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일웅
▲정일웅 박사

(6) 코메니우스의 교회론과 교회연합에 대한 이해
 
먼저 코메니우스의 교회관은 그가 베스트팔렌 평화조약이 체결된 지 2년이 지나서 발표한 '형제연합교회의 죽어가는 어머니의 유산'(Vermaechtnis)이란 위로의 글에 잘 나타나 있다. 이 글은 평화조약에서 루터파와 칼빈파 교회만을 인정하고, 형제연합교회의 종교의 자유를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교회가 앞으로 유럽에서 종교생활을 어떻게 지속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호소와 유언이 포함되어 있다. 마치나 임종의 침상에 누워 있는 어머니가 연합교회의 아들과 딸들에게, 그리고 기독교의 자매교회들에게 일러 주는 듯한 말로 엮어 있다. 이 글 속에 자신의 교회와 다른 신앙고백을 가진 교회들에 대한 코메니우스의 교회관이 담겨 있다. 그는 특별히 리사(Lissa)에서의 망명생활 중 형제연합교회가 결속된 모습을 보여 준 일에 대하여 감사하였다. 그리고 형제연합교회의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현재의 상황에도 불구하고, 코메니우스는 희망을 포기하지 아니하고 자신의 신앙을 위해 행동하는 신실성을 촉구하였다. 그리고 그리스도에 대한 순수한 신앙의 돌봄을 통하여, 그리고 사랑스런 미래 시대를 희망하는 가운데서 열렬한 경건을 통하여 "너희의 혈통이 실제로 증명되도록 힘쓰기를 바란다"고 권고하기도 한다.

그런 후에 코메니우스는 다른 기독교의 여러 교회들에게로 향하는데, 독일의 루터파 교회, 스위스의 헬베틱(칼빈적인)교회, 그리고 마지막으로 로마가톨릭교회를 향하여 언급하였다. 물론 그는 독일의 루터파 교회에 결부된 감정을 드러내었다. 왜냐하면 30년 종교전쟁 기간에 형제연합교회의 인정을 위하여 독일 작센지역의 루타파교회와 스웨덴의 루터파교회의 도움을 기대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 교회의 깊은 신학적인 차이에 대해서 그는 침묵하지 않았다. 그것은 루터파교회의 훈육의 결핍과 칭의론에 대한 단편적인 이해에 관한 것들이었다. 이러한 가르침은 루터파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행동하는 기독교가 되도록 인도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비판이었고, 칼빈주의 교회에 대해서도 언급하였는데 코메니우스는 훈육과 마찬가지로 의와 거룩에 대한 노력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그 실천에 있어서 결핍된 문제점과 진지성을 직시하였다. 더욱이 칼빈주의 교회들에게 예정론을 비롯한 하나님의 비밀에 대한 신학적인 사색들은 매우 위험한 것임을 강조하였다. 그리고 하나님과 그의 깊은 비밀에 대한 가르침에서 단순하고, 지나치게 깊이 생각하지 말고, 겸손하게 말할 것을 주문하였다. 코메니우스의 판단으로 볼 때, 이러한 하나님의 비밀한 것에 대한 사색들은 재세례파와, 소치니안주의와 아르미니안 그룹들을 초래하였기 때문에 문제로 판단하였던 것이다. 그 때문에 칼빈주의 교회는 특별히 가르침의 단순성과 공정성에로 돌아가야 할 것을 충고하였다. 또한 개인적으로 코메니우스의 가장 예리한 반대파인 로마가톨릭교회에 대해서도 언급하였는데, 그는 가톨릭교회에 대한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가톨릭교회를 기독교 신앙의 모체로 이해하였기 때문이었다. 코메니우스는 그 교회가 모든 가시적인 것에 비하여 변화와 개선의 여지가 있는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코메니우스는 그의 글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우리의 어머니로서 우리가 생겨나게 된, 로마 연합교회인, 너를 나는 잊을 수가 없다. 너는 우리의 어머니였고, 우리의 계모가 되었다. 그리고 아이들의 피를 빨아먹는 호랑이로 바뀌었다. 이제 그 모든 행위를 뉘우치고, 공포의 바벨론에서 헤어 나오기를 바란다."

