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한(샬롬나비 대표/기독교학술원장/숭실대 기독교학대학원 설립원장).

머리말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는 지난해 세월호 참사 이후 다시 한 번 우리 사회의 허술한 사회안전(방역)시스템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었고, 이로 인해 의료강국인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체면을 손상하게 되었다. 방역 당국은 컨트롤타워 없이 허둥댔고, 대형 병원의 응급실과 진료실은 병을 고치기는커녕 악화시키고 확대 재생산하는 진원지가 됐다. 병원의 구조와 문화는 바이러스에 특히 취약했고, 의료진은 외롭게 싸웠지만 질병에 대한 지식과 비상훈련이 부족하다는 약점을 노출했다. 격리자 수칙을 어기고 집 밖을 돌아다니는, 실종된 시민의식도 부끄러웠다.

메르스는 아직 진행형이지만, 제2, 제3의 신종 바이러스가 한국사회에 침투하는 것은 글로벌 시대에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한 방역 전문가는 메르스였기에 그나마 이 정도이지, 탄저균이나 천연두였으면 대한민국 전체가 초토화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염병 대처는 질병관리가 아니고 국가 안보라는 것이다. 초기 방역에 실패한 방역 당국과 대량 감염을 확산시킨 병원에 대한 질타와 비난이 쏟아졌고, 이로 인해 대통령의 지지도가 20%대로 추락하였다.

그러나 이제는 무능하다고 비난만을 퍼부을 것이 아니라, 실수를 다시 한 번 면밀(綿密)히 반성해서 다시는 이런 사태가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격려와 이해가 요청된다. 당국이나 병원들도 알고 그렇게 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제는 허물과 과실을 덮어 주고 마지막 종식(終熄)까지 국력을 기울어야 할 것이다. 세월호 참사와 메르스 사태는 선진사회로 진입하려는 한국사회의 미흡한 점을 노출시켜 주었다. 이번 사태에서 드러난 과실(過失)을 보완한다면, 우리는 보다 내실 있는 방역망을 가진 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고 본다.

1. 초기 방역에 실기(失機)하고 매번 허둥대는 정부는 방역망을 재점검해야 한다.

2003년 전 세계적으로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사스)이 창궐했을 땐 발 빠른 초동 대처로 국내 감염자 수를 3명 선에서 단 한 명의 사망자 없이 철통 방어했다. 덕분에 한국은 세계보건기구(WHO)가 인정한 ‘방역 모범국’으로 평가받았다. 그때의 공무원이나 지금의 공무원이나 바뀌지는 않았다. 변한 것은 정부를 지휘해야 할 사령탑 뿐이다. 그런데 이번 메르스 재난에 대한 컨트롤타워는 작동하지 않았다. 세월호를 계기로 세워진 국민안전처는 이런 국가적 재난 상황 속에서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하면서, “안전처는 무슨 일을하는 곳인가?”라는 집중포화가 쏟아지고 있다. 국민안전처는 작동하지 않았다. 세월호와 메르스 이후 드러난 것은 정부 대책의 허점투성이였다. 첫 번째 환자의 전염성을 과소평가해 다른 병실의 환자들을 격리하지 않고 방치한 것은 방역 당국이다. 초동 대응에 실패한 뒤 대책기구를 5개나 만들었으나, 시종 무기력하고 무능력했다. 컨트롤타워 총리가 한 달 이상 부재하였고, 보건복지부 장관은 복지 전문이지 방역 전문가가 아니었다. 초동 대처가 빗나가 발생 병원과 감염 환자 수가 증가하자, 당국은 기밀주의로 유언비어가 난무하도록 만들었다. “국민 안전을 지키는 정부”가 아니라 국민을 혼란에 집어 넣는 정부로 변했고, 나라의 기본을 바로잡는 정부가 아니라 국민으로 하여금 각자 도생하라는 무책임의 정부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이 모든 허점은 정부가 의도한 것이 아니라, 처음 당하는 메르스라 얕잡아 본 실책에 기인한다. 우왕좌왕하기는 했으나 대통령은 미국 방문까지 연기하고 메르스 퇴치에 동분서주하고 있다. 우리는 지도자의 실기를 너무 질책만 하지 말고, 덮어 주고 격려해 주어야 한다. 이번 실책을 교훈 삼아 보다, 우리 사회는 보다 탄탄한 방역국으로 세워져야 한다.

