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태 총장

옛날 어린 시절 얼음판 위에서 팽이를 치며 놀았던 기억이 있다. 팽이가 돌다가 어느 시점에 이르면 정지된 것처럼 보인다. 흔히 팽이가 섰다고 표현하는데, 정점에 이른 모습인 것이다.

옛날엔 중학교에 입학해야 영어를 배울 수 있었다. 알파벳을 인쇄체 대·소문자, 필기체 대·소문자로 4선지 위에 써 가며 익혔다. 그리고 I am a boy, You are a girl, Good morning, How are you?까지 배우면 자기가 영어를 제일 잘하는 줄 아는 유일한 시기가 온다. 

대개 사람들은 그 뒤로 평생 동안 시간이 갈수록 영어는 어렵다고 느끼며 살아간다. 그래서 깊은 물은 소리를 내지 않는다거나 곡식은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진리를 깨닫게 된다. 두가지 예를 보자.

①쌈닭의 훈련 과정: 기성자(紀渻子)가 임금을 위하여 쌈닭을 훈련시켰다. 열흘이 지나서 임금이 물었다. "훈련이 끝났는가?" "아직입니다. 그들의 교만함이 성하여 자주 말썽을 부려 시합장에 내보낼 수 없습니다." 또 열흘이 지나 임금이 다시 물었다. "아직입니다. 지금도 여전히 함께 있는 무리들의 움직임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냉정을 유지하지 못하는 상태입니다." 다시 열흘이 지나 임금이 또 물었다. "아닙니다. 지금도 여전히 이쪽저쪽을 두리번거리고 기가 아주 드셉니다."

또다시 열흘이 지나 임금이 물었다. 기성자는 "얼추 되어갑니다. 지금 출전시키면 상대방이 큰 소리를 내거나 위협적인 자세를 취해도 조금도 두려운 기색 없이 침착하여, 마치 나무로 깎아 놓은 닭(木鷄) 같아 쌈닭으로서 자세를 잘 갖추었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기성자가 이 쌈닭을 데리고 시합장으로 나가자, 다른 닭들은 모두 전의를 잃고 꼬리를 내린 채 도망가고 말았다. "약골이 살인낸다"는 말도 어설픈 위인이 자기 과시와 교만에 빠지기 쉽다는 뜻이다.

②신궁이 태어나는 과정: 감승(甘繩)은 옛날 활 잘 쏘기로 이름을 떨쳤다. 그가 활을 당기기만 하여도 짐승이 엎드려 기고 새가 땅으로 떨어졌다. 비위(飛衛)라는 제자가 감승에게 활쏘기를 배웠는데, 솜씨가 그의 스승을 뛰어넘었다. 기창(紀唱)은 또 비위에게 활쏘기를 배웠다.

비위는 기창에게 "너는 먼저 눈을 깜박이지 않는 것부터 배우고 나서야 활쏘기에 대하여 말할 수 있다"고 일렀다. 기창은 집에 돌아와서 자기 아내의 베틀 아래에 누워, 북이 왔다갔다 하는 것을 두 눈으로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2년이 지난 뒤 북의 끝이 눈에 떨어져도 눈을 깜박이지 않게 되었다. 기창은 자기가 그런 수준에 이르렀음을 비위에게 보고하였으나, 비위는 "아직 멀었어. 다시 보는 것을 배워야 한다. 작은 것이 크게, 희미한 것이 분명하게 보이게 되면 그때 나에게 알려라"고 일렀다. 

기창은 이(虱)를 머리카락에 묶어 창문에 매달아 놓고, 그 쪽을 향하여 바라보기 시작하였다. 열흘이 지나자 점차 크게 보였고, 3년이 지난 뒤에는 수레바퀴만큼 크게 보였다. 그러한 시력으로 다른 물건을 보니 모두 산만큼 언덕만큼 크게 보였다. 시력이 그만한 수준에 이른 다음, 기창이 명품 활에 명품 화살을 재어 쏘니 이의 심장을 관통했는데 이를 매달았던 머리카락은 끊어지지 않았다.

이 사실을 스승인 비위에게 알리자, 비위는 펄쩍펄쩍 뛰면서 가슴을 쳤다. "자네, 이젠 되었네!" 하고 기뻐하였다. 금년 83세 되신 이병한 박사가 저술한 <세월이 빚어낸 지혜와 웃음>에서 일러 주는 훈수이다.

빈 수레가 요란한 법이다. 곡식은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 사람이 똑똑하면 윗사람과 아랫사람을 분간할 줄 안다. 그리고 남 앞에서 겸손하게 자기 처신을 하는 법이다. 가벼운 겨처럼 흩날리지 않기를 바란다. 

힘 깨나 쓰는 사람은 웬만하면 싸움에 나서지 않는다고 한다. 부자는 틀어쥐고 안 써서 모으지만, 가난뱅이들은 생기는 족족 써서 더 가난해진다고 한다. 영문도 모른 채 흥분해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어디서나 비전문가들이라고 한다. 멋모르는 청백리만 먼 시골에서 원리원칙을 따지다가 불이익을 받는다고 한다. 한양대 정민 교수의 전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