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본철 교수(성결대학교 역사신학/성령운동연구가).

사역의 능력을 위한 성령세례

사역의 능력(power for service)에 핵심을 둔 성령세례론은 주로 근대 개혁파 성령운동의 한 특색이라고 본다. 여기서 근대 개혁파 성령운동이란 19세기 말 미국과 영국을 중심으로 칼빈-개혁주의 노선에서 일어난, 능력 있는 크리스천의 삶을 목표로 성령의 인격과 사역에 강조점을 둔 부흥운동을 일컫는다(배본철, 「개신교 성령론의 역사」, 112). 마한(Asa Mahan)이 1870년에 발행한 「성령세례」(The Baptism of the Holy Ghost)에서는 성령세례를 받게 되면 사역과 거룩한 삶에 있어서의 능력을 받게 된다고 하였다. 피니(Charles G. Finney)의 저술인 「능력의 부여」(The Enduement of Power)에서도, 성령세례의 능력을 통해 하나님의 계획인 지상명령(the Great Commission)을 성취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초기 한국교회에 파송되었던 영미 선교사들에게 좀 더 친숙했던 성령세례론의 영향은, 무디(Dwight L. Moody)와 그의 동역자인 토레이(Reuben Archer Torrey)의 무디신학교(Moody Bible Institute) 사역을 통해서도 많이 나타났다. 무디는 자신이 1881년에 저술한 「은밀한 능력」(Secret Power)에서 특히 신자는 사역의 능력을 얻기 위해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무디에 의해서 강조되던 성령의 능력에 대한 가르침을 신학적으로 체계화한 토레이는 성령세례가 죄에서 정결케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사역의 능력을 위해서 주어진다고 강조하였다.

1930년대 평양 장로회신학교의 성령론 교재로 사용되던 「성령론」의 저자 중국인 가옥명(賈玉銘)은 성령세례 받은 증거가 영덕(靈德), 영능(靈能), 영력(靈力), 영과(靈果)에 있다고 봄으로써, 그 핵심을 성령의 열매와 함께 ‘사역의 능력’에 두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는 성령세례가 중생 이후에 성령에 몰입되고 잠기는, 성령에 충만케 되는, 성령의 권능을 받는 체험이라고 했다.

1960년대 이전 뿐 아니라 이후에도 한국 개혁파 신학계에서는 성령론에서 있어서 중생과 성령세례를 구분하는 하나의 큰 노선이 있었다. 여기에 ‘사역의 능력을 위한 성령세례’를 강조하여 한국교회에 큰 영향을 끼친 설교가로는 로이드 존스(D. M. Lloyd-Jones)를 또한 간과할 수 없다. 그는 성령세례의 주된 목적이 신자들로 하여금 권능과 담대함을 가지고 복음을 증거토록 하는데 있다고 보았다.

그리고 이인한을 필두로 하고 차영배, 박영선, 안영복, 하용조 등으로 그 계보가 이어지는, 중생과 성령세례를 구분하는 노선의 학풍은 일반적으로 ‘사역의 능력을 위한 성령세례’를 지지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의 노선은,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면, 가옥명의 「성령론」과 초대 한국교회 부흥시대의 성령세례론, 그리고 더 올라가서는 근대 개혁파 성령운동의 ‘사역의 능력’으로서의 성령세례론의 전통을 이어받은 것으로 본다.

정결과 능력의 성령세례

웨슬리(John Wesley)로부터 출발한 완전 성화의 교리는, 순간적인 체험을 통하여 신자는 마음속에 남아 있는 죄성에서 정결하게 씻음을 받게 되고, 이 원동력은 그리스도를 위한 사랑과 사역의 승리하는 삶을 가능케 해준다고 하였다. 이 같은 전통적 입장에 새로운 근대 웨슬리안 성결운동의 선구자인 팔머(Phoebe Palmer)를 통해 ‘능력’으로서의 성령세례에 대한 강조가 많이 부가되었다.

여기서 웨슬리의 성결론과 근대 웨슬리안 성결운동과는 서로 구분되는 개념이다. 웨슬리의 성결론은 무엇보다도 웨슬리 본연의 신학적 전통을 따르는 노선이라는 점에서 19세기 미국 복음주의의 산물인 근대 웨슬리안 성결운동과는 그 성격의 차이를 지닌다. 예를 들어서 ‘성령세례’라는 용어는 웨슬리의 상용어가 아니라, 웨슬리와 프레처(John Fletcher)와의 성령세례론 논의를 거치면서 형성된 후, 마침내 19세기의 복음적 부흥운동의 경향이 성결론에 첨가된 결과로 인해 활용되었다. 그런가 하면 죄성에 대한 해석에 있어서도 근대 웨슬리안 성결운동은 당시 인간의 본성에 대한 낙관적인 견해에 반대하기 위해 인간의 부패성을 더욱 분명히 강조하게 되었고, 마침내 웨슬리의 표현보다는 훨씬 과격한, 죄성을 인간의 몸  속에 있는 어떤 요소로 이해하고, 성화는 이것을 제거하는 것으로 보게 되었다.

그래서 팔머는 “성결은 곧 능력”이라고, “정화와 능력은 동일한 것”이라고 했다. 이렇게 하여 근대 웨슬리안 성결운동의 특성은 ‘정결과 능력의 성령세례’를 강조하는 데서 찾게 된다.

