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주

6. 내부자들의 상황화 공동체

하나님을 경배하고 찬양하고 복음을 전하는 기독교와 달리, 이슬람은 정교일치의 종교이고 그들의 모스크는 예배·정치·경제·사회·교육·사법 등 모든 삶의 중심이다. 그러므로 내부자운동 지도자들이 모스크를 기독교의 교회와 같은 기능으로 생각하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

내부자운동가들의 상황화 이론은 "하나님이 각 사람을 부르신 그대로 행하라"는 성경 말씀(고전 7:17, 20, 24)을, 예수를 따르는 무슬림들은 무슬림 문화 속에 그대로 머물라는 뜻으로 해석한다. 또 바울이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하여 "유대인과 같이 된 것", "율법 아래 있는 자 같이 된 것", "약한 자와 같이 된 것", 율법 없는 자 같이 된 것",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이 된 것"(고전 9:19-23)에 대해서도, 무슬림을 선교하는 기독교 선교사들이 "무슬림처럼 되는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내부자운동의 리더들은 내부자 신도를 기존 교회에 연결하지 않고 현지 모스크에서 알라에게 절하며 '샤하다'를 고백하는 것과 성지순례를 허용한다. '샤하다'는 "알라 외에는 다른 신이 없고, 무함마드는 알라의 사도(전령)"라는 것을 알고 이에 증인이 된다는 뜻으로, 이슬람의 다섯 기둥 중에서 가장 중요한 항목이자 근본이다. 이 샤하다를 반복해서 이 깨달음이 각자의 존재 속으로 파고 들어가게 하는 것이다. 이렇게 내부자들은 이슬람을 떠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위와 같은 내부자운동의 상황화 이론은 크게 잘못된 것이다. 하나님이 "아버지"이심과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제거하여, 비슷한 하나님과 예수를 전하는 일은, 비록 좋은 의도로 시행했을지라도 크게 잘못을 저지른 것이다.

상황화란 성경적 기독교의 핵심신앙인 하나님을 아는 것과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을 왜곡해도 된다는 말이 아니다. 갈라디아서 1장 6-10절의 말씀은, 비록 복음을 기록한 사도 자신일지라도 복음 자체를 변질시키면 저주를 받는다는 무서운 선포다.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을 따르는 것을 내가 이상히 여기노라.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교란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가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 지어다(갈 1:6-10)."

이에 대한 대표적 반론은 내부자운동가이자 종교다원주의자인 케빈 하긴스가 "이방 주술사 발람이 하나님과 대화 내지 교제를 한 것과 같이, 무슬림도 하나님을 경배할 수 있고 하나님께 복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발람은 모압왕 발락이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고 이스라엘을 저주하려 할 때 하나님이 막으심을 알아차리고 억지로 순종한 것이다. 그러다 그는 결국 이스라엘에 올무를 놓아 바알브올에 부속시키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고 행음하게 함으로,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큰 화를 당하게 하였다(민 31:16, 계 2:14).

성경에도 증언된 바와 같이 모든 악한 영들과 더러운 귀신들도 하나님이 계심을 인정한다. 그 중 먼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알아본 것도 악한 귀신이었다(막 5:7). 문제는 악한 영들도 하나님을 알고 떨지만, 그분을 사랑하거나 섬기지 않는 것이다(약 2:22).

케빈 하긴스는 행 17장 바울의 아덴의 아레오바고 연설문에 관해서 아래와 같이 주장한다. "다른 종교를 믿으면서도 진정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 하나님께서 세상 만민에게 서로 다른 문화를 주시면서 그들 모두 하나님을 구하고 만나도록 하셨다. … 아테네인들이 서로 다른 제단을 만든 것은 하나님의 뜻이다. 언젠가 그들이 참된 하나님을 찾고 만나게끔 하나님께서 그렇게 미리 계획하신 것이다."

하긴스는 또 사마리아 교인들이 자신들의 신전에서 하나님을 섬겼다고 하며(요 4장), 이 같이 기독교인들도 이슬람 신전에서 하나님을 섬길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우리가 알 것은 성경에는 사마리아 교인들이 예배한 장소가 명시되지 않았고, 다만 사마리아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고 했다. 베드로는 사마리아 교회에 속한 세례교인 주술사 시몬에게 "이 도에는 네가 관계도 분깃 될 것도 없다"며, 그의 주술신앙과의 불연속성을 확실하게 선포하며 책망하였다(행 8:4-25).

