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주 소장(선교신학연구소). ⓒ크리스천투데이 DB

3. 천도교의 생사관

천도교의 창립자 최제우는 동경대전에 기록한 바와 같이 만물은 음과 양이 어울려 화생된 것이고, 그 가운데 가장 신묘한 존재가 사람이라고 말한다. 최제우는 만물의 “세 근본 존재”를 천지인 삼재(天地人 三才)라고 한다. 뿐만 아니라 자기를 “천황씨” 또는 “후천 천황씨”라 함으로써 우주의 근원자와 동일시하고, “후천 개벽의 주인” 내지 “후천 인류의 원조”라고도 주장한다.

최제우는 인간의 性을 무궁하다고 한다. 인간은 창조된 것이 아니라 “무궁 이전부터 끝이 없이 흘러나온 것”이라 하고, 인간은 누구나 부모에게서 생겼다고도 한다. 그는 원시 부모를 “천황씨”라 했는데, 그 천황씨는 무엇에서 화하여 되었는지 모르되 (사람으로부터 사람이 된 것이 아니라) … “사람만 못한 하등 동물에서 점차 진화를 가하야… 사람이라는 고등동물에… 이르러 왔다”고 주장한다.

만물이 진화함으로 영생하는 것처럼 부모는 나로, 나는 아이들로 진화하면서 영생하게 되고 이 영생은 “국민의 무궁성”이나 다름 없다는 것이다. 그는 “사람성 무궁”을 주장하며, 사람의 성은 “과거에도 무한하고 미래에도 무한한 신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라 하여, 사람을 신(神) 내지 “무궁자의 표현”이라 한다. 오심즉여심(吾心卽汝心)이라는 그의 심법이 설명하는 것처럼, 사람의 마음을 떠나서 다른 신계와 천계가 없다는 것이다. 인간의 마음이 바로 신계이며, 천계이며, 신이란 다름 아닌 인간의 자기性을 표현케 한 것이라고 한다.

제2대 교주 최시형도 천주를 모심(시천주)에 대하여 설명하기를, 인간은 모태에서부터 “내유신령”이 된다 하며, “양천주(養天主)”를 주장한다. 사람이 천주를 기르지 않으면 사람 안에 천주가 있음도 알지 못한다 한다. 그는 또 “천주”가 인간 안에만 있어 인간이 천주를 모시며, 인간 외에는 어떠한 신이나 佛이나 초월적 天이나 원리가 없다고 한다.

그러므로 그는 인간 자신이 바로 “귀신”이기 때문에 초월적인 신을 섬기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라고 하며, 인간을 하늘같이 섬겨야 한다고 한다. 손님이 오는 것은 “한울님”이 오시는 것이며, 아이를 때리는 것은 “한울님”을 때리는 것이라 한다. 또 인간의 마음이 없이는 “천주”도 하늘도 없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범신론과 모순되게도, 최제우의 초기 신앙은 무속신앙적이었다. 그는 1860년 수도 중 “갑자기 마음이 아득하고 몸이 떨리는 병증”을 느끼고 문득 귀에 울리는 음성을 들었다. “두려워 말고 무서워 말라, 세상 사람이 나를 상제라 부르는데 너는 상제도 몰라 보는가?” 그는 이렇게 “상제”라는 신과 대화를 하였을 뿐 아니라 “영부”라는 “천도”를 받았다고 한다.

영부란 백지에 쓴 부적이고 궁을(弓乙)을 이은 것과 같은 야릇한 글자-그림으로 이것을 “천도의 모양”이라고 하며, 이것을 종이에 써 태워서 먹으면 혹은 낫고 혹은 낫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최제우는 초기의 무신(巫神) 숭배를 떠나서 범신사상을 가지게 되었고, 그것은 그의 “인내천” 사상에서도 뚜렷이 나타났다. 그는 신이란 사람이 자기의 내적 요구에서 창조한 것이며, 그것이 또한 신의 속성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므로 사람은 “신의 표현”이며, 천지만물도 역시 다 신됨을 의미한다고 한다. 그 중에 사람은 신의 가장 완전한 표현이며 천지의 주인공 되는 자격을 가졌다고 하며, 이것이 바로 “인내천” 사상이라고 한다. 천지만유는 사람에 비해 비교적 불완전 표현이고, 사람은 천지만유에 비해 “비교적 완전 표현’이라는 것이다.

