 드리고 또 이웃을 섬기기 위하여 구제를 위하여 십일조를 또 한번 더 뗍니다. 감사 절기를 통하여 또 한번 십일조를 뗍니다. 바리새인들의 십일조는 십의 삼조입니다. 그뿐 인줄 아세요? 먹는 음식의 십일조를 금식합니다. 십일조 금식을 합니다. 그뿐 인줄 아세요? 시간의 십일조를 하나님 앞에 기도합니다. 말씀을 묵상합니다. 선행을 합니다. 이게 바리새인들입니다. 주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시는고 하니“너희 의가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5:20) 심각해졌습니다. 바리새인보다 나은 점이 있어야지요. 주님이 너희 의가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바리새인보다 나은 의가 무엇일까요? 내 의를 의지하는 순간 나는 율법주의자가 되는 것입니다. 나를 의롭다 말씀하시고 내 죄를 담당하신 주님의 의를 내 의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십자가에 공로를 나의 공로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성령의 살아계심을 내가 영접한 것입니다. 우리 의가 바리새인 의보다 나은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자가 되고 신부가 되고 가족이 되고 의인이 되고 거룩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 앞에서 일컬음 받은 이유입니다.

V. 거지처럼 살아도 부자는 부자다
1930년도에 미국에 대 경제 공항이 있었습니다. 추신수 선수가 활동하고 있는 텍사스 주에 “예인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