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인 호치민
▲사이공 스퀘어.

'쌀국수',

'사이공 스퀘어',
'미스 사이공',
그러면 생각나는 곳이 바로 베트남이고 사이공이다.

현재는 사이공을 '호치민 시티'라고 부른다. 베트남 공산당을 설립한 혁명가요 독립운동가이자 대통령을 지낸 호치민을 기리기 위해 사이공을 '호치민 시티'로 새롭게 개명하였다.  

베트남 사람들에게 호치민은 존경과 사랑의 대상이다. 공공기관은 말할 것도 없고 대형 상점, 작은 식당, 가정집 등등 가릴 것 없이 벽에 걸린 그의 초상화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의 호치민 사랑은 초상화를 벽에 거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베트남 사람들은 항상 호치민을 얻기 위해 노력하고 늘 지참하고 다닌다. 베트남 화폐 모델이 단 한 명이기 때문이다. 최고액권 50만 동부터 10여 종 넘는 모든 지폐에 호치민이 등장한다. 실로 호치민은 베트남 건국의 어버이요, 경제의 핵심인 셈이다.

궁인 호치민
▲베트남 하면 떠오르는 ‘쌀국수’.
'호치민 시티'도 마찬가지다. 지난 5월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수도 하노이에 이어 바로 '호치민 시티'를 방문한 것만 봐도, '호치민 시티'가 얼마나 베트남 사람들에게 중요한 도시인지 알 수 있다. 물론 여행객들에게도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곳이다. 친절한 베트남 사람과 맛난 쌀국수로 좋은 추억을 남길 수 있는 멋들어진 곳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목회자에게는 절대로 녹록한 곳이 아니다. 오히려 부단히도 도전해야하는 무한 도전의 장소이다. 때로는 어떤 순간에도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는 베트남 사람들 앞에서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의 국민 MC 유재석 씨처럼 무한히 겸손해야 하고, 하하 씨 같은 기발한 아이디어가 있어도 든든한 맷집이 없다면 시도도 하지 말아야 하는 곳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을 무한히도 삶으로 증명해 보여야 하는 장소이다.

그런데 '한결같이 행하기가 어디 쉬운가!'

궁인 호치민
▲뮤지컬 ‘미스 사이공’ 포스터.
마음을 다잡고, 매일 결단해도 빈틈이 생기는 순간은 꼭 있다. 그래서 종종 사명의 유통기한이 드러나고, 체력과 열심이 고갈되어 '번아웃'되는 곳이기도 하다.

무슨 사명에 유통기한이 있냐고 말하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사명에도 분명 유통기한이 있다. 아마도 사랑의 호르몬인 옥시토신과 비슷할 것이다. '이성간의 그리움' 호르몬인 옥시토신의 유통기한을 학자들은 보통 3년 반 정도로 계산한다. 그래서 불 같은 사랑을 해도 호르몬이 줄어들면 배우자나 이성 상대에 대해서 흥미를 잃고 스캔들이라는 사고를 치게 되는 것이다.

세간에 회자되는 영화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의 배우와 감독의 일만 봐도, 틀린 이야기는 아닌 것 같다. 지고지순한 '사랑'도 유통기한이 지나면 인생의 '사고'로 마침표를 찍게 된다. 결국 '사랑'이 '사고'로 바뀌는 것이다.

사명도 비슷하다. 유통기한이 지난 '사명'은 결국 '사업'으로 변질되어 버리기 쉽다. 주님의 일이라고 시작했지만, 자신을 쳐서 복종시키는 노력이 없어지면 사명은 점점 흐려지게 된다. 제사보다는 젯밥에 더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 사명마저 생계 수단으로 전락하는 것이다.  

궁인 호치민
그래서 가야할 길이 흐려지는 시점에 다시 확인해야 하는 것은 '사명'이다. 사역 스케줄이나 사역 리스트보다 더욱 자주 확인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사명은 주전자 속 개구리처럼 현실에 적응하면서 서서히 죽어갈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골 1:24)".

그런 의미에서 바울의 고백은 너무도 소중하고 값어치가 있다.

어디에 있던, 누구를 대하던, 어떤 순간을 마주하던 괴로움을 기쁨으로 여길 수 있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우리의 육신에 채울 수 있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가 이 땅에서 겪는 어려움과 고난을 나의 이익 때문에 모른척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몸과 마음으로 함께 해야 하는 것이 사명이다. 그렇다. 그것이 진정한 사명이다.

그것이 때로는 기한이 없어 보이는 무기한 도전이든,
때로는 사람들의 관심을 받지 못하는 무관심한 것이든 관계없이,
우리에게 사명으로 주어졌다면 계속해서 도전해야 한다.
비록 그것이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무모한 도전처럼 보이더라도,
계속해야 한다.

궁인 호치민
왜냐하면,
우리는 사형들인 십자가로 이 땅의 모든 사람들에게 새로운 생명과 소망을 주신 주님의 제자이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의 연약한 헌신과 드림이 부족할지라도,
한 마음 한 뜻으로 연합하여 도전을 이어간다면,
우리의 '무한'도전은
하나님의 '무한한' 능력을 경험하는 도전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그분의 무한한 능력을 경험하는 도전을 다시 시작해 보자.

아자~!
무한도전 베트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