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렘브란트의 ‘세 개의 십자가’. ⓒ루브르박물관

그리스도의 생애와 고난, 십자가를 묵상하는 사순절 기간을 지나고 있다. 사순절(四旬節·Lent)은 부활절 전까지 여섯 번의 주일을 제외한 40일 동안을 말하며, 초대교회 성도들이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의미로 금식을 실시한 데서 유래해 니케아 회의(325년)에서 40일간으로 결정됐다. 금식과 특별기도, 경건 훈련에 더해 ‘거룩한 독서(Lectio Divina·聖讀)’도 훈련하는 차원에서, 십자가와 부활에 대한 묵상으로 안내하는 책들을 두 차례에 걸쳐 소개한다.

◈신비이자 역설인 십자가, 그 자체로 바라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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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인의 십자가 사상
차재승 | 새물결플러스 | 470쪽 | 20,000원

십자가, 그 신비와 역설
차재승 | 새물결플러스 | 268쪽 | 13,500원

지난해 나온 「7인의 십자가 사상」은 ‘십자가론’에 천착해 온 저자가 기독교 2천년 역사상 가장 포괄적이며 깊이 있게 ‘십자가 사상’을 전개한 신학자 7명의 다양한 사상들을 원전에 충실하게 분석하고 종합하는 책이다. 저자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그 자체로서의 십자가(the cross as such)’, 즉 ‘십자가 그 자체’에서 ‘넘치는 십자가(cross overflowing)’로의 패러다임을 의식하면서 십자가의 신비에 더 가까이 다가간다.

이러한 작업은 ‘십자가 이해’의 편협성에 기인한다. 십자가를 우리가 선호하는 몇몇 사상으로 축소하거나, 인간의 논리로 이해하려 한다는 것. 이에 저자는 대신론(대속론·substitutionsary perspective)과 도덕적 모범론(moral exemplary theory) 등으로 표출되는 ‘십자가가 왜 필요한가’, ‘십자가가 어떻게 그 역할을 감당하는가’ 하는 질문들에 앞서, ‘십자가가 무엇인가’ 하는 ‘십자가 그 자체’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십자가의 실재는 십자가에 대한 해석을 앞서기 때문이고, 십자가라는 단순한 실재 ‘그 자체’로 돌아가는 것이 결국 인간의 실존적 삶과 영생으로 ‘흘러 넘치는 길’이기 때문이다. 이 독특한 언어들은 저자가 해온 깊은 연구의 결과물이다.

저자가 소개하는 7가지의 ‘십자가 모델’은 모두 ‘인간의 참여’보다 ‘그리스도의 사역’, 즉 ‘대신(속)론’에 강조점을 두고 있다. 십자가는 인간이 아닌, 그리스도의 일이기 때문이다. “‘십자가 그 자체’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그리스도께서 인간에게 찾아오셔서 자신을 우리와 나누고(sharing aspect), 우리를 짊어지셨다는 점이다. 따라서 그리스도가 십자가의 주체다. 인간은 십자가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지만, 주체가 아니라 참여할 뿐이다.”

그 7가지 모델로 저자는 빚과 지불(대속)이라는 안셀무스의 상업적 ‘충족(satisfaction)’ 개념과 ‘십자가에서 무엇이 발생했는가’에 충실한 루터의 ‘교환(exchange)’부터 제의적 개념을 바탕으로 한 오리게네스의 ‘희생(sacrifice)’, 독특한 개념인 19세기 신학자 맥레오드 캠벨의 ‘대신적 회개(vicarious repentance)’, 이레나이우스의 ‘총괄갱신(recapitulation)’, 저자의 스승인 네덜란드 신학자 아브라함 판 드 베이크의 ‘나눔과 짊어짐(sharing & bearing)’ 등을 소개하고, 마지막으로 칼빈의 형벌적 대속론(Penal Substitutionary Theory)을 ‘포괄성과 동시성’이라는 주제로 다루고 있다.

이후 저자는 “신(神)의 자기희생을 빗댈 만한 어떤 사고나 체계도 우리에게서 찾을 수 없고, 그리스도가 십자가 그 자체를 우리에게 체계적으로 설명하시거나 알리신 것이 아니므로 십자가는 인간에게 ‘신비’일 수밖에 없다”며 “대신 그리스도는 ‘넘치는 십자가’로 우리에게 다가오신다. 그는 자신을 내어주심으로써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다”고 말한다. 이 책은 2014년 세종도서(구 문화체육관광부 선정 우수도서)에 선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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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앞선 저작인 「십자가, 그 신비와 역설」은 ‘예수님은 자신의 십자가 죽음을 어떻게 이해하셨는가’에 대한 소개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오늘날 많은 진보적인 신학자들은 예수님께서 스스로 자신의 십자가 죽음이 어떤 의미인지 분명한 의식을 갖고 있지 못했다고 주장한다”며 “그런데 이들은 예수님이 최후의 만찬에서 하셨던 말씀에 주목하지 않는다”고 문제를 제기한다.

그 ‘받아 먹으라 내 몸과 피니라’고 하신 최후의 만찬(막 14:22-25)을 비롯해 십자가 상에서 하신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막 15:34)’와 ‘다 이루었다(요 19:30)’, 대속물에 대한 말씀(막 10:45)과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막 8:34)’ 등 다섯 가지 자신의 죽음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과 선포에 대해 해설하고 있다.

