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한(샬롬나비 대표/기독교학술원장/숭실대 기독교학대학원 설립원장).

II. 아슬란은 신약성경의 고유한 텍스트 세계를 인정하지 아니한다

머리말

레자 이슬란의 예수 전기(傳記)는 하나의 논픽션(non-fiction)같이 그럴듯하게 보이나, 그가 상상력으로 그려낸 하나의 종교적 소설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의 예수 전기는 말만 전기이지 자기가 임의로 선정한 역사적 사실의 자료에 문학적 상상력을 덧붙여, 사실처럼 보이게 하나 사실과는 전혀 거리가 멀다고 할 수 있다. 이슬람 학자로서 아슬란은, 기독교 신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성경 읽기의 ‘렉치오 디비나’(Lectio Divina: 거룩한 독서. 이를 통해서 역사적 기독교인들은 성경 말씀을 통하여 오늘날 현재하시는 하나님(예수 그리스도)과의 교통을 가졌음)가 가져다 주는 신약성경의 고유한 세계를 인정하지 않는다.

1. 실증주의적 역사 개념

레자 아슬란은 이슬람의 관점에서 신약성경이 지니는 고유한 텍스트의 세계를 인정하지 않는다. 성경 텍스트의 세계란 이천년 기독교 역사를 통하여 기독교 신자들이 역사를 통관하면서, 공동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은혜를 체험하면서 이루는 영적 공동체의 세계이다. 이는 해석학적 세계로서 복음서 저자만이 아니라 기독교인들이 시대적·공간적 제약을 넘어서서 신앙고백을 공유한 영적 세계를 말한다. 그런데 아슬란은 복음서 필자들이 철저히 성경적 테두리 안에 갇혀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 또한 아슬란은 그의 저서 전반에 걸쳐 복음서 저자들의 이러한 집필 동기 등을 이유로, 복음서가 전적으로 역사적 사실을 담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거듭 주장하며 성경에 갇힌 해석에서 벗어날 것을 촉구한다. 아슬란은 복음서 저자들이 발견한 나사렛 예수의 구속 복음 사역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리고 실증적으로 관찰될 수 있는 사실만을 인정하는 실증주의적 역사개념으로 역사적 예수상을 그려내면서, 복음서 저자들이 증언한 성경적 예수상을 왜곡하고 있다. 이슬란의 관점에 의하면, 기본적으로 복음서는 “하나같이 윤식되었고” “완전히 꾸며낸 이야기”(Reza Aslan, Zealot, 민경식 역, 『젤롯』, 93.)로서, “예수의 언행에 대한 목격담도 아니고 살아생전 예수를 알고 있던 사람들이 쓴 것도 아니다”고 본다. 그는 복음서 필자들에게 현대주의적 비평적 관점이 결여되었다고 본다. “관찰할 수 있고 입증할 수 있는 과거의 사건을 비평적으로 분석한다는 개념의 역사는 현대사회의 소산물로 이러한 현대적 역사 개념은 복음서 기자들에게는 너무나도 생소했으며 그들에게 역사란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진실을 드러내는 것”(Reza Aslan, Zealot, 민경식 역, 『젤롯』, 93.)이었다. 따라서 아슬란은 19세기와 20세기 역사적 예수에 관한 자유주의적 비평학적 논구를 그대로 수용하면서 본래의 예수와 신앙의 그리스도를 극단적으로 분리시키고 있다.

2. 복음서 기록에 대한 왜곡의 세 가지 실례

아슬란은 복음서들 사이의 모순점을 드러내면서, 그것을 하나의 논픽션처럼 자기 상상력으로 해설함으로써 복음서 필자들이 증언한 역사적 예수의 진정한 모습을 왜곡시키고 있다. 다음 두 실례를 보자.

첫째 예로, 누가복음에는 열두 살 된 예수가 예루살렘 성전에 서서 히브리 성경의 핵심을 두고 랍비들과 논쟁을 벌이는 장면이 나오지만, 마가복음에서 언급한 테크톤(당시 로마에서는 그리스어인 테크톤을 문맹 소농의 의미로 사용)이라는 직업, 가난한 갈릴리 시골 마을이라는 성장 환경, 유대 농민 가운데 문맹률이 97%였던 당시 사회 상황을 감안해 보면, 예수는 문맹일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한다.

