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양원의 옥중서신
▲기자간담회에서 이성희 목사(가운데)가 발언하고 있다. 오른쪽은 최상도 박사, 왼쪽은 이치만 교수. ⓒ이대웅 기자

손양원정신문화계승사업회(이사장 이성희 목사, 이하 사업회)가 추진 중인 '손양원 전집 발간'의 첫 결과물인 <손양원의 옥중서신>을 발간했다. 

손양원 목사가 일생을 통해 보여 준 자기희생적 사랑과 용서의 정신을 한국교회와 사회에 널리 알리고 후대에 계승하여 정신문화로 발전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설립된 동 사업회는, 이사장 이성희 목사와 연구진이 참석한 가운데 21일 오전 서울 연동교회(담임 이성희 목사) 카페 다사랑에서 이를 설명하는 기자간담회를 개최했다.

책은 1부 현대어 원본과 2부 활자화·사진 원본으로 구성됐으며, 손양원 목사가 일제 시대에 감옥에 갇혀 가족 등과 주고받은 서신 73통 전문을 수록하고 있다. 연구진은 애양원에 전시된 친필 유고들의 유리를 해체하고 전문 업체에 맡겨 고해상도 사진 촬영과 스캔 작업을 진행했으며, 완료 결과 총 분량이 6,700쪽에 달했다.

이사장 이성희 목사는 "아시는 대로 손양원 목사님은 한국교회가 잊을 수 없는 순교자이면서, 좋은 신앙과 인격을 가졌던 분이셨다"며 "전집 발간을 위해 여수 애양원과 성산교회가 소장한 모든 기록들을 디지털화했는데, 이 작업을 하면서 감사했고 자부심을 느꼈다"고 밝혔다.

이 목사는 "손 목사님의 기록을 검토하면서, 남긴 글들만 갖고도 한국교회에 많은 공헌을 할 수 있고 감동을 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한국교회에 좋은 순교자이자 신앙인 선배가 있다는 자체가 자랑스럽고 감사한 일로, 총 10권 내외를 출간할 예정인데 한국교회에 큰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그는 "한국교회는 앞으로 '순교'까지는 아니더라도 '순교의 정신'이 굉장히 중요해지는 환경이 될 것"이라며 "책 발간을 통해 이러한 정신과 신앙으로 한국교회를 섬길 분들이 많이 나온다면 굉장히 감사한 일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편역과 해제를 함께한 이치만 교수(장신대)는 "가장 힘든 작업이 손으로 쓴 글씨들을 활자화하는 것이었다"며 "글자 자체가 해독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었지만, 편지가 오래돼 훼손되거나 글자가 휘발된 경우들이 있어 정확하게 내용을 파악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보고했다. 

이 교수는 "친필 유고들을 더 연구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모두 담아낼 계획"이라며 "2010년 1차 조사 때만 해도 옥중서신이 93편이었는데 이번에 73편밖에 남지 않을 정도여서, 서둘러서 작업하는 중"이라고 했다.

손양원의 옥중서신
▲해방 후인 1946년 11월, 손양원 목사가 손수 작성한 이력서(책 6-7쪽). ⓒ사업회 제공

영국 에든버러대학교에서 '순교사(史)'를 공부한 최상도 박사는 "손양원 목사님은 아버지인 손종일 장로님과 서신을 교환하면서 가끔 한자어를 빌려 쓰기(음차)도 했고, 옥편에 나오지 않는 한자나 약어를 사용하기도 했다"며 "한 글자를 풀기 위해 짧게는 1주, 길게는 한 달간 관련 한자 서적을 뒤진 적도 있었다"고 회고했다.

연구 중 인상적이었던 서신에 대해 최 박사는 "아버지인 손종일 장로가 만주로 가시는 등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졌다는 소식을 듣고 옥중에 있는 자신을 한탄하는 부분(책 119쪽)이 나온다"며 "시대적 상황을 신앙으로 이겨내려는 손양원 목사님의 인간적인 모습들을, 발간 작업에 참여하지 않았다면 결코 알 수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이성희 목사도 "아들 동인이와 손양원 목사님이 옥중에서 주고받은 편지가 생각보다 많았는데, 아들 입장에서 아버지를 생각하고 아버지 입장에서 아들을 생각하는 등 부자(父子) 사이가 굉장히 애틋했다"며 "그런 아들을 먼저 순교자로 보낸 손 목사님이 어떠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저도 아들 키우는 입장에서 가슴이 아렸다"고 말했다.

이치만 교수는 "아들 동인 앞으로 보냈지만 사실 아버지에게 띄우는 서신 내용 중, 출소 예정일에 오히려 무기구금형을 받은 날로 손양원 목사님은 물론 가족들이 큰 충격을 받은 장면이 있다(54쪽)"며 "그러나 손양원 목사님은 오히려 가족들을 위로하는 모습이 나오는데, 이를 번역하면서 손 목사님이 인간적으로 얼마나 큰 사람인지 느껴져 뭉클했다"고 밝혔다.

그는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아픔을 억눌러 가면서 연로하신 아버지를 걱정하는 마음이 절절히 나타나는 장면"이라며 "그동안 '손양원 목사님'은 한국 기독교의 큰 인물이라는 관념으로 다가왔다면, 서신에서는 인간 손양원이 걸어 나오는 듯한 느낌이 들고 인간적인 모습을 입체적으로 볼 수 있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이성희 목사는 "미국 유학 전후 영락교회에서 일했는데, 옛날 주보를 정리하다 굉장히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며 "한국전쟁 몇 주 전 손양원 목사님이 영락교회에서 설교하셨던 기록이 있었는데, 제목이 '순교의 각오로 삽시다'였다"고 소개했다. 그는 "이를 통해 손양원 목사님은 6·25 전쟁 때 순교당하신 게 아니라, 이미 평생을 순교의 정신으로 사셨던 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전했다. 다음은 손 목사가 옥중에서 쓴 한시.

손양원의 옥중서신
▲편저 이치만, 최상도, 임희국 | 넥서스CROSS | 404쪽 | 25,000원


본가를 멀리 떠나 옥중에 들어오니(遠離本家入獄中) /깊은 밤 깊은 옥에 깊은 시름도 가득하고(夜深獄深滿愁深) / 밤도 깊고 옥도 깊고 사람의 시름도 깊으나(夜深獄深人愁深) / 주와 더불어 동거하니 항상 기쁨이 충만하도다(與主同居恒喜滿) /옥중 고생 4년도 많고 많은 날이나(獄苦四年과多日) / 주와 더불어 즐거워하니 하루와 같구나(與主同樂如一日) / 지난 4년 평안히 지켜주신 주님(過去四年安保主) / 내일도 확신하네 여전한 주님(未來確信亦然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