위와 같이 최제우는 사람 성을 무궁시하여 숭배하고, 신과 인간을 동격화하며 창조를 진화의 개념으로 사용하여, 재래의 종교철학들의 무신론적이고 범신론적인 사상을 고수한 것이다. 여기에 무에서의 창조론이나 우주의 초월자이며 인간을 창조자이신 하나님은 설 자리가 없는 것이다.

4. 불교와 기독교 혼합주의 생사관

전 연세대 신학교수 유동식 박사는 모든 인간이 이미 이곳에서 “하나님의 새로운 자녀로서 하나된 것”이라며 “만약에 구원된 인간을 불러 크리스천이라고 한다면 이제 이 세상에는 크리스천이 아닌 사람이 없다… 그리스도 계신 곳이 교회라고 한다면 세계는 온통 교회로 변했다”라고 역설하였다. “그리스도는 예수에게 국한된다 할 수 없고 타종교인도 초월자를 체험하며 동일한 신에 대한 서로 다른 경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인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 세상에 오심으로 말미암아 이제는 새로운 세계가 전개되었다. 그것은 인간 생활을 세속이라 부르고 종교적 신성이라는 것과 구별했던 옛 세계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세속과 신성 사이의 담이 무너지고 이제는 성속이 일여화된 새로운 세계가 전개된 것이다.

이제 하나님은 인간과 멀리 떨어져서 종교라는 울타리 속에 홀로 거룩하게 계시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은 이 세속 세계 안에 계시며 항상 인간과 더불어 존재하시고 사귐을 가지신다. 여기 인간의 구원이 있다. 그러므로 인간은 구원을 얻기 위해 하늘로 올라갈 필요가 없다. 또 사후를 기다릴 필요도 없는 것이며, 종교라는 울타리 속으로 들어가야만 할 필요도 없다. 하나님은 지금 여기서 우리와 함께 도처에 계시는 것이다.”

유 박사는 성육신 사건으로 인해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구원된 자로 지금 살고 있는 것”이라며 “그리스도의 복음은 현세와 내세의 울타리를 깨 버린 것이고, 종교와 세속의 울타리는 치웠고 또한 기독교와 타종교 사이의 무의미한 장벽을 부순 것”이라 주장했다. 이와 같이 불교적 기독교 생사관은 윤회론과 무신론과 자력구원과 자기 절대주의 신비주의에 빠진 것이다.

기독교 복음이 들어오기 전 한국 재래종교들은 우상의 개념도 없었고, 영 분별의 요청도 없었다. 또 우상을 숭배하게 된 원인이 죄악과 인간의 타락에 있다는 지식도 없었다. 그러므로 불교도들의 생사관은 그들이 쌓은 업보대로 인간, 축생, 아귀, 지옥, 아수라, 천계의 6도를 윤회전생하며 영혼이 불멸한다고 믿는 것이다.

5. 유교의 생사관과 귀신관

공자의 역경 해설 ‘계사전’에서 설명하는 바에 의하면, 절대자 태극(太極)에서 양의(兩義, 음과 양)가 생출(生出)되고, 양의에서 4상(四象: 태양, 소음, 소양, 태음)이, 4상에서 8괘(하늘, 못, 불, 우뢰, 바람(나무), 물, 산, 땅)가 생출했다는 것이다.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역경의 세계관이 범신론적 특색을 나타내는 개념은 생(生)이라는 동사에 있다. 생이라는 개념은 윌헬름(R. Wilhelm)이 Erzeugung이라고 번역한 것처럼 “생산한다”는 의미가 있다.