코메니우스는 프로테스탄트 내에 있는 모든 교파들에 대하여 연합하기를 호소한다. 그는 이렇게 쓰고 있다. "모든 기독교 단체들에게 나는 믿음과 사랑 가운데서 영의 통일을 위하여 단결과 일치와 결합에 대한 노력이 있기를 바란다." 이와 같이 코메니우스는 미래를 위하여 기독교 내의 참된 연합을 희망하였으며, 유일한 참된 그리스도의 교회와 기독교의 통일의 회복을 바랐던 것이다. 코메니우스의 이러한 이상적 교회의 입장은 일찍이 썼던 "세상의 미로와 마음의 천국"이라는 두 번째 부분의 글에 나타나고 있다. 코메니우스는 이렇게 쓰고 있다. "한편 참된 교회 안에서 하나의 정돈된 표면적인 질서가 생겨나며, 엄격한 공동체 훈육과 다른 한편 밀접한 결속으로 교회가 공동체가 되게 하는 서로에 대한 개방성과 협조가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그들이 구별된 은사와 직업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함께 형제로 여기며 평화 안에서 항구적인 기쁨이 지배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코메니우스는 의심 없이 신약의 초대교회를 그리고 있으며, 형제 연합의 이상적인 상을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코메니우스는 반대로 '세상의 미로' 첫 부분에서 그가 모든 신앙고백들을 전체적으로 관계하고 있는 실제적인 교회의 상태를 서술한다. 거기서 그는 교회내의 세속화에 대하여 염려하며 호소하고 있다. 특히 성직자들에게서 신앙고백들의 분리와 결여된 공동체의 훈육을 고발하게 된다. 코메니우스의 이러한 교회 연합 정신에 대한 평가를 로흐만은 다음과 같이 썼다. "코메니우스는 ... 진실한 교회의 교회연합운동가이다. 코메니우스만큼 그리스도인의 통일과 일치를 열정적으로 대변하게 될 신학적인 사상가를 우리는 그의 시대에 거의 발견하지 못한다." 그 당시 분열의 분열을 거듭했던 프로테스탄트 교회를 생각할 때, 코메니우스는 그 당시에 항상 교회의 연합의 필요성을 제시하였고, 실제로 자신이 1645년에 토른(Thorn)에서 개최된 종교 대담에 참석하기도 하였으며, 수많은 글들에서 프로테스탄트들의 화해를 요구하기도 하였던 것으로 여겨진다. 코메니우스에게서 가톨릭주의는 본질적으로 적대적인 관계로 생각되었다. 이러한 생각은 그가 살았던 시대적인 관련들에서 쉽게 이해되는 부분이다. 물론 코메니우스는 그의 인생의 마지막에 가톨릭교회에 대해 몇 가지는 인정하고 있는 것이 주목되는데, "그것은 교황들에 대하여 연구하는 것이었다. 즉 그들이 교회의 통일을 어떻게 유지하고 있는지? 예수회에 의하여 어떻게 모든 것이 한 울타리 안에, 한 목자 안에서 무리짓고 있는지, 어떻게 백성들이 변화되며, 학교들을 설립하는지 등등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란 평가에서이다. 물론 코메니우스의 이러한 평가는 가톨릭교회의 가르침의 내용에 관계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교회의 보존과 확대를 위한 그들의 조직적인 능력과 방식에 대한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것이다.

코메니우스의 교회연합의 정신은 선교적인 성격을 지닌다. 그리고 그의 범개혁론(Pan- orthosia)에서 전 세계적인 교회 연합의 종교회의 소집을 요구한다. 물론 그의 교회 연합은 기독교적인 신앙의 토대 위에서만 상상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리고 교회의 연대를 통하여 기독교의 통일성을 추구할 뿐 아니라, 이방인들과 유대인들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파되게 하는 선교의 과제를 더 깊게 생각한 것이다. 그의 선교 사상은 인류의 통일 사상과 관계를 맺고 있으며, 곧 마태복음 28장 19-20절의 선교 명령과 교육 명령에 근거하고 있다고 할 것이다. 코메니우스는 그 당시 실제적으로 교육하는 선교신학을 제시했다고 볼 수 있는데, 그는 논쟁의 여지가 있는 교리적 문제들을 그 당시의 시대에는 놀랄 만한 이해로 다루었으며, 에큐메니칼한 합의의 가능성을 언급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참된 에큐메니칼"의 종교회의는 신학자들 외에도 종국적으로 인류의 구원을 완전하게 하고 지키며 확산시키는 일을 상의하기 위해, 전 세계에서 오는 철학자들과 정치가들도 함께 그 모임에 속할 것을 제안하였다.

