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민국 목사(검암 새로운교회).

리플리 증후군(Ripley Syndrome=症候群)은 현실을 부정하면서 자신이 만든 허구를 진실이라고 믿고, 거짓된 말과 설정에 따라 행동을 반복하는, 반사회적 인격 장애를 일컫는다.

‘리플리 증후군’이란 용어는 미국의 소설가 패트리샤 하이스미스가 1955년 발표한 소설 <재능 있는 리플리 씨>에서 유래했다. 소설 주인공인 ‘리플리’는 허구를 현실로 믿고 환상 속에 살아간다.

리플리 증후군은 성취욕구가 강한 무능력한 개인이, 강렬하게 원하는 것을 현실에서 이룰 수 없을 때 주로 발생한다.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없어 피해의식과 열등감에 시달리다 상습적이고 반복적인 거짓말을 일삼게 되고, 자신이 설정한 허구를 진실로 믿고 행동하게 되는 현상이다.

이번에 발생한 여학생의 명문대 허위 합격 논란은, 학벌주의를 조장한 기성세대들에게 새로운 사회적 가치 질서를 회복해야 된다는 의미로 경종을 울린다. 학벌주의와 출세 지향의 사회 구조가 빚어낸, 억압에서 출구를 찾고자 했던 여학생의 몸부림이 전형적인 리플리 증후군으로 나타났다고 진단할 수 있다.

사건 당사자인 여학생은 좋은 성적으로 미국 명문고를 입학한 수재이다. 입시 경쟁이 치열한 학교 상황 속에서 부모의 기대에 부응코자 노력한 시간이 적지 않았을 여학생에게, 대학 입시에 대한 정신적 압박감은 가히 엄청난 무게였을 것으로 사료된다.

가슴 아프게도 지금 여학생 자신은 대학 합격을 스스로에게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음은 물론, ‘페이스북’ 회장이 자신을 스카우트하고 싶어한다는 전화를 받았다는 등 2차 거짓말을 실제 상황처럼 연출하고 있다.

여학생 부모가 일방적으로 제공한 자료를 검증 없이 내보낸 언론사가 오보를 인정하고 사과하면서 불거진 이번 사건을 통해, 학벌주의에 대한 비판 여론이 거세게 불고 있다.

매스컴이 다변화하고 경쟁적으로 늘어나면서 청취자들에게 병적인 나르시시즘을 조장하는 보도와 논증들이 연일 안방까지 침투되고 있는 현실은, 속히 지양되어야 할 언론의 중대한 과제이다. 또 인간 내면의 선한 가치를 삶에 적용하고 아름다운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초석으로 인문학 강의를 적극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공계의 눈부신 발전을 역행할 수 없는 첨단 과학의 미래 지향과, 끊임없이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새로운 문명의 이기들은 인간 존중 사상을 바탕으로 한 인문학의 퇴보를 조장하게 되었고, 인문학의 퇴보는 곧 인간 내면의 아름다운 덕목들을 고사시키는 결과를 초래함으로, 부모 공경이나 아름다운 도덕적 가치를 추구할 수 없는, 지극히 사무적이고 기계적인 사회인을 양산하는 구조를 답습하게 했다.

여학생의 심리 상태를 안정시키고, 실제적인 미래를 아름답게 설계할 수 있도록 선한 가치와 인간 존중의 아름다운 목적을 일깨워 주는 것은, 여학생의 가정을 넘어 이 사회가 책임져야 할 문제이다. 여학생의 거짓말에 대한 갑론을박 전에, 학벌주의와 일등주의를 야기시킨 입시 구조를 폭넓게 수정하는 것이 절실하게 요구된다는 자성적 시각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지금 대한민국은 또다시 국무총리 인사청문회가 진행되었다. 메르스 여파로 국민들의 관심이 분산된 가운데 진행된 인사청문회를 보면서, 많은 정치인들과 사회 기득권층들이 집단적으로 리플리 증후군을 앓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국무총리 인사 청문회를 바라보면서, 어쩌면 한결같이 물질 문제, 군대 문제, 자녀 문제에 봉착한 사람들이 국무총리 자리를 넘보고 있을까 하는 야료가 떠나지 않는다.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받은 검은 돈을 절대 받지 않은 것으로 설정하고 살아가는 위정자들, 혹시나 받은 돈이 들통 나게 되면 대가성이 없었다고 또다시 거짓 설정을 하고 너스레를 떨며 살아가는 위정자들, 선거에서 참패하고도 여전히 수장 자리에 앉아 있는 낯 두꺼운 존립 등은, 리플리 증후군에 감염된 사람들의 전형적인 거짓된 행보이다.

위정자를 원하지 않는 국민이 대다수인데도 불구하고 마치 국민이 위정자를 관용하고 찬사를 보내고 있다는 착각 속에 ‘국민’이라는 단어를 남용하고 있는 정치인들 모두가, 집단적으로 리플리 증후군을 앓고 있는 것은 아닐까. 메르스 감염보다 더 큰 위험은, 물질욕과 명예욕으로 이미 사회 전반을 감염시킨 집단적 리플리 증후군이다.

인생은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이다. 숨질 때 후회의 눈물을 삼키지 말고, 호흡 있을 때 물질욕, 명예욕, 자식 걱정 다반사까지 모든 소욕을 내려놓고, 나누고 베풀고 헌신할 수 있는 아름다운 가치를 승화시켜야 할 때가 바로 지금이다.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마 19:24)”.

/하민국 목사(검암 새로운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