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본철 교수(성결대학교 역사신학/성령운동연구가).

필자가 ‘성령론 딜레마’라고 하는 주제 하에 연속해서 다룬 성령세례 논의를 정리하고자 한다. 앞에서 언급한 성령세례의 여섯 가지 유형은 역사 안에서 서로 교류하면서 각자 전통의 장점들은 보유하고 타 전통이 지닌 장점들을 흡수하는 경향으로 발전되어간다. 서로 다른 성령론 사이의 갈등, 신학적 비평과 탐구 작업, 성령론의 자체 정화와 조화, 그리고 바람직한 성령론을 향한 발전 등의 과정을 거쳐가면서, 이러한 진전이 가능한 이유는 복음적 성령운동의 동인(動因)에 성령의 주권적 인도하심이 개입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역사적 진전의 뚜렷한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1) 주로 근대 웨슬리안 성결운동의 성격으로 대표되는 ‘정결과 능력의 성령세례’ 유형에서는 ‘정결과 능력’ 모티브의 보전과 함께, 점차적으로 성령의 은사에 대한 포용성이 눈에 띄게 나타난다. 이는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웨슬리안-성결 그룹 내에서 방언 등 은사 문제로 인해 교단 분열이 잦았던 것과는 대조되는 현상이다. 그런가 하면 한영태가 “기독론이 무시된 채 성령 체험이 강조되면 광신주의자나 신비주의에 빠질 위험이 크다. 성서적인 기독론 위에 성령론이 강조되어야 한다.”(한영태, 「삼위일체와 성결」, 275)고 한 바와 같이, 현대의 웨슬리안 성결론은 성령에 대한 이해를 기독론과의 연관 속에서 다루고자 노력하고 있다.

그래서 ‘그리스도와의 연합’ 모티브에 중점을 둔 하나님 형상의 회복 또는 ‘그리스도 닮기’(Christlikeness)로서의 성결론을 강조하는 경향이 짙어지고 있다. 박명수는 그 동안 웨슬리안 성결론이 너무 죄론과 관련되어 발전해 왔다고 했다. 그러나 앞으로는 하나님 형상의 회복이라는 적극적인 측면으로 전개되길 바라며, 사실 부패성의 제거는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의 형상의 회복이라고 하였다. 성결을 하나님 형상의 회복으로 보는 것은 웨슬리 자신과 칼빈, 그리고 동방교회 서방교회를 포함하는 폭넓은 전통을 가지고 있다고 하였다(박명수, “한국성결교회 성결론의 배경과 그 의의”, <활천> 473호 (1993.3), 99).

(2) ‘사역의 능력을 위한 성령세례’, ‘그리스도의 전인적 통치로서의 성령세례’, ‘중생=성령세례, 이후 성령충만’ 등의 세 유형은 개혁파 계통의 다양한 성령세례론을 나타낸다. 이 유형들은 개혁파 성령론의 강조점인 ‘그리스도와의 연합’ 모티브의 보전과 함께, 전에는 받아들이지 못하던 방언이나 신유 등의 은사 사용이라든가 기사와 이적을 전도 현장에 적용하는 일 등을 신학적으로 수용하려는 움직임이 점차 확대되고 있다.

그런데 앞으로 이 같은 현상이 계속 짙어진다면, 결국 이 세 가지 중에서 정통 개혁주의 성령론을 대표하는 ‘중생=성령세례, 이후 성령충만’ 유형은 ‘중생=성령세례, 이후 은사적 성령충만’이라는 ‘제3의 물결’과 유형상 다를 바 없다는 흥미로운 분석이 나오게 된다. 이런 점에서 윔버(John Wimber)의 다음과 같은 말은 의미가 있다; “나는 앞으로 몇 년이 지나면 제3의 물결의 신학적 의미들을 보다 명쾌하게 규정지어 줄 책들이 출판될 것으로 믿는데, 그것은 제3의 물결이 역사적 정통주의의 계열에 서있음을 보여줄 것이다, 많은 경우에 제3의 물결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열쇠들은 19세기의 몇몇 가장 위대했던 복음주의자들의 잊혀져가는 글들을 연구함으로 발견하게 될 것이다.”(John Wimber 외, 「제3의 물결을 타고」, 333)

