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본철
▲배본철 교수(성결대학교 역사신학/성령운동연구가).

21세기를 맞이한 한국 교계 내에서는 점차 방언에 대한 체험이 범교단적으로 보편화되어감에 따라, 이에 대한 신학적 정립의 필요성도 점차 높아져 갔다. 이에 2007년 11월 CBSTV '크리스천 Q' 프로그램에서는 "방언, 하늘의 언어인가 인간의 언어인가"라는 제목으로 2회에 걸쳐 방언에 대한 토론을 진행하였다. 토론자로는 여의도순복음교회 시흥성전 담임 김삼환 목사, 전 수원한길교회 담임이자 수원 기독교윤리실천위원회 대표였던 정병선 목사, 예장 통합측 칠레 파송 선교사인 홍인식 목사가 출연하였다.

방언의 정의에 대해서는 토론자 간에 의견이 엇갈렸다. 김삼환은 방언을 '사단도 엿들을 수 없는 신비로운 언어'라고 그 가치성을 높였고, 정병선은 '성령의 은사 중의 하나로서 가장 중요한 은사는 아니'라고 하였다. 홍인식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비밀스러운 언어라기보다는, 하나님이 인간과 소통하는 방안의 하나'라고 보았다.

신앙생활에 있어 방언의 유익성 여부에 대해서도 서로 간에 이견을 드러냈다. 김삼환은 '말이 달라진다는 것은 삶이 달라지는 것이기에, 방언을 통해서 우리의 신앙과 삶을 변화시키고 새롭게 할 수 있다'고 긍정했으며, 정병선은 '방언을 받은 자와 못 받은 자의 신앙 깊이가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할 수는 없다. 신앙은 끊임없는 훈련과 자기 계발·혁신을 통해 성장한다'고 주장하였다. 홍인식은 '신앙의 깊이를 방언이나 성령의 체험만으로 재단하는 것은 무리가 있으며, 겉으로 드러나는 현상에 너무 치중할수록 신앙의 깊이는 얕아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너무 방언에만 치중하는 이른바 방언주의(方言主義)에 대해서는 모두들 우려를 표했다. 김삼환은 '지성과 영성을 아우르는 균형이 필요하다'고 보았으며, '방언도 하나님이 주셔야 받는 것이지, 내가 받고 싶다고 해서 다 받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은사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기도하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했다. 정병선은 '방언을 하나 못 하나의 차원보다는, 방언을 통해 예수의 제자 된 삶을 살아가는 데 어떤 유익이 있는지를 고민해야 한다'고 보았으며, '방언으로 만 마디 하는 것보다 깨달은 말로 다섯 마디 하는 것이 더 좋다'고 했다. 홍인식은 '신학적 지성으로 반지성주의적 경향을 극복해야 한다'고 보면서, '방언을 받기 위한 집회는 은사를 대중화·일반화·상품화할 수 있는 위험이 있다'고 했다. 이 토론은 꽤 뜨거운 논제인 방언에 대해 다각적인 목소리를 담아 보려 했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었다고 본다.

이 토론회가 있던 거의 같은 시기에, '인문학적 성서 읽기'라는 한 방법론을 제시하면서 방언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정용섭 목사의 주장이 인터넷상에 소개되었다. 다음은 그가 "방언,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제목으로 한 기독교 웹사이트에 시리즈로 게재한 글의 요지를 정리한 것이다.

정용섭은 방언을 외국어로 나오는 방언과 일반적인 방언 현상으로 분류하였다. 그 중에서 외국어로 나오는 방언은 전혀 들어본 적이 없기 때문에 단정적으로 말할 수 없다면서, 또 이러한 사실이 있다 해도 심층심리학이나 언어학의 도움을 받을 필요가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일반적인 방언 현상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가 보기에 인간의 내면 세계에서 우러나오는 열정과 그걸 소리로 만들어 내야 할 구강 기능이 따라가지 못할 경우에 이상한 소리가 나온다. 그런 게 가장 일반적인 방언 현상이다." 이렇게 본다면 방언이란 더 이상 기독교인들만의 경험도 아니고, 종교인이든 비종교인이든 간에 누구든지 경험할 수 있는 매우 일반적인 현상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그가 기독교 신앙에서 방언과 통역의 신학적, 혹은 신앙적, 더 나아가서 선교적 의미가 매우 크다고 언급한 것이다. 그는 방언 자체가 세상 사람들에게는 잘 이해되지 않던 그리스도의 말씀이라고 보고, 통역이란 이를 해석하는 신학과 설교라고 보고 있다. 이것이 비록 흥미로운 개념의 전환이긴 하지만, 과연 성서에서 크리스천들이 경험했던 방언과 방언 통역의 의미를 올바르게 전달한 것인지 의문이 생긴다.