아슬란의 이러한 주장은 복음서가 전하는 사실을 전적으로 왜곡하는 것이다. 예수는 구약성경에 능통한, 그 시대의 랍비였다는 것은 복음서가 증언하는 사실이다. 누가는 예수가 자기 고향 나사렛 회당에 들어가, 비치된 구약성경 이사야를 펴시고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사 61:1-2)를 찾으시고 이 예언이 오늘날 성취되었다고 말씀하신다: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눅 4:21). 이는 예수가 문맹자가 아니라 소년기 시절부터 회당에서 구약성경을 읽고 연구한 선비(rabbi)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둘째 예로, 예수를 무조건 평화론자로, 그리고 정치적 선동과는 상관없은 사람으로 묘사하는 보도는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본다. “예수를 무조건적 평화를 가르치고 실천한 사람이라든가 당시의 정치적 동란과는 전혀 상관 없는 사람으로 묘사하는 복음서의 보도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Reza Aslan, Zealot, 민경식 역, 『젤롯』, 27-28.) 그러나 네 복음서는 역사적 예수는 당시의 유대교의 열심당이 가졌던 급진적 메시야 민족주의(radical Messianic nationalism)에 동조하지 않으셨고, 철저히 그것과 자신의 구속사적 십자가의 길을 구분하셨다. 사도 요한은 오병이어의 기적 이후에 민중들이 예수를 왕으로 만들려고 했을 때, 예수는 저들을 피하셨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 사람들이 예수께서 행하신 이 표적을 보고 말하되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 하더라.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이 와서 자기를 억지로 붙들어 임금으로 삼으려는 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 가시니라”(요 6:14-15).

셋째 예로, 빌라도 총독은 예수에게 무혐의를 확인한 것이 아니라 그를 일반 죄수처럼 재판없이 즉각 처형했다는 해석이다. 예수의 처형 결정을 내린 로마 총독 본디오 빌라도가 복음서에서는 예수가 잘못이 없음을 알고 풀어주려고 애쓰는 인물로 그려지지만, 이 역시 로마인을 대상으로 선교하기 위해 그들이 껄끄러워할 부분을 미화한 것일 뿐, 문헌상의 총독 빌라도는 유대인 수십 명을 처형하는 것은 일도 아닌 잔혹한 인물로, 틀림없이 예수와 짧게 대면한 후 곧바로 형을 집행했을 것이라고 아슬란은 주장한다.

3. 아슬란의 해석은 복음서 기록과 전혀 상반

그러나 이러한 아슬란의 해석은 복음서에 나타난 기록과는 전혀 상반된다.

1) 요한의 기록: 총독 빌라도는 예수가 죽을 죄가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사도 요한은 소설을 쓴 것이 아니라 구속사라는 하나님의 사역에 속하는 빌라도의 심문을 기록했다. 요한은 빌라도 법정에서 사형선고받게 된 사실조차도, 우연이 아니라 성경에 기록된 대로 십자가에 처형될 하나님 아들의 사건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다. 빌라도는 예수와 짧게 대면하고 사형을 선고한 것이 아니라, 예수를 진지하게 심문한다. 그리고 예수에게 “진리가 무엇이냐” 하고 묻기까지 한다(요 18:38a). 그리고 예수에게 죄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놓아주려고 하나: “빌라도가 이르되 … 다시 유대인들에게 나가서 이르되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하였노라. 유월절이면 내가 너희에게 한 사람을 놓아 주는 전례가 있으니 그러면 너희는 내가 유대인의 왕을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 하니”(요 18:38b-39). 민중들은 예수가 아니라 바라바를 풀어주라고 한다: “그들이 또 소리 질러 이르되 이 사람이 아니라 바라바라 하니 바라바는 강도였더라”(요 18:40). 빌라도는 민중들의 참소에 못 이겨 예수를 죄수로 정하고 군인들로 하여금 예수를 데려다가 채찍질 하게 하고(요 19:1), 가시관을 머리에 씌우고 자색 옷을 입히고(요 19:2) 유대인의 왕이라고 조롱하고 손으로 때리도록 한다(요 19:3).