2. 방역 당국은 관련 전문가의 입장을 존중하고, 방역 대비 매뉴얼과 응급의료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방역 당국은 메르스 전파력을 오판(誤判)한 데다 정보 공개를 미적대다가 사태를 키웠다. 환자의 전염성을 과소평가해, 다른 병실의 환자들을 격리하지 않고 방치하였다. 방역 당국이 초기에 병원 명단 등 정보를 제때에 공개하지 않은 것도 메르스 확산 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서울 시민들은 인터넷과 소문으로 평택성모병원과 서울삼성병원을 거치며 메르스 2차 감염이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으나, 당국은 기밀(機密)에 부치고자 했다. 그 바람에 불안이 가중(加重)되어 서로 돕고 의지하는 사회적 유대감(紐帶感)을 뭉개트렸다. 그 자리에 각자도생(各自圖生)의 이기주의가 대신 들어서게 했다.

이는 삼성서울병원이 14번 환자를 허술하게 다루다 2차 대감염을 일으킨 과실보다 치명적인 잘못이었다. 6월 21일까지 메르스 환자 169명 가운데 절반 가까운 83명이 대형 병원(삼성 그리고 강동경희대 병원 등) 응급실에서 감염되는 결과를 낳았다.([사설] 난민촌 같은 대형 병원 응급실, 병균 퍼뜨릴 수밖에, 입력: 2015.06.22 03:22 조선일보 2015 06 22 A31). 22일에도 삼성서울병원, 건국대병원 등에서 확진환자 3명이 새로 발생했다. 국내 최고라는 삼성서울병원이 그 이름에 걸맞는 실력과 위기대처능력을 갖추지 못했다는 건, 이번 사태로 분명히 드러났다(한겨레, [사설] 삼성서울병원 정상운영, 너무 성급하다, 등록 :2015-06-21 18:45수정 :2015-06-21 21:01).

한국 대형 병원 응급실에는 어디든 격리(隔離) 병실을 찾기 힘들다. 환자와 보호자·문병객들이 구분 없이 대기석과 응급실 외부 복도까지 꽉 메우고 있다. 난민촌 같은 대형병원 응급실은 전염의 근원지가 되었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대형 병원에 입원하기 위해 인맥(人脈)을 총동원하다가, 안 되면 병상이 날 때까지 응급실에서 대기하는 한국 특유의 병원 문화가 메르스 사태를 불렀다”고 꼬집었다. 일본은 급성심근경색 등 중증(重症) 환자만 응급실을 이용할 수 있다. 영국은 의사 허가 없이는 환자가 상급 병원으로 옮길 수 없다. 미국이나 싱가포르의 상당수 대형 병원 응급실은 병상을 1인실로 운영한다. 빠른 시일 내에 정부와 의료계가 머리를 맞대 응급실 시설을 개선하고 응급의료시스템을 전면 수술하는 계기를 만들어야 한다.

3. 수익성과 효율 위주가 아니라 국민의 보편적 건강권 중심으로 의료체계 전반을 재정비하자.

메르스 사태는 우리 의료체계 전반을 성찰하고 재정비할 필요성을 일깨우고 있다. 그 동안 우리 의료체계의 가장 큰 특징은 공공의료가 꾸준히 위축되고 민영의료가 공룡처럼 커진 점이다. 그런데 역병이 발생하자 삼성서울병원 같은 대형 종합병원마저 응급실 감염 관리가 후진국 수준이었다. 삼성병원은 14번 환자를 허술하게 다루다 2차 대감염을 일으킨 과실보다 치명적 잘못을 저질렀다. 14번 환자가 오기 1주일 전인 지난달 20일, 국내 최초로 1번 환자를 확진하는 공(功)을 세웠다. 그러고도 메르스 감염자가 추가로 병원에 올 것에 전혀 대비하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삼성서울병원 응급실로 찾아간 14번 환자가 5월 30일 확진 판정을 받은 다음 8일 동안, 삼성서울병원에 대해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삼성서울병원에서 감염된 의사가 음압(陰壓)병실이 없어 다른 병원으로 이송되거나, 경기도 병원에 입원했다가 메르스 판정을 받은 환자가 병실을 찾아 헤매다 이튿날 새벽에야 인천의 대학병원으로 실려가는 일도 벌어졌다. 전염병이 발생하면 당국은 즉각 전문 인력을 투입해 병원을 장악한 후, 역학 조사를 하고, 외래 환자와 면회객을 제한하고, 감염·전파 우려가 있는 사람들을 격리해야 한다. 그러나 방역 당국은 삼성서울병원에 대해선 치외법권(治外法權) 지대로 방치해 뒀다. 이런 식이니 삼성서울병원 감염내과 과장이라는 사람은 국회에 나와 고개를 숙이기는커녕 “(병원이 아니라) 국가가 뚫린 것”이라고 큰소리치는 상황이 벌어졌던 것이다. 메르스 확진 환자와 의심 환자들을 치료 중인 삼성서울병원에 정식 음압병실은 하나도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음압병실은 기압차를 이용해 공기가 항상 병실 안쪽으로만 흐르도록 설계된 곳이다. 최고라는 병원이 경영에 있어서 의료의 기본 시설도 마련하지 않고, 역병이 일어난 상황 속에서도 환자들을 그대로 받았다는 것은, 기업적 수익 경영에 치중한 것으로 보인다.