교회는 원래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바른 고백에 의해 세워진 것이다. 베드로가 마침내 예수를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개념 아래 "그리스도"이심을 고백하면서 교회가 세워졌던 것이다(마 16:16-18).

독일어로는 교회를 Kiche와 Gemeinde로 구별한다. 성경적 "교회"는 Gemeinde이며, 이는 원래 건물과 제도보다 하나님이 세상에서 불러내어 그리스도의 지체가 된 '공동체'를 의미한다.

모든 종교인들이 추구하는 "신들"을 하나님이 "참 하나님을 섬기도록 예비하신 것"이라고 보는 케빈 하긴스에게는 영 분별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아레오바고에서 바울이 다가오는 하나님의 심판을 앞두고 모든 사람에게 회개를 명한 것을 간과하고 있다.

성경적 개념의 회개는 하나님을 우상과 함께 섬기거나 동일시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우상을 제거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이다. 무슬림이 모스크에 머물면서 전통적 교회와는 분리된 채 이슬람의 문화적·종교적 행사에 두루 참여하는데도, 그들이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왔다고 볼 수 있겠는가?

예수께서 성육신으로 오신 것과 그의 대속의 보혈을 거부하고 예수를 하나의 피조물이며 선지자 중의 하나로 여기는 무슬림들에 대하여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은 아래와 같이 경고한다. "하물며 아들을 짓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가 당연히 받을 형벌은 얼마나 더 무섭겠느냐(히 10:29)."

모든 무슬림 영혼을 사랑하는 우리는 모든 구도자 무슬림들이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기쁜 소식을 전달해야 한다. 하나님께 범죄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의 관계가 비참하게 끊겨 버렸으므로 불지옥으로 던져져 멸망할 수밖에 없는 인간에게, 하나님이 구약과 신약에 거듭 약속하신 이 큰 구원의 선물을 모든 무슬림들을 포함한 세상 사람들에게 시급히 알려야 한다.

참 사랑의 하나님이 주시는 이 구원의 선물은, 누구든지 간절히 원하는 구도자마다 다 받을 수 있다(요 3:16). 그 선물은 하나님이 자신을 떠난 사람들에게 친히 찾아오시며, 모든 원하는 사람들에게 친히 다가 오셔서 죄악과 마귀의 쇠사슬을 풀어 주시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몸소 십자가에서 그 죄의 대가를 받아주셨기 때문이다(막 10:45). 그러므로 당사자가 지불해야 되는 죗값이 더 이상 남아 있지 않고, 그는 죄악과 마귀의 종에서 풀려나 영원히 자유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이다.

◈내부자운동의 세계관에 대한 변증과 결론

내부자운동가들은 성경 번역을 위해 기독교 복음의 핵심 개념들을 꾸란의 내용과 개념으로 대체하고 있다. 내부자들 제2세나 3세 혹은 무슬림 구도자들이 꾸란적 전제를 가지고 내부자 성경을 읽는다면 꾸란적 개념으로 이해될 수 있는 혼합주의적 성경을 창작했다. 이 성경을 통해 차세대가 접하게 되는 분은 삼위일체 하나님이 아니라 '알라'이며,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 알라의 종이고 선지자일 뿐이다.

내부자운동 지도자들은 아버지와 아들의 이름을 제거하고 어떻게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마 28:19) 세례를 베풀 것이며, 또 전통 교회와 단절된 상태에서 항상 모스크에 거하는 그들에게 세례를 수행할 필요를 느끼겠는가?

내부자들의 번역성경과는 대조적으로, 성경은 하나님이 "아버지"이심을 드러내 우리에게 알게 하시려고 메시아를 보내셨음을 절대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알게 하옵소서(요 17:21)."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었는데 내게 주셨으며 그들은 아버지의 말씀을 지키었나이다(요 17: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 같이(요 17:18)."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 7:21)."

