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본철
▲배본철 교수(성결대학교 역사신학/성령운동연구가)
최근 한국교회를 방문하고 돌아간 세계적인 복음전도자 폴 워셔(Paul Washer)가 한국교회를 향해 따끔한 충고를 남겼다. 지금 이 시대에 널려 있는 거짓 선지자들에게 속지 않으려면 한국교회는 교회사에서 지혜를 얻어야 한다는 것이다. 교회사 속에 나오는 참된 하나님의 백성들이 갖고 있는 공통점들을 숙고해야 한다는 말이다. 필자는 한국교회 오순절 성령운동의 바람직한 성령론 연구를 위해서도 그의 말은 전적으로 타당하다고 본다.

지금까지 필자는 한국 교회사 속에 나타난 오순절 성령운동을 고찰하고 이에 대한 교회사적 분석을 시도하였다. 이 연구를 위해 한반도의 사회-정치적 상황의 변화를 따라 크게 세 시기로 구분하였고, 각 시기의 특정한 상황과 시대적 요청에 따라 성령론의 여러 논제들이 생성되었음을 보았다. 그뿐만 아니라 점차 시대가 흘러감에 따라 그 논제가 복음적인 깊이를 향하여 구체화되고 있는 점을 보았다.      
해방 이전 시대의 성령론이 타종교 영성과 재래적 심성의 틈바구니에서 기독교적 성령론을 구분해 내는 점에 논제가 집중되었다면, 해방 이후 근대화 시대에는 좀 더 구체화된 성령의 은사, 방언, 그리고 성령세례에 대한 논의로 이어졌다. 세 번째 시기인 세계화 시대에서는 성령론의 본질과 현상 사이의 관계를 올바로 규명하는 일에 대한 논제에 그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을 본다. 
 
근대화 시대에 극명히 나타난 장로교 계통, 오순절 계통, 그리고 성결파 계통의 삼축전의 대립 양상은 장로교 계통이 회개와 성령의 열매, 오순절 계통이 성령의 은사와 능력, 그리고 성결파 계통은 내면적 성결에 각각 강조점을 둔 형태로 나타났다. 그러나 당대의 성령론은 이 세 가지 서로 상충되는 성령론의 성격 중 그 어느 것에도 충분히 만족할 수 없었다. 만일 이 세 가지 성령론의 조류가 지니고 있는 약점들을 모두 극복하고 장점들을 수용한 합(合; synthesis)으로서의 성령론이 주어진다면 좋겠다고 하는 염원이 다음 세계화 시대를 맞이한 통찰력 있는 교회와 신학의 지도자들이 품고 있었던 '기다림'이었다.

성령운동이 나아갈 길


그러면 한국교회의 성령운동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가? 이 역사의 흐름 속에는 일정한 동인(動因)이 작용해 왔음을 보는데, 그것은 "서로 다른 성령론 사이의 갈등, 신학적 비평과 탐구 작업, 성령론의 자체 정화와 조화, 그리고 바람직한 성령론을 향한 발전"(배본철, 『한국교회와 성령세례』, 281.) 등의 과정을 거쳐 온 것이다.
 
개혁파 성령론에서는 그 강조점인 '그리스도와의 연합' 모티브의 보전과 함께, 전에는 받아들이지 못하던 방언이나 신유 등의 은사 사용이라든가 기사와 이적을 전도의 현장에 적용하는 일 등을 신학적으로 수용하려는 움직임이 점차 확대되고 있다.
 
성결파 계통의 성령운동에서는 '정결과 능력' 모티브의 보전과 함께, 점차적으로 성령의 은사에 대한 포용성이 눈에 띄게 나타난다. 그런가 하면 '그리스도와의 연합' 모티브에 중점을 둔 하나님 형상의 회복 또는 '그리스도 닮기'(Christlikeness)로서의 성결론을 강조하는 경향이 짙어지고 있다.
 
그런가 하면 은사적 기독교에서 볼 때, 전통 오순절주의에서는 성령세례 받은 첫 증거가 방언이라고 보았지만, 은사갱신운동을 거쳐 '제3의 물결'에 이르러서는 방언에 대한 강조가 성령의 여러 가지 은사 중의 하나라고 보는 입장으로 변화되어 왔다. 그래서 최근에는 전통 오순절주의자들도 이러한 영향을 많이 받아서, 반드시 방언을 성령세례 받은 첫 표적이라고 보기보다는 여러 성령의 은사 중의 하나로 보는 경향이 짙어져 가고 있다. 그리고 전에는 상대적으로 미약하던 '그리스도와의 연합'이라든가 '정결' 모티브 등의 강조가 많이 보강(補强)되고 있다.
 
위에서 예로 든 성령론의 역사적 진전에 따른 예상되는 변화를 조사해 볼 때, 이 모든 노선에 가장 보편적인 현상은 '그리스도와의 연합' 모티브와 함께 은사를 동반한 복음 증거의 능력의 강조가 모든 계통의 성령론 유형에서 더욱 드러나고 있다. 필자는 이러한 강조점을 '통전적(統傳的) 성령론'(Holistic Pneumatology)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한편, 필자는 이러한 성령운동의 흐름 자체로 인해 한국교회에 복음적인 성령론 인식이 확산될 것이라기보다는, 이에 대한 올바른 신학적 비평과 적용으로서 이러한 전기가 마련될 것이라고 본다. 해방 이전이나 근대화 시대의 성령운동이 그러했듯이, 세계화 시대의 영성운동에도 분명히 극단적인 사례들이 나타나고 있다. 이 점은 곧 이러한 운동에 대한 신학적인 비판과 교정 작업 등이 진지하게 실시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해 준다.
 
그러나 이 일의 성과를 기하기 위해서는, 이 운동을 조명하되 어느 특정 교단이나 신학 노선에 의한 독자적인 평가를 가능한 한 삼갈 것이며, 보다 포용적인 형태의 연구 작업이 전개되어야 한다. 그 까닭은 이 운동으로 인한 또 다른 분파 형성이라든지 무분별한 이단론의 난무로 인해 한국교회에 상처를 입히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 가지 제안으로서 한국 내의 여러 복음주의적 신학교의 학문적으로 권위 있는 교수들에게 이에 대한 평가와 진단을 의뢰하여, 여기에서 나오는 일치된 결론을 따라 성령운동의 가닥을 잡아 이끄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