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덕영 박사.

킹제임스성경(KJV, The King James Version)의 번역 역사

영어성경이 나오기 전, 영국에서는 ‘고대라틴어성경’과 ‘벌게이트성경’이 공식 예배에서 사용되었다. 그러니 라틴어를 모르는 일반 대중들은 예배에서 사용되는 성경의 내용을 읽을 수도 이해할 수도 없었다. 이에 점차적으로 일반 대중들의 언어로 된 성경이 긴요하게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일반 대중들도 성경을 직접 읽을 권리가 있다고 계몽한 벌게이트 역의 대본인 위클리프영역(英譯)성경(Wycliffe's Bible, 1380-1382)이 등장한 이후, 킹제임스성경(KJV, The King James Version)의 모태가 된 틴데일성경(1525-1535)으로부터 1611년 KJV가 나오기까지, 성경 영역의 역사는 복잡한 경로를 거치게 된다. 문제는 한 번도 이 흠정역(欽定譯, KJV)이 교회나 국가에 의해 공식적으로 승인을 받은 적이 없다는 점이다. 그러니 “흠정역만이 성령이 역사한 유일한 역본“이라든가 “흠정역만 읽어야 구원받는다”는 등의 고집은 타당하지 않다. 한글흠정역이 나오기 전의 우리 한국 성도들은 모두 구원받지 못했다는 이상한 결론이 나오면 안 되는 것이다. 마치 마귀는 성경조차 강력하게 변개시켜 흠정역 이전의 모든 하나님 백성들을 지옥으로 끌고 갔다는 논리가 된다면, 사단은 하나님보다 능하며 아주 무섭고 능력 있는 존재가 되고, 하나님은 모든 백성들이 추락하는 것을 그대로 방치한 한없이 초라하고 능력 없으신 분으로 매도되는 아주 이상한 신학이 등장할지도 모른다. 이것은 하나님의 선하심과 전지전능하심의 교리와 충돌한다. 그 뿐 아니라 라틴어도 모르고 그 어떤 성경도 모르던, 흠정역 이전의 영어권 신자들도 모두 구원받지 못했다는 괴상한 모순에 빠져버리게 된다.

1603년 제임스 1세는 청교도 지도자 존 레이놀드(John Reynold)의 “성경에 오역(誤譯)이 많아 원전(原典)의 의미를 바로 전달하지 못하고 있다”는 진언을 받아들여, 54명의 왕실 작가들을 중심으로 흠정역성경을 준비하게 된다. 당시 레이놀드는 옥스퍼드에 있는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의미를 가진 코르푸스크리스티대학(Corpus Christi College)의 학장이었다. 당시 제임스 1세는 칼빈주의자들이 보던 제네바성경(Geneva Bible, 신약=1557, 구약=1560)을 탐탁지 않게 여겼으며, 주교성경(The Bishop's Bible, 1568)도 국왕 자신이 주도한 새로운 성경으로 대체되기를 바랐다. 즉 흠정역(KJV)은 제임스 국왕의 사심(私心)이 일부 들어 있는 성경이었다.

이 새로운 성경 번역을 위해 1607년 54명의 왕실 작가들이 선정되어 케임브리지·옥스퍼드·웨스트민스터대학의 6개 팀이 참여하게 된다. 케임브리지의 두 사람이 역대상에서 전도서와 외경까지를, 옥스퍼드의 두 사람은 이사야에서 말라기, 사복음서, 사도행전과 요한계시록을 맡았다. 그리고 웨스트민스터의 둘은 창세기에서 열왕기하와 로마서에서 유다서까지를 할당받았다. 54명 중 주교성경의 개정 작업에 실제 참여한 사람은 47명이었다. 가능하면 히브리어와 헬라어의 원문에 일치하도록 했고, 만일 틴데일, 매튜, 카버데일, 휫처치, 제네바 등의 번역본이 성경 사본과 일치하지 않는다면 주교성경을 따르도록 했다. 사본은 하나의 사본이 아닌, 당시 사용 가능한 여러 사본을 근거로 삼았다. 12세기에서 15세기까지, 확인된 신뢰성 있는 사본들은 모두 참조하였다. 또한 완곡(婉曲)한 표현을 사용하지 않고는 원전의 내용을 충분히 간결하고 적절하게 표현할 수가 없는 히브리어나 헬라어의 단어들을 설명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절대로 난외의 주를 달지 않도록 했다.

