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주 박사. ⓒ크리스천투데이 DB

4.3. 가톨릭 중심적 흡수통합

『제2 바티칸 공의회 문헌』, “거룩한 전례에 관한 헌장”(Sacrosanctum Consilium) ‘주교 바오로의 머리말’에 이 공의회(Sacrosanctum Consilium)의 임무가 설명되어 있다.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이의 일치를 위하여” 그리고 “모든 이를 성교회의 품으로 불러들이려는 데 도움이 되게‘ 하고자” 함이라고 설명하였다.

가톨릭의 종교통합운동은 우선 WCC와 정교회와의 통합에 지대한 관심을 나타내고 있고, 병행하여 타종교와의 통합도 추진하고 있다.

가톨릭의 종교통합운동은 WCC의 교회일치운동과 비슷한 점이 많다. 2013년 제10차 WCC 부산총회 선교와 전도분과의 선언문 ‘함께 생명을 향하여: 변화하는 지형 속에서의 선교와 전도’ 제61항을 보자. “우리는 교회와 일치에 대한 성찰을 더 광범위한 일치이해로, 즉 인류의 일치 및 하나님의 피조세계의 전체의 우주적 일치로 개방할 필요가 있다.”

이와 같이, 가톨릭과 함께한 WCC의 일치운동은 선교와 전도를 위한 일치운동이 아니고 인류의 일치와 피조계의 일치를 위한 운동임을 밝히 나타내고 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WCC와의 일치운동이 가톨릭에서 “분리된 교회들”과 재결합을 이룰 수 있는 중요한 기회가 될 것으로 희망하였다. 개신교회를 ‘갈라진 교회들’이라 칭하고, 이들이 가톨릭교회에 속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하며, “가톨릭교회를 통해서만 구원방법의 모든 충족에 도달”할 수 있고, 주님께서는 으뜸 되는 베드로의 후계자에 의해여 모든 교회를 통치하고 집행하기를 원하신다고 표명하였다.

“그들 중에서 베드로를 뽑으시어, 그의 신앙고백 후에 그 위에 당신 교회를 세우시기로 결정하시고, 그에게 천국 열쇠를 약속하셨으며 그의 사랑고백 후에는 모든 양들을 신앙에 견고케 하고 완전한 일치 가운데 다스리도록 위임하시고 …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사도들과 그 후계자들, 즉 베드로의 후계자를 으뜸으로 모시는 주교들의 충실한 복음 전파와 성사 집행과 사랑의 통치로써 성신의 활동 속에서, 당신 백성이 자라기를 원하시며….”

WCC나 가톨릭은 종교다원주의와 반개종주의를 통해 인류 연합과 종교 통합을 추구하지만, 필자가 금년 6월 6일 한국신학회에서 발제한 ‘WCC의 종교다원주의’에서 밝힌 바와 같이, WCC는 인류연합과 종교통합을 위한 전제조건을 두지 않는다. 그러나 가톨릭은 베드로의 권좌라고 하는 교황의 수위권과, 반복적으로 희생제물이 된 그리스도를 체험하는 화체설과, ‘구원 도우미’로 믿고 있는 마리아 숭배신앙 등을, 결코 양보할 수 없는, 흡수통합의 전제조건으로 선언하고 있다. 그렇다면 조건 없이 통합하려는 WCC와 양보할 수 없는 조건을 걸고 통합하려는 가톨릭의 결국은 어떤 모습이 되겠는가?