이 동사는 창조자와 피조물의 본질적인 구별이 없는, 진화론을 전제로 한 유교의 인간관을 제시한다. 이기(理氣)론 철학으로 만물의 생성 원인을 설명해 보려는 성리학자들도 음양이 기(氣)에 속하여 기가 뭉치면 물체가 형성되고 다시 흩어지면 물체가 사라진다고 하며, 인간의 영혼도 동시에 “산화”된다고 한다.

성리학자들은 살아 있는 사람을 반은 신이며 반은 귀라고 하는데, 살았을 때는 신(神)이 주(主)가 되고, 죽은 후에는 귀(鬼)가 주가 된다고 한다. 죽은 사람의 혼은 천(天)으로 돌아가고 백은 지(地)로 돌아가며, 혼백은 점차 산화되어 일원기(一元氣)로 돌아감으로써 고유성이나 개체성은 더 이상 존속하지 않는다는 것이 신유교의 사상이다.

그러나 이 산화론은 무속신앙과 결합되어, 완전 소멸이 아니라 제사를 통한 감흥으로 죽은 자의 현재를 경험하는 강신술(spiritism)과 혼합되었다. 유자들은 원한이 맺혀 죽거나 흉사의 경우엔 혼이 산화되지 않고 한동안 요괴가 되어 “신적 작용”을 할 수 있다고 믿는다.

위와 같이 성리학은 사령이 근원자로 돌아가 원기(元氣)가 되고, 기가 산화될지라도 오히려 그 이(理;태극와 동일시됨)는 없어지지 않음으로 지성으로 제사를 지내면 그 제물을 흠향할 수 있다는 귀신사상과 무속적 강신신앙(spiritism)의 두 가지 주요한 요소를 지니고 있다.

유교의 범신론적 사상체계 속에서 조상신은 천신(天神)과 본질적으로 동일시되고, 조상숭배가 바로 천(天) 숭배와 마찬가지로 간주되어, 조상은 유교에서 유일한 숭배 대상이 되고 있다. 이 신앙적 제의가 바로 조상제사이다.

18세기 한국 천주교도 이벽(1754-1786)은, 유교의 성(誠)이란 제사 지낼 때 귀신(내지 신)을 파악할 수 있고 귀신을 접할 수 있게 되는 개념으로서, ‘음, 양’ 귀신은 본래 초감각적이지만 그것이 가감각적(可感覺的)이 되고 조상을 제사지낼 때, 음양의 기(氣)가 여러 가지로 결합함으로써 가감적인 형태를 지닌 물체가 형성된다고 설명한다. 이 같이 제사드릴 때는 성(誠)에 의하여 귀신의 존재 여부가 결정되고, 제물의 흠향 여부가 결정된다. 율곡 역시 산 사람이 성경(誠敬)하면 귀신도 존재하고, 그렇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조상이 거처하신 곳을 생각하고, 웃고 말하던 것, 즐거워하던 것, 좋아하던 것을 생각하여 “사고가 완연히 목전에 계심을 보게 될 때” 산화된 기(氣)가 이에 격감한다는 것이고 기(氣)가 소멸되었더라도 이(理)가 역시 격감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제사와 성(誠)은 부모 사별을 막는 효행으로 절대시되고, 효도의 실행 원리가 된다. 유교에서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는 것을 가장 큰 악덕으로 여기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예기』(禮記)에서 읽을 수 있는 것처럼, 성(誠)은 제사를 준비하는 재계의 과정에서 실현된다. 10일간 욕망을 끊고, 마음을 가다듬고, 심신을 깨끗이 하며, 음식과 행동을 삼가며, 음악을 듣지 않고 부정을 피하며, 재계함으로써 신령을 맞을 준비를 하면, 고인의 모습이 끊임없이 눈앞에 떠오르고, 제삿날엔 고인의 영혼이 그 앞에 있는 것처럼 느껴지고, 고인의 음성을 듣는 느낌이 든다.

