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민국 목사.

누구에게나 처음 마음먹은 기억들이 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소중한 기억들이 있고, 선한 목적을 실현케 하는 다짐이나, 가슴 아픈 상처를 씻고자 하는 기억들이 있다. 

인생은 기억을 통해 현재를 과거로 돌이키는 과정이다. 오늘은 곧 과거의 씨앗이며, 미래라는 열매를 맺기 위한 인생들의 가치관은 소중한 기억들을 거름 삼아 자라난다.

그래서 기억은 곧 존재 이유이다. 꽃을 바라볼 때, 숲길을 걸을 때, 정겨운 바람결에, 첫눈 내리는 하늘을 바라볼 때 떠오르는 기억들이 있다. 어느 순간 가슴을 파고든 첫 기억들이 저마다 소중한 의미로 저장되어 있다.

인생들은 모두 기억들을 저장하며 살아간다. 아름다운 추억을 위해, 취약한 부분을 해소하기 위해, 통렬한 반격을 위해, 보람 있는 헌신을 위해, 인생들은 저마다 의미 있는 기억들을 저장하며 살아간다. 

그렇다고 기억하고 싶은 환희의 시간만 있는 인생일 수 없다. 인생들은 누구나 아름다운 시간은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고, 아픈 상처들은 기억에서 지우고 싶어한다.

기억만큼이나 소중한 감각은 망각 기능이다. 망각이라는 지우개가 존재하기 때문에 가슴 시린 이야기들을 지울 수 있다. 더러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몸서리칠 기억들을 지울 수 있기 때문에, 아무리 어렵고 두려운 환경일지라도 새로운 소망을 발원시킬 수 있게 된다. 

정치권이 연일 시끄럽다. 국회의원들은 사리사욕에 빠져 국정 운영의 발목을 잡고, 재선을 위한 당리당략으로 난리 북새통이다. 여당과 야당의 짓거리를 보노라면, 마치 왜란을 대비하자는 의견에 무조건적으로 반대하던 동인과 서인의 대립을 연상케 한다. 

국민을 위한다는 명목 아래 떠벌리는 정치인들의 말은 술책에 불과하다. 우선적으로 내뱉고 무조건적으로 응대하는, 반대를 위한 반대 의견들을 당략으로 행하는 정당들의 모습은, 양의 탈을 쓴 이리의 형상과 다를 바 없다. 

대통령이 국정에 대한 신년 기자회견을 하던 그 날, 이를 훼방하려는 놀부의 심보로 같은 날 신년 기자회견을 계획했다는 사람이 현재 제1야당의 수장이다. 자신도 대권을 꿈꾼다는 사람이 참으로 버르장머리 없는 사고로 살아가는구나 싶어 가슴 언저리가 저리다.

그러나 세상이야 그렇고 그렇다 치더라도, 한국 교계는 더욱더 망각하고 싶은 기억들이 부표처럼 총체적인 타락과 위선 속에서 표류하고 있다. 

대형 교회는 대형 사건, 중형 교회는 그보다 충격이 덜한 사건, 작은 교회는 작은 사건에 연루된다는, 교회의 크기와 타락은 정비례한다는 조롱이 난무할 만큼 목회자들의 타락은 끊임없이 드러나고, 그리스도의 권세를 잃어버린 교인들은 들판에 흩날리는 눈발처럼 세상 풍조에 녹아들고 있다.

어찌 하나님 성전에 헌금이 쌓여 있을 수 있을까? 언제나 부족할 정도로 하나님나라 확장과 선교를 위해 쓰여야 할 헌금들이 교회 재정으로 쌓여 주체하지 못하고, 일부 우상숭배 수준의 탐심에 노출된 지도자들이 세상 물질처럼 사리사욕을 채우는 데 사용하고 있으니 참으로 천만 번 개탄할 노릇이 아닐 수 없다.

기도원, 수련원, 훈련원이라는 명분으로 확장되고 있는 교회들의 부동산 투기는 물론, 몇몇 대형 교회의 재정에 의지하고 있는 방송과 언론, 총회들마저 지도자들의 타락을 방조하며 한국 교계를 영적 암흑기로 몰아넣고 있다. 

기억을 되살려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환희의 그 날, 영생을 은혜로 받은 기쁨의 그 날에 가슴 깊이 각인한 초심을 꺼내들어야 한다.

생명 가진 자가 인생 중에 가질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얻은 그 날, 성령충만한 영안으로 바라본, 썩을 것들을 위한 몸부림의 세상 속에, 지금 병들어 누워 있는 자화상을 들여다 보아야 한다. 

그래서 반드시 찾아야 한다. 초심. 영원히 살 수 있는 길로 발걸음을 내디디게 된 은혜의 그 날, 세상 것 다 내동댕이칠수록 배부르던, 가슴 벅찬 감동으로 흘리던 환희의 눈물을 오늘 우리는 꼭 기억해 내어야 한다.

/하민국 목사(검암 새로운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