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수 교수. ⓒ크리스천투데이 DB

한기총 이영훈 목사의 제20대 대표회장 취임과 한목협의 ‘교단장협의회’ 재발족 움직임으로 한국교회 연합운동에 변화의 조짐이 싹트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본지는 2014년 3월 20일, 한기총에서 주최한 한국교회연합운동 토론회에서 박명수 교수(서울신대)가 발표한 ‘복음주의적 연합운동 방안’ 원고를 연재한다. -편집자 주

한기총의 등장과 현재의 상황

사실 1960년대 이후부터 한국의 보수·복음주의 교회를 대변할 수 있는 연합기구는 없었다. ICCC를 중심으로 한 단체들이 있었지만, 이들이 한국의 보수·복음주의를 대변할 수는 없었다. 실제로 1960년대에서 1980년대에 이르는 기간 동안은 NCCK의 황금기라 할 수 있다. 이들은 박정희 정권에 대한 투쟁을 하면서 민주화의 중심으로 부상했고, 세계교회에도 명성을 날렸다. 하지만 이런 그들의 운동은 한국교회의 일반적인 정서와는 거리가 멀었다.

1988년은 한국교회의 역사에서 기억할 만한 해이다. 당시 NCCK는 한국교회가 반공을 참회한다는, 소위 88선언을 발표했다. 이것은 그들의 민주화운동이 반공 이데올로기에 걸려 좌절되는 것을 보고, 반공 이데올로기가 통일과 민주화에 대립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한경직 목사를 중심으로 한 한국교회의 생각은 달랐다. 한국교회는 반공의 기초에서 민주주의가 발전할 수 있고, 종교의 자유도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결국 한경직 목사와 감리교·기장을 포함한 대다수의 한국교회의 지도자들은 NCCK의 입장이 한국교회를 대변하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를 만들게 되었다. 1988년 설립된 한기총은 한국교회의 현실적 문제를 가지고 씨름하는 연합운동이 되었고, 점점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얻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한기총은 한국교회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보수·복음주의교회를 대표하는 단체로 등장하게 되었다.

한기총이 한국교회의 대표적인 연합운동 기관이 된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한국교회의 성장이다. NCCK가 주로 외국에서 들어오는 지원으로 프로그램을 진행한 반면, 한기총은 한국교회의 힘으로 설립되고 운영되었다. 처음에는 기독실업인회가 지원해 주었고, 다음에는 한국의 교단과 교회들이 후원해서 운영되었다. 한기총은 한국의 토착 연합기관인 것이다.

둘째, 선교단체들의 활동이다. 한국교회에는 각종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선교단체들이 있었고, 이들은 대부분 복음주의 입장에 있었다. 그런데 이들에게는 대표성이 필요했다. 한기총은 이들을 산하기관으로 편입시켜 한국교회의 이름으로 지원했다. 따라서 한기총은 단지 교파연합이 아니라 선교단체의 연합이었던 것이다.

셋째, 국가정체성 확립이다. 한기총이 한국 사회에 강하게 부각된 것은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였다. 이들의 대북정책이 한국교회에는 매우 위험스럽게 보였고, 한기총은 보수단체들과 힘을 합하여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강조하기 시작하였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확립이라는 용어가 한기총의 각종 모임에 등장하게 된 것도 이것 때문이다.

하지만 한기총은 최근 들어서면서 역사에서 가장 큰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그것은 서두에서 말했듯 한기총의 주요 멤버들이 한기총 활동을 보류하고 한교연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현재 한기총의 가장 중요한 멤버였던 통합·합동·기성 등이 한기총에서 활동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면 이 같은 상황은 왜 오게 되었는가? 우리는 여기에서 뼈아픈 자기 반성이 있어야 할 것이다.

필자는 얼마 전 한교연의 모임에서 ‘과연 따로 갈라서는 것이 최선이었는가’를 물은 적이 있다. 오히려 ‘문제가 있다면 내부에서 개혁하는 것이 옳지 않았을까’ 하고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이제 필자는 한기총 모임에서, 왜 이렇게 한기총이 어려움을 겪게 되는가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어려움을 언급하지 않고 적당하게 연합을 말한다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첫째, 대표회장 선출과정에서 보여준 도덕성의 결여이다. 민주주의의 핵심은 선거이며, 그 과정은 공정해야 한다. 하지만 언론에 보도된 것에 따르면 각종 잡음이 들려왔고, 이것은 일반 사회에까지 알려지게 되었다. 이것은 많은 한국교회 신자들로 하여금 기독교인이라는 것에 대해서 수치감을 느끼게 만들었다.

필자는 현재 한국교회의 가장 큰 위기는 이념 문제가 아니라 맘모니즘에 굴복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일반인들은 성직자라고 하면 우선 물질과 명예에 초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 일반인들에게 비친 개신교 성직자들의 모습은 어떠한가? 우리는 많은 개신교 신자들이 천주교로 넘어가는 것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둘째, WCC 부산총회를 둘러싼 유연성의 부족이다. 한기총이 WCC를 반대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한기총은 복음주의 연합기관이며, 따라서 WCC 신학과 다른 입장을 갖고 있다. 하지만 이것이 지나치면 역효과를 갖기 쉽다. NCCK에 가입한 교단 내에도 많은 복음주의자들이 있다. 최종적인 판단자는 한국 교인들이며, 동시에 한국 사회다.

필자는 WCC 부산총회가 한국교회의 연합에 기여하기보다는, 오히려 분열을 확대시켰다고 본다. 우선 WCC 총회는 회원과 찬성하는 사람들끼리 진행하면 될 일이었다. 그런데 준비위원회 측에서 WCC 부산총회를 한국 전체 교회의 축제로 만들려고 했다. 이것은 50여년 전 WCC 때문에 갈라진 한국교회의 정서를 너무나 고려하지 않은 것이었다. 또 여기에 대한 반발로 한기총은 WCC 총회 반대 집회를 열었다. 이런 싸움은 한국교회와 사회에 좋은 이미지를 주지 못했다. 필자의 의견으로는 WCC 반대 의사를 분명히 하는 것으로 족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최근 WEA 세계대회가 무산된 것은 바로 이런 유연성 없는 태도에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세계 복음주의는, 신앙은 복음주의이지만 다른 입장을 존중할 줄 아는 자세를 요구한다.

필자는 한동안 한기총을 애정 어린 마음으로 지켜보았다. 만일 한기총이 당시 논의되고 있던 감리교 가입을 설득하여 성사시킬 수만 있었다면, 한기총은 한국의 대다수 교회를 포함하는, 명실상부한 대표 기관이 되었을 것이다. 당시 상당한 논의가 있었는데, 결국은 실패하고 말았다. 한기총이 한국교회의 대표적 연합기관이 된 것은 오랫동안 쌓은 노력의 결과이다. 하지만 한기총은 여기에서 더 나아가지 못하고 주저앉았을 뿐 아니라 현재는 상당히 후퇴했다고 말할 수 있다. <계속>

/박명수 교수(서울신대, 교회사)