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민국 목사(검암 새로운교회).

강원도 집회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목에서 만난 숯가마는, 더운 여름에 정면으로 부딪쳐 이열치열로 승화시킨 선조들의 지혜를 느끼기에 충분한 경험이었다.

교통사고 후유증에 시달리는 사람, 선천적 장애를 가진 사람, 각종 후천적 질환으로 인한 통증 완화를 경험한 사람들이, 시퍼런 불꽃을 내뿜는 숯가마 아궁이 앞에 두런두런 모여 앉아 진한 땀을 배출해 낸다.

음식물을 자유롭게 조리할 수 있는 조리대가 있고, 감자, 고구마, 옥수수 등을 구워 먹을 수 있도록 숯을 모아 둔 곳에는 벌써부터 구수한 냄새가 진동한다.

참나무로 숯을 만들어내는 토굴 한쪽을 열어 붉은 열기를 내뿜는 아궁이는, 고단한 삶의 애환들을 불사르고 새롭게 도약할 수 있는 기력을 충전시켜 주기라도 하듯 연신 퍼런 불길을 뿜어내고, 사람들은 불 아궁이 앞에서 무념의 불 쏘이기에 몰입되어 있다.

한 귀퉁이에 앉아 보니 숯가마는 눈으로 보는 것 이상으로 엄청난 열기를 내뿜는다. 온몸은 십 분이 채 안 되어 땀범벅이다.

약으로 다스리지 못하는 질병은 음식으로 다스려야 하고, 음식으로 못 고치는 질병은 칼로 고쳐야 하고, 칼로도 쾌유되지 않는 질병은 불로 다스려야 한다는 입담으로, 숯가마의 우월한 효능을  입증하려는 중년 여인의 표정이 매우 진지하다.

불로도 다스리지 못하는 질병은 하나님께서 다스리신다는 말을 덧붙이자, 기독교 지도자들이 저지른 어두운 범법 사건들을 나열하며 종교의 폐단을 꼬집는다.

그렇다. 숯가마에 내던져 불살라야 할, 목회자들의 죄악들이 만연한 시대다. 세상 사람들과 별반 다를 바 없는 물질 욕망으로 얼룩진 타락들이 오늘날 기독교의 퇴보를 야기한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숯이 되는 과정 속에 활활 타오르는 참나무의 열기는, 인생 또한 한 줌 재가 되는 과정 속에서 과연 어떤 소망을 향해 활활 타올라야 할 것인가에 대한 명제와 더불어 명쾌한 해답을 일깨워 준다.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는 길, 꿈같은 영생의 길을 열어 놓으신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다 잠든 스데반 집사의 담대한 삶과, 그의 죽음을 마땅히 여기다 그리스도 예수를 진정으로 만나 전도자의 삶으로 탈바꿈한 사도 바울의 진정한 회심과 변화는, 오늘을 살아가는 많은 목회자들과 성도들에게 결연한 시도를 요구하기에 충분하다.

곧, 성도의 삶의 원초적인 초석은 담대한 복음 증거와 진정한 변화를 동반한 회심이다. 그러나 진정한 변화에는 반드시 고통이 수반된다. 가지고 싶은 욕망, 이루고 싶은 소망들을 제어해야 할 희생을 동반한다.

그래서 인생은 변화를 위한 통증들을 수용하는 시간일 수 있다. 낙엽이 되어가는 과정 속에 푸르렀던 나뭇잎들의 보이지 않는 통증들은 없었을까. 바위와 부딪히며 산골 굽이를 타고 흐르는 계곡물까지도, 혹 보이지 않는 통증의 과정들을 참아내며 자연의 역할을 일부 감당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분명한 사실은, 인생 또한 무형의 통증들이 쌓여가는 시간 속에 노출되어 있음이다. 소멸로 향하는 인생의 과정들은 갖가지 무형의 통증들을 유발시키는 율동 속에 존재하는 고행의 과정일 수 있다. 어떠한 고행의 인생일지라도 선한 목적의 희망 앞에서는 아름다운 마침을 보장받는 과정일 수 있으나, 선한 목적과 위배되는 미래라면 덧없는 시간일 뿐이다.

선한 목적은 인생들의 판단과 가치가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아름다운 가치일 때 숭고할 수 있는 분별이다. 그런 의미에서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개입한, 인생 중에 그리스도 예수의 은혜를 덧입은 성도라면 마땅히 아름다운 인생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개입은 진정한 회심을 전제 조건으로 주신 영생의 은혜이다. 숯가마의 열기가 아무리 뜨겁고 무서운 불길일지라도 언제든지 일어설 수 있고 피할 수 있는 환경이기에 치유이고 휴식이듯, 그리스도 예수의 은혜로 죽음의 덫에서 벗어난 인생들이라면 마땅히 통증을 인내할 수 있는 과정 속에 헌신하는 신앙인의 삶을 기쁨으로 여겨야 한다.

헌신이 동반될 때 한번 주어진 신앙인의 인생은 구원의 씨앗이기에 아름답고, 그리스도 예수로 인하여 구원의 열매를 얻은 생명이기에 그보다 족한 것이 세상에 없는 기쁨의 인생이다.

해가 진다. 황토빛 땀복이 땀에 절어 축축하다. 세상 놀이에 무거워진 성도의 신앙의 옷도 무겁고 축축하지는 않을까.

이제 축축한 옷을 갈아 입자. 땀복을 벗고, 땀으로 배출된 내면의 더러운 찌끼들을 닦아내고, 하나님께 찬미의 찬송을 부르게 되는 숯가마에서의 한 날은, 더운 여름날 꼭 한 번 가보고 싶은 피난처이자 회심의 기도처라고 입담을 쏟아내 본다.

/하민국 목사(검암 새로운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