우리는 지금까지 여러 주제로 나누어 코메니우스의 신학의 핵심적인 부분을 소개하였다. 종합적으로 그는 '하나님과 인간과 세계'라는 우주 전체를 창조한 하나님의 계시에 근거하여 가장 성경적인 신학을 제시한 신학자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모습은 그가 마지막에 출판한 책 "꼭 필요한 한 가지 일"(Unum necessarium, 1668)이란 책에서 확인된다. "누군가가 나의 신학에 대하여 질문하다면, 나는 ..... 성경을 붙들고 마음과 입으로 그것에 대하여 말하기를 원한다." 특별히 그 당시 삼위일체 교리에 대한 소치니안파와의 논쟁과 그리스도 복음의 세계에 대하여 사명을 가지고, 책임 있게 대답하려고 했던 그의 모든 노력들은 위대한 신학자로서의 자질과 능력을 보여 주는 일이었다고 할 것이다. 그렇지만 그는 사색적으로, 또는 변증적으로 논쟁하기를 좋아하는 오늘의 조직신학자이기보다는, 언제나 복음의 실천적인 입장을 대변했던 실천신학자라고 할 것이다.

베스트팔렌 평화조약 체결 이후에 암스테르담으로 망명하였고, 그곳에서 30년간의 종교전쟁으로 허물어진 구라파의 세계를 새롭게 하나님이 통치하는 세상으로 만들기 위하여, 세계의 개혁을 위한 7권의 책을 제시하게 된다. 1500페이지 이상 라틴어로 기록된 원고들이 지난 1935년에 와서야 비로소 발견되었고, 제2차 세계대전이 지나 20세기 후반에 와서야 번역되고 해석되면서 코메니우스는 재해석되었으며, 그의 교육과 신학은 새로운 관심과 주목을 받게 되었다. 이 책의 제목은 '인간사(人間事) 개선에 대한 포괄적인 제언'(De rerum humanarum emendatione consultatio catholica)으로 불린다. 그 7권의 내용은 유럽의 지성인들과 정치 지도자들과 종교 지도자들을 향하여 하나님이 그들에게 부여한 사명이 무엇인지를 각성케 하고, 그 책임을 다할 것을 호소하는 글과, 이를 위하여 범지혜의 필요성, 그 지혜를 배워야 하는 범교육론이 있으며, 범언어론, 범질서론, 범경고론 등으로 구성되었다. 그리고 한 사회를 건강하게 지탱하게 하는 질서의 중심 영역은 교육, 정치, 교회(종교)의 영역으로, 이 영역의 질서가 개선되어 올바른 역할을 다하도록 하기 위한 개선의 방법론을 제시하였던 것이다. 그 내용의 구체적인 것은 오늘날 유엔과 같은 국제기구의 설립을 강조하였는데, 국제간의 분쟁을 해소하고 평화를 도모하기 위하여 국제재판소, 교회의 연합과 일치를 위한 세계교회협의회, 자연과학의 탐구와 진리의 협의를 위한 세계과학자협의회 등의 구성이다. 오늘날 유엔 산하의 국제교육문화협의기구인 유네스코(UNRSCO)는, 코메니우스의 교육과 문화의 정신을 잘 반영하여 만들어진 기구로 알려져 있다. <계속>

*크리스천투데이는 본지 편집고문인 정일웅 박사(한국코메니우스연구소 소장, 전 총신대 총장)의 논문 '코메니우스의 교육신학사상의 현대적 의미'를 저자인 정 박사의 동의를 얻어 매주 금요일 연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