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태 총장.

인터넷 카페(http://cafe.daum.net/AFFECTION)를 통해, 예수님이 현재 한국교회에 하시는 간곡한 메시지 한 통을 읽었다. 옳고 맞고 좋은 것이다. 그래서 독자들과 함께 읽으며 해결 방안을 생각해 보고 싶다.

1517년 10월 31일 독일 비텐베르크 대학 교수이며 수도사인 마틴 루터(M. Luther)는 로마교황청의 면죄부 발행과 부패를 고발하고 ‘인간의 구원은 행위에 의한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의 속죄를 믿는 것에 의한다’는 95개조 복음주의 개혁문을 발표하면서 종교개혁의 첫발을 내디뎠다. 그 후 498년이 흘러 이제 가톨릭과 기독교는 거의 동등한 위치에 서게 됐다.

그러나 우리나라 기독교는 21세기를 정점으로 현재 쇠퇴기에 들어서 있다. 매년 가톨릭으로 귀의하는 신자 수가 늘고 있고, 미국·유럽·호주의 교회들은 점점 문을 닫고 있다(폐업). 신자 수도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그 원인은 교회 분열, 사유화, 세속화, 세습, 금권 종속, 종교화 등이 신자들의 불신을 초래해, 가나안(안 나가) 신자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주의 재림과 세상 끝날에는 어떤 징조가 있겠습니까?”라고 묻자(마 24:1-51), 예수님께서는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주어지기 위해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때가 되어야 끝이 오리라”고 답하셨다.

현재 기독교의 복음화는 세계 인류의 15%에도 못 미치는데(세계 인구 70억, 가톨릭교인 수 11억, 기독교인 수 9억) 벌써부터 신도 수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면 어찌 걱정이 안 되겠는가?

그러나 우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어두운 데서 불러내 빛 속에 들어가게 하고 아름다운 덕(德)을 선토하게 하니 전에는 종이더니 이젠 백성이 되었다”는 성경을 기억해야 한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이 지배하는 나라의 왕으로 오셨다. 주님과 성도 간의 관계를 제사장과 나라에 비유하면서,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하셨다(마 6:33, 요 18:36).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 자체이다(벧전 2:9, 마 12:28). 하나님의 진리가 지배하는 우리들 자신이 하나님나라의 구성원이요 백성이며, 따라서 나라가 된 것이다. 하나님나라는 주님과 일체된 신앙인들이 서로 하나가 되어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고 사는 나라(요 12:4, 15:12)이다. 이를 위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이다(마 6:33, 6:9-10, 눅 12:32, 행 1:3)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마 6:33)” “아버지의 왕국이 임하옵시며”,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마 6:9-10)”, “나라가 임하기 위해 기도하라(마 6:10)”,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눅 12:32)”, “그가 고난받으신 후에…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행 1:3)” 이렇듯 예수님은 부활하고 승천하시기 전까지 ‘하나님나라 일’을 제자들에게 말씀하고 가신 것이다.

현재 예수님의 관심은, 모든 성직자나 성도들이 주기도문(나라가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을 주문처럼 외우면서 실제로는 아무 관심도 갖고 있지 않은, 바로 그 ‘하나님나라’에 집중돼 있다. 예수님은 또 “내가 다른 동네에 가서도 하나님 나라 복음을 전하여야 하리니 나는 이 일을 위해 보내심을 받았다(눅 4:43)”고 말씀하셨다.

빌라도 법정 증언에서도 “하나님나라를 이루기 위해 이 땅에 왔다”고 강조하셨다. 그런데 현대 교회와 목회자들은 예수님의 이 같은 명령을 간과하거나 무시하고, 다른 것에만 관심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예수님께서 지금 우리나라의 교회들을 보시고 “내 뜻대로 잘되고 있구나” 하며 기뻐하실까? 아니면 내가 십자가를 지고 고난을 겪은 것은 이런 의미가 아니었다고 한탄하실까? 예수님께서 하늘 영광을 포기하고 이 땅에 오신 것은 이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이 세상’이 중요한 것이다(요 3:16).

이 세상이 변화되지 않으면 천국도 없다. 왜냐하면 이 땅에서 구원받고 변화된 사람들을 위해 예비하신 곳이 바로 새 하늘과 새 땅(계 22장)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관심은 대형 예배당 짓고 헌금 많이 모으고 더 큰 자가용 타고 더 넓은 평수 아파트에 사택을 정해 주는 일에 있는 게 아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핏값으로 속량한 백성들을 잘 돌보고 성실하게 양육하는 ‘하나님나라’에 관심을 갖고 계시다.

지금도 예수님께서는 교단 조직을 만들어 총회장을 탐내고 각종 단체를 만들어 총재니, 명예총재, 회장, 대표회장, 상임회장, 운영회장, 공동회장, 중경회장, 명예회장, 부회장, 명예부회장, 협동회장을 나눠 가지며 회장단이 회원보다 많은 기독교계를 보면서 크게 실망하고 계실 것이다.

특히 기독교 지도자들은 불교의 승려나 가톨릭의 사제에 비해 무엇을 얼마나 더 희생하고 절제하며 살아왔는지 자문해 볼 필요가 있다.

/김형태 박사(한남대학교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