효애(孝愛)의 마음이 골몰하면 부모의 영혼이 눈앞에 떠오르고, 효경(孝敬)의 정성을 다하면 영혼이 그에 감흥한다. 그러므로 향을 피워 혼기(魂氣)를 모시고 술을 부어 백(魄氣) 기를 모셔서 합일시키고 신령을 감흥케 한다.

영혼의 감흥이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생자 속에 내재화하는 것으로 상·제례는 완성된다. 신령이 내 안에 있다는 느낌은 슬픔과 공허감을 치유해 주고, 사자와 일체감과 통교를 느끼게 하는 것이다. 『예기』는 귀신의 실재에 대하여 사람이 죽으면 그 정기가 뭉쳐 강한 향기를 뿜어 느끼는 사람의 마음을 슬프게 하는 것이고, 신령이 강림하면 곧 사라져 버릴 때가 가까워지기 때문에 슬퍼하지 않을 수 없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샤머니즘의 바탕에서 자라난 중국 유교와 한국 샤머니즘 바탕 위에 전래된 이조 유교는 상·제례 시 그들의 신앙 대상에게 강복의 소원을 아뢴다. 제의 끝에 “제사가 끝나 조고께서 기쁘게 흠향하셨으니 엎드려 바라건대 5복을 고루 갖추어 가족들을 돌보고 평안하게 하십시오”라고 비는 것이다.

이조 유교는 이러한 기복신앙 외에도 상례 시 묘지 앞에서 후토신(后土神)에게 개토제를 지내면서 죽은 자의 보호를 위해 빌고, 시신을 안 본 사람이 산신제를 지내는 자연숭배 신앙도 그대로 지니고 있다. 상례를 마치면서 그들은 접은 명주조각(혼백-魂帛)에 조상의 넋을 모시고 집에 돌아와서는, 그 넋을 다시 신주에 모시면서 “형체는 광중(壙中)으로 돌아가셨으나 신혼(神魂)은 집으로 돌아가소서. 신주를 이루었으니 높으신 영혼은 옛것을 버리시고 새것을 쫓으소서. 여기 기대시고 의지하소서”라고 기도한다.

이와 같이 유교는 전통적인 무속신앙을 그대로 수용하여 귀신을 섬기고, 이를 효로서 못 박아 절대시하였다. 예기는 예(禮)의 가장 중요한 것을 제사라 하고, 제사의 10가지 윤리 중에 그 첫 것을 ‘귀신을 섬기는 것’이라고 한다. 제의의 목적은 바로 사람의 마음을 귀신과 통하게 하는 것과, 도의를 흥하게 하는 것으로서, 제사를 통해 효가 시행되고, 효자가 아니면 부모를 제사할 수도 없다고 한다. 효성을 측정할 때는 첫째로 생시에 부모를 봉양하며 그 효순(孝順)으로써 하며, 둘째로 부모가 죽으며 상례를 시행하되 그 비애의 강도로써 하고, 셋째로 상례 후에는 제사를 지내며 그 경애함과 정기적인 제사로써 한다.

중국 송대의 유자들은 예수회 선교사들의 성육신론, 천주-야소(예수)론을 박쥐에 비교하기도 하고, 선조나 백신(白神)에게 제사 지내지 않고(자연숭배), 오직 야소의 상에만 경배한다 해서 천주를 더 존경하는 것이냐고 질문하며, 귀신숭배와 더불어 天地의 主(天)를 숭배할 것을 주장하였다. 지옥의 마귀도 세상에 출몰한다면서 선조의 영혼만은 자손의 집에 올 수 없느냐는 반문과 함께, 신령과 자손이 상호 감격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인의(仁義)의 덕행을 수행한다는 송나라의 유자들은, 초월적인 하나님과 함께 타력구원 신앙을 배척하고, 오히려 자연신앙과 더불어 사령(死靈)을 숭배하는 무속신앙과 혼합하였다.

이와 같이 유교의 생사관은 자연신앙과 귀신신앙을 벗어나지 못하고, 피조물로서의 인간과 죄인으로서의 인간관이 형성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사후 천국이나 하나님의 심판을 염두에 두고 있지 않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