과연 WCC가 가톨릭과의 통합을 위해서 가장 먼저 접근한 곳이 바로 가톨릭의 가장 중심부인 미사, 즉 성찬식이다. 사실로 1982년 WCC ‘신앙과직제위원회’는 ‘세례, 성찬, 직제’의 일치를 위해 30개국 이상의 나라들에서 100명 이상의 신학자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페루의 수도 리마에서 리마문서(BEM문서)를 채택하였다. WCC와 가톨릭에 관한 신학적 의견수렴을 통해 연합 의식서를 만들어 낸 것이다. 이 리마문서에서 가톨릭 미사의 핵심 신학인 화체설과 온 피조물을 위한 제사의식 등이 아래와 같이 수용되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몸은 가톨릭 미사 때마다 신부들에 의해 반복적으로 드리는 희생제물이 된다. 제4항에서는 하나님께서 화해하신 이 세상이 성찬식을 거행할 때마다 임재해 있고, 빵과 포도주가 아버지께 봉헌된다고 고백한다. BEM 문서는 제8항 해설을 통해서, 성만찬을 가톨릭의 화목제사(propitiatory sacrifice)로 정의하고 ‘유일한 십자가의 희생 속죄’가 “성만찬 속에서 실제적이 되고 그리스도의 중보기도와 모든 인류를 위한 교회의 중보기도 속에서 아버지 하나님 앞에 바쳐진다”고 한다.

BEM 문서는 위 13항에 대한 해설에서 “많은 교회들이 … 성만찬의 떡과 포도주가 실제적이지만 신비스러운 방식에 의해 … 살아계신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된다고 믿고 있다”고 가톨릭의 화체설을 설명한다. 또 성만찬 32항에서 “일부 교회들은 봉헌된 성물(떡과 포도주)에 그리스도께서 임재하는 것은 그 예전이 끝난 후에도 지속된다는 점을 강조한다”고 설명한다. 제 13항에도 성만찬 시 “그리스도의 실제적인 임재”에 관해 설명하면서 성만찬에 가톨릭적 ‘화체설’을 수용하고 있다.

“성만찬에서 그리스도께서 임재하시는 양식은 독특하다. 예수는 성만찬의 떡과 포도주에 관하여 … ‘이것은 내 몸이니… 이것은 내 피니….’ 그리스도께서 선포하신 것은 진실되며 이 진실은 성찬식이 거행될 때마다 성취된다. 교회는 성만찬 때 실제로 살아서, 또 적극적으로 임재하신다고 고백한다.” 이처럼 WCC ‘리마문서’는 가톨릭의 화체설과 타협하고 있다.

BEM문서의 성만찬론 제20항은 “성만찬은 온 세상을 대신하여 감사와 봉헌을 드리는 대표적 행위”라고 고백한다. 이 봉헌(offering)은 가톨릭 신부가 미사 때마다 화체설적인 떡과 포도주를 봉헌한다는 뜻이다. 사실로 BEM문서는 제4항에서 성만찬을 가톨릭적 의미로 풀이하며, “교회가 모든 피조물을 대신하여 드리는 찬양의 대제사”라고 고백한다.

그러나 개신교회에서는 성찬식 때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의미하는 빵과 포도주를 주님께 받는다고 여기지, 봉헌한다고 여기지 않는다. 그리고 온 세상에 복음을 전파하려 하지, 모든 피조물을 대신하여 제사한다고 하지 않는다.

또 BEM 문서의 성만찬 항목 제11항은 “ …모든 성도들 및 순교자들과 교제하는 우리”라고 하며 죽은 영혼들과 교제하는 가톨릭적인 신앙고백이 포함되어 있다.

위와 다르게 성경적 개신교인들은 성도의 교제가 죽은 자들과의 교제로까지 확대된다고 믿지 않는다. 성경적 성도들의 교제는 산 사람들과의 교제이고, 죽은 사람들과 교제하는 것은 성경이 엄격하게 금하기 때문이다(레 20:27, 대상 10:13, 눅 16:19-31). 십계명 중 가장 중요한 제2계명을 제거한 ‘가톨릭교회의 십계명’은 종교통합과 우상숭배 수용을 용이하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WCC와 가톨릭의 흡수통합 문제를 걱정하기보다, 하나님의 두려운 심판의 날(마 10:28, 살후 1:8-9, 계 21:8)이 이르기 전,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속죄와 하나님과의 화해가 이루어질 수 있는 이 구원을 시급히 전하여, 이 복음을 듣는 모든 사람들이 “생명 얻는 회개”에 이르도록 해야 한다(행 11:18).