예수께서 이 같이 말씀하였는데, 하나님의 아들과 관계없는 자가 어떻게 아들에게 다가갈 것이며, 아들의 영을 받을 것인가?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짓느니라.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나니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상속자니 우리라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롬 8:14-17)."

갈라디아서 4장 4-7절에도 이와 같은 가르침이 있다.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에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네가 이 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이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받을 자니라"

요한일서 3장 1절의 증거대로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받게 하셨는가?" 하고 탄복하며 감사할 뿐이다. 우리에게 이 같이 대우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은 측량할 수 없는 것이다.

내부자 신앙인들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알지 못하고, 하나님 아버지와 관계를 맺지 못하고,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시인하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과 관계를 맺지 못하게 된다. 이 사실은 치명적이다. 매일 모스크에서 샤햐다(무슬림 신앙고백)를 거듭하며 반삼위일체적 유일신과 반기독론적 메시아를 믿는 내부자들이 구원을 받을 수 있겠는가?

예수께서 친히 하신 위 말씀들을 결단코 소홀히 여길 수 없다. 그런데 예수에 대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고백조차 하지 못하고 어떻게 구원을 받을 것인가? "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면 하나님이 그의 안에 거하시고 그도 하나님 안에 거하느니라(요일 4:15)"는 말씀과 같이, 모든 진실한 성도가 받는 성령의 임재 조건을, 내부자들은 성경 번역을 통해 분명히 알려야 한다.

내부자운동 리더들은 성경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을 것이지만,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을 전하지 않음으로 인해 더 이상 하나님의 자녀들이 태어나지 않게 된다. 더욱이 위험스러운 것은, 새 신자들이 기존 교회와 관계를 갖지 못하고, 모스크에 남은 자칭 "무슬림"이라는 분별력 없는 제2세나 3세들은 이슬람의 영적 분위기 속에 이슬람적 고백을 하고, 이슬람 의식을 행하고 가르침을 받고, 그들의 딸들은 무슬림 남자들과 결혼할 것이며, 그들은 이렇게 점진적으로 순수 무슬림들이 되어가는 일이다.

그들은 이슬람 법에 의해 한 번 무슬림이 된 사람은 영원히 그리고 대대로 무슬림이 되어야 하는 운명에 처하게 된다. 게다가 꾸란은 알라의 배신자를 죽이도록 명하고 있으니(Sura 4:89), 복음적 신앙이 생명보다 귀하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차세대가 순교 신앙으로 개종에 이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상황화 이론에 있어 고린도전서 9장 19-23절의 '문화 다원주의'와, 갈라디아서 1장 6-10절의 '진리의 유일성'을 혼동해선 안 된다. 문화의 의식과 예식과 윤리는 다원적일 수 있으나, 신론, 창조론·기독론·인간론·성령론·구원론·교회론·종말론 같은 성경적 진리들은 타협할 수 없는 항목이다. 갈멜산에서 엘리야가 외친 바와 같이, 여호와가 하나님인지 바알이 하나님인지를 구별해야 한다. 아버지와 아들과 같은 신적 본질을 숨기면서 무슬림들의 영혼을 구원하려고 하는 처사는, 성경적 진리를 기준으로 판단할 때 불가능하다.

이미 꾸란은 무수히 기독교 경전을 이용하여 그 본래 핵심 내용을 분쇄했고, 기독교 삼위일체 신관에 대해 반(反)신적이며, 예수의 신성에 대해서 반기독적이고, 아버지와 아들의 영인 성령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하는 반영적 문서이며, 십자가와 부활을 부정하여 구원의 길을 차단해 버린 반구원적 이단서적이다. 또 예수 그리스도 위에 교조를 올려놓고, 그를 최종시하는 "기독교 이단들"의 특징을 모두 지니고 있다. 이슬람교는 보통 종교 중의 하나가 아니라 기독교를 파괴하는, 세계에서 가장 큰 이단이며 적그리스도의 영이다(요일 2:22-23).

필자는 꾸란적 신앙고백과 유사한, 내부자운동을 위한 새 성경번역들이 존재하지 말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으면 내부자운동의 다음 세대는 우상과 함께 거하며 마음이 둔해지고 분별력이 없어져, 점차 이슬람의 지배를 받고 그 영혼들이 죽게 된다(롬 1:19-32). 모든 무슬림들은 어린양이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대속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야 한다. 하나님이 계시하신 말씀대로 믿고 회개할 때, 약속대로 성령이 강림하시고, 그들은 그리스도인으로 새 사람이 되고 성경적인 세계관을 가지게 된다.