빌라도는 죄수복을 입은 예수를 민중들 앞에 데리고 나오도록 하고 예수에게서 죄를 찾지 못했다고 말한다. 요한은 증언한다. “빌라도가 다시 밖에 나가 말하되 보라 이 사람을 데리고 너희에게 나오나니 이는 내가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함이로라 하더라”(요 19:4). 가시관을 쓰시고 자색 옷을 입은 예수께서 대제사장과 민중들 앞에 인도되자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이들이 아우성치는 것을 보고 다시 빌라도는 여전히 예수에게서 죽을 죄를 찾지 못했다고 말한다. “이에 예수께서 가시관을 쓰고 자색 옷을 입고 나오시니 빌라도가 그들에게 말하되 보라 이 사람이로다 하매, 대제사장들과 아랫사람들이 예수를 보고 소리 질러 이르되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하는지라 빌라도가 이르되 너희가 친히 데려다가 십자가에 못 박으라 나는 그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였노라”(요 19:5-6).

<1> 유대인들은 비정치적 예수에게 정치적 반역자라는 누명을 씌운다.

빌라도가 예수에게 고소할 거리가 없다고 하자, 유대인들은 예수가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한다는 신성모독으로 고발한다. “우리에게 법이 있으니 그 법대로 하면 그가 당연히 죽을 것은 그가 자기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함이니이다”(요 19:7). 이에 빌라도는 예수의 고발이 종교적인 문제라 더욱 두려워하여 예수를 다시 관정으로 불러들여 심문하나, 예수는 대답하지 아니하신다. 빌라도는 예수에게 말한다. “내가 너를 놓을 권한도 있고 십자가에 못 박을 권한도 있는 줄 알지 못하느냐”(요 19:10). 이에 대하여 예수는 빌라도에게 대답하신다. “위에서 주지 아니하셨더라면 나를 해할 권한이 없었으리니 그러므로 나를 네게 넘겨 준 자의 죄는 더 크다”(요 19:11). 예수가 빌라도에게 하신 말 “위에서 주지 아니하셨더라면 나를 해할 권한이 없었으리니”는 하나님의 우주적 통치를 언급하는 구절이다. 이 말씀은 빌라도가 예수를 처형할 권세도 우주적 통치자인 하나님께 부여받은 것을 말하고 있다. 이러한 예수의 발언은, 그가 메시야요 그의 메시야 시대는 지금(고난의 종의 시대)이 아니라 다가오는 종말(역사와 우주 심판의 시대)의 때라는 것을 언급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빌라도는 예수의 진술이 종교적인 것이지 황제에 대한 정치적인 모반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을 보고 그를 놓아주려고 애를 쓴다. 사도 요한은 다음과 같이 증언한다: “이러하므로 빌라도가 예수를 놓으려고 힘썼으나.”

<2> “예수 석방은 가이사의 충신이 아니다”는 유대인들의 비난에 굴복하는 빌라도

유대인은 ‘유대인의 왕이라는 예수를 놓아줄 경우 황제의 신실한 신하가 아니다’라는 논리를 가지고 빌라도에게 압력을 가한다. “유대인들이 소리 질러 이르되 이 사람을 놓으면 가이사의 충신이 아니니이다 무릇 자기를 왕이라 하는 자는 가이사를 반역하는 것이니이다”(요 19:12). 이 말을 듣고 빌라도는 예수를 끌고 가서 재판대에 세우고 자신은 재판석에 앉아 말한다. “보라 너희 왕이로다”(요 19:14b). 이에 대해 유대인들은 예수를 십자가에 처형하라고 고함을 지른다. “그들이 소리 지르되 없이 하소서 없이 하소서 그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요 19:15a). 대제사장들이 로마 황제 이외는 유대인의 왕이 없다고 말한다. “가이사 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나이다”(요 19:15b). 빌라도는 민중들의 항의에 못 이겨 예수에게 십자가 처형을 언도하게 된다(요 19:16).

이상에서 보듯이 예수는 전혀 정치적 항거나 민중 반란을 의도하지 않았으나, 예루살렘의 종교세력들이 예수가 자신을 “유대인의 왕”이라고 참칭(僭稱)했다고 고발함으로써 로마 황제에 반란을 꾀하는 인물이라는 정치적 반란의 혐의를 씌운 것이다. 예수는 자신이 유대인의 영적 왕이라는 사실을 증언했으나,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이 발언을 예수가 로마 황제에 대해 반역했다는 정치적 발언으로 왜곡시키고, 십자가 처형을 받도록 한 것이다.