새 번역본의 제3판은 1611년에 나왔다. 그 후 찰스 1세의 집권 기간 중 장기 회의에서는 소위 흠정역성경 개정을 위한 위원회를 구성하여 1629, 1638, 1653, 1701, 1762, 1769년과 그 후 두 차례의 후기 재판에서 사소한 개정이 이루어져 왔으며, 마지막 3차 개정본은 옥스퍼드의 브레이니(Blayney) 박사에 의하여 만들어진다. 이것은 1611년판과 비교할 때 약 75,000군데나 수정되어 있었다. 새로운 성서 사본들이 발견되면서 KJV의 개정역(ERV, 1881-1885)은 1870년 캔터베리 종교회의를 거쳐 필립 샤프를 위원장으로 하여 완성된다. 이렇게 KJV도 단번에 완벽하게 기계적으로 번역된 책이 아니었다. 언어가 변천하고 새로운 사본들을 참조하면서, 많은 믿음의 일꾼들이 참여하여 사소한 수정과 변경이 지속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흠정역성경을 유일무이한 성경이라고 너무 절대시하는 것은 조심해야 한다. 흠정역의 중요성을 알리는 것은 좋으나, 다른 성경은 모두 사단이 변개했다는 식의 주장은 결코 성경적이라고 보기 어렵다. 더구나 한글흠정역은 초창기 급하게 제작되느라 문제가 많았다. 즉 한글 번역과 교정상 문제가 많았다. 필자가 확인했던 그 초기 한글 번역본은 아주 부끄러울 정도로 교정상 문제가 많았다. 즉, 충분한 검토나 교정 없이 졸속 번역·교정되었다는 증거이다.

킹제임스성경은 완전한가

그렇게 완벽해 보이는 KJV 자체도, 원본이 아닌 이상 완전한 성경은 아니다. 한 가지 예를 들어 보자. תנין(T(h)annin)은 성경 12책에 29번 나오는 단어다. 이 단어에 대해 KJV는 tannim(14회)을 dragons(12), dragon(1), whale(1) 등으로 다르게 번역하고 있고, tannin(9회)은 dragon(5), serpent(2), whale(1), sea-monsters(1) 등 4가지로 번역되고 있다. tanninim(5회)은 dragons(3), serpents(1), whales(1) 등으로 서로 다르게 번역되고 thannoth(1)는 dragons­of(construct state)로 번역되고 있다. 용과 고래는 그 이미지가 전혀 다르다. 같은 단어가 이렇게 다르게 번역되었다는 것은, 성경 독자들이 해석에 있어 결정적 오류를 범할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KJV도 원본이 아니라 사본과 다른 역본을 참조한 역본에 불과하므로, 당연히 이렇게 허점이 있는 것이다.