근대 웨슬리안 성결운동의 성령세례론이 한국교회, 특히 초기 성결교회에 접맥되는 과정에서 크게 영향을 주었던 책은 쿡(Thomas Cook)의 「신약의 성결」(New Testament Holiness), 힐즈(A. M. Hills)의 「성결과 능력」(Holiness and Power), George D. Watson의 「성결 지침」(A Holiness Manual) 등을 대표적으로 들 수 있다. 이 책의 저자들은 한결같이 ‘정결과 능력의 성령세례’를 말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치한다. 뿐만 아니라 정결에 대한 해석에서도 근대 웨슬리안 성결운동의 전통인 ‘죄성제거설’(Eradication)의 노선을 견지하고 있는 점을 볼 수 있다.

‘정결과 능력의 성령세례’는 성결교회 내에서 김상준, 이명직, 김응조 등의 저술들, 그리고 <활천>, <성결> 등의 정기간행물들을 통하여 그 전통이 계승되었다. 현재 중생 이후의 ‘제 이차적 축복’(the Second Blessing)으로서의 성결 혹은 성령세례, ‘죄성제거설’로서의 성결론, 그리고 ‘정결과 능력의 성령세례’ 관념은 기독교대한성결교회, 예수교대한성결교회, 구세군, 나사렛성결교회 등, 한국의 웨슬리안-성결 그룹 교단들의 공식적인 교리로서 채택되어 있다.

그리스도의 전인적 통치로서의 성령세례

이 노선은 근대 개혁파 성령운동에 근거를 두었지만, 무디나 토레이와는 달리, 성령세례의 주된 목적을 그리스도에 의한 전인적 통치에 둔다는 점에 특징이 있다. 보드만(William E. Boardman)은 그리스도께 대한 온전한 헌신을 하고 난 후 신자는 ‘그리스도께서 거하신다는 의식적인 증거’(a conscious witness of Christ's indwelling)를 얻게 되는데, 이를 그는 두 번째 회심으로서의 ‘성령세례’라고 불렀다. 또 고든(Adoniram J. Gordon)은 성령의 가장 중요한 사역이 신자들을 그리스도와 연합케 하고, 또 그들에게 그리스도와 연합된 유익을 깨닫도록 하는 일이라고 보았다.

이 외에도 마이어(F. B. Meyer), 머레이(Andrew Murray)와 같은, 케직(Keswick)운동의 지도자들 역시 ‘그리스도의 전인적 통치로서의 성령세례’를 강조하였다. 기독교연합선교회(C&MA)의 창시자인 심프슨(Albert Benjamin Simpson)도 역시 ‘성령세례’라는 용어를 즐겨 사용하였다. 그는 성령의 사역과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십자가의 대속사역 사이의 관계성을 크게 강조하였다. 그는 그리스도께서 신자 안에 이루어 주시는 성결은 성령세례를 통해 그리스도께서 신자 안에 오시는 체험이며, 성결의 체험을 통해 신자는 그리스도와 연합함으로, 크리스천의 생활에 능력과 승리를 얻는다고 하였다.

‘그리스도의 전인적 통치로서의 성령세례’를 강조하는 저자들 중에 특히 머레이와 심프슨은 한국 교계에 널리 알려져 있다. 머레이의 번역된 경건서적들은 1980년대 이후부터 현재까지 폭넓은 독자층을 확보하고 있다. 한국교회에 번역되어 소개된 머레이의 경건서적 중에는 「기도생활의 축복」, 「보다 깊은 삶을」, 「헌신」, 「주님과 동행하는삶」, 「언약」, 「나를 허물고 주님을 세우는 삶」, 「거룩」, 「하나님을 위해 어떻게 일할까」, 「주 안에 거하라」, 「오순절 성령충만」, 「순종」, 「그리스도의 영」, 「계약신앙」, 「겸손」 등이 있다. 그리고 심프슨의 글들은 1931년과 1932년에 성결교회의 <활천>에 연재된 것을 비롯하여, 특히 1970년대 이후부터는 예수교대한성결교회와 C&MA와의 제휴관계 속에서 여러 권의 책들이 번역되고 있다.

방언의 표적을 중시하는 성령세례

파함(Charles F. Parham)은 방언을 성령세례 받은 단 하나의 증거라고 최초로 강조하기 시작한 사람이었다. 그의 영향력은 1901년 토페카(Topeka)와 1906년 시무어(W. J. Seymour)가 이끈 아주사(Azusa) 거리의 부흥에서는 물론, 현재까지 방언을 성령세례와 직결시키는 전통 오순절주의(Classical Pentecostalism) 신앙의 전 세계적 확산을 가져오게 하였다. 국내에는 하나님의성회가 ‘방언의 표적을 중시하는 성령세례’를 주장하는 전통 오순절주의의 대표적 교단이다. 이 노선의 가장 영향력 있는 저자로서는 조용기 목사를 들 수 있다. 그는 중생과 성령세례는 명백히 다른 별개의 체험이라고 전제하면서, 성령세례를 받은 가장 명백한 외적 표적은 방언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런가 하면 미국과 영국을 중심으로 1960년대에 일어난 은사갱신운동(Charismatic Renewal)은 ‘방언의 표적을 중시하는 성령세례’를 권장하지만, 그 강도가 전통 오순절주의보다는 선택적이다. 국내에서 은사갱신운동가들의 저서들이 최초로 번역되어 소개되기 시작한 때는 1970년대 후반부터였다. 세릴(John L. Sherill), 베니트(Dennis J. Bennett), 맥너트(Francis MacNutt) 등의 저서들이 번역되어 일반 독자들 사이에 친숙하게 소개되었는데, 이들의 저서에서는 방언을 거의 성령세례와 동일시하는 표현이 많이 발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