감염병 환자가 수익성에 도움이 되지 않는 까닭에 음압병실을 둘 필요를 느끼지 못했을 터다. 대형종합병원의 기술과 시설이 결국 소수를 위한 의료 서비스 수준을 높였을지 모르겠으나, 국민 다수의 건강을 지키는 데는 별 도움이 되지 않았음이 드러난 셈이다. 반면 얼마 되지 않는 공공의료 시설들이 메르스 진료 거점병원의 주축 노릇을 하고 있다. 각 지역의 국립·시립·도립의료원들이, 민영병원에서 받지 못하는 환자들을 차분하게 진료하고 있다. 중앙정부가 위기 대응에 총체적 난맥상을 보인 가운데, 그나마 공공병원이 버팀목 구실을 해냈다. 일부 대형 민영병원 중심으로 의료 기술과 시설이 세계 최고 수준에 올랐다 하나, 국민 건강 차원에서는 사상누각과 같음이 드러났다. 수익성과 효율 위주가 아니라 국민의 보편적 건강권 중심으로 의료체계 전반을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 국민 건강을 지키기 위해선 공공의 비용 지출과 부담이 필요하다(한겨레 [사설] 공공의료 강화 필요성 일깨운 메르스 사태, 등록 :2015-06-19 19:13수정 :2015-06-19 22:34).

4. 메르스 퇴치에 사투하는 의사와 간호사들, 의료 종사자들의 숭고한 헌신.

메르스 사태에 방역 당국이 속수무책인 반면, 다행히도 ‘의병’(醫兵)이 큰 역할을 하고있다. 수많은 의사·간호사·병리검사 직원들이 자신의 안위(安危)를 뒤로 밀어 놓고 메르스와 격투를 벌이고 있다. 방호복을 입은 의사와 간호사들이 “우리가 뚫리면 나라가 뚫린다”며 격리 병동 속에서 메르스 저지선을 사수(死守)했다. 메르스 확진 환자 5명 중 1명이 의료진일 만큼 위험한 임무였다. 메르스의 공격을 그나마 이 정도로 막을 수 있는 것은, ‘의료 전사’(戰士)들의 사투(死鬪) 덕분이다.

지난 6월 21일에는 중증 메르스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중환자실에 상주했던 주치의가 메르스에 감염됐다. 삼성서울병원 중환자의학과 소속 전문의는 응급실 보안요원으로 있다가, 메르스에 감염된 환자 등 상태가 나빠 중환자실에 입원한 중증 환자를 치료했다. 기관지 삽관술과 폐렴 처치(處置)를 하는 과정에서 전문의는 순간적으로 메르스 바이러스에 오염된 것으로 전해졌다.

의사와 간호사들은 “내가 감염될 수도 있다”는 불안감에도 시달리고 있다. 하루에도 몇 번씩 환자들을 직접 대면하고 접촉해야 해, 언제든 병원체에 노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6월 11일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은 의사·간호사가 10명이나 되었다. 의료진은 진료가 끝난 뒤엔 며칠씩 격리 조치도 당한다. 이런 공포감·고립감 탓에 의료진 가운데는 우울증을 얻는 사례도 있다. 의사·간호사·의료기사와 같은 의료진은 물론, 청소 담당자와 안내 직원 등 의료기관 종사자 모두가 메르스와 싸운다. 119 대원, 앰뷸런스 운전기사, 보건 담당 공무원 등의 역할도 절대적이다. 이들을 격려하고 진심으로 도우며, 이들의 지시에 따라야 한다.