성경 번역의 의미

성경의 원본이 없다는 점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성경 연구에 있어 늘 겸손해야 하고 부단히 노력해야 함을 암묵적으로 알려준다. 물론 하나님은 사본만을 남기시면서도 인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심오한 섭리에 대해서는 우리 인간이 큰 오류 없이 깨달을 수 있도록 조치하셨다. 하지만 언어는 인간이 사용하는 것이고, 바벨탑 혼잡 이후로 늘 변화해 왔다. 50년 전 사람들이 생각하던 오렌지족과 우리가 지금 생각하는 오렌지족의 개념은 전혀 다르다. 50년 전 된장녀와 지금의 된장녀도 전혀 의미가 다르다. 그래서 500년 전 조선시대 사람들과 지금 우리들이 시대를 초월하여 대화한다면, 사극 드라마처럼 서로 간에 자유롭게 이해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큰 어려움을 느낄지도 모른다. 이렇게 언어는 늘 생명체처럼 변신한다. 따라서 성경은 시대의 언어 변천을 따라 새롭게 번역될 당위성이 생기게 된다. 개역성경의 어투만 해도 우리 세대는 좀 더 거룩한 말씀처럼 여겨져서 익숙하고 좋으나, 요즘 젊은 세대들에게는 고리타분하고 어색한 어법으로 느껴져서 그 내용이 마음에 잘 와닿지 않는 경우가 많이 있다. 그래서 개정판의 필요성이 대두된다. 개역개정판이나 다른 한글 번역본들이 탄생한 배경이기도 하다.

<개역성서>는 1910년 신구약 공인역이 완역(신약은 주로 외국 선교사들이 번역, 구약은 흠정역과 중국어 성서 참조)되자, 신문명 수입으로 한국의 언어가 급격히 변화하는 과정에서 비평판 원문이 나왔다는 이유로 성경 개역의 필요성이 대두되어, 1912년 여러 선교사들과 한국 목사·장로들이 하나가 되어 위원회를 구성하여 25년이라는 오랜 각고(刻苦)의 기간 끝에 완성(1937)한 성경이었다. 해방 이후 1949년 새로운 한글 맞춤법 통일안에 따라, 1952년 10월 교정판이 나왔다. RSV와 네슬-알란트판이 많이 참고된 걸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이것이 지금의 개역개정판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런 모든 섭리 과정을 무시하고 일부 사람들이 한글 성경은 사단이 변개한 것이라는 식으로 무시하는 것은,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의 섭리와 역사하심에 대한 기본을 모르는 소치가 아닐 수 없다.

킹제임스성경이 좋은 성경이기는 하나

성경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바벨론에 포로(주전 586)로 가면서 가져간 사본이 맛소라 사본으로 발전하며, 에스라가 귀환하면서 바벨론에서 가져온 사본과 팔레스틴 땅에 남아있던 사본을 대조하여 원시 사마리아 수정본을 만들고, 애굽 알렉산드리아에서 발전한 고대 70인역 등이 발전하면서 구약이 완성되어 갔고, 신약은 알렉산드리아(애굽, 이디오피아 등)와 동방 지역(가이사랴, 안디옥 등)과 서방 지역(이탈리아, 바티칸, 고올, 북아프리카 지역)에서 나타난 사본들이 남아 있다. 이들이 라틴역으로 발전하고 영어와 여러 나라 말로 번역되어 갔다. 제임스왕 흠정역(KJV, The King James Version)이 훌륭한 영역(英譯) 성경이기는 하다. 하지만 오직 KJV만 바른 성경이고 다른 것들은 사단이 변개한 성경이라는 식의 주장은 분명 무리가 있다. 따라서 흠정역이 좋은 성경이기는 하나, 흠정역만 고집하는 것은 너무 편협된 신앙이요 전혀 성경적 근거가 없다고 본다.

조덕영 박사는

환경화학공학과 조직신학을 전공한 공학도이자 신학자다. 한국창조과학회 대표간사 겸 창조지 편집인으로 활동했고 지금은 여러 신학교에서 창조론을 강의하고 있는 창조론 전문가이기도 하다. 그가 소장으로 있는 ‘창조신학연구소’(www.kictnet.net)는 창조론과 관련된 방대한 자료들로 구성돼 목회자 및 학자들에게 지식의 보고 역할을 하고 있다. 이 글 역시 저자의 허락을 받아 연구소 홈페이지에서 퍼온 것이다. ‘기독교와 과학’ 등 20여 권의 역저서가 있으며, 다방면의 창조론 이슈들을 다루는 ‘창조론 오픈포럼’을 주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