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발견

최광현 | 부키 | 287쪽 | 13,800원

“우리 엄마가 너하고 놀지 말래! 이제 우리 집에 놀러 오면 안 된대!”

한 초등학교 3학년 남자아이는 아버지의 실직 때문에 친했던 친구에게 절교를 당했다. 이 일은 그 후로 오랫동안 아이에게 큰 상처로 남았다. 이 아이는 어른이 되어 가족심리치유 전문가이자 가족상담학과 교수가 되었다. 이제는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 있게 된 그는 “유학 시절 독기 어린 공부는 ‘가난’이라는 수치를 내 가족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다는 간절한 바람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또 “상담을 직업으로 선택하고 가족의 상처에 대해 연구할 수 있게 한 힘이 그때의 경험”이었다고 덧붙였다. 

그는 바로 수많은 가족의 상처를 어루만지며 수년째 인문 분야 베스트셀러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가족의 두 얼굴’의 저자 최광현 교수이다. 그가 두 번째 가족 이야기, ‘가족의 발견’을 펴냈다. 

저자는 수많은 가족 상담을 통해 ‘왜 우리는 가족에게 상처받고 힘들어할까?’, ‘가족으로부터 받은 상처는 우리에게 어떤 고통을 주고,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까?’, ‘그 상처를 어떻게 치유할 수 있을까?’, ‘더 이상 가족에게 상처받지 않고 나와 가족을 보듬을 수 있을까?’에 대해 고민했고 그 나름의 답을 이 책에 담았다. 

저자는 상담실을 찾아오는 사람들 대부분이 “사회에서 만났다면 호감이거나 적어도 불편하지는 않을 사람들”이라고 한다. 그들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기 싫어하고 선한 성품으로 성실하게 살아온 사람들이었다. 왜 이런 사람들이 상담실을 찾게 된 걸까? 

이들은 섬세하고 상냥한 성격으로, 대부분 자기 자신보다 가족을 더 사랑하고 가족을 지키기 위해 자기의 에너지를 지나치게 소모하고 있었다. 특히 가족 안에서 일어나는 갈등과 긴장에 대한 책임을 자신이 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운전 중이었습니다. 몸도 마음도 평소와 다를 바 없는 평범한 날이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횡단보도를 지나가는 사람들이 모두 볼링 핀으로 보였습니다. 그냥 치고 지나가고 싶은 강렬한 욕구를 느꼈지요. 나는 그 욕구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내 안에 지킬 박사와 하이드 같은 상반된 인격이 존재하고 있는 건지, 솔직히 두렵습니다.” -「내 안에는 지킬 박사와 하이드가 산다」 중에서

자기 내면의 어두운 충동을 털어놓은 이 사람 역시 평소 성실하고 책임감 있는 행동으로 학생들에게 존경받는 교수였다. 그런데 왜 이런 모습이 나타난 것일까? 그것은 우리 내면의 자아와 그림자가 균형을 이루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모든 소방관은 방화범이 되고자 하는 욕구를 갖고 있다.”는 유럽 속담은 자아와 그림자의 균형 욕구를 잘 보여 준다. 

그리고 이것은 가족 문제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갈등과 긴장 상황에 놓여 있는 가족은 대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한 가족이다. 행복한 가족을 만들기 위해 애쓰며 참은 만큼 갈등 상황에 놓이게 된다. 

나와 가족의 상처를 보듬다

가족에게서 받은 상처를 잊거나 애써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상처, 그리고 트라우마를 바라보는 관점을 바꾸면서 자연스레 치유의 길로 들어설 수 있다.

자식들에게 너무 냉혹했던 아버지만 생각하면 분노가 치밀어 올라 한없이 우울해지는 여성이 있었다. 이 여성은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받은 상처로 인해 성인이 되어서도 계속해서 고통받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삶에 변화가 찾아왔다. 

아버지는 전쟁으로 트라우마를 입은 피해자였다. 트라우마가 크면 클수록 시야는 좁아지게 마련이다. 상황을 넓게 볼 수 없기 때문에 보통 사람보다 더 크게 불안해하고 긴장하고 더 부정적으로 사고하고 판단한다. 그리고 그러한 모든 것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요인이 된다. 아버지에게 하루하루는 전쟁터와도 같았기 때문에 자녀들이 거기서 살아남도록 극기 훈련을 시켰던 것이다. 

그녀는 상담을 통해 아버지가 자식들에게 냉혹했던 의도를 알게 되었다. 어린 시절의 기억과 상처를 지운 것도 외면한 것도 아닌, 그저 상처를 다른 각도로 바라봄으로써 일어난 변화였다.

이런 변화와 치유의 과정에서 가족과의 따뜻한 소통과 공감은 큰 힘이 될 수 있다. 가족은 우리에게 아픔과 고통의 원인이 되기도 하고, 그래서 벗어나고 싶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의 마지막 안식처이자 피난처이기 때문이다. 소통과 공감은 크고 대단한 것이 아니다. 그저 따뜻한 말 한마디, 포옹 한 번이면 충분하다.

“행복한 가족은 모두 엇비슷하고, 불행한 가족은 불행의 이유가 제각기 다르다”는 ‘안나 카레리나’의 첫 문장처럼, 우리가 가족에게 받는 상처는 다 다를지 몰라도 그 회복은 모두 ‘따뜻한 말 한마디’에서 시작되는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