아버지와 아들이 없는 반삼위일체적 교리로는 마음의 변화를 경험하지 못하고 새사람이 되지 못한다. 따라서 결코 성령도 받지 못한다. 하나님이 구약에 약속하시고, 십자가를 지시기 직전 또 약속하시고, 부활 후 승천하시기 전 다시 약속하신 대로 성령을 받는 사람은, 혼합주의자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대속함 받은 철저히 회개한 사람이다(행 2:38).

회개란 과거의 비기독교적 유산을 끌고 기독교에 들어오는 것도 아니고, 기독교를 타종교 속으로 끌고 들어가는 것도 아니다. 회개는 우상과 죄악과 인본주의를 철저히 파쇄하는 것이고, 하나님 말씀인 성경적 가르침과 불연속성(discontinuity)을 이루는 타종교의 세계관과 철저히 분리하는 것이다.

고린도후서 10장 4-5절의 타종교들의 이론과 충돌할 때, "우리의 싸우는 무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어떤 견고한 진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모든 이론을 무너뜨리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니"라고 함과 같이, 성령께서 개입하심으로 영혼 구원을 위한 진리 대결에서 승리하는 것이다.

이슬람 세계관의 특징은 물질적이라는 것이다. 첫 사람 아담 이래 보편적으로 타락한 죄인들이, 문화적 유산에 의해 인간의 타락도, 회심도, 성령과 그 강림도 알지 못하고, 신앙인의 인격적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 오직 물질적인 천국과 구원을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꾸란은 천국을 일부다처의 세계이며(Sura 37:48-49; 38:52; 44:54; 52:20; 56:37), 술과 강물이 흐르는 곳으로 소개하고 있다.

'계시 수령자'였던 무함마드 역시 하나님의 특성인 거룩성을 담지 않았고, 수 년 사이에 27회나 전쟁과 약탈을 일삼았으며, 아내를 10명 이상이나 둔 육적인 사람이자 죄인이었다. 무함마드는 구원 수여자가 아니라, 구원을 기다리는 다른 무슬림들과 동일한 위치에 처해 있었다. 꾸란은 무함마드의 죄를 지적하고, 그는 자신의 죄악 때문에 알라에게 기도해야 했다.

"그러므로 하나님 외에는 신이 없음을 알라 그리고 그대의 잘못과 믿는 남성과 믿는 여성의 과오를 위해 구하라(Su:ra 47:19)."

"그것은 하나님께서 지나간 그대의 과오를 용서하고 그대에게 그분의 은혜를 충만케 하며 그대를 올바른 길로 인도하시며(Su:ra 48:2)."

Adel-Theodor Khoury의 저서 'Gebete des Islams(이슬람의 기도들)'에는 무함마드가 알라에게 자신의 죄에 대한 용서를 구하는 무수한 기도문들이 수집돼 있다.

"…믿는 자들이여 그분께 축복을 드리고 정중한 인사를 하라(Sura 33:56)"고 하여, 무슬림들은 이미 죽어 오래된 무함마드에게 평안을 빌어 주어야 한다. 모든 "경건한 무슬림"의 서적들도 무함마드의 이름이나 선지자라는 칭호만 나올 때마다 죽은 무함마드에게 반복적으로 "May the blessing and peace of Allah be upon him"이라고 축복하는 것을 읽을 수 있다.

무함마드는 하나님의 자녀도 성령의 사람도 아니고, 아래 구절과 같이 평생 사탄과 영마의 유혹을 두려워하며 살았던 평범한 아라비아 베두인이었다.

"창조된 사악한 것들의 재앙으로부터 보호를 구하며 어둠이 짙어 가는 밤의 재앙으로부터 보호를 구하며 시기하는 자의 재앙으로부터 보호를 구하노라(Su:ra 113:2-5)."