2) 누가의 기록: 빌라도 “내가 보니 이 사람에게 죄가 없도다”

누가의 기록도 요한의 기록과 다르지 않다. 누가는 대제사장들과 그 무리들이 예수를 고발한 내용이 내란 선동이라고 적고 있다. “무리가 다 일어나 예수를 빌라도에게 끌고 가서, 고발하여 이르되 우리가 이 사람을 보매 우리 백성을 미혹하고 가이사에게 세금 바치는 것을 금하며 자칭 왕 그리스도라 하더이다”(눅 23:1-2). 빌라도는 예수를 심문한다.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눅 23:3a). 예수는 대답하신다. “네 말이 옳도다”(눅 23:3b). 예수의 증거를 들은 빌라도는 예수가 종교적 확신에 찬 비범한 현인(賢人)으로서, 열심당이 저지른 폭력을 행사하여 로마 체제에 반란을 꾀하는 죄가 없다고는 것을 알고는, 고발한 유대인들을 향하여 예수에게 죄가 없다고 말한다. “내가 보니 이 사람에게 죄가 없도다”(눅 23:4). 이에 대하여 대제사장들과 무리는 예수가 갈릴리 지역에서 행한 순수한 복음전파와 치유활동을 사회정치적인 백성선동으로 왜곡하여 고발한다. “무리가 더욱 강하게 말하되 그가 온 유대에서 가르치고 갈릴리에서부터 시작하여 여기까지 와서 백성을 소동하게 하나이다”(눅 23:5). 빌라도는 예수가 갈릴리 지역에서 활동한 것을 듣고, 그 지역 관할자인 헤롯 왕에게로 인계한다. 당시 헤롯이 예루살렘에 있었으므로 헤롯이 예수를 심문하나, 이미 헤롯의 인물됨을 익히 아시는 예수는 그의 질문에 일체 대답하지 아니하신다. 그리하여 헤롯은 예수를 빌라도에게 돌려보낸다. 빌라도는 대제사장들과 관리들과 백성들을 불러모으고, 로마법에 의하면 예수가 죽을 죄를 짓지 않았음을 확인하고 채찍을 친 뒤 석방하려고 한다. “너희가 이 사람이 백성을 미혹하는 자라 하여 내게 끌고 왔도다 보라 내가 너희 앞에서 심문하였으되 너희가 고발하는 일에 대하여 이 사람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였고, 헤롯이 또한 그렇게 하여 그를 우리에게 도로 보내었도다 보라 그가 행한 일에는 죽일 일이 없느니라. 그러므로 때려서 놓겠노라”(눅 23:14-16). 빌라도는 유대인들이 예수에 대하여 “이 사람이 백성을 미혹하는 자”라며, 고발건에 대하여 동의하지 아니하였다.

백성 미혹이라는, 예수에게 붙인 죄목은 유대의 종교지도자들에 대한 위협을 말하는 것이지 로마 체제에 대한 저항과는 무관하다는 것을 빌라도는 인지하였던 것이다. 이에 대제사장의 사주를 받은 유대인들이 아우성치면서 반대한다. “무리가 일제히 소리 질러 이르되 이 사람을 없이하고 바라바를 우리에게 놓아 주소서”(눅 23:18). 이 장면에서 누가는 살인범인 열심당원 바라바는 로마체제에 반란을 꾀한 자였다는 것을 해설하고 있다. “이 바라바는 성중에서 일어난 민란과 살인으로 말미암아 옥에 갇힌 자러라”(눅 23:19). 빌라도는 민란과 살인을 저지른 열심당원 바라바를 십자가에 처형하고 예수를 놓아주려고, 군중들을 두 번째 설득한다. 이에 다시 대제사장들과 그 무리들은 예수를 처형하라고 빌라도를 압박한다. “그들은 소리 질러 이르되 그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눅 23:21). 빌라도는 세 번째 예수에게 죽을 죄가 없다고 그를 놓아주려고 한다. “빌라도가 세 번째 말하되 이 사람이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나는 그에게서 죽일 죄를 찾지 못하였나니 때려서 놓으리라”(눅 23:22). 이에 다시 대제사장들과 무리들은 빌라도를 압박하여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재촉하여 빌라도를 설복시킨다. “그들이 큰 소리로 재촉하여 십자가에 못 박기를 구하니 그들의 소리가 이긴지라”(눅 23:23). 이에 빌라도는 살인자는 놓아주고 예수를 십자가에 처형하기를 결정한다. “이에 빌라도가 그들이 구하는 대로 하기를 언도하고, 그들이 요구하는 자 곧 민란과 살인으로 말미암아 옥에 갇힌 자를 놓아 주고 예수는 넘겨 주어 그들의 뜻대로 하게 하니라”(눅 23:24-25). 누가의 기록에서 우리는 예수가 로마 황제에 대항하여 반란죄를 획책하지 않았기 때문에 죽을 죄가 없음을 빌라도가 알고, 예수를 세 번이나 놓아주려고 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처럼 예수에게 죄가 없다는 빌라도의 확고한 인식은, 예수가 정치적 혁명가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뒷받침해주는 것이다.