결론

가톨릭은 성경적·전통적 기독교 신앙과 고백도, 비성경적·반성경적 전통과 신앙도 간직하고 있다. 그러므로 가톨릭은 성경과 반성경의 혼합주의 신앙을 소유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혼합주의 신앙에 경고하여 가톨릭 성경 묵 22:18f.에 개신교 성경과 동일한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다.

“… 누구든지 여기에 무엇을 보태면, 하느님께서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보태실 것입니다. 또 누구든지 이 예언의 책에 기록된 말씀 가운데에서 무엇을 빼면, 하느님께서 이 책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거룩한 도성에서 얻을 그의 몫을 빼어 버리실 것입니다.”

우리는 ‘진리’가 투표가 아니라 ‘하나님의 계시’로 결정되는 것임을 안다. 우리가 ‘하나님의 계시’를 말할 때는 절대적 진리를 말하는 것이며, 그것은 오직 ‘성경말씀’이다. 인간이 꾸는 꿈이나 환상이나 기적과 같은 것들은 절대적이 아니라 상대적인 것이며, 마귀는 우리를 속이는 영이므로, 영적인 지시들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를 성경에 의해 판단하며, 영 분별을 잘할 수 있어야 한다.

성경의 하나님께서는 우상숭배를 결코 허용하지 않으신다. 갈멜산에서 엘리야는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를지니라”(왕상 18:21)고 단호하게 결단을 촉구했다. 이 같은 순수한 신앙은 신구약 전반에 흐르는, 구원의 가장 중요한 요소임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가톨릭교회에는 십계명 중 둘째인 ‘우상숭배’에 관한 항목이 없기 때문에, 그들이 추구하는 세계종교통합은 용이할 것이다. 가톨릭교회의 예배와 기도 대상들은 항상 천사들을 포함해서 상당수의 죽은 영혼들과 성인들을 포함한다. 그들의 예배는 마리아·성인숭배, ‘연옥’의 영혼들과 통공 등, 상당수의 죽은 영혼들과 관계한다.

이와 대조적으로, 개신교회는 십계명의 제1·2계명을 가장 중요한 계명으로 알고, 기도 대상은 오직 삼위일체의 하나님 한 분 뿐이시다. 개신교회는 하나님 외에는 천사를 포함한(계 19:7-10) 어떤 피조물에게도 기도하거나 중재를 요청하지 않는다. 다만 약속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하고, 구한 것을 받으며, 기쁨과 감사로 충만해진다(요 14:13f). 우리는 구원받기 위해 천사들이나 산 자나 죽은 자의 도움을 받을 필요가 없음을 확실히 알고 있다.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을 받았지만, 피조물이나 죽은 영혼에게 기도하라는 지시를 받은 적은 없다.

『가톨릭 기도서』의 기도문들은 멸망과 죄악에서 해방된 기쁨과 감사의 내용이 아니고, 죽은 영혼들의 도움을 구하며, 오직 용서와 구원을 구하는 기도들 뿐이다.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을혜에서 떨어진 자로다(갈 5:4)”라고 한 말씀처럼, 성경은 아직도 자기 행위나 타인의 공로에 의지해서 구원을 위한 업적을 더하려는 사람들은 구원에 이르지 못하였다고 확실하게 가르치고 있다(롬 3:20-28). 성경은 어떤 선행으로도 우리는 구원을 받을 수 없고, 오직 우리를 대속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의해서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가르치기 때문이다.

이 논문을 준비하느라 가톨릭 서적들을 접하게 된 필자는 가톨릭 신도들에게 로마서(3:20-28)와 사도행전(2:38)을 읽고, 믿고, 하나님께 구원의 기쁨과 감사와 사랑의 기도를 드릴 것을 간절히 권하고 싶다. 그리고 구원을 위해 어떤 피조물의 공로도 의지하지 말고, 오직 유일한 길과 진리와 생명이신 예수님만 의지하고, 모든 죄악을 예수께 직접 고하고 그분의 사랑과 자유함을 받으라고 강권하고 싶다(요 3:16, 5:24, 신 6:5).