5. 세계적 의료기술을 가지고 있으나 역병 차단 초동 대처에 취약한 방역 수준.

초기 대응 미숙은 있었으나, 한국의 의료 수준은 국제적 인정을 받았다. 마거릿 챈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은 6월 18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한국이 초기에는 운이 좋지 않았지만, 이후 세계 최고 수준의 역학 조사가 이루어졌다”며 “이후 대응 조치는 대대적으로 강화돼 신속하고 체계적으로 이루어졌다. 전 세계에서 이만큼 대응할 수 있는 국가는 별로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예방의학과 최재욱 교수는 병원처럼 환자가 많고 꽉 막힌 공간에서는 메르스 바이러스가 공기를 매개로도 전파될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일반 지역사회에선 메르스가 공기를 통해 전파될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단언했다. 우선 메르스 바이러스 자체가 탄저균처럼 독력(毒力)이 세지 않고 전파력이 상당히 낮은 편인 데다가, 환기가 되는 뚫린 공간이 많아 감염 우려가 크지 않다는 것이다(“병원처럼 환자 많고 막힌 공간선 공기 통해 전파 가능” 김성모 기자 입력: 2015.06.19 03:00 조선일보 2015 06 19 A4 [메르스와의 전쟁] 최재욱 고려대 교수 주장). 우리는 이런 전문가의 견해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6월 19일 개막하는 ‘세계간호사대회’에 참석차 방한한 챈 사무총장은 “한국에서 강력한 접촉자 추적, 감시, 격리 조치가 실행된 이후 신규 확진자 발생이 감소세에 접어들었다”고 평가했다. 앞서 WHO는 16일 긴급 전문가 회의를 열어 “한국의 메르스 발병이 ‘국제적 공중 보건 비상사태’에 해당하지 않으며, 한국에 대한 여행·교역 금지를 권고하지 않는다”고 밝힌 바 있다. 그녀는 다음과 같이 메르스 사태를 의학적으로 해석해 주고 있다. “새로운 질병이 발생하면 경계 태세를 늦추면 안 된다. 사람과 상품이 빠른 속도로 이동하는 국제화 사회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또 정보 공유는 투명성과 신뢰성을 높일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이 밖에 지역사회의 지지와 협력이 매우 중요하다.” “조기 치료가 매우 중요하다. 메르스는 에볼라와 마찬가지로 치료제가 없는데, 에볼라 사태에서 배운 것은 초기 조치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발열·기침 증세가 나타나면 즉시 병원을 찾아가라. 메르스 환자 접촉 여부를 꼭 말해줘야 한다. 완치자가 많다는 점을 잊지 말라. 조기에 조치하면 완치가 가능하다.”(입력: 2015.06.19 03:00 조선일보 2015 06 19 A1 [챈 WHO 사무총장 “에볼라처럼 조기 치료하면 완치 가능”])

김민기 서울의료원장은 메르스 감염 확산의 원인으로 민간병원의 효율성 추구를 언급했다. “한국의 의료기술은 세계적인 수준이다. 그러나 모래 위에 있을 뿐이다. 사스와 에볼라 바이러스를 막았던 경험으로 메르스도 막을 수 있을 거라던 생각이 빗나갔기 때문이다.”(한겨례, “공공병원, 많은 책무 짊어졌지만 부족한 게 너무 많다” 허승 기자 raison@hani.co.kr, 등록 :2015-06-19 19:59수정 :2015-06-19 22:25).

6. 정부의 초기 과소평가와, 확산 후 과잉 대응으로 심각한 사회적 손실을 초래하였다.