3) 마태의 기록: 빌라도는 예수를 두려워하였고 십자가 처형 언도와는 무관하다고 선언했다.

마태의 기록도 요한이나 누가의 기록과 다르지 않다. 대제사장들과 백성들이 총독 빌라도에게 예수를 데려다, 그가 자칭 유대인의 왕이라고 하였다고 고발한다. 빌라도는 예수를 심문한다. 예수는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마 27:11a)라는 빌라도의 심문에 “네 말이 옳도다”(마 27:11b)라고 대답하신다. 그 후 대제사장들과 백성들의 비난과 고발에 대하여 예수가 한 마디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는 것을 보고, 빌라도는 “크게 놀라워한다”(마 27:14). 마태는 기록하기를, 빌라도는 예수가 죽을 죄를 지은 것이 아니라 유대 종교지도자들의 시기로 인하여 고발된 것을 알았다고 증언한다. “이는 그가 그들의 시기로 예수를 넘겨 준 줄 앎이더라”(마 27:18).

마태는 빌라도의 아내가 예수 때문에 지난 밤에 매우 애태운 꿈 꾼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총독이 재판석에 앉았을 때에 그의 아내가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저 옳은 사람에게 아무 상관도 하지 마옵소서 오늘 꿈에 내가 그 사람으로 인하여 애를 많이 태웠나이다”(마 27:19). 빌라도는 예수를 놓아주려고 하였으나, 유대 종교지도자들이 세 번이나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겠나이다”고 강권하므로, 빌라도는 대야를 가져오라 하여 이 결정에는 자기는 무관하다고 손을 씻기까지 한다. “빌라도가 아무 성과도 없이 도리어 민란이 나려는 것을 보고 물을 가져다가 무리 앞에서 손을 씻으며 이르되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마 27:24). 그리하여 빌라도는 민란을 두려워하여 예수를 처형하도록 허락한다. 빌라도가 민란을 두려워하였다는 것은, 예수가 예루살렘에 와서는 민중들이 그를 추종하였던 것이 아니라 입성할 때의 메시야 열기가 완전히 식고 고난의 종에 대한 실망으로 가득찬 데서 나온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사실도 예수가 민중이 열광한 해방자로 이해한 것이 아니라 민중이 싫어한 고난의 종으로 이해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이에 바라바는 그들에게 놓아 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 주니라”(마 27:26). 빌라도는 대야를 가져오도록 하여 손을 씻을 정도로 예수에게 십자가 처형 언도를 내림에 있어서 깊은 내적 갈등과 양심의 가책과 주저함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복음서 기자들의 일치된 증언은, 아슬란이 왜곡하여 서술하듯이 예수의 심판이 다른 로마체제에 대한 반란자인 열심당원을 처형하듯이 즉결심판이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맺음말

아슬란은 실증적으로 관찰될 수 있는 사실만을 인정하는 실증주의적 역사개념에 자신의 문학적 상상력을 가미하여 역사적 예수상을 그려내면서, 복음서 저자들이 증언한 성경적 예수상을 왜곡하고 있다. 아슬란이 왜곡하듯이 예수는 문맹자가 아니었고, 정치혁명가적 의도가 없었다. 민중의 소요죄란 대제사장을 비롯한 종교지도자들이 자신들의 종교적 사회정치적 안전을 위하여 예수에게 뒤집어 씌운 죄목이었다. 그래서 요한, 누가, 마태의 기록에 의하면 총독 빌라도는 예수가 혁명가적 혐의가 없는 것을 알고 세 번이나 풀어주려고 했다. 따라서 예수는 정치적 혁명가가 아니었다. 예수에게 구태어 혁명가라는 딱지를 붙인다면 영적 실재로 다가와서, 하나님 나라의 능력으로 인간과 사회의 내면을 변화시키는 영적 혁명가라고 말할 수 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