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지일 목사 카드뉴스
방지일 목사 카드뉴스
방지일 목사 카드
방지일 목사 카드뉴스
방지일 목사 카드뉴스
방지일 목사 카드뉴스
방지일 목사 카드뉴스
방지일 목사 카드뉴스
방지일 목사 카드뉴스
방지일 목사 카드뉴스
방지일 목사 카드

지난 12일, 한국교회 목회자 100인이 녹음한 '목소리성경'이 출시됐습니다. 교단·지역·나이·성별·목회 규모 및 유형 등을 초월해 100명의 다양한 목회자가 참여한 가운데, 눈길을 끄는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작년에 소천한 방지일 목사인데요. 2012년, 첫 낭독자로 나선 방지일 목사는 102세라는 나이를 잊은 듯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아가서를 읽어 내려갔습니다. 녹음 후 진행된 인터뷰에서 그는 중국 선교 시절의 '아름다운 사랑의 추억'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사랑하는 아내를 떠나보낸 지 9년이 되었습니다. 나보다 더 나를 사랑했던 아내의 빈자리가 너무 커서 한동안 마음을 추스르기 어려웠습니다.

그렇게 허허롭던 어느 날 새벽, 성경을 암송하다가 아내와 나눴던 사랑 뿐 아니라 내가 경험한 모든 사랑이 바로 이러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성경을 통틀어 한 마디로 말하라면 저는 바로 '사랑'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사랑은 내가 아니라 '상대의 마음으로, 상대가 되어' 느끼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입니다.중국으로 갈 때 우리 부부는 꼭 그렇게 그들을 사랑하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그러나 중국에서 지냈던 20년 세월을 돌아보니 오히려 그들로부터 받은 사랑이 더 컸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2차대전 막바지 무렵, 취조를 받다 죽을 뻔한 적도 있었습니다.'교인들이 매일 울면서 기도했어요. 우리 목사님 살려달라고....' 내가 돌아왔다는 소식에 중국 교인들이 몰려와 함께 울고 또 울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1949년 중국공산당이 들어서려 하자 세계 각국에서 온 선교사들이 중국을 떠났습니다. 하지만 우리 부부는 떠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우리 부부의 사랑하는 자'였고, 우리는 '그들의 사랑하는 자' 였습니다.

우리가 떠나지 않았다는 소식을 듣고 중국 교인들이 공안의 눈을 피해 우리를 찾아와 부둥켜 안고 함께 기도했던 기억도 있습니다.당시 공산주의 중국은 매우 가난했고 배급량은 부족해서 추위와 배고픔과 싸워야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기도 뿐이었습니다.

그래도 한밤중에 소리가 나서 나가보면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었습니다. 교인들이 공안의 눈을 피해 자기들이 배급받은 것들을 던져놓고 간 것입니다.

비록 교회에 나오지 못하더라도 나를 위해 목숨 걸고 기도하는 중국인들이 100명 정도 넘었습니다. 그 시절, 우리는 그들의 사랑으로 살아남았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