6월 17일 긴급 위원회를 연 세계보건기구(WHO)의 공식 브리핑과 총 17쪽에 이르는 WHO·한국 합동 평가단의 전문에 의하면, 메르스를 처음에는 ‘폐렴을 동반한 중증 질환’으로 판단하고 대응 조치를 했는데, 실제로는 많은 부분 ‘메르스 감기’라고 할 정도의 질환이었다는 것이다. 즉 지역 단위나 개인 단위에서 통제할 수 있는 수준이었는데, 이를 국가 재난으로 관리하다 보니 ‘불필요한 오해’ ‘과도한 공포’가 생긴다는 것이었다. 이번 사태에서 방역 당국의 첫 실책은 우선 지난달 20일 평택성모병원에서 첫 확진 환자가 나온 다음, 메르스의 전파력을 과소평가하고 환자가 입원했던 병실 내로 방역 범위를 국한시킨 점이다([트렌드 돋보기] 專門家 무시하는 한국 어수웅 문화부 차장 입력: 2015.06.19 03:00 조선일보 2015 06 19 A30).

보건복지부 중앙메르스관리대책본부는 이날 전체 확진자 가운데, 중동에서 감염돼 입국한 첫 번째 환자와 감염 경로가 파악되지 않은 평택 경찰관 확진자(119번째 환자)를 제외한 나머지를 모두 ‘병원 안 감염자’로 분류했다. 국내 첫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환자가 확진된 지 한 달째인 19일, 확진 환자 166명 가운데 164명이 ‘병원 안 감염’으로 분류됐다. 일반 사회 직장이나 모임에서의 전파는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초기 대응이 실패하자, 정부는 과잉 대응하고 기밀주의로 나가면서 사회적 불안감을 확산시켰다.

국내 첫 메르스 환자가 확진된 후 추가 감염자들이 생겨나면서 사태가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자, 해외 관광객들이 급감하고, 단체 예약 취소 사태가 일어나고, 시장·극장이 한산해지며, 학교가 휴업하고, 저소득층 노인을 위한 무료 급식소가 문을 닫고, 일용직 노동자들의 일자리까지 끊기고 있다는 소식이 잇따르고 있다. 사회생활이 위축되면서 생산활동과 경제활동과 문화활동이 위축되고 있다. 우리의 과도한 공포와 불안이 우리 자신의 영혼을 넘어 사회 최약자들의 삶까지 잠식하고 있는 것이다. 다행히도 최초 발생 5주 정도 지난 6월 하순에 들어와서 메르스 확산은 고비를 넘기고 진정세를 보이면서, 방역 당국도 조심스레 메르스 종식에 대한 처방을 검토하고 있다.

7. 부족한 시민들의 방역의식을 점검하고 업그레이드하자.

우리 사회에는 “법과 규칙은 내가 아니라 남이 지키는 것”이란 인식이 너무 널리, 너무 심각하게 퍼져 있다. 시민들의 작은 일탈을 눈감아 주는 일이 반복되면서, 규칙과 질서를 어기는 사람들이 오히려 고개를 들고 큰소리치는 것도 일상사가 됐다. 메르스 환자와 격리 대상자 일부가 보인 행태와 거짓말도 이런 사회 분위기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첫 번째 메르스 확진 환자(68)는 메르스 창궐 지역인 사우디아라비아에 다녀온 사실을 의료진에게 숨겼다. 홍콩 위생 당국은 “메르스 환자와 접촉했을 것으로 의심돼 격리 대상에 오른 한국 남성이, 귀국 이후 격리되지 않고 1일 홍콩에 다시 입국하려다 적발됐다”고 발표했다. 의사가 말리는데도 중국에 간 K씨는 홍콩 의료진에게 “감염병 환자와 접촉한 적 없다”고 거짓말을 했다고 홍콩 언론이 보도했다. K씨와 같은 비행기를 탄 한국인 일부는 홍콩에서 격리를 거부하다 붙들려 가는 일도 벌어졌다. 홍콩 사람들이 “한국인들의 시민의식이 겨우 이 정도냐”고 혀를 찰 만도 하다. 6월 1일까지 격리 관찰 대상자 682명 가운데, 자기 집이 아닌 국가 격리 시설에 들어가겠다고 한 사람은 단 4명 뿐이었다.

