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 목사(호주기독교대학 학장) 부부.
▲김훈 목사(호주기독교대학 학장, 호주가정상담협회 회장, 호주가정사역센터 대표) 부부.

강산이 반 정도 변한 다음 한국을 방문한 일이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가족들과 오랫동안 보지 못한 지인들을 만나는 기쁨이 가슴을 설레게 해서, 3주라는 시간은 무척이나 아쉬움을 남기며 봄꽃이 지듯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렇지만 두 번의 가정 세미나와 가족들과의 짧은 여행, 그리고 학교 선배들과의 만남은 오랫동안 가슴에 남았습니다.

서울의 성문교회에서 가정 세미나를 하기 위해 올라가던 날, 제가 늘 잘 따르던 학교 선배 두 명을 만났습니다. 식사를 한 후 아담한 찻집에서 늦은 시간까지 담소를 나누며 하나님께 감사드렸던 것은, 두 분이 아직도 변함없이 학창시절에 하나님께 받았던 비전을 좇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한 분은 부흥 사역으로 잘 알려진 고형원 전도사님의 아내로 네 명의 아이를 홈스쿨링을 하면서 키우고 있었고, 또 다른 한 분은 'GT'라는 청소년 큐티 사역을 하며 유대인 학습법으로 학생들을 키우고 통일을 준비하는 '대한학교' 설립을 계획하고 있었습니다.

"난 내가 아주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막상 아이들을 키우다 보니 아이들에게 본의 아니게 상처를 주는 일들이 발생하는 것 같아. 그래서 결심한 것이, 내가 잘못한 것이 있으면 아이들에게 꼭 사과를 해서 '용서'를 구하기로 했어"라는 선배의 말이 가슴에 잔잔하게 와 닿았습니다.

마가렛 런벡은 "사과는 감미로운 향기다. 그것은 가장 불편한 순간을 자애로운 선물로 변화시킬 수 있다"고 했고, 게리 채프먼은 "완벽한 세상이라면 사과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이 불완전하기 때문에 우리는 사과 없이 살아갈 수가 없다"고 그의 책 '다섯 가지 사과의 언어'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더 성숙되고 마음이 부드러워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상처로 인해 마음이 완악해지고 더 많이 굳어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사과를 통한 용서를 경험하지 못할 경우 마음의 상처는 분노로, 그 분노

는 적개심으로, 적개심은 쓴 뿌리로 사람에게 남게 됩니다. 쓴 뿌리가 가득한 사람은 원망과 미움의 눈을 갖고, 과거에 머물러 있거나 현재를 자기 중심적으로만 살아가게 됩니다.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는 순결한 아이의 눈을 가지려면, 그리고 그렇게 깨끗한 우리 아이들의 눈에 분노와 원망이 생기지 않게 도우려면, 아이들에게 사과할 줄 아는 겸손함을 우리는 배워야 할 것입니다. 많은 부모들이 아이가 어떤 것을 잘못했을 때 쉽게 야단을 치지만, 막상 자신이 잘못했을 경우에는 구렁이가 담장을 넘어가듯 쉽게 무마해 버립니다. 다 지나간 일을 되짚어 사과하는 것이 멋쩍기도 하고, 익숙하지 않기도 하고, 자존심 때문에, 또 아이에게 연약함을 보이기 싫어서 사과하지 않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모든 인간 관계는 사과를 필요로 합니다. 부부 관계, 자녀와의 관계, 친구와의 관계, 직장 동료와의 관계 모두가 사과를 필요로 합니다. 사과가 없을 때 마음에 분노와 미움이 쌓여서, 나쁜 경우 그것이 폭력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아이가 부모의 실수로 울고 있었습니다. 한참 동안 "아프겠다. 울지마, 뚝, 엄마가 일부러 그런 거 아니야"라며 상황을 마무리하려고 했는데 아이는 여전히 울고 있었습니다. 갖은 노력이 다 허사였습니다. 그런데 "엄마가 실수했어, 미안해, 용서해 줘. 응? 다음에는 조심할게" 라고 하자 아이가 언제 그랬느냐는 듯 금세 울음을 그치는 것을 보았습니다. 사과의 놀라운 힘을 볼 수 있는 순간이었습니다.

관계 가운데서 조금만 더 사과할 용기를 가질 수 있다면, 그리고 사과를 하기 위해 자존심을 조금만 더 굽힐 수 있다면, 부부 관계와 자녀와의 관계에 건강함과 평화가 훨씬 더 많이 찾아올 것입니다. 그리고 사과는 구체적일 때 더 효과적이며, 이후에 '하지만'이라는 토를 달지 않는 것이 좋고, 가식적이지 않으며 진실해야 합니다. 사과 편지를 쓰는 것도 도움이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용서는 과거를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확장시킨다"(폴 보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