"인간의 흉중에 도사리는 사탄의 재앙을 인간의 가슴속에서 유혹하는 사탄의 유혹을 영마와 인간의 유혹으로부터 보호를 구하나이다(Su:ra 114:4-6)."

위의 꾸란 구절들로 알 수 있듯, 무함마드를 포함한 무슬림들은 주변문화적 '진'에 대한 공포와 그것들의 지배에서 해방되지 못했다.

내부자운동의 위험성은 바로 이러한 이슬람과 기독교를 다 끌어안고, 진정한 회개를 하지 못하는 데 있다. 이러한 혼합주의 신앙 안에는 위와 같은 '진들'이나 거짓 영들이 역사하기 마련이다.

이슬람에는 "진"이라는 마귀 개념은 있어도, 거짓 영이나 거짓 선지자라는 개념은 없다. 따라서 진정으로 회개한 사람에게 임하시는 거룩한 영(성령)을 알지 못하고(행 2:38), 하나님의 나라를 선취하여 맛보는 기쁨과 감사와 평강도 경험하지 못한다(롬 14:17).

회개는 영적 전쟁을 동반하고 이슬람은 세상 무기로 개종자들에게 다가오지만, 회개를 통해 예수께 나아온 자들은 공중의 악한 권세자들과 영적 무기로 싸워 이기게 된다(엡 6:10-18). 회개한 사람은 성령의 사람이 되고(행 2:38), 마귀의 통치에서 벗어난다. 그는 영적 변화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받고, 항상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은혜의 통치를 받으며, 율법을 지킬 수 있게 되고, 사랑의 사람이 된다.

이러한 기독교 세계관과는 대조적으로, 내부자운동은 혼합주의로 말미암아 기독교 중심 진리를 분실하게 된다. 내부자운동이 하나님에게서 부성을 제거한 호칭,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신성을 제거한 호칭을 사용하는 것은, 삼위일체 하나님과 메시아의 이슬람화이다. 내부자운동의 차세대는 결국 꾸란의 알라와 꾸란의 메시아를 믿게 되는 위험에 노출되었다.

내부자들은 요한일서 2장 22절에서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아버지도 없다"는 말씀을 명심하고, 하나님 아버지와 관계를 맺고, 하나님의 아들과 친밀한 관계를 이루는 신앙인들과 그 후예들이 되도록 내부자 성경을 정통적인 성경 사본들과 똑같이 번역해야 될 것이다. 절대로 성경 말씀을 가감하면 안 된다(계22:18).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하는 것은 복음적 신앙의 입문이고, 초신자 세례의 조건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지식은 예수 그리스도의 세례식 때(마 3:17)와 변화산상에서 하나님 아버지께서 직접 계시하심에 의한 것이다(마 17:5). 하나님의 계시가 아니었다면 누구도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하지 못했을 것이다.

성경 말씀에 비추어 회개하는 것은 천국에 들어가는 조건이다. 회개는 예수 그리스도의 첫 설교 메시지이고(마 4:17), 마지막 선교 명령이다(눅 24:47). 회개와 개종은 성령의 능력으로만 발생하고, 구원받는 사람들의 자연스러운 변화다. 내부자운동 속에 들어온 이슬람 세계관 극복의 길은 '회개' 뿐이다.

이슬람 문화 및 종교와 연관이 끊기지 않고 회개가 일어나지 않은 상태의 신자는 구원과 거리가 멀다. 회개로 인하여 이루어지는 구원은 이전 종교와의 불연속성을 체험하고 하나님의 아들 안에서 하나님의 '양자'인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고, 하나님 자신의 영인 성령을 받고 그와 동행하는 것이다.

구원받은 자의 세계관은 꾸란적 이슬람 세계관에서 성경적 세계관으로 바뀐 것이고, 이러한 사건과 경험은 우리의 목숨보다 귀중한 일이다(행 10:44-48 11:18). 무슬림들이 구원을 받으면 오직 오순절에 강림하신 성령을 받고 거듭나서, 새로운 세계관 즉 하나님 아버지가 알게 하신 성경적 세계관을(요 14-16) 가질 수 있게 된다. 이때부터 이들도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 아버지께 진실한 찬양을 올려드리게 된다. 이렇게 되는 것이 하나님의 창조 목적이고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목적이다(사 43:21).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