이 책에서도 예수님께서 직접 하신 이 말씀들을 통해 위 책에 등장하는 십자가의 다양한 이론에 대해 고찰하고 있으며, ‘신비이자 역설인 십자가 그 자체로부터 넘치는 십자가’, 즉 십자가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우리들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로까지 나아간다.

“기독교의 역설이 여기에 있다. 예수님 그 자신이 평화다. 우리에게 확인되고 검증되고 승인되고 소유되고 그래서 마침내 우리에 의해서 파괴되어버릴 그런 평화가 아니라, 우리의 지성을 압도하고 우리의 잣대를 파괴하며 우리의 욕망을 넘어서는 ‘고난의 평화’다.”

◈십자가 대신 다른 것을 묵상하고 싶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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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로 돌아가라
알리스터 맥그라스 | 생명의말씀사 | 248쪽 | 12,000원

가장 잘 알려진 복음주의 학자이자 「하나님의 칭의론」, 「기독교, 그 위험한 사상의 역사」 등을 쓴 저자가 ‘기독교 신앙의 핵심’에 있는 중대한 진리를 전개하고, 그것이 교회에 의미하는 바를 전하고 있다. 먼저 십자가가 기독교의 중심이 된다는 사실을 확증하고,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대면하는 신비의 의미를 탐구하고 있다.

저자는 “십자가는 정말로 신비하고도 이해하기 어렵다”, “십자가는 ‘속죄의 이론’이나 ‘구원론’을 다루는 신학 교과서의 한 부분으로 밀려나는 경우가 많다” 등 차재승 박사의 주장과 비슷한 이야기를 전한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 실존의 무의미함에 절망하는 사람들, 세상에서 갈 길을 잃은 사람들, 세상의 염려와 근심에 짓눌린 사람들을 위한 의미로 가득 차 있다”며 “때로 십자가는 기독교 신앙의 한 작은 부분-그리스도가 우리를 어떻게 구속하셨는가-으로 격하되는 경우가 많지만, 실제로는 기독교 신앙의 모든 측면에 지울 수 없고 결정적인 인상을 새겨놓는다”고 전한다.

저자는 반기독교적 사상을 펼치거나 십자가와 부활에 의문을 제기하는 자유주의 기독교의 흐름에 맞서, 종교개혁에 앞서 유행했던 ‘ad fontes(아드 폰테스)’, 즉 ‘근본으로 돌아가라’는 말에 빗대 ‘십자가로 돌아가라’고 권면한다. “교회는 죽어가는 예수 그리스도 대신 다른 것을 묵상하고 싶겠지만, 하나님과 세상에 대한 교회의 생각은 ‘십자가에 달리시고 감춰지신 하나님’이라는, 도무지 뇌리를 떠나지 않고 마음을 심란하게 하는 그 이미지에 기초해야 한다.”

또 “십자가는 기독교적인 삶의 출발점을 확립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삶의 본질과 목적, 그리고 하나님이 이 세상과 우리의 삶에서 임재하시고 활동하시는 방식에 대한 이해를 형성한다”고 강조한다. 더불어 십자가는 여전히 불가해하고 그리스도인의 삶에 혼란을 야기하는 중심으로 남게 될 것이며, 우리가 그것을 통해 하나님을 볼 수 있고 또 보아야 하는, 그리고 우리가 절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불투명한 창으로 남을 것이다.

“기독교 신앙은 흥미로운 사상과 개념에 대한 것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과의 만남이다. 우리와 십자가 사이에는 제거되어야 하는 이론과 가설, 그리고 이러한 것들을 끊임없이 다듬는 행위 등 여과 장치들이 놓여 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기독교 신앙의 원천과 기반으로 돌아가려는 사람들을 방해해 왔다. 기독교는 교회가 시작되었던 곳, 즉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로 돌아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리스도의 고난과 부활, 여전히 살아있는 이야기

 

사순절 묵상과 힐링
장보철 | CLC | 256쪽 | 12,000원

재의 수요일부터 부활절 전야까지, 40일간 읽을 수 있는 ‘사순절 묵상집’이다. ‘고난에서 부활까지’를 부제로 사순절과 관련된 본문을 읽고 제시된 글을 읽으며 묵상한 후 나눔과 기도, 적용 등을 할 수 있도록 공간을 마련해 두고 있다. 함께 볼 수 있는 40장의 관련 성화들을 소개해 묵상을 돕고 있다.

저자는 “기독교의 절기는 그저 오래 전에 일어났던 일들을 우리가 일방적으로 기념하는 정적인 개념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우리가 기념하는 절기들, 예를 들면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그리스도의 고난과 부활은 동적인 개념이 되어야만 한다는 것이 나의 믿음”이라고 말한다. 그리스도의 고난과 부활은 엄밀히 말하면 우리가 기념하거나 은혜를 생각하면서 감사하는 대상으로 끝나서는 안 되고, 아주 오래 전에 벌어졌던 일이지만 바로 지금 그리고 앞으로도 여전히 살아있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라는 것.

부산장신대 교수인 저자는 사순절 기간에 크리스천들이 꼭 묵상해야 하는 주제들을 선정하고, 목회 돌봄과 상담학적 관점에서 하나하나 풀어갔다고 한다. 그러면서 “또 하나의 사순절 묵상집으로 끝나지 않았으면 하는 게 솔직한 바람”이라며 “성서신학자나 조직신학자가 아닌, 실천신학자가 바라보는 사순절 이야기도 들을 만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