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민국 목사.

다섯 살배기의 고아원. 휘둥그런 눈을 요리조리 굴리며 들어선 고아원은 넓고 커서 좋았다. 아이는 울지 않았다. 울지 않는 아이는 처음 본다고 원장은 너스레를 떨었다. 형들이 많아 시끄럽고 어수선했지만, 아빠가 없는 집이라면 차라리 낯선 이곳이 좋다.

자다가 깰 수밖에 없었던 공포의 고함, 아우성, 폭언, 폭력, 그리고 소리 없이 눈물 흘리며 널브러진 엄마 품에서 울었던 기억……. 운다고 매질을 한, 기억 속의 아빠는 마귀였다. 천국에 간 엄마는 돌아오지 못한다. 아빠는 경찰들이 잡아갔다.

엄마가 없다. 서럽다. 많이 서럽다. 그렇지만 울지 말아야 할 것 같은 마음이 든다. 자꾸 눈물이 나오려 한다. 그럴 때마다 눈을 깜빡인다. 슬플 때나 외로울 때마다 눈을 깜빡이게 된다. 어안이 벙벙할 때도 멍하니 하늘을 향해 눈을 깜빡인다. 눈을 깜빡이는 버릇이 생겼다. 엄마가 보고 싶지만 참을 수 있다. 엄마는 천국에 있는 것이 더 좋다. 그곳에는 아빠가 없으니까 안심이다. 

아이는 거친 청소년기를 보냈다. 미션스쿨인 중학교에서 결국 퇴학을 당했다. 하교하는 학생들에게 잔돈을 강제로 빼앗았다. 구치소에서 잠든 그날, 꿈에서 엄마를 보았다. 아빠와 같은 인생을 살겠느냐고 흐느끼는 엄마의 눈물을 보았다. 고아원에서도 흘리지 않은 눈물이 쏟아졌다.

교목은 끝까지 아이의 손을 잡아 주었다. 피해 학생들의 부모를 찾아다니며 용서를 구한 교목의 사랑으로, 아이는 교도소행을 면하고 훈방 조치되었다. 교목은 검정고시 학원을 등록해 주었다.

교목의 사랑과 하늘의 엄마를 가슴에 담으면서 아이는 굳은 결심을 했다. 목사가 되자고. 거리의 아이들과 연락을 끊었다. 고입·대입 검정고시를 통해 신학대학교에 입학했다. 엄마의 천국은 믿음의 초석으로, 교목의 변함없는 사랑은 사명감으로 열매를 맺었다. 입학 동기들과 우정을 나누며 사역자의 꿈을 키워나갔다.

교목의 소개로 결혼을 했다. 꿈 같은 일이다. 두 아들을 낳았다. 부교역자의 박봉은 두 아들을 키우기에 벅차, 생활고 때문에 아내를 일터로 내몰았다. 아들 둘은 다섯 살과 세 살이다. 어쩔 수 없이 아이들만 집에 두고 나가야 할 경우가 잦아졌다.

어린 아이들만 있는 집에서 예기치 못한 크고 작은 사고가 일어났다. 급기야 작은아들이 책상 위로 연결된 스탠드 전깃줄을 흔들다 떨어뜨려 머리를 다쳤다. 큰아들이 고사리손으로 전화를 했다. 다행히 외상 뿐이다. 바늘로 봉합 치료를 마치고 귀가하던 날, 하늘에서 눈이 내렸다.

새로운 환경이 절실했다. 해외선교. 신학교 시절, 언어 동아리 활동을 할 때 막연히 생각했던 선교지가 현실로 다가왔다. 캐나다행은 급물살을 탔다. 지인 소개로 알게 된 교포가 운영하는 캐나다 현지 세탁소에서 아내를 원했다. 아내의 주급은 생각보다 넉넉했다. 아내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우여곡절 끝에 신학박사 과정을 마치고 학위를 취득했다.

교회를 개척하면서 아내와의 불화는 깊어갔다. 여성을 극우대하는 캐나다 문화 속에서, 보수적인 의식으로 살아가는 한국 남편은 설 자리가 없었다. 아내는 교회에 출석하지 않았다. 어느 주일, 찾지 말라는 아내의 메모지가 식탁 위에 있었다.

아내가 사라졌다. 돈을 조금 더 모은 후 개척하자는 아내와의 언쟁이 후회스러웠다. 아내는 해가 지나도록 감감무소식이다. 한국의 처가 식구들도 아내의 행방을 모르는 눈치다. 교포 모임에 자주 참석했던 아내는, 그곳에서 만난 아무개와 밀월 도피했다는 풍문이 들려 왔다. 아들들과 국제 거지가 되었다.

열 명 남짓 출석하던 교인들마저 발걸음을 돌렸다. 식당에서 그릇을 닦고 화장실 청소를 하고 닥트의 먼지를 닦아내며 아들들의 학비를 마련했다. 막내아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한 그해, 목사는 홀로 귀국했다. 이미 캐나다인이 되어버린 아들들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캐나다에서의 삶을 선택했다.

서울 변두리에 주거를 겸할 수 있는 작은 교회를 개척했다. 신학대 동기 여목사와 재혼했다. 삼 년 만에 부흥하여 넓은 성전으로 이전하고, 다시 삼 년 지나 성전을 건축했다. 교회 규모가 제법 커지자 장로들이 사사건건 담임목사의 사역에 참견하기 시작했다. 패거리를 지어 비판하고, 제재하고 심지어 훼방하는 짓까지 서슴없이 했다.

캐나다에서 가출한 아내의 일을 두고 장로들이 담임목사 자격을 거론했다. 교회는 술렁거렸다. 캐나다에 아내를 두고 간통을 했다며 우격다짐을 해댔다. 이혼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설명하는 자리에서, 목사는 장로들에게 뭇매를 맞았다. 피눈물이 흘렀다. 목사는 교회에서 쫓겨났다. 억울하다.

그날 밤, 자면서 이불에 오줌을 쌌다. 죽기를 자청하고 금식기도원을 찾았다. 울분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금식기도 사십 일을 며칠 앞두고 정신을 잃었다. 낯선 천장이 빙글 돈다. 병원이다. 살았다. 모진 인생 험한 길을 다시 걸어가야 한다. 아내에게 기차를 타자고 했다. 지나온 시간들, 모두 쓴웃음으로 지워야 할 얼룩 뿐이다. 

대구 변두리에 지역아동센터를 개설했다. 협소한 곳이지만 빈민층이 많은 마을이라 아이들이 몰려 왔다. 피자 때문이었다. 부부 목사는 아이들에게 피자를 나눠 줬다. 영어 교습으로 벌어들이는 작은 돈으로 피자를 샀다. 아이들이 늘어나면서 피자 조각을 점점 작게 나눠야 했다. 

피자 가게들을 돌아다녔다. 아이들 사정을 이야기했다. 성경을 가르친다는 이유로 문전박대를 당하기도 하면서, 세 군데 피자 가게에서 기부를 약속받았다. 

입춘을 넘는다. 엄동설한 황량한 들에서 연초록 풀이 일어난다. 세월이야 꽃피는 봄이 되거나 말거나, 낙엽 지는 가을이 되거나 말거나, 피자 위에 영생의 약도 잘 그려 알려 주다 보면, 어느 한 날 사무치게 그리던 엄마의 하늘에서 크게 한번 엉엉 울게 되겠지. 내일은 피자 나눠 주는 날이다. 

/하민국 목사(검암 새로운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