메르스 사태가 이렇게 된 1차 책임은 허술한 대응으로 일관한 정부 당국에 있다 하더라도, 전염병 확산 위험이라는 엄중한 상황을 앞에 두고서도 무책임하게 행동하는 개인들의 형태는 공생(共生)의식 부재를 그대로 보여 주고 있다. 지하철이나 버스, 심지어 좁은 엘리베이터 안에서조차 손으로 입을 가리지도 않은 채 재채기나 기침을 하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메르스에 대한 과도한 공포 때문에 메르스와 관계된 모든 사람을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메르스 감염자, 격리 대상자는 물론, 의료진까지 메르스 ‘주홍글씨’(낙인 효과)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방역 전문가들은 이런 시선이 메르스 의심 환자들이 증상을 밝히는 것을 꺼리게 만들고, 이것이 메르스 확산의 중요한 원인이 되고 있다고 보고 있다. 메르스 의료진의 자녀들이 메르스 전파 위험자로 따돌림을 받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다(“학교에 애들 보내지 마라”… 死鬪 의료진 울리는 ‘주홍글씨’ 조선닷컴, 입력: 2015.06.17 03:06 [감염 공포에 편견 심각]).

국민의 도덕 수준이 이 정도냐는 개탄도 나오지만, 캄캄한 세상을 만든 정부의 정보 독점 탓이 크다. 이러한 이기적 각자도생의 길은, 자기만이 아니라 사회적 질서와 신뢰를 무너뜨리고 사회의 근간을 무너뜨리게 된다는 사실을 각성하면서, 보다 높은 사회적 공생의 의식을 함양하는 계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

8. 낙관적이고 긍정적 생활방식으로 서로 격려하고 도우면서 두려움을 이겨내자.

고려대 구로병원 감염내과를 창설하고 2003년 사스대책자문위원장, 2009년 국가 신종플루대책위원장을 역임한 고(故) 박승철 박사는 “인류 역사는 병균과 싸워온 역사이고, 늘 인류가 이겨온 역사”라고 하였다. “미생물에 지는 것이 아니라 불안감에 지는 것이다.” 병균에는 결국 이기겠지만 불안감에는 이미 졌다. 병균 피해보다 불안에 따른 피해가 더 크다. 정부 잘못이지만 언론의 과열 경향도 불안 심리를 키우는 측면이 있는 것 같다. “우리가 두려워해야 하는 것은 병에 대한 두려움 그 자체다.” 전염병이 돌면 두 가지 균이 돌아다니는데, 하나는 병균이고 다른 하나는 ‘두려움’이라는 균이다. 더 무서운 건 ‘두려움’균이란 게 결론이다.([양상훈 칼럼] 병균에도 이기고 ‘두려움’균에도 이기자 양상훈 논설주간 입력: 2015.06.18 03:20 조선일보 2015 06 18 A30). 우리 사회는 이미 메르스보다 더 위험한 바이러스인 천연두·페스트·뇌염·에볼라·사스·탄저균도 발붙이지 못하도록 물리치고 이겼다. 이러한 우리 사회가 이미 전염병과 싸움에서 이겨온 역사에 근거하여 메르스는 극복될 수 있다는 신념과, 화(禍)를 복(福)으로 변화시키는 낙관적인 삶의 태도는 메르스 극복에 아주 중요하다.

맺음말

선진국들이 수백 년을 통해 이룬 사회적 기본 매뉴얼(방역체계, 사회기초질서, 합리적 구조 등)을, 우리 사회는 지난 수십 년의 압축성장을 통하여 이루어낸 데서 나오는 위험 사회에 직면하여 제대로 작동되지 못하고 있다. 그것이 세월호에 대한 사회안전망 허술로, 이번에 메르스 사태에 대한 방역망 허술로 드러났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 사회는 여태까지 6.25 전쟁으로 인해 국토가 잿더미가 된 가운데서도 반 세기 만에 다시 일어섰다. 그 가운데 1997년 IMF 외환(外換)위기 등 각종 여러 가지 외환(外患)이 다가왔으나, 우리는 단결하여 이를 극복했다. 메르스는 반드시 진압되고 종식될 것이다. 우리 마음속에 메르스에 대한 두려움을 몰아내고, 낙관적인 사고방식을 활성화하자! 각자도생의 이기주의를 버리고 공생하는 시민의식을 갖자! 이번 메르스 사태를, 올해 1인당 국민소득 3만 불에 도달하고 선진국 반열로 다시 한 번 업그레이드되는 과정에서 앓는 진통으로 생각하자! 이번 메르스 위기를 계기로, 정부 당국은 다시 한 번 국가 안전망과 방역망 시스템을 재점검하고, 시민들은 공생(共生)의식과 사회윤리를 보다 한 단계 끌어 올리는, 선진사회로의 도약의 계기로 삼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