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본철 교수(성결대학교 역사신학/성령운동연구가).

영성이란?

21세기를 맞이한 현대 기독교회와 신학계의 최대 관심사 중에는 영성에 관한 논의를 빼놓을 수 없다. 그러나 저마다 영성신학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하지만, 영성에 대한 개념이 매우 애매하게 혼동된 상태이다. 그래서 현재 영성이란 말은 사람들이 자신이 원하는 모두를 포함시키는 막연한 용어가 되어버린 듯하다.

어떤 이들은 신비주의·금욕주의적이거나 은사체험적인 영성을 말한다. 또 어떤 이들은 사회 해방이나 문화적 관점의 영성을 말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보수적인 신학 노선에서는 영성을 성령충만의 상태와 연관지어, 진보적 노선에서는 사회 해방과 인권운동의 차원에서 사용하기 때문에, 자연적으로 영성의 개념은 혼미해질 수밖에 없다. 이런 혼란된 상태에서는 한국교회의 바람직한 영성운동의 맥을 잡아가는 데에 많은 어려움이 생기게 된다. 그러므로 영성의 개념부터 정립되어야 할 필요성이 절실하다.

‘영성’이라는 용어는 1960년 이후 가톨릭교회에서 본격적으로 말하기 시작하였는데, 영성신학의 태동에는 계몽주의 이후 서구의 합리적 사고에 대한 반작용으로서의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의 성격이 깃들어 있다. 즉 영성신학은 신학을 분석과 비판적 사고의 서구적 틀 말고 다른 사고의 패러다임을 가지고 총체적인 각도에서 새롭게 보자는 정신이 숨어 있다. 영성이라는 말이 사용되기 전에는 주로 ‘경건’이라는 말이 가장 이와 가까운 의미로 사용되어 왔다. 그러나 경건이라는 말은 그 개념의 변천사에서 너무나 개인적, 그리고 신-인간의 수직적 개념으로 좁아져서, 보다 넓은 범주의 것을 표현할 수 없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서구에서는 경건이라는 말이 그 본연의 의미보다는 매우 가볍게 전락되어 버렸다는 아쉬움도 있다.

이 글의 핵심은 현대의 대표적 기독교 영성들을 소개하고, 그 가운데서 복음적 영성의 틀을 찾아내는 일이다. 이를 위해 필자는 현대교회의 영성을 이끌고 있는 대표적인 네 가지 영성을 소개한 후, 이러한 운동에 근간을 둔 21세기 복음적 영성운동의 전망에 대해 다루려 한다.

개혁주의적 영성

현대교회의 개혁주의적 영성은 주로 칼빈-청교도적(Calvin-Puritan) 배경을 지닌 19세기 부흥운동을 통해 실천되어왔다. 19세기 장로교의 신학적 이슈는 “인간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 있었다. 그 중에서 인간의 부패성을 강조하는 파가 구파(舊派)인 프린스턴(Princeton) 파였고, 인간의 자유의지를 강조한 파가 신파(新派)인 유니온(Union) 파였다. 구파 칼빈주의는 인간의 무능력을 강조한 나머지 ‘숙명론’으로 기울어진 감을 주었고, 이 같은 소극적인 인간론은 새로운 국가적 이상에 적합하지 않았다.

특히 1830년대 후반에는 미국 개혁파 전통에서 새로운 형태의 완전주의가 피니(Charles G. Finney)와 마한(Asa Mahan)을 중심으로 일어났다. 피니는 이 부흥을 재조직하고 새롭게 활기를 띠게 만든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가 젊은 시절 한때 칼빈주의 교회에 참석했으나, 곧 칼빈주의 교리에 반발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기독교 교리의 깊은 연구를 통해 1836년경에는 온전한 성결이 이 세상에서 가능하다고 굳게 믿게 되었다. 1837년에 그는 오벌린(Oberlin)대학에 가서 마한 학장의 영향을 받게 되었다.

피니는 개혁파 노선에 있어서 자유로운 구원과 인간의 선택을 강조한 완전주의자들 중의 대표자로 들 수 있다. 피니는 개인적인 특별한 체험을 거친 지 몇 년 후, 두 번째 복을 체험하는 일이 이 세상에서 가능하다고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와 그의 오벌린 대학 동료들은 이른바 ‘오벌린 완전주의’(Oberlin Perfectionism)라고 불리는 가르침을 전하기 시작했다. 피니에 따르면, 사람은 자기가 열망하는 성결의 단계를 단지 자유의지를 훈련하고 ‘올바른 의도’를 계발함을 통해 얻을 수 있다고 하였는데, 이 같은 피니의 오벌린 신학(Oberlin Theology)은 그가 받은 칼빈주의적 배경에서 기인한 것으로, Wesleyan 성결론과는 분명한 대조를 보인다. 피니는 신파의 영향을 받아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율법을 행할 수 있는 힘을 주셨다는 노선이었다. 반면에 웨슬리안 성결론은 의지적 결단은 성결 체험에 대한 동기일 뿐이고, 하나님께서 영혼 속에 성결 체험을 주신다는 노선이다.

1858년에는 장로교 목회자인 보드맨(William E. Boardman)에 의해 「더 높은 그리스도인의 삶」(The Higher Christian Life)이 출판되었는데, 이 책은 특히 메소디스트(Methodists) 전통 이외의 사람들에게 성결의 은혜를 해석할 목적을 지니고 있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칭의의 주로서 고백하는 믿음이 있는가 하면, 또한 성결의 주로서 고백하는 믿음이 있다고 했다. 그런데 이 후자의 믿음은 신자의 두 번째 회심(second conversion)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스도께 대한 온전한 헌신을 하고 난 후, 신자는 ‘그리스도께서 거하신다는 의식적인 증거’(a conscious witness of Christ's indwelling)를 얻게 된다. 그는 이 두 번째 회심을 성령세례라고 불렀다.

이렇게 해서 시작된 ‘더 높은 삶’(Higher Life) 운동에는 보드맨 외에도 로버트 스미스(l Smith)와 한나 스미스(Hannah Whitall Smith) 등이 크게 활약하였다. 비록 그들은 미국인이었으나, 그들의 영향력은 영국에 크게 미쳐서 마침내 케직(Keswick)운동에도 큰 감화를 주었다. 케직운동의 중요한 지도자인 홉킨스(Evan Hopkins)는 죄의 뿌리를 죄성이 아닌, 악에 대한 경향성으로 설명했다. 그러나 고든(Gordon), 피어슨(Pierson), 무디(Moody), 토레이(Torrey)와 같은 미국 복음주의자들의 성결론은 세대주의 견해와 케직의 가르침 사이에 위치하는데, 일반적으로는 세대주의적 두 본성 이론보다는 케직에서 주장하는 죄성에 대한 승리의 방향에 대해 더 많은 강조점을 띠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