최근 한국 크리스천들에게 널리 읽힌 김우현의 『하늘의 언어』는 한국 교계에 방언에 대한 관심을 다시 한 번 크게 불러일으켰다. 이 책에서 보여 준 방언에 대한 저자의 인식을 결론적으로 평가하자면, 전통 오순절주의(Traditional Pentecostalism)의 이차적 축복(second blessing)인 '성령세례의 초기적 증거'(initial sign of Spirit Baptism)로서의 성령론에 유사하다기보다는, 오히려 모든 믿는 자에게 실행될 수 있는 방언을 말하는 '제3의 물결'(the Third Wave)의 신학에 근접한 인식이다. 이러한 인식은 1980년대 이후 현재 전 세계적으로 보편화되어 가고 있는 은사적 기독교(Charismatic Christianity)의 한 양상이라고 본다.

김우현은 자신의 글에서, 방언이 안 터지면 다른 사람의 방언을 따라하다가 터지게 될 수 있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이것은 신학적으로 그동안 많이 비판받아 온 주제이다. 방언에 대한 반대를 표현하는 데 있어서 '방언을 따라한다는 것이 과연 옳으냐?'는 질문이 많이 야기되었다. 비록 저자가 이에 대한 손쉬운 답변을 나름대로 제시하긴 했으나, 이는 여전히 신학적 난제로 떠오르는 주제다. 어쨌든 이 책은 1980년대 방언 논쟁이 있고 난 후 한동안 잠잠해져 있던 한국 교계에, 다시 한 번 방언에 대한 논제를 자극시키게 되었다. 

이런 가운데 방언에 대한 매우 적극적인 해석을 제시하는 한 신학자로서 김동수 교수를 들 수 있다. 김동수도 역시 다른 학자들과 마찬가지로 고린도전서 12-14장에서 가장 큰 이슈가 된 문제는 방언이라고 본다. 그는 방언에 대해 찬반의 극렬한 논제가 되어 온 관계 구절들을 일일이 소개하면서, 이에 자신의 확신 있는 해석학적 입장을 펼쳐 나갔다. 김동수 교수의 '방언론'은 한국교회 정통 개혁주의 신학에서 펼쳐 온, 방언에 대한 적극적 부정론에 대한 반동으로서, 그의 성서 해석은 신학적으로 방언에 대한 오순절주의 성령론을 지지하고 있다고 본다.

사실 방언 문제는 한편에서는 성령에서 오는 신비한 능력 또는 은사라고 보면서 이를 매우 긍정하는 입장이 있고, 또 한편에서는 매우 의문시하는 입장으로 대립된다. 학자들 간에도 방언에 대한 찬반 양론은 성서해석학적으로나 교리적으로나 분명한 대조를 이루는 것을 본다.

정통 개혁주의 성령론은 신학적으로는 분명히 방언이나 예언 등의 초자연적 은사의 종료를 말하고 있으나, 목회 현장에서는 이를 금지시키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또 대부분의 웨슬리안-성결 그룹의 교회들은 신학적으로 방언에 대한 거부감의 전통을 가지고 있으나, 목회적 현실은 대부분 이와는 반대되는 정서를 지니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그동안 각 교단 교리적 노선에서 취해 온 입장과 목회적 현실과는 거리가 있음을 보여 주는 것으로서, 앞으로 현장을 위한 신학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방언 체험의 문제를 둘러싼 각 교단 교리와 현 상황 사이의 신학적 조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