(3) 그런가 하면 은사적 기독교에서 볼 때, 전통 오순절주의에서는 성령세례 받은 첫 증거가 방언이라고 보았지만, 은사갱신운동을 거쳐 ‘제3의 물결’에 이르러서는 방언에 대한 강조가 성령의 여러 가지 은사 중의 하나라고 보는 입장으로 변화되어 왔다. 그래서 최근에는 전통 오순절주의자들도 이러한 영향을 많이 받아서, 반드시 방언을 성령세례 받은 첫 표적이라기보다는 성령의 여러 은사 중 하나로 보는 경향이 짙어져 가고 있다. 그리고 전에는 상대적으로 미약하던 ‘그리스도와의 연합’이라든가 ‘정결’ 모티브 등의 강조가 많이 보강(補强)되고 있다. 대표적인 전통 오순절주의자인 조용기는 1964년에 인격적 주님으로서의 성령의 존재에 대해 새로운 확신을 갖게 된 후, 자신의 목회는 새로운 활기를 찾게 되었다고 하였다(조용기, 「5중복음과 삼박자 축복」, 115). 또한 1971년도 「성령론」에서는 성화 또는 성결에 대한 언급을 찾아볼 수 없으나, 1983년에 출판된 「5중복음과 삼박자 축복」에서는 이 주제를 한 단원으로 다루었다(조용기, 위의 책, 115).

또 ‘제3의 물결’에서는, 실용적 효율성의 차원과 또 개혁주의 신학의 영향을 받아, 오해의 소지가 많은 성령세례보다는 성령 충만이라는 용어를 더 많이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 현재 ‘제3의 물결’의 지도자들 가운데는 신학적으로 개혁주의적 배경을 지니고 있는 이들이 대다수라고 하는 점이 이 사실을 대변해 주고 있다.

‘제3의 물결’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은 대부분이 보수적 복음주의자들로서, 그들 중 많은 이들은 자신들의 경험이 개혁신학과 모순되지 않는다고 믿고 있다. 1987년 2월에 케빈 스프링거는 아나하임 포도원교회의 치유 세미나에 참석한 2,041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그의 목적은 ‘제3의 물결’의 참여자들의 사회학적이며 신학적인 배경을 도출해 내기 위한 것이었다. 질문 중 하나로 케빈은 관련된 참가자들의 ‘성령의 (혹은 성령 안에서의) 세례’에 관한 이해를 물었다. 자신들을 복음주의자들이라고 밝힌 사람들 중 단지 2.24%에 해당하는 사람들(6명)만이 전통 오순절주의 정의에 동조했다. 45%(121명)는 그것이 ‘성령의 중생케 하시는 사역에 뒤따르나 그것과는 구별된 경험으로 그 안에서 그리스도인은 봉사와 증거를 위한 능력을 얻게 된다. 이 경험은 방언 말함을 동반할 수도, 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가장 많은 응답은, 49.06%가 그것은 ‘회심 때 일어나는 성령의 최초적 행동으로, 그것을 통해 한 개인이 그리스도의 몸에 연합된다. 그 이후의 성령의 경험은 ‘충만’으로 부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했다(Wimber 외, 「제3의 물결을 타고」, 331-3).

필자는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앞으로는 성령론의 여러 전통들 사이의 장점들을 상호 교류·보완한 통합성을 갖춘 ‘통전적 성령론’이 적용될 것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위에서 예로 든 성령론의 역사적 진전에 따른 예상되는 변화를 조사해 볼 때, 이 모든 노선에 가장 보편적인 현상은 ‘그리스도와의 연합’ 모티브와 함께 은사를 동반한 복음 증거 능력 강조가 모든 계통의 성령세례 유형에서 더욱 드러나고 있다. 그리고 이 두 가지 현상에 대한 점진적인 강조가 현재 통전적 성령론이 나아갈 방향이라고 본다.

그러므로 통전적 성령론의 내향적인 목표는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그리스도 닮기’를 실현시켜나가는 일이다. 이를 위해 역사적으로 점증되고 있는 성령론의 ‘그리스도와의 연합’ 모티브가 있다. 또 통전적 성령론의 외향적인 목표가 있는데, 그것은 주님의 지상명령인 복음 전파의 완수를 위해 능력을 주시는 일이다. 이를 위해 현대의 성령운동은 은사를 동반한 복음 증거의 능력을 활용하는 뚜렷한 역사적 진전의 사실들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