기독교인의 선행은 구원을 받으려고가 아니고,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하는 것이다. 죽은 마리아, 죽은 성인들의 성상과 유골 등의 모든 죽음들을 구원 도우미로 생각하는 모든 신앙은, 구약과 신약성경이 철저하게 금하고 배격하는 죄악들이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화목하게 하시려고 예수께서 자기를 희생제물로 드려 단번에 우리의 죄악을 도말하심으로 불화의 요소를 다 제거하셨고, 오순절 이후 우리에게 강림하신(행 2:38, 요 14:16f) 성령님과의 교제로 행복을 누릴 수 있게 되었는데, 가톨릭은 왜 아직도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처럼, 성찬식 때마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서 반복적으로 희생제물이 되게 하고, 어두운 감실 안에서 희생제물로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사모하는가? 가톨릭교회는 왜 부활하셔서 빛 가운데 계신 그리스도와 관계하기보다, 죽음 가운데 계시는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더 추구하는 것일까?

예수 그리스도는 섬기러 오셨는데(막 10:45) 가톨릭 교황은 자신을 “하나님의 대리자”라고 주장한다. 성경은 어떤 인간에게도 “하나님의 대리자” 사명을 주신 흔적이 없고, 다만 전도자와 선교사역자가 ‘하나님의 동역자’로 호칭한다(고전 3:8).

한국어 번역으로 바울이 고후 5:20에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라고 말한 것은, 자신이 ‘그리스도의 대리자’라는 뜻이 아니고 그리스도의 사신(ambassador)이라는 뜻이다. 이 본문은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의 메신저로서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고 말하고 있다. 이 “대신하여”라는 의미는 “하나님의 대리자”로의 뜻이 아니고 on Christ behalf, ‘그리스도를 지지해서’라는 의미이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교회에 관한 교의 헌장”(Lumen Gentium)은 그리스도께서 가톨릭교회를 “사도들의 으뜸인 성 베드로 위에 건설”하시고, 베드로의 후계자요 그리스도의 대리자요 교도권의 무류성을 주장하는 교황의 성스러운 수위권을 설정하시고, 온 교회의 볼 수 있는 으뜸인 교황과 더불어 살아계신 하느님의 집을 다스리는 사도들의 후계자들인 주교들에게 관한 교리는 모든 사람 앞에서 고백하고 선언하기로 결정하였다고 한다.

물론 기관마다 기관장이 있고 모든 기관은 기관장을 존경하고 질서를 지키고 한 뜻으로 목적을 추구해야 할 것이지만, 가톨릭교회의 “으뜸 제자”와 “으뜸 교황” 의식이 그리스도의 설정에 근거했다는 것은 전혀 성경적이지 않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도 자랑하지 못하게 하셨다(고전 1:29, 롬 3:27, 고전 4:7, 엡 2:9). 그리고 예수께서는 베드로와 모든 제자들에게 오히려 이와 반대로 가르치셨다.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려니와,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아야 하리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슴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 20:25-28)”.

위와 같은 사실로 보아 WCC와 가톨릭이 더욱 연합하면, 어느 날 개신교회는 목사를 신부라 부르고 감독이나 총회장을 추기경이라 부르게 될지도 모른다. 또 예배를 미사라 부르고, 신도들은 어두운 감실에서 그리스도이신 성찬용 빵을 매일같이 경배하게 될지 모른다. 만일 그 때가 정말 오게 된다면, 하나님의 말씀과 성경을 사랑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수난 가운데서 주님을 영화롭게 하게 될 것 같다.

위와 같은 날이 우리에게 다가오지 않도록,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사랑하며 그 말씀대로 살기를 소원하는 많은 개신교도들과, WCC와 가톨릭 그리스도인들을 위하여 힘써 복음과 구원의 소식을 나누며, 끊임없는 사랑으로 잃은 영혼들을 위해 간구해야 할 것이다. <끝>

/이동주 박사(선교신학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