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래 목사(한국재난구호 이사장).
▲조성래 목사(한국재난구호 이사장, 나눔인교회 담임).

몇 주간 성경 전체를 묵상하면서, 겸손이 신앙생활에 얼마나 중요한 덕목인가를 보게 되었습니다. 구약에는 많은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그 중 겸손한 사람은 손가락에 꼽을 정도입니다.

'겸손'과 '교만'의 대표적인 인물로 솔로몬을 볼 수 있습니다. 아버지 다윗을 이어 왕이 되었을 때, 그는 부친 다윗의 법도를 행하며 산당에서 일천번제를 드렸습니다. 그 결과로 하나님께서 솔로몬의 꿈에 나타나셔서 원하는 것을 구하라고 하셨고, 솔로몬은 "내 아비 다윗이 성실과 공의와 정직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주의 앞에서 행하므로 주께서 저에게 큰 은혜를 베푸셨고 주께서 또 저를 위하여 이 큰 은혜를 예비하시고 오늘날과 같이 저의 위에 앉을 아들을 저에게 주셨나이다...(중략)...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지혜로운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라고 했습니다.

이런 솔로몬의 겸손한 고백이 주의 마음에 맞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에게 "네게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을 주노니 너의 전에도 너와 같은 자가 없었거니와 너의 후에도 너와 같은 자가 일어남이 없으리라. 내가 또 너의 구하지 아니한 부와 영광도 네게 주노니 네 평생에 열왕 중에 너와 같은 자가 없을 것이라"고 복을 주셨습니다. '겸손'은 모든 복을 끌어오는 통로입니다.

그 후 솔로몬이 점점 명성이 높아지면서부터 교만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자신이 거처할 왕궁을 성전보다 더 화려하게 지었고, 수많은 이방 여자들과 우상들을 끌어들이는 과오를 범하게 됩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은 남과 북으로 갈라지고, 멸망의 길로 들어서게 됩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교만하다는 것을 전혀 모릅니다. 어떤 사람에게 "당신은 교만합니다"라고 말한다면 그와 평생 원수가 될 것입니다. 그렇게 '교만'이란 말을 누구나 듣기 싫어합니다. 그러면 '교만'이 무엇입니까? 잘난 척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거만한 걸음걸이일까요? 신앙의 교만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잠 16:18)"라고 했습니다.

성경에서 교만한 사람은 다 망했습니다. 즉 말씀에 순종하지 않은 사람들은 다 멸망을 당했습니다. 수십 년 동안 신앙생활하는 신자들이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며 살아갑니다. 그럼에도 자신이 얼마나 '교만'한 사람인지 전혀 모른다는 사실입니다. 오히려 교만하다고 지적하면 신앙생활을 중단하거나 교회를 떠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다면 우리는 어떤 복도 기대할 수가 없습니다.

반면에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니라(잠 18:12)"고 했습니다. 겸손한 사람이 복을 받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도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마 11:29)"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겸손'이 무엇입니까? '교만'의 반대말입니다. 즉 '교만'은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는 삶이요, '겸손'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삶입니다. 예수님처럼 위대하신 분도 하나님 말씀에 100% 순종하는 삶을 사셨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타락한 이후 인간은 누구나 '겸손'할 수 없습니다. 수행으로도 안 됩니다. 아무리 많은 학문을 쌓아도 '겸손'할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노력하면 할수록 범죄하는 죄공장일 뿐입니다. 오직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만이 '겸손'할 수가 있습니다. 옛 사람이 변하여 새 사람이 되어야 새로운 삶을 살 수가 있습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은 성령의 능력으로 사는 새로운 사람입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갈 5:22)" 이런 삶이 '겸손'한 삶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